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in my world/in character community'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8.04.04 煙々羅
  2. 2018.03.27 나츠히메: 소유욕
  3. 2015.07.07 [미완성] 그 옛날 이야기
  4. 2015.07.05 모험의 시작
  5. 2015.05.29 HAPPY ENDING?
  6. 2015.04.28 살인 일지: 미샬 러셀
  7. 2015.03.29 살인 일지: 휴리 폰 플린트
  8. 2015.03.19 Amelia Holmes~2nd END~ subtitle:Amy
  9. 2015.03.13 살인 일지: 래클런 브래든
  10. 2015.03.10 살인 일지: 페이지 리

때는 여름,
“거기 뭔가 있나요?”
“…아니.”
소이치로가 미스즈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지만 아직 경칭은 떨어지지 않은(呼び捨て) 어느 날의 일이었다.
무심코 멈춰선 미스즈를 따라온 소이치로가 푸른 잎이 늘어진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를 기웃거렸다. 미스즈의 주의를 끈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지만 그곳에는 이미 날벌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미스즈는 저보다 스무해는 더 살아놓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깡마른 미스즈에 비하면 건장해보일 정도로 건강하고 적당히 군살(나잇살이라고도 한다)이 붙은 남자의 등은 무더위에 녹아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아, 덥다.
더운 날이었다. 헛것을 본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미스즈는 약한 어지러움을 미간 한 번 찌푸리는 것으로 흘려보내고 소이치로와 팔짱을 꼈다. 눅진거리는 피부 감촉이 불쾌했다.
*
밤이 되어 선선해진 탓일까. 미스즈는 서늘한 바람을 막아보려 팔을 감싸안았다. 시원한 소재로 만들어진 여름 유카타는 공기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얇았다. 소이치로가 겉옷을 벗어 미스즈를 감싸안는다.
“추워요?”
미스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막은 것만으로도 한결 따뜻했다. 소이치로의 손은 따스하고, 마른 팔을 완전히 감쌀만큼 크다. 미스즈는 소이치로를 올려다보고 추위를 느끼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디찬 자조가 입가를 맴돌았다.
소이치로와 함께 찾은 축제는 지면으로만 접한 여름이라는 계절의 풍취를 한껏 머금고 온 몸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좁은 거리에 몰려든 인파 탓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다니며 미스즈는 인파 따위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는 것은 달아난 청춘이 학창시절에도 즐겨보지 못한 축제를 이제야 찾아온 미스즈를 동정한탓일지도 몰랐다.
축제 음식을 사먹고, 사격, 고리던지기, 금붕어 건지기 따위 게임에 참가하고,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시덥잖은 일에 열중하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어 소이치로는 집에 갈채비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어깨에 걸쳐진 그의 겉옷이 미스즈를 지켰다. 옷은 계속 미스즈가 걸치고 있었지만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축제의 여파는 길거리에도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어두워진 거리에 아직도 남아 웅성웅성 떠들었다. 미스즈는 소이치로의 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플라타너스 아래 서있었다. 그 플라타너스였다. 낮에 보았던 커다랗고 우거진 나무. 미스즈는 무심코 아까 그 자리를 찾아보고 만다. 커다란 가지 두 개가 갈라진 곳으로부터 수직으로 이미터가량 위쪽에서 무언가 번뜩거리던 것을 분명 보았다.아무 것도 없어 곤충 날개가 강렬한 햇빛을 반사한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일렁이는 빛이 있었다.
미스즈는 그 자리에서 사로잡혔다. 흔들리는 빛무리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고민도 없이 뒤를 따르고 만 것은 그 빛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른거리는 빛. 그 기이한 장소에서 보았던 빛이다. 구석 자리에 덩그마니 앉아있던 조그만 소녀에게 내리쬐는 인공 햇살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의 금발머리. 병원에서도 보았다.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병실은 빛이 잘 드는 커다란 창이 있었다. 미스즈는 혹시라도 빛을 잃어버릴까 길도 둘러보지 않았다. 어깨에 걸쳤던 겉옷은 한 손에 움켜쥔 채였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가로등 불빛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으며 서있는 늘씬한 뒷태를 미스즈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게 현실일 리 없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미스즈는 희망을 모르고 자랐고,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릴리.”
천천히 그가 돌아본다.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키차이가 난다. 그때도 충분히 크기는 했지만….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자 그리운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미스즈는 이것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며 손을 뻗는다. 닿지 마라. 닿지 마라. 주문을 외웠다. 아, 릴리.
손가락이 닿자마자 흩어지는 자리에 하얀 실타래가 흐트러진다. 그렇구나. 어쩐지 납득해버린다.
세상에는 요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미스즈는그런 허무맹랑한 것은 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쯤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주한 아스라한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소쨩은 미스즈를 미아로 신고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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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

 카가미 나츠미는 부자였다. 넓은 집에 고용인을 두고 살았다. 재화는 언제나 넉넉해서 원하는 것이 생기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세상에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많지만, 돈이 있으면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나츠미는 돈과 그에 따라오는 권력을 사랑했다.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대로 휘저을 수 있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나츠미를 이루는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지배하고, 거머쥐고, 휘두르는 사람이었다. 나츠미는 그 사실이 언제나 만족스러웠다. 그에 실증이 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람이 필요하면 사람을 사고, 권력이 필요하면 권력을 산다. 나츠미는 살아오며 모자란 게 없었다. 누군가는 그의 삶을 보고 불행하다 하겠지만, 코웃음이 나올 뿐이다. 세상에 작은 불행 하나 없는 이가 누가 있겠으며, 흠없는 완전한 행복이란 존재하는가. 나츠미는 제 불행을 그 정도의 수준 낮은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불행에 취해있는 건 취향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유쾌하고 천진난만한 지상 낙원의 주인이었다.

 나츠미는 생각했다. 불행이란 그저 우스운 말장난일 뿐이라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서술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일 뿐이노라고.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이었을까? 그는 반문한다.


 내려앉은 금빛 속눈썹이 붉은 눈동자를 반쯤 가렸다. 침잠한 시선이 아래로 꽂혔다. 창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관 속에 오색 꽃송이가 만발했다. 흐드러진 꽃잎 사이로 단정한 얼굴의 청년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아직은 살아있는 이였다. 느리게 가슴이 오르내리고, 꿈을 꾸는 듯 이따금 표정이 바뀌었다. 그가 잠든 것이 벌써 몇시간 전인지 몰랐다. 나츠미는 그의 곁에 앉아 단정하고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깔끔하게 빗어도 금세 삐쳐나가는 억센 검은 머리는 꽃속에 파묻혀 있었고, 하얀 얼굴은 평온하게 잠들었다. 저 분홍빛 입술에 키스한 적이 몇 번이더라. 지금이라도 끝까지 채워진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키스를 남기고 싶다.

 바라보면 볼수록 마음도 몸도 기울어진다. 나츠미는 어느새 유리관에 달라붙어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우스운 일이다. 사랑하는 그를 잠재워 유리관에 가둔 것은 자신일진데 만질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깨끗한 유리에 덕지덕지 묻어나는 지문이 시야를 방해해 황급히 소매로 닦는다.

 아직은 안 된다. 나츠미는 자신을 추슬렀다. 조금 더 잠재워둬야 했다. 당장이라도 그를 일으키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됐다. 이 손이 닿으면 그는 저 먼 곳으로 가버릴 터였다. 공주, 사랑스러운 이여. 나츠미는 웃어버렸다.

 츠키모토 히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는, 나츠미에게 처음으로 그림자를 알려준 이였다. 모자란 것 하나 없이 언제나 자신의 눈부심에 취해있던 나츠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이였다. 과정 하나하나 달콤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거부할 수조차 없는 악랄한 함정을 들이민 이였다.

 히메를 만나고부터, 나츠미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았다. 누군가가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킬 것이 생겼다. 함부로 내어줄 수 없는 무언가가 차가운 가슴 깊은 곳에 돋아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깊이 뿌리를 내려 있었다. 그저 달콤한 케이크인 줄 알았던 것이 저주의 씨앗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입맞추고 싶다. 나츠미는 또 생각했다. 유리관은 던져버리고 뜨거운 혀를 섞고, 매끄러운 살갗을 더듬어 잠을 깨우고 싶다. 아, 안 돼. 그래서는 안 돼. 한 번 드러난 약점은 반드시 또다시 공격당한다. 지금 없애두지 않으면. -않으면?

 등 뒤에서부터 냉기가 느껴졌다. 나츠미는 차츰 파고드는 차가운 감촉을 떨쳐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붙잡은 유리관에서도 바닥에서도 냉기가 피어올랐다. 마른 공기에 뿌옇게 김이 끼기 시작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손바닥이 유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공포가 심장을 조여온다.

 나츠미는 삐걱거리는 관절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추위에 얼어붙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더듬거리며 보물처럼 유리관을 끌어안는다. 지켜야하는 것인지 버려야하는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소중히 끌어안고 새하얗게 바래버린 머릿속을 어떻게든 되살리려 노력한다. 없애버리면 간단한 것을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어리석고 또 어리석어서 그저 웃음이 난다.

 이럴 때면 항상 옆에서 도닥여주던 손길은 유리관 너머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 저 손이 머리를 쓸고, 등을 보듬을 때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던가. 자신의 연약함을 처음으로 깨닫게 만든 손이었다. 원망을 했던가? 아니, 그런 건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는 언제까지나 나츠미의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그를 떼어낸 것은 나츠미였다.

