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my world/famillies's story'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04.11 [유진] 어리광
  2. 2009.04.11 [노엘] 나른한 오후
  3. 2009.04.10 [깜짝이벤트] 공주님을 구하자!
  4. 2009.04.07 나란히 낮잠을
  5. 2009.03.31 [노엘] 일상, 바라보다.
  6. 2008.11.02 기묘한 손님

 "아―라, 도망가버렸다―…."

 검지손가락을 입에 문 체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는 유진을 한번 보고 노엘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 모습에 유진이 발끈 화를 낸다.

 "뭐야, 왜 고개를 저어!"
 "네가 바보 같아서."

 태연자약하게 내뱉는 말이 얄밉다. 유진은 부루퉁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곱슬거리는 금발이 노을 탓에 붉게 빛난다. 아무리 툴툴거려도 자리에 없는 사람은 들을 수 없어서 더더욱 심통이 난다. 불쾌한 것인지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져 있는 하얀 가운의 주인은 아랑곳 없이 어린애처럼 동동 발을 구르며 아쉬운 마음을 토해냈다. 잡으라는 듯 내밀어진 하얀―역시 붉은 하늘 탓에 발갛게 보이는―손이 아니었으면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었을 지 모르는 일이었다. 노엘의 가는 손을 붙잡아 냉큼 몸을 일으키곤 그에게 매달렸다. 비슷한 키 탓에 두 손을 번쩍 들지 않으면 어깨에 양 팔을 얹기는 무리. 하지만 그 덕분에 노엘도 놀라지 않고 유진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이리라. 노엘의 어깨에 뺨을 부비자 살짝 머리에 무게가 실렸다. 기대어온 노엘의 머리에 유진도 고개를 기대어 세모꼴을 만들었다. 여전히 후웅―하며 불만스러운 음색을 토해내는 유진을 무시하고 노엘은 두 사람의 가방을 챙겨들며 엘리엇 선생님에게 인사했다.

 "가는 길에 리니아양을 한번 찾아 볼게요. 학교 안은 복잡하지 않으니까 금방 돌아올거라고 생각하지만…."
 "괜찮아, 잠시 기다리면 돌아올거다."
 "그럼 다행이지만요."

 아, 노엘이 웃는 듯 했다. 놀라서 돌아보았는데 뒤에 매달린 터라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아깝다, 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괜히 노엘의 목을 더 꼭 껴안았다. 답답한 지 팔을 당기는 손길이 느껴져도 오히려 힘을 주었다. 노엘은 곧 포기하고 다시 선생님과 대화를 계속했다. 유진은 그것을 벌레가 귀 옆에서 웅웅거리는 소리마냥 듣고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며 생각에 잠겼다. 노엘의 약간 서늘한 체온이 어린아이의 뜨거운 그것과 대비되어 조금 전의 상황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

 "따뜻했는데."

 댓발 튀어나온 유진의 입은 들어갈 줄을 몰랐다. '좀 더 안고 있을걸,'이라고 투덜거리는 소리에 노엘이 '응?' 하고 반문했지만 유진은 그저 들은 듯 못들은 듯 '아쉬워어―,'라고 했을 뿐이다. 정작 그 대상이 된 사람의 기분은 신경쓰지 않고 손에서 놓친 따스한 온기가 안타까워 그저 떼쓰는 꼬마처럼 칭얼거렸다. 결국 리니아를 찾는 내내 꽁알거리며 노엘에게 매달려있던 유진이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가 꼭 끌어안았다는 것은 그 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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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잠이 들었을까. 눈을 뜨고 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방 잘 아는 장소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당장 유진에게 전화를 걸 참이었다. 요새 계속 컨디션이 안좋더라니 피로가 쌓이긴 했던 모양이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이 들다니. 어지러운 머리를 붙들고―핸드폰을 손에 꼭 쥔 체―시계를 찾는 노엘의 눈에 요 몇일 봐온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

 한숨처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매일 같은 유진의 양호실 출입에, 혹은 갑작스런 고열로 시작되는 자신의 감기 몸살 탓에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동안 봐온 것과는 확연이 다른 지친 듯한 모습으로. 저도 모르게 조심스레 다가가 바라보니 색이 옅은 금발이 곤히 잠든 얼굴 위로 흩어져 있었다. 답답해 보여 치워드릴까 하다가 다른 사람―그것도 자고 있는―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꺼려져 대신 시선을 돌렸다. 안보면 답답할 것도 없지. 시계는 벌써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의 빠름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창틀에 가지런히 놓인 문제집을 돌아본다. 오늘은 거의 못풀었구나. 침대 위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집어돌아서는데 문득 방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아까까지 앉아있던 의자에 널브러진 자켓은 노엘의 것이 아니었다. 잠들기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었다. 앉자마자 곯아떨어져 평소와는 달리 가디건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추워보였던 걸까. 불편하게 잠든 양호 선생의 주변에서는 겉옷이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잠이 덜 깬 몸에는 쌀쌀한 날씨지만 추위를 잘 타는 노엘에게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폐를 끼쳤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빠졌다. 자켓을 들어 다시 선생님의 등에 덮어드린다. 출장에서 돌아오셨구나. 양호실에서 공부하기는 무리겠네.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치워드렸다. 이제 가야지. 가방에 문제집만 챙기면 더 망설일 것은 없었다.

