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날 발견한 풍경에서 오늘의 전투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생존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라는 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바라는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았다. 빛을 잃은 영혼만큼 갈등이 피어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렇다면 직접 준비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리라.

 유사 노바라가 아야메 에리카에게 동맹을 제안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정을 넘긴 야심한 시각,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인공적인 불빛도 사라진 미타키하라의 밤거리에 다섯 명의 소녀가 나타났다. 흰 종이에 잉크가 번지듯 허공에 그려진 소녀들은 차츰 분명한 사람의 형태로 바뀌었다. 마법같은 등장과 가장 무도회라도 나가듯 알록달록한 복장은 빌딩 사이에서 보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누군가 본 사람이 있어도 착각이라고 여길 법 했다.

 소녀들은 아직 앳되었다. 마녀라는 초현실적인 존재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것은 고작 중학생 여자아이들 뿐. 마녀는 때를 가리지 않지만 대부분의 전투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지 않았다. 늦은 저녁이면 소녀들은 사이좋게 인사를 하고 헤어지곤 했다. 창칼과 총기를 들고 싸우지만 소녀들은 중학생이었다. 그 밤은 아주 특별한 밤이었다.

 결계가 걷힌 거리는 발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소녀들은 긴 시간 마녀의 결계에서 시달렸지만 보도에 발을 디디고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미타키하라시를 지키는 다섯 마법 소녀―은 어디에서 습격이 들어와도 방비할 수 있는 자세로 진영을 유지했다. 만화 속 한 장면을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노바라는 검은 안개 속에 숨어 입술을 적셨다. 오랜 계획 끝에 마련한 무대는 시작도 되기 전부터 짜릿하게 노바라를 흥분시켰다. 어서, 어서 시작되어라. 노바라는 그렇게 기도했다.

 소녀들은 긴장된 시선을 이따금 주고받을 뿐 빈틈 없이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따금 사각사각하는 소리와 얇은 날개 같은 것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의 누구도 자세를 풀지 않았다. 노바라는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설명해주겠니?”

 그렇게 말한 것은 진형의 중심에 서있던 노란 머리의 소녀였다. 미타키하라 중학교에 삼학년으로 재학 중이며 퀸텟의 리더인 토모에 마미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고작해야 중학생인 소녀는 나이 답지 않게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단순하지만 우아한 동작이었다. 평화롭게 말을 건내면서도 아름답게 장식된 머스킷의 총구는 흔들리지 않는다.

 노바라는 대번에 인상을 구겼다. 토모에 마미가 나설 것 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노바라는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에 대해서라면 본인들만큼이나 잘 알았다. 토모에 마미는 리더였지만 모든 일을 망쳤다. 그녀는 일본 전역에서 가장 강할지도 모르는 마법소녀였지만 그것 뿐이었다. 모두가 그녀의 강함에 반해도 노바라만은 그 실체를 알고 있었다.

 “하!”

 누군가 큰 소리로 코웃음쳤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는 토모에 마미의 모나지 않은 어조와 달리 날카롭게 하늘을 찢었다.

 “설명이고 나발이고 쓸데없는 짓이야.”

 남자아이처럼 거칠게 이기죽거린 것은 사쿠라 쿄코였다. 그녀는 바깥을 향해 겨눈 창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곁눈으로 토모에 마미 쪽을 곁눈으로 살피더니 한쪽으로 턱짓을 했다.

 “어떻게 봐도 저 녀석이 범인이잖아? 괜히 도망칠 기회를 주지 말자고. 아니면 설마,”

 지이익. 아스팔트가 쓸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쿠라 쿄코가 묘기처럼 창을 휘둘렀다. 마찰열로 불꽃이 튀고 찰캉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붉은 스커트가 허공을 날았다. 완전히 앞을 경계하는 자세에서 비스듬히 옆으로 선 자세가 된 사쿠라 쿄코는 고개를 획 돌렸다.

 “이 녀석이랑 한패인거야, 마미?”

 붉은 머리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한 손으로 겨눈 창끝은 여전히 날카롭게 적을 향하고 있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어떻게 빛을 잡았는지 날붙이가 번뜩였다.

 “그런 게 아니야, 사쿠라양.”