 멍청하게도 없애버리면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처럼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어야했다. 아버지는 적어도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아버지 따위 무슨 상관이지? 그 인간이 내 인생에 참견할 자격이 있나? 물론이다. 아버지는 나츠미의 오너였으니까.

 그래, 그랬다. 나츠미는 이 사태의 원인을 알았다. 무엇이 되었든 그에게서 빼앗아가는 게 문제이지 않은가. 내것을 내가 가지고 있겠다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나츠미는 옳았다. 츠키모토 히메는 카가미 나츠미의 것이었고, 카가미 마나부가 카가미 나츠미에게 얼마만큼의 지분을 가지고 있건 거기에 손대는 것은 옳지 않았다. 지분을 가지고 있기는 했던가? 옳던, 옳지 않던, 무엇이 누구의 소유이건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만서도.

 나츠미에게 중요한 건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것.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게 하는 것.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할 것. 그래서 이 손으로 끝내려고 했다. 곤란해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손으로 그 목숨을 거두고자 했다. 닿지 않는 곳까지 멀리 보내느니, 제 입으로 떠나겠다는 선언을 듣느니 그게 나으리라 여겼다.

 나츠미는 어리석었다. 냉정하고 똑똑하던 그는 벌써 십년도 더 전에 사라진지 오래였다. 무슨 판단을 해야 옳았을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으므로, 그렇게 될 것이었다.