 "…누구?"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천천히 돌아보자 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런, 안경 쓰고 잠들었나."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몸짓의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없어 그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미안한데 지금 몇시지?"
 "다섯시 오분…, 조금 넘었습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야 목이 가라앉은 듯 한 선생님께 물이라도 한 잔 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양호실에는 컵도 정수기도 모두 비치되어 있기에 급히 따뜻한 물을 건내자 놀란 듯 쳐다보다가 고맙다고 웃으며 받으신다. 웃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로 대면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양호 선생님은 굉장히 눈을 끄는 사람이었다. 날이 선 인상이 시원스럽기까지 했다.

 "왜?"

 너무 대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뇨, 아무 것도."

 어쩐지 이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유진이 아닌 누군가와 목적도 없이 한 장소에 있는 것은 불편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급히 가방을 챙겼다. 펜 뚜껑을 제대로 닫았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대충 밀어넣었다. 별 것도 아닌데 결국 손을 대고 만 자신의 인내심 부족이 원망스러웠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가던지, 아니면 깨우게 되었더라도 훨씬 침착했을텐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전혀 자신답지 않다. 당황스러워서 빨리 이 자리에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문을 열려는 순간 붙잡듯 들려온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의 생각따위는 아랑곳없이 문을 닫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을텐데.

 "잠깐만."
 "…예?"

 스스로도 놀랄만큼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려나왔다. 혹시 이상한 눈으로 볼까, 달아나야겠다는 심정이었다는 걸 알았던 걸까. 여러가지 의문에 심장이 죄여왔다. 품에 안은 가방을 꼭 쥐었다.

 "늦었으니 태워줄게. 같이 가자."

 예상 외의 질문에 벙쪄 있다가 집 머니, 라고 물어오는 선생님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뇨, 괜찮아요. 혼자갈게요. 쥐어짜듯이 말을 내뱉고 급히 돌아서는데 눈앞이 어질, 했다. 고개를 숙인 체 급히 몸을 회전시킨 탓일까, 아니면 너무 긴장해있었던 탓일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몸이 바짝 굳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넘어지면 아픈데. 어쩐지 멍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확 옷이 잡아당겨졌다. 곧바로 붙들어온 팔 덕분에 몸이 고정되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심장이 멎는 듯한 감각과 완전히 굳어버린 근육이 생소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거지.

 "몸이 안좋은데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던 거냐. 적당히 해."

 다정한 충고의 말과 함께 가자는 듯이 잡아당기는 몸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서 억지로 떠밀고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노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상대방이 작게 중얼거린 그 소리를 알아 들었는지도 모른 체 그 자리에서 달아나듯 양호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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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날 아주 부유하고 또 부자인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돈 버는 걸 좋아하고 일하기는 귀찮아하는 게으른 여왕님이랍니다. 여왕님은 백성들을 마구 부려먹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어요. 그래도 반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 옛날 이야기라면 반란이라던가 정의로운 용사라던가 나와야 하지 않냐구요? 아아, 기대하는 마음은 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여왕님은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좋아서 그럴 일은 없어요. 돈 벌어오라고 닥달하긴 하지만 세금은 적정 수준만 걷기 때문에 다들 부자가 되었거든요. 오히려 여왕님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고 감사 인사로 세금도 아닌 보석이나 공물을 한무더기씩 바치곤 한답니다.

 그렇게 모두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라에 어느날 커다란 초록색 용이 찾아왔어요. 한 발로 마을 두세개쯤은 가볍게 뭉갤 수 있는 커다란 용입니다. 그렇지만 뭐, 별일 있어서 온 건 아니고 그냥 친구집에 놀러가는 중이었대요. 그런데 날아가다가 내려다보니 보석을 잔뜩 실은 마차가 세대씩이나 지나가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용은 순간 눈이 번쩍해서는 보석을 몽창 가져가─려고 했다가 그보다는 더 보석을 많이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어요. 공주님을 납치하는거예요. 엄마가 공주님을 납치하면 보석을 왕창 가져다 준단다, 라고 가르쳐주었거든요. 용은 냉큼 왕궁에 가서 시종들은 구박하고 있는 조그마한 공주님을 납치했어요. 친절하게 쪽지도 남겨주었답니다.

