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키 와타루는 누구인가. 그 본질을 파헤쳐본다.
와타루의 스토리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아이돌로서의 와타루와 연극인으로서의 와타루다. 아이돌 히비와타의 이야기는 주로 피네를 통해, 연극인 히비와타의 이야기는 주로 연극부를 통해 전개된다.
아이돌 히비와타는 ‘기인’ 히비와타에서 이어지며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한 번에 7개의 악기를 연주하고(5개던가? 중요한 건 아니니 대충 쓴다.) 머리카락을 움직이고 항상 장미를 뿌리고 뜬금없이 나타나 뜬금없는 소리를 하고 사라진다. 때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약한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작해야 피곤해서 잠에 골아떨어진 모습 정도다.
그에 반해 연극인 히비와타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는 무시하고 상대도 해주지 않는 오만함은 물론, 실력이 모자라다며 사람을 들볶아서 제 성에 맞지 않는 인물을 걸러내는 예민한 면모도 보인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들러붙어서 장난도 치고 연극부실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도 보인다. 하도 그 정도가 심하고 괴팍하게 구는 탓에 부원인 호쿠토와 토모야는 와타루를 괴인 취급하지만, 바로 그 괴인 히비와타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많이 접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다.
두 스토리에서 보여주는 양 극단에 걸쳐진 히비와타의 캐릭터성 때문에 작내는 물론이고 작외에서도 히비와타라는 인물을 둘 중 하나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성질 더러운 괴짜 내지는 인간 초월의 괴수 정도?
그러나 스토리상 일년이 끝나가는 시점에 몰려있는 히비와타의 스토리는 그런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링크에서는 히비와타 자신의 입으로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연극부의 졸업스토리 ‘투명과 가면’, 피네의 졸업스토리 ‘링크,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심포니아’는 바로 그런 이야기다.
투명과 가면, 링크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꽤 이른 시기에 나왔던 ‘괴도! 화려한 괴도 vs 탐정단’ 스토리를 이야기해보자.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저 두 이야기의 전편이기 때문이다.
히비와타 이야기를 하는 데 끌려나온 괴도는 사실 나이츠와 라빗츠의 스토리다. 대체 히비와타가 왜 뜬금없이 5성 카드로 튀어나와서 스토리의 하이라이트를 잡아먹은 건지 유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 그러나 히비와타의 스토리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라빗츠’의 스토리였다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연극부에는 히비와타를 제외하고 두 명의 부원이 있다. 트릭스타의 호쿠토와 라빗츠의 토모야다. 피네인 히비와타를 포함하면 메인스토리 중심 유닛을 나이 순으로 모아놓은 모양이다. 그리고 초반 메인스토리에서는(적어도 메인 첫 스토리에서는) 피네-트릭스타-라빗츠가 뚜렷한 승계 구조를 띄고 있다. 트릭스타가 성장해 피네를 밀어내고, 라빗츠가 성장해 트릭스타와 대항하는 구도다.
피네인 히비키 와타루의 입장에서 트릭스타는 자식이고 라빗츠는 손주인 셈이다. 이 사실을 반영하듯, 와타루는 호쿠토를 대할 때는 엄격하고도 다정한 태도를 보인다. 가차없이 실력을 평가하되 중요한 국면에서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토모야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는 괴도에 이르기까지 와타루에게 토모야는 그저 인간 모양 장난감이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하지만 그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방해가 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귀여워하는 것이다. 심지어 귀여워하는 방식이 너무 과격해서 토모야가 와타루를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시절도 있었다.
괴도는 그렇게 귀여워하는 토모야가 이끄미도 없이(나즈나가 불참하는 스토리였다.) 난관에 봉착하는 스토리였다. 히비와타로서는 애가 탔을 것이다. 저걸 도와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신경이 쓰였을테니까. 더구나 당시 토모야는 히비와타의 심한 장난(겸 훈련)에 휘말려 과로로 쓰러졌다가 일어난 상태였다.
귀여워하는 후배를 과로로 쓰러뜨린 와타루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반성을 한답시고 자원봉사를 한다. 토모야는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라 화를 냈지만 이때의 와타루는 꽤나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다. 그렇게 와타루는 봉사를 핑계로 토모야를 감시하고 동시에 언제든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주차시킨다.