 토모에 마미가 대꾸했다.

 “그럼 협력해. 일단 잡아놓으면 알 수 있겠지.”

 사쿠라 쿄코는 픽 웃으며 다시 창이 향하는 쪽을 바라보았다. 빈 손으로는 어디서 났는지 껌을 까서 입에 넣는다. 몇 번 씹는 듯 하더니 푸우, 하고 바람을 넣었다. 토모에 마미가 꾸짖듯 낮은 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사쿠라 쿄코가 콧방귀를 뀌었다.

 토모에 마미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을 때였다.

 “싸우지 말아요.”

 검은 안개 속에서 상냥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다정하게 귓가를 어루만지는 듯 따뜻하고 조용했다.

 “언성을 높이면 예쁜 얼굴이 일그러진답니다.”

 저벅저벅. 흙을 밟는 소리가 났다. 흐린 불빛 아래 어둠에 잠긴 형체가 서서히 뚜렷해졌다. 소녀들과 비슷한 키의 사람 그림자 같았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사신이라고 착각할법한 커다란 낫이 보이고, 곧 실체가 드러났다. 검은 두건을 쓴 소녀였다.

 짤랑이는 금속성이 들렸다. 걸음마다 파드득거리는 날개짓과 짐승의 그르렁거림도 한층 심해졌다. 전신을 꼼꼼히 감싼 검은 옷 탓에 소녀는 어둠이라는 벽에서 반쯤 튀어나온 부조처럼 보였다. 장신구처럼 둘린 황금빛 테두리가 아니면 온전히 주변과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지요?”

 두건 아래로 드러난 하얀 턱과 분홍빛 입술이 예쁜 곡선을 그렸다. 노바라가 간절히 기다리던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아야메 에리카,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가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 앞에 강림했다.


 소녀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랜 마법소녀 생활로 단련된 토모에 마미와 사쿠라 쿄코는 비교적 침착했지만 계약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키 사야카와 카나메 마도카는 달랐다. 경계가 풀리자 짐승 소리가 한층 커졌다가 일순간에 가라앉았다.

 “에리카.”

 미키 사야카가 침울하게 말했다. 침울하게 숙인 이마 위로 앞머리가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를 악물었는지 턱이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오른손에 든 칼은 거의 땅에 닿도록 떨어져 있었다.

 미소 띈 얼굴 그대로 두건 그림자가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저기, 아니지?”

 카나메 마도카가 한발 에리카에게 다가섰다.

 “에리카가 히토미를 죽였다니 그럴 리 없지?”

 어느새 울음이 터졌는지 카나메 마도카의 얼굴은 눈물 투성이였다. 솜사탕처럼 부풀어있던 스커트는 꽃가지가 달린 활로 내리 눌러 축 처졌다. 기도하듯 손을 모은 채였다.

 “마법소녀는 꿈과 희망으로 이루어진 존재,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아야메 에리카는 안타깝다는 듯 동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카나메 마도카는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털 많은 강아지 귀처럼 매달린 양갈래가 몽실몽실 흔들렸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 참 아름다웠어요.”

 카나메 마도카는 얼굴을 감싸며 울음을 터뜨렸다.

 “에리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미키 사야카가 카나메 마도카를 감싸고 달랬다. 어느새 짐승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해명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구나.”

 토모에 마미가 침통하게 말했다.

 “일단 때려눕히면 어떻게든 된다니까.”

 사쿠라 쿄코는 짜증이 난 것 같았다.

 “…….”

 상황을 지켜보던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의 마지막 소녀는 긴 머리를 한 번 쓸어넘길 뿐 말이 없었다.

 노바라는 우연히 찾은 영화관의 유일한 관객이 된 기분으로 느긋하게 상황을 즐겼다. 나초가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아무것도 없는 게 아쉬웠다.

 아야메 에리카를 도와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을 잡도록 도운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녀는 대담하고 아름다웠으며 악마처럼 교활하고 죽음의 대변인 같은 마법소녀였다. 토모에 마미와 사쿠라 쿄코를 한꺼번에 상대하면서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큐베도 정체를 모른다고 단언한 아케미 호무라의 마법에 당황하지 않고 노바라보다도 먼저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특별한 마법소녀였다.