 『 공주를 되찾고 싶다면 보석을 10,000t 바쳐라! 』

 물론 그렇게 짧은 글은 아니고 아래 어떤 보석을 얼마만큼씩 바칠지 상세하게 써놓기도 했어요. 용은 에메랄드를 아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중에 절반은 에메랄드로 채우라고 굵은 글씨에 밑줄까지 쳐서 강조해놓았답니다. 끝에는 이름과 주소를 남겨주었어요. 기왕이면 우체국 택배를 붙여달라는 추신도 덧붙이고요. 용은 늦잠꾸러기라서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찾아오는 우체국 택배가 아니면 쿨쿨 잠을 자다가 우편물을 분실하기 일쑤였거든요.

 용이 떠나고 나자 시종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공주님이 사라진데다가 공주님이 살던 내궁이 커다란 종이로 덮여버렸거든요. 용은 자기가 쓰기 편한 크기의 종이에 쪽지를 적어서 주고 간거예요. 덕분에 안에 있던 시종들은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는데다가 깜깜해서, 밖에 있던 시종들은 들어갈 수가 없어서 모두 곤혹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웅성웅성 이 일을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소리로 왕궁이 가득 찼어요.

 시끄러운 소리에 여왕님의 동생이자 전속 힐러인 엘리엇 워커가 사무실을 빠져나왔어요. 마침 새로운 약재의 샘플이 들어와서 살피고 있는데 너무 소란스러우니 무슨 일이 생긴건지 확인하러 나온거지요. 사실은 지나가는 시종을 하나 붙잡아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다들 바쁜지 뛰어다니는 통에 물어볼 수 없었답니다. 그리고는 황당한 광경에 고개를 하늘로 향한 체 그대로 얼어버렸어요. 사실 그게 당연하지요. 궁전 하나가 종이로 덮혀버리다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요. 잠시 후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은 엘리엇 워커는 급히 여왕님의 집무실을 향해 달려갔어요. 그리고 외쳤습니다.

 "루비의 궁전이 종이에 잡아먹혔어!"

 다급한 나머지 뒤덮였어, 라는 말이 잘못 나온 것도 깨닫지 못하고 집무실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엘리엇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네요. 평소에는 여왕님인 셀린 W.스펜서와 그 보좌관 몇 사람 뿐 인 집무실인데 오늘은 사람이 많았어요. 다들 궁전을 뒤덮은 종이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걸까요. 여왕님 셀린 W.스펜서가 활짝 웃으면서 엘리엇 워커를 향해 두 손을 벌렸습니다.

 "어서오렴, 동생아."
 "뭐가 어서오렴이야!"

 그렇게 여왕님 셀린 W.스펜서의 하나뿐인 외동딸 사루비아 스펜서 구출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뭔가 얼렁뚱땅이라구요? 에이, 신경쓰지 마세요. 원래 옛날이야기라는 게 다 그렇답니다.




 자, 그럼 자랑스러운 용사들을 소개하지요.




 제 1 멤버, 셀린 W.스펜서.
 본래 여왕이지만 심심함에 뒹굴던 와중에 공주가 납치당하다니, 재밌을 것 같아서 용사 놀이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기껏 모은 보석들 주기도 아깝잖아요. 그리고 사루비아 공주는 어디서라도 잘 지낼 것이 틀림 없어요. 그녀를 당할 만한 사람은 드문걸요. 게다가 훌륭한 방범 아이템도 쥐어주었으니 여왕님은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검을 들고 대륙을 횡단할 것을 생각하면 두근거리기까지 합니다. 한동안 쓰지 못했던 마법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더더욱 기대중. 여왕님은 대륙에도 몇 없다는 마검사거든요.

 어딘가에서 "그렇다고 저한테 업무를 전부 떠넘기시면 어쩌라는 겁니까, 으아아악!!!" 라고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착각이겠죠?

 제 2 멤버, 엘리엇 워커.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여왕님의 동생이자 전속 힐러입니다. 유용할 테니까, 라는 이유로 셀린이 끌고 가는 모양입니다만 사실은 제 손으로 키우다시피 한 조카가 험한 일을 겪지는 않을까, 사랑하는 동생이 여왕님을 따라 다니면서 고생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은가봐요. 끌고가지 않아도 직접 따라갈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벌써부터 약초며 아티펙트들을 챙기느라 바쁘네요. 전속 힐러라고는 하지만 사실 엘리엇은 공간마법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마법에 훨씬 관심이 많아서 그 방면으로도 상당한 전문가랍니다. 공격 쪽에는 셀린보다 못하지만 보조계열 마법은 누구보다도 뛰어나거든요.