괴도의 미스터리 스테이지를 지켜보면서 와타루가 얼마나 조마조마해했는지는 막바지 토모야의 대사를 들어보면 노골적이다. 무대를 전부 지켜보고, 자기 의상을 따로 준비해 실수가 있으면 원망받는 것을 감수하고 자신이 전부 수습할 각오까지 마쳤다.
그러나 조마조마해하며 지켜본 보람도 없이 결과는 라빗츠 1학년들의 대승리였다. 문제를 낸 3학년이 심술을 부리고 함정을 팠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힘을 합쳐 문제를 훌륭하게 풀어낸다.
히비와타는 이 모습을 보고 노골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한다. 무대를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토모야 앞에 자신이 준비해둔 의상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명백하게 자신의 정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물론 토모야는 히비와타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황당해한다.
그리고 여기서, 뜬금없이 히비와타는 눈물을 흘리는데 그 와중에 하는 이야기가 재밌다. 아주 평범한 어느 소년(자신)이 누군가의 기대를 받아 기예를 닦다가 다방면으로 너무 뛰어나지는 바람에 기피대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히비와타는 이 이야기를 일종의 경고조로 하는데, 토모야가 지금은 평범하지만 지금처럼 평범을 벗어나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면 ‘특별’해지는 정도를 넘어 ‘특이’에 다달아 외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줄곧 토모야에게 ‘넌 재능이 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토모야는 재능이 없으니 그렇게 될 리는 없을 거라던가 재능이 너무 없어서 실망했다는 말들이다.
스토리를 감상하는 입장에선 마치 한때는 나도 너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노력했지만 너와는 달리 나는 천재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내용인 투명과 가면을 보면 스토리상에서 토모야조차 그렇게 느낀 것 같다. 하지만 토모야는 굴복하지 않는 혁명 그룹의 후배이기 때문에 히비와타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당신을 따라잡겠다’고 말한다.
이 스토리가 꽤 많은 사람들에게 ‘천재와 범재의 대비’로 보였던 모양이다. 범재로서 천재를 따라잡겠다는 토모야의 다짐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첫째로 히비와타가 토모야에게 재능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처럼 될 가능성’을 걱정했다는 점이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토모야가 히비와타에 비해 ‘재능이 없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기에 노력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동일해질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곧 히비와타가 토모야에게서 ‘자신과 동등해질 가능성’을 보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둘째로 히비와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너는 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히비와타는 표현이 서툴렀을지언정 진심으로 토모야를 걱정하고 있었다. 토모야를 견제하거나 자극하기 위해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과 똑같아지는 것은 위험하니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는 게 히비와타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이 천재와 범재의 경쟁 구도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히비와타가 본래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대체 토모야에게서 무엇을 보아서 그렇게 걱정을 했을까.
그 답은 투명과 가면과 링크 두 스토리에 나온다.
두 스토리에서 와타루는 공통적으로 ‘괴도에서 한 자신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언급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진심이다. 와타루는 그 이야기가 분명한 거짓이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토모야와 에이치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으면서 그렇게 부정한다.
투명과 가면에서는 눈물조차 거짓이라고 하지만, 직접 본 토모야는 믿지 못한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믿을까 싶어졌을 때쯤에 와타루는 말한다. ‘눈물에는 가짜도 진짜도 없다’고. 와타루는 자신의 눈물을 의심한다고 고백하는 토모야에게 ‘그것이 가짜건 진짜건 상관없다고’ 대답한다.
투명과 가면은 이렇게 알쏭달쏭한 소리를 쭉 늘어놓다 끝이 난다. 호쿠토와 토모야의 눈부신 성장에 언제나처럼 Amazing!을 외칠 뿐이다.
그렇다면 저 말의 전모는 어디서 나오느냐. 바로 링크에 있다. 링크에서 와타루는 에이치에게 자신의 가면을 선물하며 ‘자신’이라고 말한다. 에이치는 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끝에 쯤에 가면 두 사람은 한 가지 사실에 합의한다. ‘기억은 날조되지만 눈 앞에 있는 현실은 진짜’라고.
투명과 가면에서 호쿠토의 연기를 보던 와타루는 ‘히다카 호쿠토’를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노라고 평하며 감탄한다. 그러면서 거기서 어떤 동질감을 느꼈노라고, 그래서 당신이 애틋했노라 고백한다. ‘투명한 가면’은 ‘연기는 곧 투명한 가면을 쓰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준비한 가짜 상품이다. 에이치에게 와타루는 자신(가면)을 건냈다. 와타루의 이야기와 과거는 가짜지만, 동시에 진짜이기도 하다. 왜냐면 그것이 ‘히비키 와타루’이기 때문이다.
