Rimien Siarte

 똑. 똑. 똑.

 맑은 물방울이 붉디 붉은 속눈썹에 뭉쳐있다가 흘러내렸다. 물기를 머금고 파르라니 떨리는 길고 곧은 그것은 너무나도 깨끗한 순홍(純紅)이었다. 색이 없는 물방울이 붉게 물들었다가 투명한 빛으로 굴러떨어졌다.

 똑. 똑. 똑.

 고인 물방울이 넘치고, 넘친 물줄기는 좁은 길을 따라 흘렀다. 소녀의 하얀 무릎, 가느다란 종아리, 굳은 살 하나 없는 발을 넘어 새하얀 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 있었다. 푸른 언덕 위에 세워진 저택 가장 깊은 곳에서 숲 건너 평야를 지나 바다까지 이어지는 좁고도 넓은 길이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며 점차 거세지는 흐름은 숲에 생명을 불어넣고 힘차게 달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꿈을 찾아 주인이 바라는 대로 이야기를 주워담는다. 그것이 제 뜻인양. 마치 처음부터 이것을 원했다는 듯이. 그렇게. 그렇게.

 언덕을 타고 내려온 숲은 본디 그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광활한 땅을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사람보다 동물이 많고 동물보다 식물이 많은 곳. 수많은 삶이 한데 뒤엉킨 이곳에서 사람이 손댈 수 있는 건 너무 적었다. 사람들은 쫓긴 끝에 숲 언저리에 마을을 세우고 인생을 빚어 땅에 뿌렸다. 인생은 슬픔과 만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고 사람들은 그 열매로 다음 생을 준비한다.

 아이는 열매를 땄다. 초라한 차림은 먼지를 뒤집어써 엉망이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얼룩덜룩하게 때가 탔다. 완전히 지친 표정이지만 음식을 쥔 손아귀는 힘이 넘친다. 아이는 입을 한껏 벌려 열매를 통째로 입안에 욱여넣었다. 씹기도 힘든 부피에 턱이 빠질 것 같지만 부지런히 씹는다. 어디서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이는 고요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익은 열매를 골라 잡아당겼다. 거친 손놀림에 과육이 튀었다.

 열매는 양 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앞치마에도 모였다. 아이는 정말로 누군가 고함을 지르기 전에 후다닥 달음질을 쳤다. 요령 없는 아이의 손길에 밭 한 구석이 엉망으로 망가졌다. 아이는 그런 것을 모른다. 그저 수로를 따라 숲으로 달려갈 뿐이다.

 사람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야 아이는 겨우 숨을 돌린다. 모아쥔 앞치마를 펼치고 허겁지겁 입에다 열매를 쑤셔넣는다. 때로 떫거나 신 것이 있는지 오만상을 하면서도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허기를 달래고 아이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밑창이 달랑거리는 가죽신으로 길도 없는 숲을 헤매며 아이는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걷다가 걷다가 자리에 주저앉는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이는 끙끙 앓으며 바닥을 살피지도 않고 나무에 기대 엉덩이를 붙였다. 서러움에 눈물이 났다.

 이전에 아이는 이토록 꾀죄죄하게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늘 깔끔해 옅은 색 원피스를 입어도 혼날 때가 없었다. 엄마는 늘 아이가 얌전하고 어른스럽다고 했다. 아빠는 아이가 뭘 해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이웃 어른들에게도 칭찬을 받았고 친구들은 선망했다. 아무도 아이를 업신여기지 못했다.

 아이가 좋아하던 옅은 새싹 빛깔의 원피스는 진흙에 범벅이 되었고 생일에 선물받기로 한 새 구두는 요원해졌다. 항상 달고 다니던 귀여운 빨간 리본은 어딘가로 사라졌고 머리는 봉두난발이었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몰랐다.

 아이는 정말로 몰랐다. 아이의 집은 이 숲 가장자리에서 멀지 않은 마을에 있었다. 아이가 서리한 밭은 친구네 집에서 가꾸는 것이었고, 아이가 먹은 열매는 매년 이맘때면 식탁에 오르는 단골 메뉴였다. 아이의 부모님은 지금쯤 식탁에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잦아들던 눈물이 도로 눈꺼풀을 비집고 나왔다.

 아이는 울면서도 배가 아파 앓았다. 고통에 눈물이 들어갈 듯하다가 서러움에 도로 터지고 다시 고통이 밀려들어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러기를 몇 번 하니 아이는 아파서 우는지 서러워서 우는지 모르게 되었다. 어쨌든 아이는 펑펑 울었고, 한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배를 끌어안고 주저앉아 있었다.