 제 3 멤버, 세실 워커.
 여왕님과 엘리엇 워커의 사랑하는 막내동생, 세실 워커입니다. 사랑받는 만큼 이래저래 고생도 많은 모양이지만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지요. 국가 연금술사로는 드물게 조용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연금술사입니다. 연금술로서의 재능은 종종 차를 끓이거나 음식을 하는데도 쓰인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솜씨 좋은 요리사이기도 하고 집안일도 훌륭하답니다. 연금술사로서의 능력은 물론이고 여행 중 일행의 건강과 생활 편의까지 봐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 4 멤버, 리니아 워커.
 세실 워커의 양딸이자 연금술 조수인 귀여운 꼬마아가씨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비해 굉장히 똘똘하고 부지런한데다 책임감 있는 어른스러운 아가씨예요. 아빠를 닮아서 요리도 잘하고 순수하고 착해서 아빠는 물론, 깐깐한 삼촌에게도, 고모인 여왕님에게도, 사촌인 공주님에게서 마저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아빠랑은 달리 사랑받아도 고생하지 않는 것이 다행. 아직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없지만 분위기 메이커로서 바지런히 돌아다니며 일행의 기운을 북돋아줄 거예요!

 제 5 멤버, 유진 바르비에.
 왕실 멤버들과는 별 관련이 없지만, 공주님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된 신전의 기사님입니다. 전사로서도 프리스트로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님. 금발에 하얀 갑옷이 눈부십니다만―이거이거, 너무 덜렁대네요. 어디 용이 있는 곳까지 제대로 걸어가기나 하겠어요? 신나게 뛰다 넘어지고도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만발. 리니아 워커가 마음에 들었는지 하루종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인 세실 워커도 삼촌인 엘리엇 워커도 표정이 심상치 않지만 눈치채지 못한건지 그저 행복해 보입니다. 이봐요, 용잡기 전에 늑대 사냥하게 생겼어요. 정신차려요.

 제 6 멤버, 노엘 바르비에.
 이 까맣고 하얀 소년은 성기사 유진 바르비에의 동생이자 왕궁의 정원사랍니다. 평소에는 말 없이 꽃 사이에 파묻혀 있기만 하는 조용한 소년이지만 사고뭉치인데다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형 때문에 종종 잔소리꾼이 된답니다. 땍땍거리고 말을 쏟아내면 주변의 정령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립니다. 노엘 바르비에는 주변의 모든 정령들과 대화를 나누고 부탁을 할 수 있는 정령사의 재능을 타고 나서 정령들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거든요. 깔끔한 성격의 그는 아마도 세실 워커를 도와 일행의 뒷바라지를 도울 수 있을거예요.

 제 7 멤버, 미츠 웨버.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그는 세실 워커의 죽마고우입니다. 한두살 많은 모양이지만 정말 친한 친구 사이에 그런 것은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호쾌하고 다정한 성격은 모두의 의지가 되어줄 것이 분명해요. 뿐만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만큼 섬세한 손재주의 소유자이이기도 합니다. 세밀한 손놀림이 아니면 활솜씨는 전혀 기대할 수 없지요. 저 멀리 날아가는 새도 한번에 맞출 수 있을만큼 훌륭한 궁수랍니다. 그 손재주는 활 뿐만 아니라 수리라거나 자잘한 소품만들기에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길어질 여행에 큰 도움이 될거예요.




 이 제각각 용사들이 함께 모여서 과연 어떻게 공주님을 구해낼까요. 사루비아 공주님은 편안한 잠자리도, 맛있는 쿠키도, 세실 삼촌과 리니아 언니도 없는 생활에 진저리를 내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공주님을 구해주세요! 늦으면 어떤 보복을 당할 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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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날이 좋았다. 햇빛이 쨍쨍하고 땀이 줄줄 흘러도―노엘이라면 오분만 있어도 현기증을 일으키겠지만―언제까지고 바깥을 뛰어다닐 수 있는 맑은 날이 좋았다.
 비 오는 날이 좋았다. 하루종일 빗속을 돌아다니다가 노엘에게 혼이 나고 호된 감기에 걸려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메마른 땅과 공기를 촉촉하게 적시는 비 내리는 날이 좋았다.
 흐린 날이 좋았다. 회색 구름이 파란 하늘을 덮으면 풀밭에 드러누워 시간가는 줄도 모른 체 흘러가는 구름을 헤아릴 수 있는 흐린 날이 좋았다.

 그 어떤 날씨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은 하늘이 깨끗한 깊은 밤. 유진은 달과 별이 반짝이며 빛나는 어두운 푸른 빛의 밤하늘을 제일 좋아했다. 소중한 것과 닮아 있기 때문일까? 문득 돌아보니 노엘이 서있다. 언제나 눈에 닿는 곳에 있는 사랑하는 동생. 밤 하늘과 같은 빛을 띤 긴 머리칼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어쩐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 나 teacher Eli한테 가봐야해. 저번에 우산 빌린 거 안 가져다 드렸다!"
 "그래? 그럼 들렀다 가."