 붉은 눈이 번쩍이며 불길한 빛을 띄었다.





~~~

감 찾으려고 가볍게 쓴 조각글. 어째 남 보여줄 게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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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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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으로 밝혀진 연회장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하늘을 그대로 베껴온 천장은 푸르렀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두근거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눈동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단상에 놓인 낡은 마법사 모자에 모여 있었다.

 “이벳 타우어!”

 모자 곁에 선 깐깐해 보이는 교수가 큰 소리로 호명했다. 테이블 사이에 모여선 아이들 사이에서 물결이 일었다. 단상을 오른 것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소녀였다. 같이 모여선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고, 깨끗한 얼굴에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는 마치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소녀는 긴장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모자를 썼다.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 팔랑이며 바닥에 깔렸다.

 “오.”

 모자는 잔뜩 주름진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했다.

 “알고 있단다. 네가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하지만 다른 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네 재능을 살려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고민할 것도 없지.”

 모자는 연이어 외쳤다.

 “슬리데린!”

 오데트 또는 이벳이라고 불리는 소녀는 그렇게 호그와트의 일원이 되었다.


 4.

 오데트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기차 승강장에 서 있었다. 호그와트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킹스크로스 역 승강장이었다. 오데트의 양부모인 타우어 부부가 함께였다. 마법사 정장을 차려입은 부부는 오데트의 곁에 서서 함께 열차를 기다렸다.

 “꼭 여기로 다녀야겠니?”

 타우어 부인이 물었다. 그녀는 짙은 갈색 머리를 틀어올리고 드레스 같은 공단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선하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가진 미인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두 분 돌아가 보세요.”

 오데트는 의젓하게 말했다. 커다란 트렁크에 무엇이 들었는지 다시 떠올려보느라 총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널 두고 가는 게 쉽지 않구나.”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타우어씨였다. 중절모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다정한 인상의 신사였다. 타우어씨는 걱정스럽게 오데트의 짐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 덤스트랭에 다니는 게 어떻겠니. 여긴 너무 멀구나.”

 오데트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학교는 꼭 고향에서 다니고 싶어요. 약속하셨잖아요?”

 타우어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보았다.

 “물론이지. 네가 바란다면 그렇게 하렴.”

 타우어 부인이 대표로 말했다. 오데트는 웃어 보였다. 인형처럼 예쁜 웃음이었다.


 3.

 여섯 살 생일이었다.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나타났다. 크림이 묻은 케이크 커터가 땅으로 굴러떨어지고 오데트의 작은 몸이 허공에 달랑 들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품이었다. 큰 소리가 났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있는 싸움도 아니었다. 대신 아빠 품에 답싹 매달렸다. 햇빛에서 말린 빨래처럼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딘지 모를 곳이었다. 주점 같았는데 오데트는 한 번도 이런 장소에 와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동의 여파로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오데트를 소중하게 안고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슬픈 눈동자가 오데트를 훑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재촉하듯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결국, 아빠는 오데트를 매단 채 플루가루를 뿌렸다. 벽난로가 초록색으로 타올랐다.

 “린츠 거리로.”

 부녀는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오데트는 벽을 보고 있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낯선 주점이었고, 아까와는 공기가 달랐다. 이번에는 오데트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아빠와 떨어지자 몸이 절로 떨렸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두꺼운 망토를 걸쳐주고 자기도 옷을 덧입었다. 오데트는 그제야 아빠가 작은 짐가방을 들고 있는 걸 눈치챘다.

 ‘어딜 가려는 걸까?’

 아빠와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일 년에 한 번쯤 찾아와서 엄마나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곤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오데트에게는 가끔 선물을 들고 왔지만,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싫지는 않았다.

 오데트는 아빠 손을 잡고 걸었다. 겨울이면 끼는 예쁜 귀마개도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장갑도 없었다. 귀가 시렸지만, 손은 따뜻했다. 아빠는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숲 속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그림책에 들어있을 것 같은 고즈넉한 저택. 정갈하고 호화로운 저택과 복도에 놓인 값비싼 장식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인형처럼 얄팍한 표정을 한 오데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안내를 따라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가벼운 실내복 차림에 보온용 겉옷을 걸친 부인이 나타났다.

 “어머, 홈즈씨. 오랜만이에요.”

 부인이 말했다. 아빠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했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그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데트는 귀 기울이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그이는 지금 자리에 없어요. 저 아이인가요?”

 “오데트라고 합니다. 오데트, 인사하자꾸나.”

 오데트는 못 들은 척 쪼르르 눈에 띄는 항아리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는 사과했고 부인은 웃었다.

 “그 항아리가 마음에 드니?”

 “응.”

 “잘 됐구나.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다니.”

 오데트는 부인을 돌아보았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아가야.”

 아빠는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코너 너머로 사라지는 아빠의 등을 보며 오데트는 생각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2.

 엄마는 항상 어딘가 아팠다. 그건 오데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엄마가 아픈 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오데트는 몸이 약했다. 갓난아이일 적에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지금도 오데트는 끊임없이 감기에 걸려있었고 시시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밤에도 낮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울며 지새운 적도 많았다. 조금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온종일 속이 뒤집혀 물만 먹고 하루를 버티는 날이 이주에 한 번은 있었다.

 탈이 많은 오데트를 돌보느라 엄마는 늘 바빴다.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서 환자가 둘이 있는 모양새가 되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엄마가 멈추게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오데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고,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다. 엄마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일했다.

 오데트네 세 식구가 사는 집은 작고 낡았다. 퀴퀴한 냄새도 났다. 거실 하나, 부엌 하나에 작은 방이 하나 딸려있었다. 놀랍게도 방은 오데트의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자고 엄마는 부엌에서 잤다. 오데트는 냄새가 싫어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 곳이었다. 엄마는 매일 기침을 했다. 오데트가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달려와 안아주는 할아버지는 엄마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했다.

 “너는 우리가 만든 보물이란다.”

 오데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유는 알았다.

 오데트는 강력한 마녀였다. 아직 조그만데도 어지간한 어른 마법사만큼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절제된 솜씨, 모자람 없는 파워, 신속한 속도.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밀리지 않고 어려운 마법도 몇 번 보면 금세 비슷하게 따라 했다. 할아버지는 오데트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쥐여주며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오데트가 마법을 쓰는 대가로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주었다. 가끔 할아버지와 엄마가 먹을 빵도 없을 때가 있었지만, 오데트의 간식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나도 오데트 방에는 달콤한 과자 향이 감돌았다.

 엄마는 마녀였지만 마법을 잘 쓰지 못했다. 어린 오데트보다도 미숙했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오데트는 엄마를 대신해 마법을 썼다. 엄마의 지팡이는 엄마가 들고 있을 때보다 오데트 손안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1.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방안은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서 나는지 모를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그녀의 곁에는 한 남자가 널브러진 모양새로 잠들었고 바닥에는 두 사람분의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남녀의 벌거벗은 나체는 어둠에 잠겨 형체조차 불분명했다.

 여인은 엉망이었다. 슬퍼 보인다며 그의 마음을 끌었던 처연한 눈매는 눈물에 불어터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고, 달빛과 잘 어울린다던 창백한 금발은 눈물과 오물로 엉켜 얼룩졌다.

 “미안해요.”

 그녀는 웅크리고 울었다. 땡기는 배의 통증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사랑이 담긴 눈빛이었다. 어깨를 감싸 안는 다정한 손은 따뜻했다. 처음으로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흐릿하게 모양을 잡아가던 꿈은 다시는 완성될 수 없겠지.

 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약에 취해 잠든 그를 두고 방을 빠져나오며 마지막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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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것은 조그만 램프였다. 촛불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음악처럼 흘렀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를 들었다. 먼 나라의 마녀 이야기, 용을 잡은 용감한 마법사의 이야기, 원탁의 기사와 멀린, 호그와트를 세운 네 명의 마법사들.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책을 덮으면 아이는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용감한 기사님이 될래요.”

 그날 읽은 책에 따라 장래희망은 용기사가 되기도 하고 마법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동화책을 덮은 아이의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기사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매일 묻는 말, 매일 하는 대답.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약한 사람을 지켜줘야 해요.”

 씩씩하게 말하면 할머니의 고운 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샌가 연극의 마지막 대사가 나올 차례.

 “누구보다도 여자와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단다. 절대 잘못된 행동에 타협해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를 지킬 때는 그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영웅은 모두 그렇게 하니까.”

 “손가락 걸고,”

 “약속.”

 아이와 할머니는 서로의 손바닥에 사인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정해진 의식처럼 매일 밤 단둘이서 하는 약속이었다. 이 시간에는 아이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참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 꼭 끌어안았다.