 작은 동물들이 기웃기웃 아이의 주변을 맴돌았다. 설치류 한 마리가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과육이 터진 열매를 훔쳐 달아났다. 아이는 앓으면서도 치마를 여며 과실을 숨겼다. 작은 짐승을 따라 크고 무서운 것들이 올까 무서웠지만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더니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아이는 여전히 배가 아팠고, 움직일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해가 저물면 무서운 짐승이 나타나 아이를 물어갈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아이는 얼어죽을 것이다. 가을 밤이었다. 아이에게는 밤이슬을 피할 수 있는 지붕도 추위에서 몸을 지킬 이불도 없었다. 아이는 또 눈물을 똑똑 흘렸다.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려보낸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았지만 아이는 일어났다. 코를 훌쩍이며 마을을 향해 걸었다. 노을은 빠르게 사그라들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으니 숲에서 계속 있을 순 없었다.

 아이는 걸음이 느렸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텼다. 마을 안에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대신 첫번째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무너졌다.

 벽에 기대 색색 숨을 뱉는다. 아이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가 눈을 떴다. 아직은 좀 더 걸어야한다. 이곳은 아이의 집이 아니었다.

 땅과 숲을 기반으로 사는 마을은 집과 집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아이는 느릿느릿 집들을 거쳐 그리운 곳으로 향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잠들던 곳. 아이의 방이 있고,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아이는 제 집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췄다. 계속 움직이니 배앓이도 조금은 덜해진 것 같다. 하지만 더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는 저가 무엇하러 이곳에 왔는지 몰랐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아이는 휘청거리다 주저앉았다. 길 한복판이었지만 더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쳤고 배앓이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거기서 사랑하는 집을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그리움을 가득 담았다.

 그곳은 아이와 부모님의 보금자리였고, 아이의 세상 전부이던 곳. 그러나 이제는 아이의 자리가 없었다. 아이는 어제 넘어다 본 풍경을 떠올렸다. 행복하게 웃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보다 훨씬 작은 아기가 있었다. 아이가 없는데도 엄마와 아빠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슬퍼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나흘도 넘게 밖에서 잠을 잤는데 엄마와 아빠는 아무것도 몰랐다.

 아기는 며칠 전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아이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출산을 지켜보았다. 엄마 배를 가르고 나온 아기. 시뻘건 고깃덩이 같은 아기. 아이는 너무 징그러워서 저도 모르게 찌푸렸다. 동생이 생겨 기뻐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날 아이는 남몰래 못된 짓을 꾸몄다.

 엄마 몰래 아빠 몰래 아기를 버리자. 나는 이렇게 못생긴 동생은 싫어요. 곱게 머리를 빗기고 예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놀러나가려고 했단 말이야.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바쁜 사이 아기를 버리자.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는 못난 아기를 품에 안고 달렸다. 좁고 깊은 길을 달렸다. 어른들은 모르는 길. 아이들만의 길.

 길 끝에는 작은 아지트가 있다. 조그만 나무판자와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집. 아이는 친구들과 만든 작은 세계에 아기를 버렸다. 미안해. 조그맣게 사과의 말도 속삭여본다. 너는 착하니까 용서해 줄거지? 아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활짝 웃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집안은 조용했다. 갓 낳은 아기가 사라진 것도 아이가 자리를 비운 것도 마치 없는 일인양했다. 아니, 엄마가 아기를 낳은 것 자체가 없는 일 같았다. 출산에 불려온 아주머니들도 동동거리며 집앞에서 발을 구르던 아빠도 없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으로 달려간다.

 엄마가 지르던 무시무시한 비명과 새빨간 핏덩어리가 아이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엄마는 어디갔지? 아기를 낳으면 많이 아프니까 맛있는 걸 먹고 푹 쉬어야 한댔는데. 아주머니들이 맛있는 걸 해줄테니 기다리랬는데.

 ‘엄마!’

 아이는 외쳤다. 힘껏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엄마가 깨끗한 모습으로 아이를 반긴다. 아마색 앞치마에 젖은 손을 문지르며 조용히 웃는 것은 어여쁜 아이의 엄마다.

 ‘벌써 왔니? 친구들이랑 안 놀았어?’

 ‘엄마 괜찮아?’

 아이는 엄마의 치맛자락을 꼭 붙들었다. 엄마는 다정하게 아이를 끌어안아주었다. 언제나 그랬듯 따뜻한 품이었다.

 포근한 감촉과 달콤한 냄새에 아이는 눈을 감는다. 응, 우리 엄마다. 엄마는 괜찮아. 아이는 사랑스런 미소를 머금고 엄마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는 간지럽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고 아이는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엄마, 나는 동생 같은 거 필요 없어. 아주 예쁜 동생이 아니면 없어도 돼.’

 ‘얘도. 뭐라는 거니?’