 진홍빛 두 눈이 싱긋 웃었다. 노엘은 엘리 선생님 출장 때 잠시 양호실을 공부방으로 쓰더니 어느샌가 매일같이 양호실에 들르고 있었다. 평소 한 사람과 오래 지내는 일이 없는 노엘이 엘리 선생님과 친해진 것은 형으로써 반갑기도 하고 조금 아쉽기도 하다. 웃으면서 양호실로 향하는 복도. 햇빛이 따뜻했다.




 엘리엇 워커(Eliot Walker)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어떤 곤란한 상황이냐 하면―,

 "이건, 이건 설마……!!"

 평소 제법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제자―양호선생과 학생도 사제간이라 칭할 수 있다 가정한다면―가,

 "숨겨둔 딸! 엘리 선생님이 독신인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국가가 아는데!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을 하더니 '나, 네 딸을 낳았어,'라며 덥썩 애를 떠맡겼다거나!"
 "진정해…."
 "요새 매일매일매일매일 노엘이하고 같이 지내더니 혹시 '나는 차가운 도시남자. 임신 쯤은 아무 것도 아니지,' 라고 노엘이랑 샤바샤바해서 애를 낳았다거나!!! 그런거죠? 그렇죠?!"
 "그만 좀 해, 진아…."

 이렇게 복도에까지 다 울릴 큰 소리로 말도 안되는 오해성 발언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치만 봐봐. 머리색은 너랑 똑같고 지금 찌푸린 표정은 엘리 선생님이랑 꼭 닮았잖아.'라며 유진이 동갑내기 제 동생을 향해 신나게 떠드는 목소리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헛소리도 이 정도 되면 수준급이다. 노엘과 자신의 아이라니, 말이 되는 농담을 해야지. 구제불능 바보는 전용 조련사에게 맡겨두면 알아서 진정이 될테니 내버려두고 대신 엘리엇은 혹여 사랑하는 조카의 교육에 해가 될까 싶어 얼른 아이의 몸을 끌어당겼다.

 "린, 저런 것은 그냥 무시하면 된단다."
 "……."

 아이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걸린 시간 3초. 화가 났달지 뭔가 잔뜩 불만스러워 보이는 리니아는 자신의 말을 못들은 듯 하였다. 어찌해야할까 엘리엇이 고민하는 사이에도 유진의 어쩐지 즐겁게 들리는 음성은 계속 이어진다.

 "요즘 도시 남자는 임신도 할 수 있어. 영화에서 나왔다구!"
 "대체 언제적 영화를 본거야…."

 그러게 말이다. 엘리엇은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유진을 상대하고 있는 노엘은 이미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표정이었다. 청산유수로 쏟아져 나오는 유진의 말을 어떻게하면 아이가 듣지 못하게 할까 고민하는 새 리니아는 조심스럽게 엘리엇의 팔을 빠져나갔다.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자세가 당당하기도 하다.

 "엘리 삼촌은 삼촌이지 아빠가 아니야. 제멋대로 오해해서 말을 부풀리지 마!"

 신나게 혼자 떠들던 유진이 말을 멈추고 노엘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명한 진홍빛 눈 두 쌍이 동시에 바라보면 수그러들만도 한데 아이는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엘리 삼촌은 남자고 임신 같은 건 못해. 애초에 남자가 어떻게 임신을 해? 오빠 바보지?"

 빠르게 이어지는 말에 잠시 어른들이 말을 잃은 사이 아이는 자신의 말을 마무리 했다.

 "바―보!"

 베, 하고 혀를 내민다. 잠시 후, 양호실에서 발작하듯 커다란 웃음 소리가 터져나와 복도를 지나던 사람들이 놀라 미끄러지거나 물건을 놓친다거나 하는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나 뭐라나.




 밤하늘 빛 머리카락이 굉장히 예쁜 아이였다. 보는 순간 당장에 귀엽다고 생각했다. 엘리 선생님의 딸이 아니냐고 바보같은 소리를 꺼낸 것은 순전히 그 애 탓이었다. 조금 놀려주려는 마음이었다. 엘리 선생님이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다. 뭐, 이렇게 삐져버려서 이름조차 직접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제법 기분이 좋다. 아이는 화가 나서 울그락 불그락 한 얼굴도 귀여웠다.
 삼촌을 기다리는 건지 눈조차 마주치지 않겠다는 의지인지 고집스레 문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관찰하고 있자니 시간가는 것이 지겹지 않았다. 아직 12살이랬던가―, 어리다. 조금 더 나이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면 키가 조금 크다 뿐이지 마냥 귀여운 인상이었다. 강아지마냥 커다란 검은 눈에 젖살이 떨어지지 않은 뺨이 아까의 소동으로 발그레하게 물들어 깨물어주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노엘보다는 약간 색이 옅은 듯한 밤하늘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려다 손을 물린 것이 몇번째인지 몰랐다. 자꾸만 시선이 가고 손을 뻗게 되는 것은 노엘과 닮은 머리칼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노엘을 연상시키는 밤하늘 아래 아이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노엘이 아이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과 함께가 아니면 한꺼풀 얇은 막을 씌운 듯 표정이 사라지는 노엘을 볼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함께 있어도 언제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해서 보이지 않으면 사라진 것이 아닐까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했다. 노엘이 자신의 시야 밖에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노엘의 붉은 눈이 이 꼬마처럼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온다면―,