 노바라가 아야메 에리카를 처음 본 것은 토모에 마미의 동료로서였다. 당시 토모에 마미는 혼자나 마찬가지였고, 겨우 모은 동료들에게는 아직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노바라는 미타키하라시 근방에서 탄생한 마법소녀를 하나도 빠짐 없이 알고 있다고 장담하던 시기였다. 갑자기 미타키하라 중학교에 나타난 에리카는 노바라의 범위에서 벗어난 첫 번째 구멍이었고, 노바라는 미타키하라시에 사는 토박이 마법소녀의 탄생 장면을 놓쳤다는 사실에 크게 자존심이 상했다.

 뿐만 아니라 에리카는 예쁘고 사랑스러웠으며, 토모에 마미를 잘 따랐다. 토모에 마미가 늘 그렇듯이 두 사람은 손발이 잘 맞았고, 노바라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몰래 지켜보며 분노를 키워나갔다. 자존심도 기분도 엉망이었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한 번은 학교에서 큰 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

 노바라는 만사를 제치고 아야메 에리카의 뒷조사에 전념했다. 어떻게든 약점을 잡아 토모에 마미와 찢어놓겠다는 마음이었다. 큐베에게 물었지만 그것은 원하는 사실을 쉽게 알려주는 짐승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던 노바라는 자체 조사에 나섰다. 원활한 조사를 위해 먼 곳까지 원정을 나가 마법소녀를 사냥하고, 마녀로 재탄생하기 직전의 그리프시드를 붙들어 소울젬을 정화했다. 남은 그리프시드는 토모에 마미의 손에 걸리지 않기만을 빌며 적당히 거리에 풀어놓았다. 마녀의 탄생은 아름다웠고 마력은 넘쳐흘렀다.

 아야메 에리카는 실로 보잘 것 없는 아이였다. 조금 예쁘장하게 생긴 것 외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평화로운 가정에 원만한 교우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마법소녀로서도 특출날 것이라고는 없었다. 노바라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깔끔하게 뒤집힌 것은 어느 밤이었다. 노바라는 슬슬 아야메 에리카에 대해 알아보는 것에 질려있었다. 마음 속에서 두 번째 토모에 마미로 가정하며 이번 방문을 마지막으로 할지 다음 방문을 마지막으로 할지 고민하는데 평소라면 곧장 집으로 향할 에리카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노바라는 이번에야 말로 뭔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었다.

 언제나 아가씨처럼 우아하게 걷던 아야메 에리카의 걸음이 경쾌해졌다. 노바라는 갈수록 이 앞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에리카는 인적이 드문 거리에 위치한 상가 건물로 들어갔다. 이층에 자리한 학원 말고는 운영하는 가게가 없는 건물이었다. 당연히 자물쇠로 잠겨 있었지만 마법소녀에게 그런 것이 문제될 리는 없었다. 에리카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보고 노바라는 다시 건물을 빠져나왔다.

 노바라의 마법인 검은 안개는 소리를 감추고 눈을 가려주었지만 밀폐된 실내 공간에 오래 있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실외에 있으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향기가 통풍이 안 되는 실내에서는 여지없이 잡혔다. 안개에서는 희미하게 장미향과 썩은 피비린내가 났다. 노바라는 그 냄새가 마음에 들었지만 들키기 좋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계도 즐길 것도 없는 거리에서 혼자 서있는 것은 지루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노바라는 그저 기다렸다. 한없이 길게 느껴졌지만 아마도 그리 길지 않았을 시간이 흐르고 에리카가 나타났다. 노바라는 허공에 내뱉던 욕설을 삼키고 에리카가 떠나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법으로 다시 잠궈둔 자물쇠를 풀고 상가 지하로 내려갔다. 사람이 있을 리 없는 어두운 복도라 안개를 부를 필요도 없었다.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역시 잠겨있었다. 여기서 노바라는 잠시 멈춰야했다. 문은 물리적으로만 잠긴 게 아니었다. 다중으로 마법이 걸려 있었다. 손잡이에 손을 대면 마법소녀에게 알람이 가고, 일시적으로 문의 구조가 바뀌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정확히 어떻게 바뀌는 건지 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출입을 막는 형태이겠거니 싶었다.