 엄마는 아이가 우습다며 꺄르륵 소녀처럼 웃었다.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뺨에 뽀뽀를 했다. 엄마는 내 엄마다. 엄마, 사랑해요. 엄마는 아이가 어리광쟁이가 되었다며 장난스레 이마를 콩 쥐어박았다.


 사랑스럽다는 말 외에 그 무엇으로 칭하랴. 그렇다. 그들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가족이었다. 서로를 어여삐 여기고 항상 다정한 말을 나누었다. 아이는 금슬 좋은 부부의 품에서 행복했다. 부부가 아이에게 쏟아내는 애정, 아이가 느끼는 행복. 그 모두가 아이의 자랑이었다. 아이는 그의 가정을 사랑했다. 실로 사랑할만한 가정이었다.

 그리하여 아이는 기어코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동생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 좋았으며 있지도 않았노라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은 아이가 저지른 끔찍한 죄 탓이었을까 아니면 부부의 숨은 욕심 탓이었을까. 이유야 어찌되었건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였을까. 아이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어리고 순진한 아이에게는 벅찬 꿈이었다. 아이는 매일밤 아기를 만났다. 제가 버린 아기는 마지막 모습 그대로 잎새로 햇빛이 내리쬐는 나무 그늘에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있고 아이는 그걸 바라보며 홀로 소꿉놀이를 하는 꿈이었다. 무엇이 그리 무서운지는 아이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아이는 잠에 들지 못했다.

 가장 이상하고 무서운 건 그 다음이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매달려 울었다. 숲에 버리고 온 동생이 자꾸만 꿈에 나온다고 두려워하며 울었다. 엄마는 자다 깨서 졸음에 겨운 상태에서도 방긋방긋 웃었다.

 ‘우리 아가 배고프구나. 맘마 먹을까?’

 ‘그런 게 아니야, 엄마. 내 말을 좀 들어줘요.’

 엄마는 밤이면 아이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 어제 왜 그랬어요?’

 ‘무어가? 아유, 예뻐. 역시 내 딸이네.’

 엄마는 낮이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서 아이는 아빠를 찾았다. 아빠는 예쁜 딸애가 품에 엉기자 일에 쫓기면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빠, 아빠. 엄마가 이상해요.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봐.’

 ‘밤에?’

 아빠가 물었다. 아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밤에요.’

 ‘우리 예쁜 딸. 시끄러워서 깼나 보구나.’

 아빠는 아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아니야. 어제는 조용했어.’

 ‘우리 애기가 언제 이렇게 다 컸을까. 아빠는 기쁘구나.’

 ‘아빠 이상해.’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아기는 어려서 밤에도 계속 먹어야해. 그래서 시끄러운 거예요.’

 아기요?

 아이는 되물었다. 아빠는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아이가 착한 언니라고 칭찬했다. 아이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몽은 계속 되었다. 아기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아이가 노는 것을 구경했다. 새카만 눈은 맑고 깨끗했다. 아이는 가끔 아기를 데려다 역할을 주었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아기가 있는 세 가족의 아기 역할이었다.

 아이는 아침이 다가오면 이게 꿈이란 것을 깨달았다. 꿈 속에서는 대개 소꿉놀이 중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흙을 한 스푼 크게 퍼서 나뭇잎을 올리고 호호 불어 아기에게 먹였다. 꿈속의 아기는 신기하게도 그것을 받아 먹었다.

 아이는 아기와 노는 꿈속의 자신에게 목이 터져라 함께 놀지 말라고 외쳤다. 하지만 꿈속의 아이는 아이의 말을 듣지 못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이는 끔찍함에 소리 지르며 깨어나곤 했다.

 아이가 비명을 질러도 엄마와 아빠는 듣지 못했다. 이웃에 사는 친구들도 몰랐다. 아이는 무서워서 매일 울었다. 아지트에는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친구들이 아무리 놀러가자고 해도 아이는 가지 않았다.

 ‘언니랑 놀고 싶어.’

 아기가 말했다.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꿈속의 아이가 깜짝 놀랐다. 아기는 새카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꿈속의 아이는 입술을 댓발 내밀고 투덜거렸다.

 ‘무슨 짓이야. 깜짝 놀랐잖아. 아-, 해야지.’

 아기는 조그만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흙으로 만든 수프를 받아 먹었다. 아기는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꿈속의 아이가 혼을 냈다.

 ‘음식을 입에 물고 말하면 안 돼.’

 ‘잘못했어요.’

 아기는 아주 착한 동생이었다.

 다음 날도 아이는 같은 꿈을 꾸었다. 이번에도 아기가 이야기했다.

 ‘나 언니랑 놀고 싶어.’

 ‘안 돼. 하루종일 놀 수는 없어.’

 꿈속의 아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잠깐만 놀면 되잖아.’

 ‘매일 놀고 있잖아. 더 놀면 혼날거야.’

 ‘나랑 놀면 안 혼나.’

