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것은 조그만 램프였다. 촛불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음악처럼 흘렀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를 들었다. 먼 나라의 마녀 이야기, 용을 잡은 용감한 마법사의 이야기, 원탁의 기사와 멀린, 호그와트를 세운 네 명의 마법사들.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책을 덮으면 아이는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용감한 기사님이 될래요.”

 그날 읽은 책에 따라 장래희망은 용기사가 되기도 하고 마법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동화책을 덮은 아이의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기사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매일 묻는 말, 매일 하는 대답.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약한 사람을 지켜줘야 해요.”

 씩씩하게 말하면 할머니의 고운 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샌가 연극의 마지막 대사가 나올 차례.

 “누구보다도 여자와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단다. 절대 잘못된 행동에 타협해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를 지킬 때는 그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영웅은 모두 그렇게 하니까.”

 “손가락 걸고,”

 “약속.”

 아이와 할머니는 서로의 손바닥에 사인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정해진 의식처럼 매일 밤 단둘이서 하는 약속이었다. 이 시간에는 아이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참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 꼭 끌어안았다.

 “잘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자리에 누운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램프를 끈 할머니는 방을 나선다. 아이는 목까지 이불을 덮고 완전히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캄캄한 방안에 혼자 남으면 그제야 느리게 잠이 찾아왔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아이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기대하고 있던 입학식을 향해 가는 날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통지서가 날아온 날부터 제시간에 잠들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학교에 가요?”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물었을 거라고 아이의 어머니는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서 몇 번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빠, 학교에는 어떻게 가요?”

 “기차를 타고 간단다.”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지치지 않았다. 같은 대답을 또 들어도 좋았다. 지친 얼굴을 한 어머니도 아이만 보면 웃는 아버지도 언제나 상냥한 할머니도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히 입학식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것에 아이의 어머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할 때쯤 찾아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꼬마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다이애건 앨리에 가는 거야.”

 그곳은 아이도 잘 아는 곳이었다. 몇 번이나 아버지를 따라 찾아왔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상점, 주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다녔다. 대부분 아는 가게에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간다는 것에 들떠 좋아하는 다이애건 앨리에 간다는 말도 한 귀로 흘려넘겼다.

 “준비물 제가 사도 돼요?”

 “그렇게 하려무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겠니?”

 “물론이죠!”

 꼬마 브라이언은 제일 먼저 양피지와 깃펜을 샀다. 짤랑거리는 금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익숙한 거리와 상점의 위치를 적은 후에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렸다.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거리를 손으로 그린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돌아다니면서 준비물을 사고 친구들도 사귀었다. 또래 친구들이 잔뜩 있었다. 모두 호그와트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이었다.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준비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느샌가 늘어버린 군것질거리와 장난감을 넣기 위해 가방도 샀다. 직접 그린 다이애건 앨리 지도와 몇 가지 모험 도구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보는 다이애건 앨리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사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뒷골목에도 들어가 보고 수상한 가게도 보았다. 완전히 색다른 경험에 꼬마 브라이언은 신이 났다. 와후!

 무엇보다 신이 나는 건 교수님을 만난 것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환영합니다. 호그와트의 예비 신입생 여러분.”

 북적이는 리키 콜드런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인사했다. 반짝이는 금발에 초록 눈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저는 여러분을 내일 킹스크로스 역까지 인솔하게 될 세실 윈터벨 교수라고 합니다.”

 그 뒤로 들은 이야기는 환상적이었다. 포트키! 포트키를 탄다! 아이는 신이 나서 얌전히 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끼얏호!”

 포트키를 이용해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하는 시간은 아침 열 시 반. 아홉 시에 일어나는 것도 벅차하는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엄마!”

 “브라이언, 지금 새벽이야.”

 “나 내일 기차 타요.”

 “알아.”

 “아빠, 지금 몇 시예요?”

 “…….”

 옆방 아저씨가 화를 냈다.


 꼬마 브라이언은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 기차역에서의 기억은 흐릿하고 창밖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짐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서 옆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도 몰랐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겨우 깨었을 때는 기차가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검열이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 뺨을 맞았다는 소릴 들었다. 아는 아이였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인사했던 여자아이, 이솔렛. 머글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한 귀로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맞다니! 괜히 화가 났다.

 미처 놀라기도 전에 기차가 다시 멈췄다. 그게 또다시 모험의 시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도착했나 싶었다.

 내린 곳은 낯설고 쓸쓸한 기차역이었다.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학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고즈넉한 성이라고 들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배를 탈 호수도 없었다!