 그 뒤로 노바라는 지하실을 돌파하기 위해 한달이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 마법을 깨보기도 하고, 에리카의 뒤를 따라 숨어들어가려고도 해보았지만 무리였다. 어찌나 철저한지 틈이 없었다. 진입에 성공한 것은 노바라의 계략이 아닌 에리카의 실수 탓이었다.

 에리카가 지하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에 갑자기 토모에 마미에게서 텔레파시가 날아왔던 것이다. 토모에 마미는 마침 상가 근처를 순찰 중이었고 에리카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지하에서 뛰어나왔다. 그녀가 그렇게 급하게 뛰는 모습은 그 이후로도 볼 수 없었다. 노바라는 토모에 마미를 감시하는 것도 포기하고 지하로 향했다. 어찌나 급했는지 문은 겨우 잠갔지만 마법이 하나도 걸려있지 않았다. 노바라는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지하는 생각보다 쾌적하고 평범했다. 노바라는 어리둥절했다. 문 앞부터 놓인 선반에는 빼곡하게 물건이 쌓여있고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있었다. 어떻게 보아도 오랜 시간을 보낼 장소가 아니었다. 노바라는 의아했지만 일단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지하는 제법 넓었다. 선반을 두어개 지나자 은은한 마력의 흔적이 느껴졌다. 이곳에도 마법이 걸려있던 게 분명했다.

 다음 순간, 노바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노바라는 아야메 에리카가 기대를 져버릴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확신컨대 그녀는 노바라가 발견한 최고의 악이고, 순수한 어둠이었다. 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노바라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존재. 유사 노바라는 행복한 미소를 띄고 소녀들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노바라가 기다리는 것은 단순했다. 아야메 에리카와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의 전면전이었다. 이 순간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랐다. 처음 에리카는 조금도 노바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바라는 그녀를 꾀어내기 위해 수없이 지하실을 드나들었고, 퀸텟의 뒷조사를 했다.

 “여러분.”

 에리카는 평소처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퀸텟을 불렀다.

 다섯 소녀는 제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토모에 마미는 한층 안색이 어두워졌고, 사쿠라 쿄코는 창을 치켜들었다. 카나메 마도카는 눈물 어린 눈으로 에리카를 향해 고개를 들었으며, 미키 사야카는 매섭게 노려보고, 아케미 호무라, 마지막 소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심했다.

 “얼마나 크게 낙심하고 슬퍼하고 계신지 알고 있답니다. 모두 보았는걸요.”

 에리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곧 후드 그늘 아래 유일하게 뚜렷하게 보이는 분홍빛 입술이 미소지었다.

 “제게 여러분의 마음을 받아들일 기회를 주시겠어요?”

 에리카를 끌어들이는 것이 힘들었지 계획 자체는 간단했다. 우선 마녀를 이용해 퀸텟을 원하는 장소에 몰아넣고, 에리카가 그녀들의 시선을 끈다. 그 사이 노바라가 한 사람씩 안개로 끌어들여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임에도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이유는 하나였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듯, 같은 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말할 것도 없이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이었다.

 “예쁜 얼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에리카의 말을 신호탄 삼아 전투가 시작되었다. 아야메 에리카는 넘실거리는 검은 안개 속으로 숨듯이 사라지고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와 날갯짓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까만 드레스는 온전히 어둠에 스며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적에게 상냥하게 말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에리카와 닮은 검은 갑옷이 시야가 닿는 자리로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들 중 가장 키가 큰 사야카보다도 머리 두 개는 더 올라간 덩치의 거대한 곰, 무리 지은 개들, 반짝이는 황금 머리통을 가진 요정과 뒤에 숨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펭귄 같이 생긴 새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개를 제외하고는―종류별로 한 마리 씩이었지만,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소녀들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었다.

 곧 다른 방향에서도 곰이 불룩 솟은 배를 방패삼아 어정어정 걸어나왔다.

 푸엘라 마기 홀리 퀸텟도 가만 있지만은 않았다. 카나메 마도카와 미키 사야카 역시 재빠르게 자리를 찾아 섰다.