 “잘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자리에 누운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램프를 끈 할머니는 방을 나선다. 아이는 목까지 이불을 덮고 완전히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캄캄한 방안에 혼자 남으면 그제야 느리게 잠이 찾아왔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아이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기대하고 있던 입학식을 향해 가는 날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통지서가 날아온 날부터 제시간에 잠들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학교에 가요?”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물었을 거라고 아이의 어머니는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서 몇 번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빠, 학교에는 어떻게 가요?”

 “기차를 타고 간단다.”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지치지 않았다. 같은 대답을 또 들어도 좋았다. 지친 얼굴을 한 어머니도 아이만 보면 웃는 아버지도 언제나 상냥한 할머니도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히 입학식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것에 아이의 어머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할 때쯤 찾아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꼬마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다이애건 앨리에 가는 거야.”

 그곳은 아이도 잘 아는 곳이었다. 몇 번이나 아버지를 따라 찾아왔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상점, 주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다녔다. 대부분 아는 가게에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간다는 것에 들떠 좋아하는 다이애건 앨리에 간다는 말도 한 귀로 흘려넘겼다.

 “준비물 제가 사도 돼요?”

 “그렇게 하려무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겠니?”

 “물론이죠!”

 꼬마 브라이언은 제일 먼저 양피지와 깃펜을 샀다. 짤랑거리는 금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익숙한 거리와 상점의 위치를 적은 후에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렸다.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거리를 손으로 그린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돌아다니면서 준비물을 사고 친구들도 사귀었다. 또래 친구들이 잔뜩 있었다. 모두 호그와트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이었다.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준비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느샌가 늘어버린 군것질거리와 장난감을 넣기 위해 가방도 샀다. 직접 그린 다이애건 앨리 지도와 몇 가지 모험 도구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보는 다이애건 앨리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사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뒷골목에도 들어가 보고 수상한 가게도 보았다. 완전히 색다른 경험에 꼬마 브라이언은 신이 났다. 와후!

 무엇보다 신이 나는 건 교수님을 만난 것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환영합니다. 호그와트의 예비 신입생 여러분.”

 북적이는 리키 콜드런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인사했다. 반짝이는 금발에 초록 눈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저는 여러분을 내일 킹스크로스 역까지 인솔하게 될 세실 윈터벨 교수라고 합니다.”

 그 뒤로 들은 이야기는 환상적이었다. 포트키! 포트키를 탄다! 아이는 신이 나서 얌전히 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끼얏호!”

 포트키를 이용해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하는 시간은 아침 열 시 반. 아홉 시에 일어나는 것도 벅차하는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엄마!”

 “브라이언, 지금 새벽이야.”

 “나 내일 기차 타요.”

 “알아.”

 “아빠, 지금 몇 시예요?”

 “…….”

 옆방 아저씨가 화를 냈다.


 꼬마 브라이언은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 기차역에서의 기억은 흐릿하고 창밖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짐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서 옆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도 몰랐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겨우 깨었을 때는 기차가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검열이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 뺨을 맞았다는 소릴 들었다. 아는 아이였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인사했던 여자아이, 이솔렛. 머글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한 귀로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맞다니! 괜히 화가 났다.

 미처 놀라기도 전에 기차가 다시 멈췄다. 그게 또다시 모험의 시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도착했나 싶었다.

 내린 곳은 낯설고 쓸쓸한 기차역이었다.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학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고즈넉한 성이라고 들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배를 탈 호수도 없었다!

 아이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역 한쪽에 까맣게 탄 아저씨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했다.

 ‘이미 다 탔는데 모자는 왜 쓰지?’

 기차가 대충 빈 것 같자 아저씨가 말했다.

 “어서 오렴, 신입생 여러분?”

 학교에서 나온 교수님이었다!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뭔가 굉장한 과제를 내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부터 직접 학교를 찾아가라던지 테스트 후 합격하는 아이만 학교에 데려간다든지.

 “학교가 아니라 여기서 먼저 보아 미안하구나. 나는 위팅턴 교수란다. 여기서부터 학교까지 너희를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지. 리키 콜드런에서 윈터벨 교수는 보았겠지?”

 아저씨, 아니 교수님이 말했다. 아이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야기는 간단했지만 굉장한 이야기였다. 선로에 이상이 생겨서 이곳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야호, 텐트다! 친구들과 함께 야영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들떴다.

 인근에 있는 마을에는 자유롭게 놀러 가도 좋지만, 기차에는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아즈카반의 문지기인 무시무시한 디멘터가 지키고 있다고 했다. 디멘터가 기차에 온다는 건 이상했지만,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험이다!”

 아이는 신이 나서 외쳤다. 기쁘게도 기차가 멈추는 동시에 제일 먼저 걱정스럽던 입학식 일정은 차질이 없이 진행된다고 했다. 기대하던 보트를 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다시 외쳤다.

 “끼얏호!”

 마을을 탐험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텐트에서 떠드는 경험은 각별했다.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야영을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캠프파이어도 함께였다!


 설레는 입학식은 예상대로였다. 아니, 기대보다 더 좋았다. 포트키를 타고 도착한 호그스미드는 어른들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배 타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춘 것뿐인지라 마땅히 할 것은 없었지만 심심하기보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배를 나눠탔을 때는 최고라고 할만했다. 호수를 건너는 중에 호수에 빠진 것이다! 아이가 이 장면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는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도 몰랐다.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어른들의 우스갯소리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상상 속에서 보았던 커다란 오징어 다리가 아이들이 탄 보트를 뒤집었다. 아이는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놀라고 행복해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다에 빠져버렸다. 지팡이를 꽉 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신이 났다! 흥분한 브라이언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젖지 않은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했다.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이는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고서도 눈을 빛냈다. 육중한 문과 견고한 벽도 아이의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막지는 못했다. 연회장 문이 열리는 동안 아이는 처음으로 모든 것이 느려 보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나긴 찰나가 지나고 연회장이 신입생들 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펼쳐진 천장, 길게 늘어진 기숙사 테이블, 옹기종기 모여앉은 선배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놓인 마법 모자와 교수님 테이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어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바라며 친구들을 응원했다.

 마침내,

 “브라이언 홈즈!”

 아이는 성급하게 달려나갔다. 발이 꼬여 휘청거리는 바람에 어디선가 웃음이 터졌지만 창피하지도 않았다. 마법의 모자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뭐라 말이 많은 마법의 모자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 자꾸만 고개를 젖혔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을 때까지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고 들었다가 숙이기를 반복했다.

 ‘이것 참, 마당발 친구로구먼?’

 모자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난 어디야?”

 꼬마 브라이언이 물었다. 이미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성급하게 굴지 마라. 어디 보자. 호오, 머릿속이 아주 명확하군. 행동도 머릿속과 아주 똑같은걸.’

 “그래서 어딘데?”

 ‘네가 갈 길은 하나뿐이구나. 아주 일직선이야. 널 위한 기숙사를 알고 있단다.’

 “그래서?”

 말이 한마디 끝날 때마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모자는 아이의 재촉에도 태연했다.

 ‘즐거운 학교생활 보내길 바란다. 바로…,’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와, 환호성이 터졌다. 아이는 만세를 불렀다!

 꼬마 브라이언은 교수님이 모자를 벗기건 말건 신이 나서 단상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핀도르다! 신이 나서 그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선배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모험 끝에 마침내 도착한 학교에는 또 얼마나 꿈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거리는 시작이었다. 그곳이 바로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곳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꼬마 타이틀을 던져버렸다. 이곳이 시작이었다. 매일 침대맡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진짜가 되어 브라이언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만세!”

 브라이언은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는 눈총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더 좋아질 수 있을까?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당연하지!

 난동을 부리던 브라이언은 테이블 의자 위를 신발 신은 발로 섰다는 이유로 교수님께 꾸중을 듣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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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

HAPPY ENDING?

2015. 5. 2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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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한_캐를_살인했다_치고_살인일지를_써_보자


 Amelia Holmes → Michal Russll

이 글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1980년 8월 30일 >

 앞일을 예측한다는 것은 까다로운 교수에게 고대 룬 문자 레포트를 제출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결정된 미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린 지도가 맞기를 간절히 비는 것뿐. 기대는 부닥쳐온 현재에 산산조각이 난다. 때로 예비 레포트를 준비해놓고 개중 하나쯤은 통과하겠거니 생각하며 답잖은 여유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돌아온 양피지에 새겨진 성적은 휘갈겨 쓴 T. 미래와의 겨룸은 필패로 정해져있음에도 때로 교만해지는 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보호 방책일지도 모른다.


 < 1980년 11월 2일 >

 학창시절 친구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받았다. 며칠 전 다이애건 엘리에서 만났는데 학교에서는 한 번도 대화해본 적이 없는 친구였다. 겨우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도 어찌나 반갑던지. 짧은 시간을 즐겁게 대화하고 헤어졌다. 주소를 교환하긴 했지만 편지가 올 줄은 몰랐다.