 "풋."
 "뭐, 뭐야! 왜 웃어!"

 일순, 아까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 웃어버린 유진이었다.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마냥 잔뜩 긴장해 있던 아이가 놀랐는지 당장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아, 뭐야. 역시 귀엽잖아. 정말 귀여워. 와락 껴안아서 부비부비 해주고 싶어!

 "……."
 "…왜 그래?"

 자신의 생각에 질려 머리를 감싸쥔 유진을 향해 아이가 다가왔다. 숙인 시야 아래로 자그마한 손이 들어왔다. 나는 로리콘이 아니야. 마음 속으로 열번씩 외우고 고개를 들었다. 까만 두 눈이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
 "으왓?! 뭐, 뭐하는거야!!"

 아이를 꼭 끌어안고 토닥토닥해주었다. 당황한 듯 바둥거리는 것조차 그저 귀엽다고 하면 정말 변태가 되는걸까.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으로 한숨이 멈추질 않았다.

 그래, 귀여우면 됐지.

 "자장, 자장. 착한 어린이는 잘 시간이야. 자자. 자장자장."
 "뭐?! 아직 5시밖에 안됐다구! 왜 벌써 자! 역시 오빠 바보지?"

 바락 소리를 지르는 것도 귀엽다. 으와아아, 계속 귀엽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 유진은 계속 한숨을 쉬면서도 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해 와락 끌어안고 부빗거리자 아이가 으부부 하며 손을 휘둘렀다. 손이 제법 맵다. 아파―라고 칭얼거리듯 말해보았다. 그러니까 놔, 라며 당장에 땍땍거리는 대꾸가 날아왔지만, 뭐 어떠랴. 성희롱이라고 선생님한테 혼나기 전에 놓아주면 되겠지. 그치만 귀여운 걸―….
 



 "이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집에 가려면 둘 다 깨워야 겠죠?"
 "…그래야지."

 붉은 노을이 하얀 양호실의 침대를 물들인 풍경 속에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든 소년과 아이는 분명히 사랑스러웠지만―, 얼굴이 굳어진 선생님의 표정에 어쩐지 뒷일이 걱정되는 노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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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각사각. 연필이 종이에 스치는 소리가 정겨웠다. 손을 멈추면 소리가 멎는 것이 아쉽지만 잠시 고개를 들었다. 방과 후에서 저녁식사 전까지 매일 시간을 보내는 하얀 양호실의 풍경이 노엘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창을 건너 흰 커튼에 드리우고 창 옆에 자리한 책상 앞에 앉은 역시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 보였다. 간간히 밖에서 떠드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종이 넘기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는 양호실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소리를 내는 것이 죄스럽다고 느낀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남몰래 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시 손안의 책으로 신경을 돌리는 노엘의 눈에 시계가 들어왔다. 네 시 반. 슬슬 돌아가야 저녁시간에 늦지 않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만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일까. 노엘의 얼굴에 희미하게 아쉬운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책상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단아한 옆모습을 곁눈으로 훔쳐보고 멀리 둔 가방을 끌어당긴다. 꺼내놓은 책과 필기구를 정리하고 업무에 바쁜 선생님의 곁에 섰다. 

 “차 드실래요?”
 “아아, 고마워.”
 “…….”

 의료계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의사인 엘리엇은 학교 양호교사 업무 외에도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강의며 헬프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에 노엘은 매일 양호실에서 방과 후를 보내지만 엘리엇이 없는 경우도 잦다. 무슨 일인지 바빠 보이는 엘리엇의 머그컵에는 다 식은 커피가 반쯤 남아있었다.

 ―솨아.

 세면대에서 컵을 씻는 건 몇 번을 해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학교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싱크대가 없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교무실에서 일을 돕는 때가 많았던 노엘에게는 가장 큰 불만사항 중 하나였다.

 “선생님―인가.”

 머그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노엘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갑자기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문득 양호 선생님이 떠올랐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새하얀 백금 발에 흰 가운, 신경질적인 표정을 한 투명한 사람. 저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되어서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몸을 사리게 된다. 그저 그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해서―.