 “미키양, 총 쏘는 법은 잊지 않았지?”

 “염려 마세요, 마미 선배.”

 중앙에 선 것은 토모에 마미와 미키 사야카였다. 등을 맞대고 선 두 소녀는 바닥을 향해 머스킷과 세이버를 뿌렸다. 정확한 엄호 사격에 빽빽하게 꽂힌 총과 칼이 하나 뽑힐 때마다 어김없이 깨갱 소리가 들렸다.

 “어이, 마도카. 저쪽을 노려.”

 사쿠라 쿄코는 불꽃을 뿌리고 있었다. 긴 창은 사슬로 연결된 여러개의 봉으로 갈라져 온갖 방향에서 소녀들을 향해 들어오는 공격을 동시에 막고, 쳐내고, 튕기는 동시에 틈틈이 반격까지 놓치지 않았다.

 “…….”

 아케미 호무라는 소녀들의 전투 포메이션과는 무관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지나간 자리에서 폭발이 일었고, 반드시 하나 이상의 적이 쓰러졌다. 멀리서 날아오는 에너지파는 물론 떼로 덤벼드는 개들도 그녀를 잡지 못했다.

 “미안해, 에리카.”

 전투의 여파가 별로 미치지 않는 후방에 서서 귀를 기울이던 카나메 마도카가 하늘 높은 곳을 향해 활을 치켜들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시위를 당긴다. 토모에 마미와 사쿠라 쿄코가 가리킨 방향으로 마법 화살이 쏟아졌다.

 거센 소나기가 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목표가 된 방향에 서있던 짐승들이 팝콘처럼 튀어올랐다.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다. 잠시 공격이 멈췄다. 퀸텟도 입가를 가리고 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화살 세례를 받고 무너진 것은 적만이 아니었다. 먼지가 걷힌 자리에는 안개도 흩어져 소녀들과 맞서 싸우던 동물들의 바늘꽂이 같은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널부러진 시체 사이로 커다란 고철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검은 철판 여러장으로 이루어진 반구체였다. 철컹. 퀸텟의 정면에서 구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위부터 한 장 한 장 길죽한 판이 떨어지더니 네 개의 손가락을 활짝 펼친 손바닥 같은 한 장의 날개가 되었다.

 “어머, 이 먼지 좀 봐.”

 아기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펼쳐지는 날개 속에서 아야메 에리카는 가볍게 제채기를 했다. 바닥에 꽂혀있던 마법 화살이 사라졌다. 짐승의 몸에 뚫린 구멍에서 깃털이 날아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에리카가 손짓하자 인형도 사라졌다.

 “성실하게 훈련하셨군요. 카나메양이 벌써 이런 공격을 하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감탄한 듯 에리카가 말했다. 좌우 합쳐 무려 여덟 장이나 되는 날개가 등 뒤에서 기지개를 폈다. 완전히 쭉 펼쳐진 순간 늘 달고 다니던 두 장을 제외한 나머지가 빛으로 부서져 떨어졌다.

 에리카가 우아하게 서서 날개를 접는 동안에도 주변 상황은 그렇게 느긋하지만은 않았다. 살아있는 짐승처럼 울부짖는 인형들이 발톱을 세우고 주위로 몰려들었고 퀸텟은 놓치지 않고 포위 진형을 좁혔다.

 “도망가게 둘 수야 없지.”

 사쿠라 쿄코가 코웃음쳤다. 긴 창을 어깨 위에 얹은 그녀는 짐승 따위는 상대가 아니라는 듯 여유로웠다.

 “항복하렴, 아야메양.”

 토모에 마미는 언제 흔들렸냐는 듯 단호한 눈빛으로 에리카를 바라보았다. 머스킷이 노란 리본뭉치가 되어 풀어졌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목에 처음처럼 예쁜 모양으로 리본이 나타났다.

 “우리들 전원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거니?”

 토모에 마미는 자신있게 미소지었다. 맨손이었지만 기백은 무기를 들고 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에리카는 웃었다.

 “글쎄요.”

 고민하듯 고개를 살풋 기울이더니 답한다.

 “안 될 것도 없지 않을까요?”