 편지에는 거의 알지 못하던 동창들의 소식이 적혀 있었다. 누구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몇이고, 누구는 승진을 했다더라. 누구는 연락이 끊겨 생사를 모르고, 사망이 확인 된 게 몇이더라 하는 이야기는 향수와 세월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얼마나 그들의 근황에 무심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눈물 자국이 남은 양피지를 넘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죽은 이의 이름은 내가 아는 사람이 반 이상이었다. 지금도 품에 들어있는 지팡이가 만난 이들이었기에 잊을 수 없는 이름. 왜 웃음이 났는지 모르겠다.

 죽은 자 중에 나와 관련 있는 이가 많았기에 그러지 않은 이름은 눈에 띄었다. 대부분 모르는 이름이었지만 아는 이름이 있었다. 미샬 러셀.


 < 1980년 11월 7일 >

 이름은 무엇일까. 그의 이름을 본 뒤로 자꾸만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몇 번 말을 섞어보지도 않았는데 그 대화가 어찌나 생생하게 떠오르는지 종일 그의 얼굴이 눈앞을 맴돌았다. 밤새 지나간 추억에 시달리다가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는데 또 그의 꿈을 꾸었다. 미샬 러셀, 그와 학교를 빠져나온 날의 꿈이었다.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밤. 한없이 고요한 오두막에서 셋이 앉아서 타오르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던 밤. 뭔가 모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실망도 했던 그 밤의 꿈을 꾸었다.


 < 1980년 11월 25일 >

 오늘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날이 저물어 곧 가게를 닫을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가게로 뛰어들었다. 행색이 남루한 마법사였다. 카운터는 출입문 정면에 있으므로 거칠게 문을 닫고 기대앉아 숨을 몰아쉬는 ‘그자’와 눈이 마주쳤다. 가게에는 나와 그 사람뿐이었으니 적막하니 짝이 없었고 그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와 밖에서 누군가 뛰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차례 인기척이 지나간 후, 나는 그를 가게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최근 기억이 선명해진 탓에 그가 미샬 러셀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도 나를 알아본 것 같았지만 따로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늘 어딘가 나사 빠진 미소를 걸고 속없어보이던 학창시절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초췌하고 표정 없는 얼굴에 어깨가 축 쳐져 키가 오인치는 줄어든 것 같았다. 분위기만 보자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급할 때 귀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마련된 금고에 그를 숨기기로 했다. 망할 놈팡이들이 새로 올 때마다 부수기는 하지만 현재 담당자는 한 번 부쉈던 전적이 있으니 다시 손대지 못한다. 어두운 복도를 지팡이 끝에 달린 작은 불빛에 의지해 걷고 있으니 저번에 꾼 꿈이 떠올랐다. 그리운 듯, 그립지 않은 듯 했다.

 러셀을 숨기고 가게로 돌아가니 손님이 있었다. 당연히 물건을 사러온 손님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추적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 늦었으니 정 의심스러우면 내일 다시 오라는 말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

 추적자가 확실히 떠났음을 확신한 후에 금고로 돌아가 그를 꺼내주었다. 그는 바로 나가려고 했지만 감시가 있을지도 모르니 가게 밖으로 나가는 건 위험하다고 붙잡았다. 물론 가게에 계속 머무르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여서 함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가게와 집 벽난로가 플루 가루 네트워크로 통해있으니 들킬 염려는 없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둘이 같이 이동했다.

 러셀은 주변을 살핀 후 바로 떠났다. 우리는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서로 기억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떠나보냈다.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더는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어딘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1980년 11월 26일 >

 예상대로 탐문이 있었다. 추적자는 오러였다. 나 역시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덤블도어의 사람으로 이름이 오르내렸었다. M… 뭐였더라.

 의아한 것은 러셀 역시 오러라는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들려주지 않았지만 러셀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숨은 걸까. 늘 하던 대로 모른다고 답하기는 하였지만 뭔가 찝찝하다.


 < 1980년 11월 30일 >

 반갑지 않은 재회.


 < 1980년 12월 3일 >

 지난 사흘간 많은 일이 있었다. 차분하게 정리할 정신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기억이 생생할 때 기록하고자 한다. 언젠가 이 일지를 읽는 사람은 이 손으로 저지른 죄를 용서치 말기를.

 나는 러셀과 재회했다. 아니,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염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그래,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옳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여름 이후로 한시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하고 줄곧 떨었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라곤 없었다. 저주를 나와 내 가족에게 돌린 자신이 원망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능동적으로 그를 살해하는데 협력하고 만 것이다. 개인사정으로 또다시 누군가를 죽였다. 벌써 네 번째. 나는 죄인이다. 모두가 돌을 던져 마땅하다. 누구도 슬픔과 동정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이 손에 묻은 피는 그렇게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그와 다시 얽힌 것은 1일 새벽이었다. 어둑어둑해져 가게로 급하게 돌아오던 길에 구석에서 사람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까지는 러셀인 줄 몰랐다. 한 사람이 쓰러졌고 수상한 기색에 달려갔을 때는 자취를 감춘 뒤였다.

 쓰러진 사람은 러셀을 뒤쫓았던 오러였다. 숨이 끊어졌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혹여 덤터기를 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달아나려고 물러나는 순간 붙들렸다.

 이쪽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유명하던 미남이 내 팔을 붙들고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시리우스 블랙. 학교의 말썽꾸러기였던 덤블도어의 사람.

 그대로 끌려가 심문받았다. 꼬박 이박삼일을 보낸 것은 나와서야 알았다. 감금 장소가 워낙 어두워 밤낮을 알기 어려웠다. 대우는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있는 곳을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에반스가 정황을 설명해주었다. 러셀에게 살해당한 오러는 불사조 기사단이라는 덤블도어 직속으로 꾸려진 ‘그자’에게 대항하는 단체 소속이었다. 에반스와 블랙도 그 일부고 내가 갇힌 장소는 그들의 근거지 중 하나인 듯 했다. 러셀은 나와 비슷하게 단체의 이름을 대지는 않지만 협력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러셀이 가게에 뛰어 들어왔던 밤은 그들에게는 조용한 날이었다. 에반스가 들은 바에 의하면 죽은 이―계속 죽은 사람이라고 쓰고 싶지는 않지만 그새 이름이 가물가물하다―가 러셀과 파트너로 어둠의 마법의 흔적을 쫓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러셀은 사라지고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제는 숨 쉬지 못하는 그는 러셀을 찾아야할지 습격자를 추격해야할지 고민했지만 분명한 흔적을 발견했을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쫓으면서 그것이 두 사람이 쫓던 어둠의 마법사임을 확신했다고 한다. 어둠의 마법사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자’의 추종자가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추격을 계속했고 도착한 게 가게 근방이었다.

 역할에 충실했던 그는 이 일을 마법부와 기사단에 보고했다. 마법부에는 어둠의 마법사를 마저 쫓겠다고 했고, 기사단에는 이상의 전말과 함께 죽음을 먹는 자들의 동향을 보고했다고 한다. 그 뒤로 연락이 끊겨 꼬박 하루를 기다린 후 손이 남는 자들끼리 그를 찾았고, 이후는 일지대로다.

 사정을 알고 난 뒤, 나 역시 에반스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몇 사람을 죽였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자’의 추종자들 감시 하에 있으며 지난 새벽 러셀이 찾아와 가게에 숨었고 어디서 놓아주었다는 그간의 사정 이야기였다. 그녀는 간략하게 줄인 그간의 이야기를 듣더니 딱딱한 얼굴로 떠나버렸다.

 근거지와 내 거취를 지키는 사람은 계속 바뀌었다. 블랙은 나를 데려다 놓은 뒤 거의 들어오지 않았고, 에반스가 떠나자 루핀과 페티그루가 나타났다. 롱바텀이나 위즐리, 프레웻도 얼굴을 비췄다. 적당히 빌린 장소겠거니 생각했던 처음 생각과 달리 내가 갇힌 장소는 기사단의 본진인 모양이었다.

 오가는 이들의 이야기에서 상황을 대략적으로 추릴 수 있었다. 러셀을 추적해 잡았으며, 그가 어둠의 마법을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고. 차마 사람에게 쓸 수 없는 끔찍한 마법으로 살해된 시체가 몇 구나 발견되었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과의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쯤이었다.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행패를 부리러 왔던 ‘그자’의 추종자가 중얼거렸던 내용이었다. 금단의 마법에 손을 댄 마법사가 접촉해왔다. ‘그자’에게 뭔가 엄청난 조건을 걸고 거래를 제안했다. ‘그자’가 그걸 굉장히 못마땅해 했으니 곧 어둠의 마법사가 죽게 될 것이다.

 가래 섞인 침을 나무 바닥에 뱉으며 킬킬거리고 웃던 쉰 목소리를 떠올린 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수상하게 보였을 테지만 마침 기사단도 바빠진 터라 날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포터가 나를 데리고 기지를 빠져나왔다. 나 역시 피해자일 뿐이니 풀어주겠다고 했다. 정보를 빼앗길까 염려하기에 기억을 지웠다. 그래서 내게 남은 기억은 대략적인 상황뿐이다.

 정확히 어떤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두운 저택에서 나와서 나는 기사단을 따라갔다. 러셀이 처음 동료와 조사하던 장소였다. 그러니까 러셀의 집이자 연구실이었다. 나는 뭔가 손댈 입장이 아니었으니 뒤에 빠져 지켜만 보았다. 기사단이 러셀을 지하실에서 끌고 나왔다. 지팡이를 빼앗고 재갈을 물린 상태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러셀은 한층 심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남루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처참한 상태였다. 금지된 마법의 부작용인지 피부가 군데군데 썩어 들어가고 손만 대도 머리가 한 움큼씩 빠졌다. 피부는 누렇게 뜬데다 눈은 푹 들어가고 뺨이 해쓱했다. 앞도 제대로 보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웃음기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데도 시체 같은 모습이었다.

 러셀은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 뭔가 웅얼거렸다. 기사단원들은 그의 처분으로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그들에게 러셀의 재갈을 풀어주기를 제안했다. 지팡이를 빼앗았으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러셀이 눈을 빛냈기에 기사단을 끝까지 설득했다. 그들은 내키지는 않아보였지만 수락했다.

 재갈을 풀어주었을 때 러셀은 웃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생생하다. 평생을 그 얼굴에 쫓기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끔찍한 얼굴이었다. 흰 막이 씌워진 한쪽 눈을 번뜩거리며 입술만 움직여 웃었는데 입술 안쪽이 새카맸다. 나중에 열어보니 구더기가 나왔다. 그 미소가 학생 때 보았던 것과 닮아있다는 게 끔찍하다. 러셀은 웃었고 뭔가를 외쳤고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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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한_캐를_살인했다_치고_살인일지를_써_보자


 Amelia Holmes → Phury V. Flint

이 글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1980년 8월 6일 수요일 >

 호출이 있었다. 그들이 나를 소환했다는 의미다. 일 년하고도 팔개월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가게를 벗어나지 않았다. 가게를 더럽히고 물건을 함부로 다뤄도 ‘그자’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작은 위안이었는데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의복도 갖추지 못하고 끌려간 곳에는 잘 알거나 초상화로 본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실내가 조금 어둡긴 하지만 제대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저택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어느 순혈가문의 저택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대화도 없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면면을 보아하니 어떤 모임인지 분명해졌다. ‘그자’의 세력에 암묵적으로 협조하는 순혈 가문 젊은이들이었다.

 ‘그자’가 사회를 뒤흔들기 시작한지 벌써 십년이 지났다. 마법사 사회는 크게 둘로 나뉘어 다시는 합쳐질 수 없을 것만 같다. 그 자리에 모인 것은 그에게 협력하고 있으나 회색분자에 가까웠다. 공기가 까끌까끌했다. 다들 불편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왜 내가 그 자리에 불려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것 같다. 불안한 공기를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필 그를 발견한 것 역시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휴리 폰 플린트. 플린트가의 차기, 아니 이제는 가주인 그는 전형적인 슬리데린 모범생이었다. 그가 그녀와 함께 미소 짓던 모습이 나는 아직 생생하다.

 그들은 모두가 지쳤을 무렵에야 나타났다. 어째서 불렀는지 한마디 이야기도 없이 저녁 만찬을 대접받았다. 하지만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입장을 잊지 말라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 1980년 8월 13일 수요일 >

 부엉이를 받았다. 다시 한 번 소집.


 < 1980년 8월 14일 목요일 >

