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나

the other world 2016. 1. 2. 18:49

 아야메 에리카는 행복하다. 작금의 상황에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에리카는 요즘 행복의 방에서 살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비유일 뿐이고 요즘 에리카에게 즐거운 일이 많이 일어난 것뿐이지만 사실 여부야 아무려면 어떤가. 어쨌든 요즘 에리카는 매우 행복했다.

 행복은 놀랍게도 소꿉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에리카의 유일무이한 친구이자 단 하나의 소중한 인연인 아오이 카나의 죽음이다. 그 비극적인 사건―시각에 따라서는 경사라고 표현해야 할는지도 모른다―이 일어난 것은 에리카와 나들이를 나간 여름방학 중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이쪽이야!”

 카나는 천사처럼 반짝이는 미소로 에리카를 불렀었다. 어머니가 타지 말라고 씌워준 챙 넓은 모자 위로 뜨거운 여름 햇살이 작열하듯 떨어졌다. 자잘한 꽃무늬가 그려진 단순한 원피스가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한 몸에 근사하게 어울렸다. 성숙한 여인과 어린아이가 한 몸에 들어있었다. 바람도 불지 않는 더운 날씨에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마저 아름답다.

 에리카는 바로 그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의 순간순간을 찰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선로를 넘어간 카나가 에리카를 불렀고, 에리카는 주저주저 뒤를 따라갔다. 에리카는 자기가 남들보다 느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카나는 늘 남보다 앞서가는 아이였다. 에리카는 항상 카나 뒤를 따라갔다. 그건 언제나 있는 일이었고 특별할 것 없는 한걸음이었다. 그 한걸음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을 만들었고, 에리카는 그 순간을 다시없을 재앙이라 평했다.

 전철이 오는 걸 눈치챈 건 두 사람이 선로를 넘어가 한참 놀며 긴장을 놓고 있던 저녁이었다. 카나는 뭔가 곤충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에리카는 다리가 아파 쪼그려 앉아 있었다. 전철이 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걸 피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 에리카가 그렇게 둔하고 느린 아이였을 뿐이었다.

 “에리카!”

 카나가 날카롭게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에리카는 고개를 들었을 뿐이었다. 왜? 그런 건 없다. 에리카는 그저 최선을 다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카나는 완전히 망가졌다. 보석처럼 매끈하던 검은 머리는 끔찍한 붉은 액체가 뒤엉겨 더러웠다. 얼굴은 땅에 처박혀 보이지 않았다. 어깨 한쪽과 다리 한쪽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그때 신음 비슷한 걸 들은 것도 같지만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 날 카나가 죽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것 같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기 전까지는 일어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때 밀쳐지면서 발목을 삔 것도 몰랐다.

 “소원이 있구나.”

 시루떡같이 하얗고 동글동글한 인형이 있었다. 움직이고 말도 하는데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귀여운 생김에 절로 눈이 갔다. 살랑거리는 꼬리가 매력적이었다.

 “이게 네 소원일까? 울지 않는구나.”

 요정인지 뭔지 모를 그것이 으스러진 카나 곁에 내려앉았을 때 비로소 눈물이 났다. 에리카는 서럽게 울었다. 왜 우는지 슬프기는 한지도 모른 채로 서럽게 울었다.

 “나는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말이지. 바라는 게 있는 거지? 친구를 살리고 싶다면 나와 계약해서 마법 소녀가 되어줘!”

 신기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도 마음속에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려왔다. 에리카는 소리 내 엉엉 울다가 차츰 눈물을 멈췄다. 빌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에리카는 카나가 꼭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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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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