 에리카가 마치 누군가를 소개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펼쳤다.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울부짖던 짐승들이 일제히 뛰어올랐다. 어느사인가 해치운 것 이상으로 불어난 수에 사쿠라 쿄코가 혀를 찼다.

 “마력이 넘쳐나는 모양이지? 이정도로 여유가 있으면 사냥도 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그랬어.”

 에리카는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사쿠라 쿄코가 재빠르게 따라붙었지만 때로 몰려든 개가 발목을 묶었다. 토모에 마미의 총알은 커다란 곰이 갑옷으로 받아냈다.

 “그랬다가는 여러분께 당하지 않았겠어요.”

 에리카의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번졌다.

 “당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사쿠라 쿄코는 투덜거리며 물러났다.

 전투는 지루한 공방전이 되었다. 정갈한 방어 진형이 허물어져 난전이 되어있었다. 인형들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튼튼한 갑옷 덕분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공격은 끈질길 뿐 치명적이지 않았다. 본체가 인형인 탓인지 속도가 느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미키 사야카도 대부분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피하고 있었다.

 소녀들은 차츰 지쳐갔다. 미키 사야카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사쿠라 쿄코와 토모에 마미의 공격은 거칠어졌다.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와 짐승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침묵 아닌 침묵이 계속 되었다.

 “어딨어, 마도카!”

 소리를 지른 건 미키 사야카였다.

 “무슨 일이야?”

 “카나메양?”

 토모에 마미와 사쿠라 쿄코, 두 사람도 고개를 들었다.

 “마도카가 안 보여요!”

 미키 사야카가 비명처럼 외쳤다. 소녀들은 급히 주위를 살폈다. 검은 갑옷을 입은 인형들이 퀸텟을 둘러싸고 있었다. 달아나려고 해도 빠져나갈 길이 없을 정도로 절묘한 배치였다. 아까 에리카가 발견된 위치에는 사쿠라 쿄코, 반대편에서 미키 사야카가 싸우고, 그 사이에서 토모에 마미가 머스킷으로 동시에 다섯 마리의 인형을 노려 머스킷을 발포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아케미양도 보이지 않았어.”

 “뭐야? 어떻게 된거야?”

 “마도카….”

 “두 사람이 사라졌어.”

 사쿠라 쿄코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개 세 마리를 깨끗하게 베어버렸다. 반토막이 난 인형에게서 깃털이 터지는 듯 하더니 모습이 사라졌다.

 “이것도 저것도….”

 잠시 공격이 멈춘 사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토모에 마미가 어둠 속으로 머스킷을 발포했다.

 “네가 꾸민 일이지, 아야메양?”

 토모에 마미가 침착하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들어.”

 사쿠라 쿄코가 으르렁거렸다.

 “마도카를 어디로 빼돌렸어!”

 미키 사야카가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다시 천천히 걷는 발소리가 들렸다.

 “너무해요. 전부 제탓이라는 건가요?”

 다시 나타난 에리카에게서 아까같은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후드는 찢겨져 벗겨지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헀다. 엉망인 것은 퀸텟도 마찬가지였다. 사쿠라 쿄코가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마냥 괴물은 아니었나보네. 너도 지치냐?”

 아야메 에리카는 미소로 답했다. 언제나 보여주던 인형같은 미소가 아니었다. 가엽고 안쓰럽다는 듯 내려다보는 웃음이었다.

 “마도카를 돌려줘.”

 “미키양!”

 미키 사야카가 검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토모에 마미가 막으려 했지만 늦었다. 커다란 곰인형이 사야카를 막아섰다. 지쳐버린 소녀는 곰의 두툼한 앞발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두드려 맞았다.

 “성급함에는 반드시 실패가 따르게 마련이지요.”

 에리카가 세 발짝 앞으로 걸어나왔다. 미키 사야카는 정신을 잃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사야카를 내려다보는 에리카의 시선은 묘한 빛을 띄고 있었다.

 “카나메양과 아케미양을 데려간 게 네가 아니라는 거니?”

 토모에 마미가 물었다. 에리카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미.”

 사쿠라 쿄코가 나직하게 토모에 마미를 불렀다.

 “알고 있어.”

 토모에 마미가 대답했다.

 “이 안개, 마법적인 거지? 어쩐지 너무 어둡더라니.”