와타루는 계속해서 자신이 ‘히비키 와타루’라는 인물의 삶을 연기하고 있었음을 두 스토리를 통해 고백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짜’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다. 히비키 와타루의 과거, 히비키 와타루의 성격, 히비키 와타루의 능력. 그 모든 것이 가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신 눈 앞에 있는 히비키 와타루라는 사람은 진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치는 이 사실에 동의하며 자신이 만들어붙여주었던 기인이라는 이름과 눈 앞에 있는 히비키 와타루 본인을 동시에 인정한다.
즉, 히비와타는 자신을 이루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지만, 그것이 이제 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링크 중에서는 에이치를 향한 애정마저도 그렇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끝에 가까워졌다. 마지막으로 이 결론을 가지고 괴도의 와타루로 돌아가보자. 이해할 수 없었던 괴도에서 와타루의 언행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괴도에서 와타루는 토모야에게 경고한다.
‘지금처럼 행동하면 너는 나처럼 될 것이고, 그러면 외로워질 것이다.’
얼핏 보기에 ‘지금처럼 행동하는 것’은 마치 기술을 갈고 닦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투명과 가면, 링크에서 들은 와타루의 목소리를 들고와보자.
토모야는 배역에 빠져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개성이 희미한 인물이다. 연기하다가 말투마저도 오락가락해서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일이 생길 정도다.
와타루는 본래의 자신을 잊어버렸다.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과 자신을 구분하지 못한다. 배역을 계속하다보면 완전히 그 배역의 감정이나 사실이 자신의 것이 되어버린다.
괴도의 와타루의 이야기에서 와타루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기대’에 떠밀린다. 기예를 연습하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기예를 선보이는 걸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다. 타인의 기대를 가면처럼 쓰다보니 자기자신을 잊었다.
그렇다. 와타루가 경고하고자 했던 ‘지금처럼 하는 행동’이란 바로 타인의 기대에 떠밀리는 것이다. 자신의 평범함에 주눅이 들어있던 토모야는 반복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추앙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려고 한다. 자신다움을 잊고 멋있어보이는 낯선 모습이 되고자 한다. 그 모습이 와타루의 걱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와타루는 본래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이다. 걱정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모자란 능력일지라도 친구들과 협력해서 ‘나답게’ 문제를 해결하는 토모야의 모습을 보고서도 친구들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재능이 없으니 나처럼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해버린다. 자기가 느끼기에 토모야와 자신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이었던 모양이다.
와타루는 괴도 이벤트를 통해 자신이 ‘본래의 자신’을 잊어버린 상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본래의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토모야를 통해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문제는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가 바로 ‘천재’와 ‘기인’이었다는 점이다. 와타루는 아주 조금,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마침 졸업이 다가오는 것도 있고 해서 아이돌과 연극인으로서의 자신을 모두 지키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개인적으로는 투명과 가면에서 하는 걸 보니 선배노릇할 자신이 없다는 것도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와타루는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의 상황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투명과 가면의 주 갈등요소인 연극부 해산 선언이다. 이를 통해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와타루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와타루가 정확히 어느 시점에 ‘기인’이자 ‘천재’로서의 자신을 되찾았는지는 모르겠다. 내 느낌에는 투명과 가면에서 토모야와 대화하는 중에 되찾은 게 아닌가 싶은데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와타루는 연극부 후배들의 응원에 힘입어 천재이자 기인인 히비와타를 되찾고, 마침내 자신의 진정한 전쟁터인 ‘아이돌세계’에 속한 에이치에게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천재이자 기인인 히비키 와타루이고,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 따위는 필요 없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기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으며 기인인 나는 아이돌과 연기를 모두 자신의 길로 택하겠노라’고.
오기인 사쿠마 레이는 체질과 주변의 기대에 떠밀려 인간의 선을 넘어버린 인물이다. 그는 그저 떠밀려서 그렇게 되었다.
오기인 신카이 카나타는 처음부터 인간이 아닌 것으로 길러졌다. 그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화감도 괴로움도 느끼지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이 생겼기에 ‘인간이 되어보기로 했다.’
오기인 히비키 와타루는 호기심에 인간의 선을 넘었다가 되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린 인물이다. 그는 외로움을 느꼈지만 자신이 돌아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렸다.
옛날에 썼던 캐해석 글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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