 “오늘은 레몬밤으로 할까.”

 저 상태면 일을 다 끝낼 때까지는 안 드시겠지, 라고 덧붙였다. 양호실로 돌아가는 발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조용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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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 것은,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일종의 ‘폭탄투하’?

따뜻한 코코아를 받았다. 겨울, 이라서일까. 그냥 손님접대일까. 눈만 이리저리 굴려 분주하게 일하는 중인 엘리엇씨를 관찰했다. 코코아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코끝을 데운다. 아, 슬슬 뜨거워, 손가락.
잠시 코코아를 따라 뜨겁게 달궈진 머그잔을 무릎에 내려놓고 손을 식혔다. 우유는 막이 생길 정도로 뜨거운 게 좋아. 하지만 뜨거워. 마시다가 혀를 데일 때도 많았다. 코코아도 뜨거운게 좋아. 평소 손이 차가워서 늘 옷 밖으로 손을 꺼내지 않는 나로서는 뜨거운 쪽이 들고 있기에도 좋다. 하지만 변온동물인걸까. 금방 뜨거워져서 이렇게 손가락을 호호 불게 된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는지, 손가락 끝이 조금 아프다…….

푸른빛 도는 은빛 머리카락이 의자등받이를 넘어 바닥에 닿는다. 코코아가 든 머그잔을 무릎에 내려놓은 소년은 손가락을 불기에만 바빠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조금 맹해보이는 눈빛의 소년은 손을 식힌다 코코아를 마신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눈만은 줄곧 한 곳에 못박고 있었다. 하얀 가운에 눈매가 날카로운 하얀 피부의 청년.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바라보는지 신기할 정도로 소년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치 그를 바라보는 것이 평생의 숙명인듯 집요하게. 계속해서 그만 바라보며 호르륵 코코아를 마시고는 뜨거운 듯 혀를 내밀어 헥헥 거린다. 그리곤 놀라서 맺힌 눈물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계속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루야야 여기있니?"

노크도 없이 덜컹 열린 문 너머로 한 여성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쏠린다. 청년과 소년, 그리고 청년의 손님. 그는 의사이므로 정확히는 환자라 해야 맞겠다. 청년은 숨을 훅 내쉬더니 대답했다.

"여기 있으니까 ‘제발’ 데려가."

잠시 셀린을 바라보더니 그새 다시 엘리에게 시선을 복귀시킨 루사나는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 그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소년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오로지 엘리,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셀린은 전혀 무반응인 루사나를 보며 고개를 휘휘 젓더니 성큼성큼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 루사나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코코아─……,’ 하고 중얼거리는 소년의 목소리는 들은 척 만척 흘려넘기며 그를 잡아 끌었다. 셀린의 손길에 의해 의도치 않게 걷게 된 루사나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 진료실 문이 닫히기까지 엘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진료실 문이 닫히자 꼬리내린 강아지 같은 모습이 되어 시무룩하니 그녀를 뒤따르는 소년의 모습에 셀린은 조금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엘리가 그렇게 좋아?"

신기해서 물은 셀린의 질문에 소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도 순진한 눈동자를 앞에 둔 탓에 뭔가 더 따져물을 기운도 나지 않았다. 그저 ‘엘리, 너 잘못걸렸구나,’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줄 뿐. 셀린이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는데 무언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내려다보니 소년의 손이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간식 먹으러."
"간식?"
"딱 시간이 간식 시간이잖아. 눈사람 모양 브리오슈, 먹어본 적 있어?"
"으응─."
"네가 있을 땐 만든 적이 없었던가. 달아, 맛있어. 단 거 좋아하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에 셀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애가 이리 솔직한지 한번씩 웃음이 터진다. 보통 단 걸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 이 또래 남자애들은 숨기지 않나? 어리둥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루사나의 머리를 쓱쓱 쓸어주고는 셀린은 앞서 식당으로 재게 걸었다. 코코아를 마시며 천천히 따라오던 루사나의 ‘같이 가요,’라는 소리는 한귀로 흘려넘겼다. 아직도 꽤 많이 남은 코코아를 엎을까봐 빨리 걷지 못하는 소년을 복도의 코너에서 기다리며 셀린은 피식 웃었다. 난로가 없는 복도의 공기는 꽤나 차갑기 때문에 벌써 거의 식었을 텐데 못 마시고 조심조심 들고오는 모습이 재밌다.
루사나의 걸음에 맞춰 느릿하게 도착한 식당에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화사한 금발에 여유로운 미소가 눈에 띄는 남자다. 가늘어보이는 손목에 걸린 얇은 팔찌가 찰랑하고, 소리를 내었다. 찻잔을 들어올려 입에 대고 내려놓기까지의 일체의 과정에는 몸에 벤 품위가 엿보인다. 쓸데없는 동작은 전혀 없었다. 걸치고 있는 옷의 재질은 꽤나 고급이다. 정장은 아니지만 격식에 어긋난 것도 아니었다. 괜찮군. 눈이 마주친 아주 잠깐동안 낯선 이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후 점수를 매겨본 셀린은 식당에 들어서며 눈빛으로 사랑하는 동생, 세실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야.’