 “마녀의 결계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흔적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남은 퀸텟의 두 소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이.”

 사쿠라 쿄코가 바닥에 창을 세웠다.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나와라, 숨어있는 놈.”

 “이번엔 곱게 넘어갈 수 없겠네. 무리를 하더라도 말이야.”

 토모에 마미는 눈을 감았다. 마력의 흐름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을 노려 갑옷 인형 하나가 덤벼들었다.

 쨍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사쿠라 쿄코의 창이었다.

 “저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군요, 두 분.”

 에리카는 난처하게 웃고 얕은 한숨을 뱉었다. 갑자기 갑옷 인형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거대한 낫이 세 사람 사이에 떨어진 거리를 단번에 좁혀들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에리카의 직접 공격이었다.

 “어딜!”

 사쿠라 쿄코는 창으로 낫을 받아내고 이를 악물었다. 낫의 크기 탓인지 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잘도 속여왔구만.”

 “어머, 진심이었답니다. 모든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을 뿐이지요.”

 에리카가 상냥하게 속삭였다.

 “그게 그 말이잖아!”

 사쿠라 쿄코는 기합처럼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낫을 밀쳐냈다. 에리카가 후후, 웃었다.

 “이게 무슨.”

 밀치는 힘 그대로 사쿠라 쿄코의 창이 낫 속으로 파고들었다. 에리카의 낫은 조그만 세포가 모여 이루어진 군집체처럼 창대를 붙잡았다. 에리카는 당황한 사쿠라 쿄코의 팔을 붙들었다. 손목 보호대가 그 팔에 들러붙었다. 검은 날개가 밤하늘을 가렸다.

 핑. 날개가 두 사람을 완전히 감싸기 전에 총알이 날아왔다. 토모에 마미가 눈을 부릅뜨고 연달아 머스킷을 쏘았다. 에리카는 낫을 놓고 쿄코를 붙들지 않은 쪽 손목 보호대로 얼굴을 가렸다. 사쿠라 쿄코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창을 당겼다.

 정확히 그 순간이었다.

 아야메 에리카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디선가 날아온 송곳같이 가늘고 검은 창이 에리카의 뒤통수를 뚫고 얇은 장갑에 닿았다. 녹슨 로봇같은 움직임으로 에리카가 고개를 움직였다. 꽂혀있던 창이 사라졌다. 사쿠라 쿄코가 창을 내리 찍었다. 에리카의 낫이 달린 채였다. 토모에 마미의 총알이 정확히 얼굴을 향했다. 에리카는 두가지 공격을 한 번에 막기 위해 손목을 비틀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정체 모를 검은 창이 날아들었다. 끝이 정확히 보호대와 손목 사이로 파고들었다.

 빛이 부서졌다. 옅은 보랏빛을 띈 눈이 허공에서 춤추며 내려앉았다. 빛을 잃은 눈동자는 느리게 가라앉았다. 훤하게 바람 구멍이 뚫린 얼굴에는 곳곳에 핏대가 서있었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안 돼, 마도카!”

 노바라는 웃었다. 악마를 잡았네. 악마를 잡았네. 죽음조차 좌지우지하던 악마를 잡았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눈이 빠지게 전투를 들여다본 보람이 있었다. 붉은 장미 꽃잎은 핏방울을 머금고 새롭게 피어났다.

 안개 속에서 또다시 검은 창이 날았다. 붉은 생명의 보석이 산산조각 났다. 노란 보석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갔다. 노바라는 불쾌하게 입가를 비틀었다. 토모에 마미는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다.

 토모에 마미에게 여분의 그리프시드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전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마법으로 일대를 감추고 있었으니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 날의 전투를 위해 질릴 정도로 그리프시드를 모았다. 고생은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일격이 토모에 마미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story in my world' 카테고리의 다른 글

烾㣋㤜: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 第一日 昼  (0) 2018.10.11
烾㣋㤜: 외로움을 견디는 방법 第一日 夜  (0) 2018.10.10
MxS 토막글 : 청혼  (0) 2017.10.07
MxS 토막글  (0) 2017.09.26
고양이를 만났다  (0) 2010.03.11
Posted by fa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