 여러 사람이 모이는 줄 알았는데 혼자였다. 어두워서 누가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날카로운 목소리라서 여자라는 걸 알았다. 분명 들었던 목소리였다.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모임은 단지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지팡이를 뺏기고 심문을 받았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심문하는 마녀는 능숙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몸으로 겪었으니 나도 시대에 합류한 것일까. 아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자동 서기 깃펜을 만든 마법사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심문은 특정 몇몇 가문에 대한 것이었다. 최근 그들과 연락한 적이 있는지, 행보를 아는지 시시콜콜 캐물었다. 사적인 연락은 거의 끊고 살았던 만큼 대답할 거리는 없었지만 고문을 피해갈 순 없었다. 믿기지 않아서인지 그녀가 즐겼는지는 모르겠다.

 걸리는 것은 플린트라는 이름이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경거망동할 사람이 아닌데 걱정스럽다. 그들의 태도는 죄를 잡는 것보다는 처형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흠잡힐 일을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 1980년 8월 20일 수요일 >

 예언자 일보에서 플린트라는 다섯 글자를 발견했다. 가게를 닫고 그를 찾아 나섰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아직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처음으로 찾은 플린트의 저택은 어수선했다. 사방에서 심상찮은 광선이 날았다. 지팡이를 꺼내들고 그를 찾아 달렸다. 그들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혀 모르는 저택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건 그녀의 가호였을까. 3층에서 그를 찾았다. 죽음을 먹는 자 둘을 보란 듯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뛰어난 솜씨였다.

 그들 중 하나를 기절시키고 플린트와 합류했다. 빠르게 오가는 공방에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거의 승세를 잡았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외쳤다. 덜컥 겁이 났다. 홈즈.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이 어깨에 메여 있다. 멈칫한 사이 무장해제 주문을 맞았다. 지팡이가 날아갔고 죽음을 예감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플린트가 무리하게 방어마법을 펼쳤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 탓에 그가 제압당하고 말았다.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내 죽음으로 아서에게 해가 미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럴 수 없을 거란 생각도 했다. 마지막까지 못난 누나라 미안하다고 속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다시 한 번 작년 초의 악몽이 재현되었다. 내가 그토록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플린트의 마지막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슬프지만 담담하고 초연한 얼굴이었다. 그의 가족은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 그들은 가주를 처형한 것으로 만족했다. 아직 어린아이의 손에 지팡이를 쥐어주고 가족을 죽이라 명령했다. 그 지팡이를 빼앗아서 내가 휘둘렀다. 놀라울 정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뎌진 모양이다. 슬프지도 않다.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날 살렸는지 모르겠지만 내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예감이 든다.

 페이지. 그곳은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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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달구던 여름 태양이 바다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한나 수녀는 창밖을 넘어다보며 중심가는 한창 북적이겠구나 생각했다. 여름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이 어울리는 광경이 눈에 선했다. 그에 반해 한나가 근무하는 변두리 성당은 축제의 여파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한나는 창가에서 멀어져 실내로 들어갔다.

오늘은 한나가 성당을 지키는 날이었다. 성당은 워낙 변두리에 조그맣게 자리 잡아 지역 주민이 아니면 존재조차 몰랐다. 때문에 지나는 사람이 들르는 일은 거의 없고 주말 미사 시간 외에는 거의 신부님과 둘이 보낼 때가 많았다. 오늘은 마침 신부님도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성당에는 한나 혼자였다.

한나는 예배당 안쪽에 있는 조그만 휴게실로 들어갔다. 좋아하는 장소였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투과해 떨어지는 오색 빛이 예배당을 아름답게 물들이면 이곳으로 들어가면서 살짝 돌아보는 게 좋았다. 성당에 가득한 신의 축복을 육안으로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워낙 작아 조금만 움직여도 할 일이 사라지는 성당에서 한나는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이런 시간, 한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사람이 없으면 신부님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 한나는 주로 책을 읽었다. 가끔은 음악을 듣기도 했다. 나이 지긋한 신부님은 아직 어린 한나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해주었다. 그게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한나는 오늘은 무얼 할까 고민하며 서성이다가 겨우 책을 한권 뽑아들었다. 마음도 싱숭생숭하니 즐거운 것으로 뽑았다. 그때 본당에서 인기척이 났다.

계세요?”

한나는 탁자에 책을 올려놓고 나갔다.

하루를 끝내고 돌아가는 햇빛에 예배당이 온통 붉었다. 나란히 놓인 긴 의자들 사이로 이상한 사람이 서있었다. 한나는 기묘한 복장에 잠시 말을 잃었다. 전신을 가리는 로브는 밤하늘 같은 남빛이었고 머리에는 마녀를 연상시키는 뾰족 모자를 썼다. 한나는 그가 축제를 즐기는 중인가보다 생각했다. 방문자는 한나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그는 모자를 들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창백한 금발이 반짝였다.

여기에 편지를 맡겨두었다고 들었습니다. 제 이름은 아서 홈즈예요.”

앳된 뺨을 붉게 물들인 방문자는 선명한 초록빛 눈을 빛내며 한나를 바라보았다. 한나는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박수를 쳤다. 기억이 있었다. 그건 일 년 전 일이었다.

그날도 한나는 혼자서 성당을 지키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조용한 여름밤이었다. 신부님은 출장을 나가 없었고 오랜만에 자유를 누리겠다며 늦은 시간에 간식을 먹었더니 눈이 말똥말똥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잠깐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데, 본당에 사람이 있었다.

동네 주민으로는 보이지 않는 낯선 사람은 소리도 없이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있었지만 기도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나는 그를 여행하는 수도사라고 생각했다. 먼지 쓴 칙칙한 로브를 두르고, 후드를 썼다가 벗은 것처럼 머리가 지저분했다.

안녕하세요?”

한나가 인사하자 수사가 돌아보았다. 노란 빛이 감도는 초록 눈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났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요?”

묻자 그는 다시 십자가를 보았다.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낯선 수사는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굳게 다물려 있음에도 어딘가 장난스럽게 보이는 입매가 마음을 삼키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한나는 그의 곁에 앉았다.

주님은 늘 당신 곁에 있습니다.”

일렁이는 불빛에 수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애도 그 곁에 있겠죠.”

수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렸다.

작년 겨울이었어요. 학교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아이를 급히 병원으로 옮겼다고 하더군요.”

수사는 아찔한 듯 눈을 감았다 떴다.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그에게는 딸이 있었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지만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건 물론, 가정 사업까지 상당부분 돕는 똘똘한 아이였다. 기숙학교에 다녔고 교우관계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곤 했지만, 큰 사건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 워낙 야무져 끊임없이 같은 평가가 쓰여 있어도 수사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 애가 몇 달 전 갑자기 학교에서 폭행으로 경고를 받았고 사태는 점차 심화되어 다른 학생의 목숨이 위험할 지경에 이르렀다. 담당 교사는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일이 크게 번질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피해 학생은 딸을 용서했다.

딸아이는 겨울부터 정신 착란을 호소해왔다고 했다. 수사는 크게 놀랐다. 딸은 방학에 집에 돌아와서 한 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방학 때면 늘 그래왔듯 수사에게 잔소리를 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일을 했다. 어지간히 놀란 걸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수사는 딸이니까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딸을 입원시킨 병원에서 의사그는 치료사라고 했다는 말했다. 파악은 불가능하지만 일종의 저주한나는 이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끼어들지는 않았다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의사치료사는 당장 지금부터 격리수용해야한다고 말했지만 면회는 허락해주었다.

방학 이후 거의 반년 만에 만난 딸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흐트러진 붉은 머리에 옷은 구겨져있었지만 수사를 닮은 초록 눈만은 총명하게 빛났다. 낯선 장소에서 지팡이어린아이가 지팡이를 짚는다? 이 역시 한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말을 막지는 않았다를 빼앗겼음에도 집에서와 전혀 다름없는 웅크린 자세로 책을 움켜쥐고 있었다. 수사가 인사하자 책 너머로 흘깃 보더니 고개만 대충 끄덕여 답하는 것도 똑같았다.

무슨 사고를 쳤어?”

수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친구처럼 다가가 딸아이가 앉은 침대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딸애는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한창 책에 빠져있는 중에 말을 걸면 보이는 손짓이었다. 할 수 없이 수사는 기다렸다. 희고 환한 불빛 아래 딸의 얼굴은 해쓱해보였다. 그렇게 보니 안 그래도 마른 몸이 한층 가벼워진 것도 같았다.

딸애가 입을 연건 십여 분이 지난 뒤였다. 읽던 부분에 손가락을 끼운 채로 책을 덮고 수사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아빠.”

딸은 말했다.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수사는 아이를 독촉하고 화도 내봤지만 굳건히 닫힌 입은 열리지 않았다. 아이의 이야기는 의사를 통해서나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딸은 심각한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낮에는 멀쩡하지만 밤만 되면 악몽을 꾸고 깨달았다. 꿈 내용은 늘 같았다. 매일 학교에서 누군가 사람이 죽는다. 딸과 친구들은 교사들의 지도아래 탈출 방법을 찾았지만, 결국 상당수가 죽음을 맞았다고 했다. 꿈속에서 딸은 죽었던 모양인지 계속해서 자신이 살아있는지를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면 잠시 침착해졌다가 자살을 시도한다고 했다.

책임감 때문입니다.”

의사치료사는 말했다. 악몽 속에서 딸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한나는 수사가 잘못 말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꿈이라서 그런 듯했다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죽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했다. 그 생각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낮에 침착하게 대화했을 때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했다.

이 사건을 얼른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겠다고요.’

의사는 딸과의 대화를 기록한 차트를 보여주었다.

낮에는 놀라울 정도로 얌전합니다. 밤에 이성을 잃고 날뛰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죠. 정신병자들이 원래 그렇습니다만.”

꿈속에서 느낀 압박감이 지금도 딸을 누르고 있다.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걱정 받고 싶지 않다고 발언했다. 의사는 덧붙였다.

학교에서도 이성이 있을 때는 교수나 친한 사람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게 끝이었다. 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딸은 하루하루 증상이 심해졌다. 어쩌다 우연히 딸이 발작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딸은 아버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도망치라는 처절한 비명이 수사의 심장에 새겨졌다.

어제 딸을 묻고 왔습니다.”

수사는 그 말을 끝으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한나는 차마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한나는 수사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는 아침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보았을 때, 그는 한나에게 편지를 한통 맡겼다.

이 편지를 찾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전해주세요.”

편지 봉투에는 ‘Rory A. Holmes’라는 이름이 필기체로 적혀있었다.

아서 홈즈라고 자신을 밝힌 소년은 과연 그때의 수사와 닮아있었다. 밀 빛에 가까운 어두운 금발이었던 수사와 달리 투명하게 빛나는 플라티나 블론드와 험지를 다닌듯한 수사와 달리 고급스러운 옷이었지만 인상적인 초록 눈은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법했다.

잠시만 기다려요.”

