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8.04.29 단쨩과 길가메시
  2. 2018.04.24 에리카 변신씬
  3. 2018.04.04 煙々羅

 “당신을 뛰어넘을거야.”

 단이 말했다. 길가메시는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그런 길가메시를 곁눈으로도 쳐다보지 않았다. 담담한 선언이었다. 길가메시는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넘겼다. 그러자 단은 길가메시를 쳐다보았다.

 “당신을 뛰어넘을 거야.”

 다시 한 번 내뱉은 말은 조용하지만 단호했다. 의지가 느껴지는 말에 길가메시는 찌푸린 체 소녀를 돌아본다. 현재 길가메시를 담당하고 있는 마스터, 단은 작은 몸집의 소녀였다.

 당돌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한 말에 길가메시는 그저 웃고 만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패기라곤 없어서 이딴 게 자길 소환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던 여자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이 자라있었다. 생기 넘치는 눈빛과 곧게 편 등,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 곧은 시선까지. 마치 사람이 달라진 듯한 변화였다.

 “그렇다면 짐은 네놈을 죽여야겠군.”

 길가메시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뱉어진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좀 더 고압적으로, 좀 더 분노를 담아 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연약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화가 났다.

 “그러지 않을 거잖아.”

 단은 웃었다. 으레 그러듯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미소였다. 어리석은 잡종 같으니. 저런 표정으로 누굴 뛰어넘겠다고?

 성장이야 하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만이라면 길가메시가 기나긴 세월을 겪으며 만나본 수많은 마술사 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소녀는 처음 만났을 당시 평범한 수준의 마술 밖에 쓰지 못했다. 오죽하면 재능이 마력에만 미치고 그 외의 부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그러던 것이 눈빛이 살아나는 것에 더불어 마술이 발전하더니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이제는 어지간한 마술사에게선 손도 대지 않고 항복을 받아낼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고작해야 마술 능력이 조금 향상된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자 장군이고 무인이었던 길가메시와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길가메시가 아니라 단, 미천한 인간 본인이리라.

 단은 저가 길가메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눈치를 보는 것은 몸에 벤 습관일지 몰라도 길가메시를 향한 선망의 눈빛은 감출 수 없었기에 길가메시는 언제나 이 작은 소녀의 꿈과 심경을 단번에 꿰뚫을 수 있었다. 단은 길가메시 앞에서 늘 말을 조심했고(비록 대화술은 엉망진창이었어도), 무엇이든 따라하며(어설픈 흉내일 뿐이었지만), 어떻게든 길가메시에게 어울리는 마스터가 되고자 했다. 그런 점이 귀여워 살려두지 않았던가.

 “왜 널 살려둬야하지?”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단은 또 수줍게 길가메시의 눈치를 살폈다. 길가메시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치든 채 정수리가 제 코끝에 오는 여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평온한 말과는 다르게 불안한 듯 꼼지락거리는 손끝이 하찮기 짝이 없다.

길가메시는 갈색 머리칼 위에 손을 얹었다. 단이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건방진 말을 하고 싶으면 적어도 떨지는 않게 연습해오도록.”

 조그만 머리통이 움직여 팔과 몸이 이루는 각도가 살짝 작아졌다. 노력할게. 단이 중얼거렸다. 길가메시는 콧방귀를 뀌곤 휙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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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였다. 무릎꿇은 마미의 뒤에서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은.

 “그렇게 슬픈 말씀하지 마세요, 언니.”

 뛰쳐나온 에리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커다란 눈에 물기가 어려 반짝거렸다. 마미가 고개를 들지 않자 에리카는 하얀 손을 살며시 마미의 등에 얹었다.

 “언니 곁에는 언제나 제가 함께 있잖아요. 마미 언니에게 저는, 에리카와 함께 보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나요?”

 “에리카.”

 “언니.”

 겨우 고개를 든 마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에리카의 눈에서 또르륵, 한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에리카. 맞아. 에리카가 언제나 곁에 있어주었는걸. 나는 그것도 잊어버리고 혼자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어.”

 “괜찮아요. 이제라도 기억해주셨는걸요. 언니에겐 제가 있으니까 외롭지 않지요?”

 “그럼. 물론이야.”

 “함께 무찔러요. 저런 마녀같은 건 마미 언니에겐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에리카가 언니 곁을 지킬게요.”

 “응. 고마워. 에리카.”

 두 사람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마미의 소울젬에서 빛이 나더니 풀렸던 마법이 돌아왔다. 금빛의 잔상을 두른 마미가 분연히 일어선다.

 “가자.”

 “뒤따를게요.”

 마미가 한걸음 내딛는다.