"루사나군을 찾던데? 누님도 모르는 사람이야?"
"루야한테?"
"응. 루사나군은? 데리러 갔던 거 아니었어?"
"아까까지 잘 쫓아왔으니까 이제 들어올……, 루야?"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은 누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닥에 조심스레 머그컵을 내려두고 그대로 뒤로 한발짝 내딛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뭐지?"
"글쎄."
"아, 루오빠 갔어? 브리오슈 내가 구운건데……."

과자를 예쁘게 담은 접시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린이 울상을 지었다. 세실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 수 없지. 다음에 오면 또 굽자."
"응!"

부녀는 마주보며 생글거리고 셀린은 고개를 저었다. 둘 다 못말려,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린은 자기 머리보다 커다란 접시를 식탁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루오빠 그냥 가버렸지만, 같이 과자 먹고 가요."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으로 대응한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아이의 앞에 내민 하얀 종이에는 그린 듯이 예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감사합니다만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는 아쉬운 눈길로 쪽지를 받아들었다. 뭔가 싶어서 쪽지를 들여다본 셀린이 세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질문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이번에도 쪽지. 셀린이 세실에게 전해받은 쪽지를 읽는 동안 세실은 손님을 붙잡았다.

"기왕 구운건데 같이 드시죠. 어차피 같이 먹으려고 했던 루사나군도 가버렸으니까요."
"응응, 같이 먹어요!"
"린이도 이렇게 바라고 있으니까요."

청년의 친절한 말에 손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앉았다. 세실은 차를 내오러 잠시 부엌으로 들어가고 셀린은 손님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셀린은 쪽지를 옆에 내려두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쪽지대로라면 말을 하지 못하시는 거군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불편하군, 이거. 그나저나… 딱히 할말이 없네. 셀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쿠키를 하나 집었다. 일단 먹고보자.

"오빠는 루오빠의 친구─인거죠? 이름이 뭐예요?"

그러고보니 이름도 몰랐구나. 아이의 질문에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는 미리 준비해서 늘 가지고 다니는 듯 품 속에서 꺼낸 종이 한장을 아이에게 건냈다.

「루아인Ruain」

"에…, 그럼 아인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끄덕끄덕. 아아, 화기애애하군.

"뭐야, 그 녀석은 어디갔어?"
"엘리 삼촌!"

갑작스런 목소리에 돌아보니 그새 진료가 끝난 건지 식당 문 앞에 피곤한 얼굴의 엘리엇이 서있었다. 때마침 찻잔을 든 세실이 나오며 그를 반겼다.

"환자분은 돌아가신거야? 먼저 앉아있어. 한잔 더 따라올게."
"고마워."
"삼촌, 오늘 브리오슈 린이가 구웠어요!"
"어쩐지. 오늘따라 냄새가 더 좋더라. 잘했어."
"에헤헤."

쪼르르 달려나가 그의 옆에 매달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엘리가 식탁에 앉고 세실은 찻잔을 각자의 앞에 내려둔 후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따라들어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엘리가 식탁 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뭐야, 왠 나뭇잎?"
"몰라. 당신한테 전해달라는군요."

그 것은 방금 가지에서 딴 듯 파릇한 나뭇잎 한 장. 엘리는 그것을 아인을 향해 내밀었다.

"어쩐지 전혀 안 놀라더라. 누가?"
"그것도 몰라. 이 쪽으로 오는데 누가 창문을 두드려서 봤더니 주던데. 린이보다 작은 남자애. 키만 봐서는 10살이 안됐으려나."
"헤에."

오늘은 묘한 손님이 많네, 셀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묘한 손님 중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보려고 했다. 이미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이번에도 하얀 종이쪽지와 구슬을 꿰어 만든 어린아이 손목에나 들어갈 듯한 팔찌 하나.

"어라, 손님은 가신거야?"
"그런 모양인데."
"에?"
"또 가버렸다…."
"자, 린이 네 거. 맛있는 과자에 대한 보답이라는데?"
"왓, 예쁘다~!"
"근데 이거 루비 아냐? 이건 사파이어…, 전부 진짜 보석같은데?"
"에이, 설마."
"내가 이런 거 한두번 보겠어? 확실해. 일단 전문가한테 한번 보여야겠지만 이거 전부 진짜 보석이야. 대체 뭐지, 그 녀석?"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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