한나는 소년을 두고 다시 본당 뒤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찾아오지 않아 깊숙이 들어가 버린 편지를 찾으며 당시에는 이름도 묻지 못했지만 소년이 그토록 수사를 닮은 것을 보면 혈연관계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한참을 편지를 찾아 헤매다가 겨우 찾아 돌아섰을 때, 홈즈는 한나의 뒤에 서있었다. 한나는 놀라서 넘어질 뻔 했다.

오래 걸려서 들어왔어요.”

홈즈는 당황하며 한나를 부축했다. 가까이서 보자 무척 예쁘장한 소년이었다. 성장기가 아직인지 한나보다 작았는데 풍성한 속눈썹과 고운 선이 여자아이 같기도 했다. 청량한 향기가 났다.

너무 오래 넣어놨더니 어디 있는지를 잊었지 뭐예요.”

한나는 편지를 건네며 홈즈에게 차를 권했다. 소년은 망설이는 듯 했지만 제안을 수락했다.

한나는 홈즈에게서 뾰족 모자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 차를 준비했다. 소년은 자리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얼핏 보니 세장쯤 되어보였다. 한나가 다과를 준비해 돌아왔을 때, 홈즈는 침울해진 얼굴로 편지를 넣고 있었다.

좋은 내용은 아닌가보네요.”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도 차를 따르고 맞은편에 앉았다. 홈즈는 의자에 앉으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양손으로 찻잔을 꼭 쥐었다.

홈즈는 생각에 잠긴 눈으로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았다. 한나 역시 침묵했다. 홈즈가 수사의 가족이라면 일 년 전 그 밤 수사가 해준 이야기와 관련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편지를 읽은 소년이 말을 잃는 것도 이해가 갔다.

찻잔을 반쯤 비웠을 때였다. 홈즈가 입을 열었다.

이 편지를 받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한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신이 들은 것도 간략하게 전했다. 소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었다.

그럼 궁금하시겠군요.”

홈즈가 말했다.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소개했지만 저는 아서 홈즈입니다. 당신이 만난 사람은 브라이언 홈즈. 제 아버지입니다.”

홈즈는 이렇게 운을 떼었다.

홈즈가는 총 네 명이었다. 한나가 만났던 수사, 브라이언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자식이었다. 첫째는 죽은 딸, 이름은 아멜리아라고 했다. 아서보다 두 살 많은 누이였다.

부부는 서로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다. 정은 있었지만 사랑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일종의 정략결혼이었다. 부와 혈통을 지키기 위한 결혼. 촌수는 멀지만 두 사람은 친척이었다.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니 불만은 없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브라이언은 삼 대째 이어오는 고서점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취미인 동시에 업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부유했지만 브라이언은 서점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아마 머글 때문이었겠죠.”

홈즈는 말했다. 한나는 낯선 단어에 질문을 던졌다. 홈즈는 당신 같은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한나는 그게 수도사를 의미하는 일종의 은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머글을 좋아했죠.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 돈과 물건에 특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홈즈는 질색하며 말했다.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았다.

머글 경매에 참여해 물건을 따오기도 하고 우리 세계에서 유출되어도 문제가 없는 것들을 팔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골동품이니 망정이지요. 옛 물건 중에는 우리의 것이 많으니 필요한 일이었지만 하필 그걸 왜 아버지가 하는지 어머니는 불만이었습니다. 아무리 필요한 일이라도 머글과 직접 교류하다니, 집안 망신입니다.”

한나는 머글이란 말이 수도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불쾌해야하는지 그냥 들어야하는지도 모호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떠났습니다. 지금도 아버지를 싫어하지는 않으시지만 그 집에 살았던 건 수치스럽게 여기고 계세요. 제가 보바통학교 이름입니다에 입학한 해에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갈라섰지요. 아멜리아는 아버지와 함께 남고, 제가 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홈즈는 어쩌면 그게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 뒤로는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가끔 부엉이참을 수 없어진 한나는 질문했지만 무시당했다를 주고받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연락이 온 게 작년이었습니다. 누이가 죽었다는 말만 남기고 아버지는 사라졌습니다. 어떤 설명도 없었죠. 본래도 무책임하고 떠돌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때만큼 최악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놀라서 달려갔지만 고서점은 단단히 잠겨 들어갈 수 없었고 그 뒤로 아버지는 연락이 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영리한 부엉이를 보내도 찾지 못했죠. 그러다가여기서 홈즈는 잠시 망설였다어제 겨우 머글의 거리로 난 입구에서 메시지를 찾았어요. 우리는 그런 곳에 뭔가를 숨겨놨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홈즈는 다시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리석은 아버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침통했다.

이곳에 편지를 맡겼다. 중요한 내용이니 찾아가라. 그게 다였습니다.홈즈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아멜리아의 유언장이군요.”

소년은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깍지 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나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집어 들었다. 홈즈는 한나가 편지를 읽는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한나는 반듯하게 접힌 낡은 종이를 펼쳤다.

틀림없이 엉망으로 지내고 계실 아버지께.

안녕, 아빠. 에이미예요. 얼마 전에는 못 볼 걸 보고 가셨다죠? 미안해요.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참을 수 없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제정신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나 말고도 증언해줄 사람은 많겠지만 아빠에겐 직접 말해야겠죠. 악몽이요.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에요. 미친 사람의 헛소리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게 꿈이라면 갈수록 기억이 선명해질리 있나요. 그런 꿈은 없어요. 어떤 책에도 그런 말은 없었어요. 저주는 모르겠네요.

나는 죽어있어요. 기숙사가 모두를 쫓아내고 친구들이 죽어가요. 어제 웃으며 인사했던 아이가 오늘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고 나는 그걸 두 손 놓고 방관하죠. 무얼 할 수 있겠어요. 죽었는걸요. 지팡이를 휘두를 수도 없고, 마법도 쓸 수 없어요. 열심히 해온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어요.

재밌는 건 내 죽음은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거예요.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고통 속에 죽어 가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어요.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죽어있었죠. 초록 불빛조차 보지 못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 알았느냐고요? 옆에 내 몸이 있었는걸요.

그날 밤에 나는 내일을 불안해하며 잠들었지만 내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일 할 일을 생각하며 잠들었을 뿐이에요.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끔찍한 선택을 했어요. 평소처럼 잠에서 깨어났죠. 깨어난 것뿐인데, 그만 현세에 남아버린 거예요.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조차도 나는 몰랐어요.

기억해요. 죽음 말이에요. 투명한 손과 괴로워하는 친구의 손을 잡아줄 수 없었던 무력감, 발이 닿지 않는 대지. 막을 수 없었던 비극. 그때의 내가 어떤 생각으로 움직였는지 난 모르겠어요. 나는 그때 내가 아니었어요. 평소의 나라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없었겠죠. 태연한 얼굴로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을 독려했던 기억이 나요. 대체 난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기억나는 건 선명한 죽음의 감각, 그것 하나밖에 없어요.

아마도 나는 그때 이미 미쳐버린 거예요. 그곳을 견딜 수 없어서 있는 힘껏 달아났어요. 그때 내게 누군가 물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느냐고요.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거예요. 슬픔에 다리를 붙들리느니 달리겠다고. 당시의 내가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이었겠죠.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네요.

무서웠어요.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어요.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친구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누군가 곧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미쳤던 거예요.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꿈은 끝이 났어요. 소중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광소를 터뜨리며 사라졌지요. 나에게 강하다고 말했던 사람이 내가 너흴 죽였노라고 말하고 사라졌어요. 영혼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어요.

우스워요. 죽는 건 그렇게 무서웠는데 날 죽인 사람은 전혀 밉지가 않아요. 너무 좋아했던 걸까요? 하지만 그렇게 아끼지 않는 사람이 말했어도 화는 나지 않았어요. 그저 그 사람을 잃어버린 게 너무 슬퍼서, 죽을 것 같았어요. 이미 죽었는데도 죽을 것 같았어요.

루시엔 콥, 첸 린, 프레데릭 모런. 세 이름을 잊을 수가 없네요. 이 편지를 보고 그들을 찾아가진 말아요. 이미 다른 사람이니까. 우리가 악몽을 꾸게 된 원흉일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요.

괜찮으면 내 이야기를 전해줄래요? 셋 다 무척 좋아했노라고.

루시와 이름을 나눴을 때, 나는 의지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아빠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데 말이에요. 서운하게 생각지는 말아요. 사춘기에는 또래에게 의지한다고 하잖아요. 어쨌든 그는 유령으로 돌아왔고, 나를 비웃었지요. 비웃어도 상관없었어요. 내 이름을 불러주기만 했다면 용서했을 거예요. 아마도 루시의 앞에서라면 울 수 있었을지 몰라요. 그랬으면 지금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알 수 없는 일이죠. 나는 바로 그를 잘라내 버렸어요. 쳐다보지도 부르지도 않았어요. 감당할 수 없었거든요.

첸은 가면을 쓴 배우예요. 이야기책에 나오는 것 같죠? 실제로도 그런 말투와 몸짓을 가졌어요. 나도 모르게 상상해버렸죠. 제대로 된 무대에 선다면 어떨까. 분명 멋있을 거야, 하고요. 그래서 그만 끔찍한 짓을 저질렀어요. 그가 처형장에 섰을 때, 처형장이라는 건 범인을 잡기 위해 투표하던 거예요. 호그와트가 시켰거든요. 배신자를 처단하라고. 그래서 모두가 투표를 했어요. 누가 범인인지. 그날은 첸이 선 날이었지요. 나는 놀랍게도 어서 처형장에 오르라고 등을 떠밀었어요. 단두대에 목을 올리고 대사를 읊어보라고 했지요. 제정신이었을까요? 아니었을 거예요. 그는 그렇게 죽었어요.

나는 대체 그 사람들에게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요. 나도 친구들도 죽었는데. 왜 그들을 옹호한 걸까요. 아니, 그게 옹호였나? 모르겠어요.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궁금했는데 왜 죽어야 했을까요.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혼란이 커져가요. 침착하게 나를 다독이는 나와 죽음에 지배당한 내가 있어요. 점차 죽어버린 내가 커져서 이성을 가진 나는 자리를 잃고 쫓겨나요. 초조하고 불안해서 내가 무얼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네요. 여기가 후플푸프 기숙사던가요? 아빠가 없으니 그런 거겠죠.

밤이 무서워요. 잠드는 순간 나는 죽어있고 한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과는 다른 기이한 감각이 전신을 덮어요. 아빠는 죽어봤어요?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느낌이에요. 깨어나면 내겐 살이 있고 온기가 있는데 그게 또 소름끼치게 무서운 거예요. 악몽 속에서 보았던 장면이 눈앞을 가득 메워요.

자지 않으면 어떻게든 견딜 수 있는데 대신 쓰러지면 견딘 시간만큼 발작이 심해지나 봐요. 그런 날이면 돌봐주는 치료사가 유독 지쳐버리거든요. 미안할 따름이에요. 순서가 엉망이긴 하지만 기억도 있어요. 죽으려고 온갖 수를 다 쓰고 치료사 목을 조른 적도 있죠. 정말로 죽이려고 했어요. 이 손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어요.

아빠, 내가 없어져도 잘 버텨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떠나겠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진 않아요. 그런 끔찍한 감각은 한번으로 족해요.

모런 선배에 대해서 안 썼죠? 지금은 행복해 보였어요. 그는 다정하고 어른스러워요. 나는 단 한번, 그 앞에서 울었고 결코 무너지지 않겠다고 약속했죠. 선배는 내 대답에 만족했을까요.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이 선배였는데 말이에요. 왜 나를 죽였을까요. 왜 모든 일을 시작했을까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는 달아나버렸어요. 죽음 속의 죽음으로 떠나버렸어요. 차마 지금의 선배에겐 물을 수 없었네요. 그렇게 밀어붙일 거였으면 마지막까지 당당하지 왜 떠나버린 걸까요. 나는 선배가 행복하기를 바랐는데 선배는 살아있는 게 고통이었나 봐요.

오늘은 저녁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잠들 것 같아요. 벌써 삼일 째 뜬 눈으로 버티고 있거든요. 치료사들 몰래 자지 않고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빠가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불길한 예감이 들거든요.

잘 자요, 아빠. 사랑해요.

1974, 8. 4.

아빠를 사랑하는 에이미로부터

한나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홈즈가 한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졸린 것처럼 내리뜬 눈이 정확히 한나의 눈을 마주보고 있어서 심장이 선뜩해졌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군요. 마법에 유령. 미친 게 분명하네요.”