 에리카는 양손으로 받쳐든 소울젬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소울젬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마미의 뒤로 눈부신 하얀 빛이 터졌다. 에리카의 그림자가 뒤로 길게 뻗어나갔다. 환한 빛만큼이나 짙고 커다란 그림자는 밑도 끝도 없이 바닥을 점령하고 퍼져나가다 그 가운데서 피어오른 하얀 꽃송이가 뿜어내는 빛에 이지러졌다. 크고 순결한 꽃잎이 벌어지며 은빛으로 휘감긴 에리카가 기지개를 폈다. 하품하듯 손으로 입가를 막았던 에리카의 눈이 살갑게 미소짓는다. 소녀는 폴짝 꽃송이에서 뛰어내렸다. 펑. 꽃잎이 다물리더니 봉오리가 빛과 함께 터졌다. 십자형 메이스를 바닥에 짚은 에리카가 생긋 웃었다.

 “걱정 마세요. 마미 언니는 제가 지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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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여름,
“거기 뭔가 있나요?”
“…아니.”
소이치로가 미스즈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지만 아직 경칭은 떨어지지 않은(呼び捨て) 어느 날의 일이었다.
무심코 멈춰선 미스즈를 따라온 소이치로가 푸른 잎이 늘어진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를 기웃거렸다. 미스즈의 주의를 끈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지만 그곳에는 이미 날벌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미스즈는 저보다 스무해는 더 살아놓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깡마른 미스즈에 비하면 건장해보일 정도로 건강하고 적당히 군살(나잇살이라고도 한다)이 붙은 남자의 등은 무더위에 녹아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아, 덥다.
더운 날이었다. 헛것을 본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미스즈는 약한 어지러움을 미간 한 번 찌푸리는 것으로 흘려보내고 소이치로와 팔짱을 꼈다. 눅진거리는 피부 감촉이 불쾌했다.
*
밤이 되어 선선해진 탓일까. 미스즈는 서늘한 바람을 막아보려 팔을 감싸안았다. 시원한 소재로 만들어진 여름 유카타는 공기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얇았다. 소이치로가 겉옷을 벗어 미스즈를 감싸안는다.
“추워요?”
미스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막은 것만으로도 한결 따뜻했다. 소이치로의 손은 따스하고, 마른 팔을 완전히 감쌀만큼 크다. 미스즈는 소이치로를 올려다보고 추위를 느끼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디찬 자조가 입가를 맴돌았다.
소이치로와 함께 찾은 축제는 지면으로만 접한 여름이라는 계절의 풍취를 한껏 머금고 온 몸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좁은 거리에 몰려든 인파 탓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다니며 미스즈는 인파 따위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는 것은 달아난 청춘이 학창시절에도 즐겨보지 못한 축제를 이제야 찾아온 미스즈를 동정한탓일지도 몰랐다.
축제 음식을 사먹고, 사격, 고리던지기, 금붕어 건지기 따위 게임에 참가하고,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시덥잖은 일에 열중하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어 소이치로는 집에 갈채비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어깨에 걸쳐진 그의 겉옷이 미스즈를 지켰다. 옷은 계속 미스즈가 걸치고 있었지만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축제의 여파는 길거리에도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어두워진 거리에 아직도 남아 웅성웅성 떠들었다. 미스즈는 소이치로의 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플라타너스 아래 서있었다. 그 플라타너스였다. 낮에 보았던 커다랗고 우거진 나무. 미스즈는 무심코 아까 그 자리를 찾아보고 만다. 커다란 가지 두 개가 갈라진 곳으로부터 수직으로 이미터가량 위쪽에서 무언가 번뜩거리던 것을 분명 보았다.아무 것도 없어 곤충 날개가 강렬한 햇빛을 반사한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일렁이는 빛이 있었다.
미스즈는 그 자리에서 사로잡혔다. 흔들리는 빛무리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고민도 없이 뒤를 따르고 만 것은 그 빛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른거리는 빛. 그 기이한 장소에서 보았던 빛이다. 구석 자리에 덩그마니 앉아있던 조그만 소녀에게 내리쬐는 인공 햇살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의 금발머리. 병원에서도 보았다.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병실은 빛이 잘 드는 커다란 창이 있었다. 미스즈는 혹시라도 빛을 잃어버릴까 길도 둘러보지 않았다. 어깨에 걸쳤던 겉옷은 한 손에 움켜쥔 채였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가로등 불빛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으며 서있는 늘씬한 뒷태를 미스즈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게 현실일 리 없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미스즈는 희망을 모르고 자랐고,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릴리.”
천천히 그가 돌아본다.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키차이가 난다. 그때도 충분히 크기는 했지만….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자 그리운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미스즈는 이것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며 손을 뻗는다. 닿지 마라. 닿지 마라. 주문을 외웠다. 아, 릴리.
손가락이 닿자마자 흩어지는 자리에 하얀 실타래가 흐트러진다. 그렇구나. 어쩐지 납득해버린다.
세상에는 요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미스즈는그런 허무맹랑한 것은 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쯤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주한 아스라한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소쨩은 미스즈를 미아로 신고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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