 아이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역 한쪽에 까맣게 탄 아저씨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했다.

 ‘이미 다 탔는데 모자는 왜 쓰지?’

 기차가 대충 빈 것 같자 아저씨가 말했다.

 “어서 오렴, 신입생 여러분?”

 학교에서 나온 교수님이었다!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뭔가 굉장한 과제를 내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부터 직접 학교를 찾아가라던지 테스트 후 합격하는 아이만 학교에 데려간다든지.

 “학교가 아니라 여기서 먼저 보아 미안하구나. 나는 위팅턴 교수란다. 여기서부터 학교까지 너희를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지. 리키 콜드런에서 윈터벨 교수는 보았겠지?”

 아저씨, 아니 교수님이 말했다. 아이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야기는 간단했지만 굉장한 이야기였다. 선로에 이상이 생겨서 이곳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야호, 텐트다! 친구들과 함께 야영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들떴다.

 인근에 있는 마을에는 자유롭게 놀러 가도 좋지만, 기차에는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아즈카반의 문지기인 무시무시한 디멘터가 지키고 있다고 했다. 디멘터가 기차에 온다는 건 이상했지만,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험이다!”

 아이는 신이 나서 외쳤다. 기쁘게도 기차가 멈추는 동시에 제일 먼저 걱정스럽던 입학식 일정은 차질이 없이 진행된다고 했다. 기대하던 보트를 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다시 외쳤다.

 “끼얏호!”

 마을을 탐험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텐트에서 떠드는 경험은 각별했다.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야영을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캠프파이어도 함께였다!


 설레는 입학식은 예상대로였다. 아니, 기대보다 더 좋았다. 포트키를 타고 도착한 호그스미드는 어른들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배 타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춘 것뿐인지라 마땅히 할 것은 없었지만 심심하기보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배를 나눠탔을 때는 최고라고 할만했다. 호수를 건너는 중에 호수에 빠진 것이다! 아이가 이 장면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는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도 몰랐다.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어른들의 우스갯소리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상상 속에서 보았던 커다란 오징어 다리가 아이들이 탄 보트를 뒤집었다. 아이는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놀라고 행복해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다에 빠져버렸다. 지팡이를 꽉 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신이 났다! 흥분한 브라이언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젖지 않은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했다.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이는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고서도 눈을 빛냈다. 육중한 문과 견고한 벽도 아이의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막지는 못했다. 연회장 문이 열리는 동안 아이는 처음으로 모든 것이 느려 보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나긴 찰나가 지나고 연회장이 신입생들 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펼쳐진 천장, 길게 늘어진 기숙사 테이블, 옹기종기 모여앉은 선배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놓인 마법 모자와 교수님 테이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어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바라며 친구들을 응원했다.

 마침내,

 “브라이언 홈즈!”

 아이는 성급하게 달려나갔다. 발이 꼬여 휘청거리는 바람에 어디선가 웃음이 터졌지만 창피하지도 않았다. 마법의 모자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뭐라 말이 많은 마법의 모자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 자꾸만 고개를 젖혔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을 때까지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고 들었다가 숙이기를 반복했다.

 ‘이것 참, 마당발 친구로구먼?’

 모자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난 어디야?”

 꼬마 브라이언이 물었다. 이미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성급하게 굴지 마라. 어디 보자. 호오, 머릿속이 아주 명확하군. 행동도 머릿속과 아주 똑같은걸.’

 “그래서 어딘데?”

 ‘네가 갈 길은 하나뿐이구나. 아주 일직선이야. 널 위한 기숙사를 알고 있단다.’

 “그래서?”

 말이 한마디 끝날 때마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모자는 아이의 재촉에도 태연했다.

 ‘즐거운 학교생활 보내길 바란다. 바로…,’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와, 환호성이 터졌다. 아이는 만세를 불렀다!

 꼬마 브라이언은 교수님이 모자를 벗기건 말건 신이 나서 단상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핀도르다! 신이 나서 그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선배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모험 끝에 마침내 도착한 학교에는 또 얼마나 꿈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거리는 시작이었다. 그곳이 바로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곳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꼬마 타이틀을 던져버렸다. 이곳이 시작이었다. 매일 침대맡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진짜가 되어 브라이언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만세!”

 브라이언은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는 눈총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더 좋아질 수 있을까?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당연하지!

 난동을 부리던 브라이언은 테이블 의자 위를 신발 신은 발로 섰다는 이유로 교수님께 꾸중을 듣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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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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