한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홈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배웅해드릴게요.”

한나는 늘어진 상을 뒤로 하고 일단 소년을 따라 나섰다. 밖으로 통하는 문에 이르기까지 홈즈는 말이 없었다.

당신입니까?”

뭐가 말인가요?”

아버지를 만난 것 말입니다.”

, 저예요. 우연히도 그때나 지금이나 저 혼자네요.”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했습니까?”

글쎄요. 신부님께는 했었나? 안했던 것 같아요.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라서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거 다행이군요.”

홈즈는 품을 뒤졌다. 한나는 그가 사례라도 하려나 생각하고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편지를 전해드렸을 뿐인데요.”

그래요. 그게 문제지요.”

?”

소년의 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 막대가 들려 있었다. 새를 훈련시킬 때 사용한다는 막대기랑 비슷해보였다. 한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눈만 깜빡였다.

조금 주무십시오.”

막대 끝이 자신을 가리켰을 때, 한나는 수사가 말했고, 편지에 쓰여 있던 지팡이라는 문구를 기억해냈다. 설마?

오블리비아테. 스투페파이.”

홈즈가 뾰족한 모자를 바로하고 지팡이를 도로 품에 넣는 모습이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가 홱 돌아서자 남빛 망토가 근사하게 퍼졌다. 한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사람도 수사는 아니었을지도 몰라.

해는 어느 샌가 지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열린 예배당 문 앞에 쓰러진 한나에게 근처에 사는 아주머니가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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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션한_캐를_살인했다_치고_살인일지를_써_보자


 Amelia Holmes → Lachlan Braden

이 글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1979년 3월 21일 >

 놀라운 소식이다.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다고. 그들 손에서 전해 듣고 싶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알게 되어 조금은 안심했다. 어떻게 숨어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부엉이조차 찾지 못해 돌아온 편지가 몇 통이던가.

 오늘은 평상시 가게를 감시하던 마녀가 아닌 노숙자 같은 마법사가 찾아왔다. 그는 더러운 손으로 책을 더듬더니 나에게 불쑥 사진을 한 장 내밀었다. 흡사 디멘터같은 꼴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익숙한 실루엣이 어두운 구석에 나란히 서서 주변을 경계하는 사진이었다. 그는 나에게 아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모른다고 했다가 뺨을 맞았다. 그들은 이미 사진에 있는 사람이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었고, 내게 최근 언제 연락을 했는지 물었다. 연락이 된 것이 벌써 일 년 전이라고 하자 돌아갔다. 어찌나 성질을 부리던지 책 하나는 팔 수 없을 지경이다.


 < 1979년 3월 22일 >

 생각났다. 브래든 선배다. 일이 거의 없는 날이어서 다행이다. 분명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1979년 3월 28일 >

 이번에는 또 다른 마법사가 찾아왔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모자에 멋을 부린 순혈 마녀였다. 그녀는 저번 주에 들고 왔던 것과 유사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내일 둘이 가게를 찾을 것이니 잘 유인해서 발을 묶어두라고 했다. 금방 그들이 내 가게에 찾아올 예정이라고. 그러마고 했다.


 < 1979년 3월 29일 >

 저녁에 아버지와 브래든 선배가 찾아왔다. 우선 가게에 들어온 건 아버지뿐이었지만 함께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근처에 있겠거니 싶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머글 세계를 떠돌고 있었고 그런 점이 그들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미행이 붙었고, 살기 위해 저항세력에 붙을 수밖에 없었다. 몸을 피해야한다고 했다. 선배도 마찬가지겠지. 뻔했다.

 아버지에게 진정하라는 의미로 억지로 자리에 앉히고 차를 준비했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경고해서 쫓아내야할지 이대로 잡아야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늘 여유롭던 아버지가 초조해보였고, 우선은 진정시켜야한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변명했다.

 불안해하며 손톱을 깨물던 아버지는 차를 내오자마자 미안하다며 일어섰다. 거기까진 말릴 수 없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쪽으로 저항 세력이 집결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 그리로 가보라고 말해보았지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나가버렸다.


 멍청한 추종자들이 가게에 들어와서 깽판을 치지 않아서 이상하다 했더니 새벽이 다 되어서 아버지가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이번엔 선배도 함께였다. 아버지보다는 한층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도망 다니며 제대로 씻고 먹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게 두고 간단히 뭔가 먹을 걸 준비하겠다며 부엌으로 향했다. 경고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방에 있는데 뭔가 깨부수는 소리가 나서 달려나가 보니 브래든 선배가 지팡이를 들고 서있었다. 그들이 찾아온 줄 알았다. 아버지는 저녁보다 한층 안정된 모습이었지만 나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선배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참을 안 쓰던 마법을 다시 쓰려니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고가 나는 수준이 되어있었다. 오히려 지팡이 없이 마법을 쓰는 게 더 편하다니 할 말이 없다. 가게에서는 휘두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식사를 내주고 먹는 걸 보고 있자니 견딜 수 없어서 방을 나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과의 연락수단은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낮에 읽다가 덮어둔 책을 읽었는데 진정이 되지 않아 던져버렸다.

 결국 말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들이 찾아왔다.


 < 1979년 3월 30일 >

 잠이 오지 않는다.


 < 1979년 3월 31일 >

 새벽녘 갑자기 그들이 찾아왔다. 처형식이 있을 예정이니 따라오라며 내 눈을 가리고 억지로 동행시켰다. 가게 문을 잠그는 것까지만 겨우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어딘지도 알 수 없는 곳에 앉아있어야 했다. 허리가 아프다.


 < 1979년 4월 1일 >

 그리고 두 사람을 만났다.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냐고 두 사람이 묶인 방으로 날 밀어 넣었다. 아버지는 곁눈으로 나를 보더니 웃어보였다. 미소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아서 울 뻔했다.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배는 한참이나 굳은 얼굴로 외면하더니 나를 보고는 웃는다. 비틀린 입가가 뒤틀린 심정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다.

 안녕, 후배님. 우습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 순간 나를 후배라고 부르는 건 선배 나름의 경멸의 표시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순서대로 적기엔 힘들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내 기억도 순서가 엉망이다. 결론부터 적자면 선배는 죽었고, 아버지는 달아났다.

 그들은 모두 마법사라서 내가 준비해간 주머니칼을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 지팡이를 뺏은 것으로 안심하고 들여보냈지만 나는 그들의 포박을 풀고 미리 준비해간 철사로 선배가 문을 열었다.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셋 중에서 가장 머글 문화에서 거리가 먼 건 나다. 그런 나라도 머글의 수로 마법사를 속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복도에서 들켰고, 그들이 달아나는 사이 내게는 날 처음 찾아왔던 마녀가 다가와 지팡이를 돌려주었다. 가서 그들을 잡고,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알지?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숲에서 선배를 만났다. 한때 잊었던 주문이 그때는 어찌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던지 몰랐다. 다리를 묶인 선배를 마주하자 그가 웃었다. 이번엔 화난 것 같지 않았다. 멍하니 서있자 선배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내 손을 잡고 자기 가슴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금 나는 세레나 브래든.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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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elia Holmes → Paige Lee

이 글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세계관을 차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19791월 초 어느 밤 >

그들이 또 찾아왔다. 어둠을 뚫고 내 가슴에 지팡이를 겨누었다.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먹는 자들을 돕기로 했다. 그들은 내게 머글과의 거래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신 머글 세계의 정보대형 학살과 선전 포고를 위한 것이다를 제공하고 그자에게 충성하기를 요구했다. 꺼림칙하지만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리는 것보다는 틈새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 승낙하고 말았다. 그들이 내게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놀랍다. 앞으로는 감시의 눈이 형형할 테니 그자에게 대항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뭔가 도움을 주었던 건 아니지만.

 

< 19791월 초 어느 낮 >

빠르게도 그들이 내게 간섭해왔다. 손님처럼 가게에 들어온 마녀가 내게 쪽지를 찔러 넣으며 히죽 웃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페이지 리를 죽여라.’

그 한 문장으로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내 충성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 19791월 중반 어느 저녁 >

날짜조차 적혀있지 않은 쪽지를 받고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페이지 리에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들이 날 그냥 내버려둘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댈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경고해왔다.

가게 문을 닫는데 문 앞에 처참하게 가슴이 파헤쳐진 비둘기가 있었다. 갈라진 심장 사이에 끼워진 쪽지에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페이지 리를 죽여라.’

 

< 19791월 중반 어느 낮 D-7 >

페이지에게 부엉이를 날렸다. 답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떠났던 부엉이는 고작 두 시간 만에 돌아왔다. 특유의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로 내일 점심 때 봐요,’라고 쓰여 있다.

 

< 19791월 중반 어느 아침 D-6 >

페이지에게 다시 부엉이를 날렸다. 중요한 손님이 오니까 내일 저녁에 보자고 했다. 물론 약속은 없다.

 

< 19791월 중반 어느 저녁 D-5 >

페이지가 왔다. 여전히 소심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예뻐졌다. 플린트와는 잘 지내고 있냐고 묻자 헤헤 웃으며 뺨을 붉혔다. 행복해보였다.

저녁은 간소했지만 즐거웠다. 페이지가 뒷정리까지 도와주었다.

죽이지는 못했다.

 

< 19791월 중반 어느 밤 D-4 >

페이지가 무사히 돌아가자 그들이 찾아왔다. 어서 죽이지 않으면 아서네 가족을 죽이겠다고 했다. 아마 아서에게도 같은 협박을 하고 있을 것이다.

 

< 19791월 중반 어느 낮 D-3 >

다시 페이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번엔 최고의 저녁을 준비할 예정이다.

 

< 19791월 중반 어느 오후 D-2 >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준비를 마쳤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내 쪽에서 연락할 수단은 없으므로 가게에 내걸어야 했다. 잘 전달되었길 바랄 뿐이다.

저녁을 위해 장을 봐왔다. 준비할 것도 있었다.

 

< 19791월 중반 어느 저녁 D-1 >

답이 왔다. 의미는 모호하지만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페이지가 찾아왔다. 오늘도 역시 즐거운 만찬이었다. 식사를 모두 마치고 그녀는 잠에 빠졌다. 쑥을 우려낸 물에 수선화에 뿌리를 넣은 수면제. 잠든 얼굴이 평화롭고 예쁘다.

 

< 19791월 중반 어느 밤 D-0 >

그들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페이지는 아직 잠들어있다. 시체를 만들어야 했다. 그들은 성급하고 멍청하니 속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확인해보지만 않기를 바란다.

 

찾아온 것은 놀랍게도 루시우스 말포이였다. 상상하지 못했던 얼굴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포이는 충분히 그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보가트를 이용한 트릭은 손쉽게 들통나고 말았다. 그들이 서점을 헤집었다. 잠들어있는 머글의 책을 내던지고 사납게 날뛰는 마법의 책을 불태웠다. 가치 같은 건 아무 관심도 없겠지.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들.

그들은 결국 잠든 페이지를 찾아냈다. 가족의 목숨과 친구의 목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 그 끝에 걸린 건 내 목숨도 마찬가지리라. 나는 품속에 지팡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후의 일은 별로 서술하고 싶지 않다. 내 곁에 남은 것은 잠든 것 같이 평온한 얼굴인 페이지의 시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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