 ‘아니야. 혼나.’

 ‘내기할래?’

 ‘싫어. 그런 건 못된 애들이나 하는 거랬어.’

 두 번이나 거절당한 아기는 매우 침울해졌다.

 그 다음 날에도 아이는 꿈속에서 아기와 소꿉놀이를 했다. 아이는 혼자서 아빠와 엄마 역할을 모두 했다. 아빠일 때는 나무가 엄마였고, 엄마일 때는 나무가 아빠였다.

 ‘여보, 오늘은 조금 늦을 거예요.’

 ‘저녁까진 들어와요?’

 ‘힘들 것 같아요.’

 ‘일찍일찍 들어와요. 아기가 기다려요.’

 ‘흐아암.’

 아기가 하품을 했다. 꿈속의 아이는 화를 냈다.

 ‘바보야. 거기서 하품을 하면 어떡해. 그러면 아빠가 집에 빨리 들어오지 않잖아.’

 ‘그치만 졸린걸.’

 ‘그럼 그냥 자. 하품 같은 거 하지 마.’

 꿈속의 아이는 아기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기는 숨이 막혀 바둥거렸다.

 그 다음 다음 날에 꿈속의 아이는 혼자 있었다. 아기가 없어도 소꿉놀이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 자리에 거의 아기만한 매끈매끈한 돌멩이가 있었다. 꿈속에서 아이는 그걸 아기 삼아 놀았다.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기가 없어서인지 무섭지도 않았다.

 그날 아이는 행복한 꿈을 꾸었다. 아이는 오랜만에 기분 좋은 잠을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아이는 추위에 떨며 몸을 감싸안았다. 아이는 숲에서 눈을 떴다. 머리 위로 나뭇가지가 펼쳐져 밤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꿈속에서처럼 연한 새싹빛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빨간 리본이 달려 있었다.

 이상하다.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하얀 스타킹에 학교 갈 때 신는 가죽 신발. 아이는 아직도 꿈을 꾸나 싶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날씨와 시간이었지만 꿈이 틀림없었다.

 아이는 한달음에 집으로 향했다. 달리자 바닥의 찬 기운이 조금은 멀어졌다. 아이는 콩콩 문을 두드렸다.

 콩콩. 콩콩콩. 콩콩콩콩.

 엄마와 아빠는 깊이 잠들었는지 집은 조용했다. 까만 밤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아이는 자꾸만 문을 두드렸다.

 콩콩콩콩. 콩콩콩콩. 콩콩콩콩.

 아이의 언 손이 아파올 때쯤 문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빠였다.

 ‘누구세요?’

 ‘아빠, 나예요!’

 ‘누가 이 새벽에 장난질이야.’

 아빠는 짜증내며 멀어졌다. 아이는 놀라서 문에 달라붙었다. 아빠가 내 목소리를 못 들었나봐.

 ‘아빠! 아빠! 나예요. 아빠!’

 아이는 문을 쾅쾅 두드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아빠. 나예요. 아빠. 문 열어줘요.

 마침내 아빠는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는 아빠에게 답싹 매달렸다. 아빠가 아이를 뻥 걷어찼다.

 ‘아빠!’

 ‘이 자식이 새벽부터 미쳤나.’

 아빠는 화를 내며 몇 번이나 발길질을 했다. 아이는 숨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날부터였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이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더 걷어차이고 다시는 사람들 집에 접근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다. 가고 싶지 않아도 배가 고파서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쓰레기통도 뒤지고 밭에서 작물을 훔쳤다. 그러다가 또 얻어맞았다. 너무 서럽고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집에서 아이는 보았다. 제가 버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행복했다. 아기는 보드라운 크림색 강보로 몸을 감싸고 새카만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그것밖에 할 줄 모르는 아기였다.

 아이는 엄마가 아이가 어릴 적에 쓰던 거라며 보여준 크림색 강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창 너머로 아기가 아이를 쳐다보았다. 방긋방긋 웃으며 입을 빠끔거린다. 아이는 도망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기의 입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언니. 같이 놀자.’

 날이 지고 아이는 까마득히 멀어지는 시야를 힘겹게 붙잡았다.

 고꾸라진다. 억울한 마음도 이제는 없다. 그저 이 상황이 싫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그리웠고 따뜻한 집이 그리웠고 맛있는 식사가 그리웠다. 아픈 것도 추운 것도 싫었다. 길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으면 누군가 또 걷어찰지도 모른다. 아픈 건 싫다. 아이는 기어서 길가로 이동했다. 밤이슬에 축축한 풀이 아이의 맨살과 치맛자락을 적셨다.

 눈물이 퐁퐁 흐른다. 아이는 그저 슬펐다. 작은 몸을 꼭 끌어안고 웅크렸다. 아이는 그저 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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