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으로 밝혀진 연회장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하늘을 그대로 베껴온 천장은 푸르렀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두근거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눈동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단상에 놓인 낡은 마법사 모자에 모여 있었다.

 “이벳 타우어!”

 모자 곁에 선 깐깐해 보이는 교수가 큰 소리로 호명했다. 테이블 사이에 모여선 아이들 사이에서 물결이 일었다. 단상을 오른 것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소녀였다. 같이 모여선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고, 깨끗한 얼굴에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는 마치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소녀는 긴장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모자를 썼다.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 팔랑이며 바닥에 깔렸다.

 “오.”

 모자는 잔뜩 주름진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했다.

 “알고 있단다. 네가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하지만 다른 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네 재능을 살려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고민할 것도 없지.”

 모자는 연이어 외쳤다.

 “슬리데린!”

 오데트 또는 이벳이라고 불리는 소녀는 그렇게 호그와트의 일원이 되었다.


 4.

 오데트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기차 승강장에 서 있었다. 호그와트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킹스크로스 역 승강장이었다. 오데트의 양부모인 타우어 부부가 함께였다. 마법사 정장을 차려입은 부부는 오데트의 곁에 서서 함께 열차를 기다렸다.

 “꼭 여기로 다녀야겠니?”

 타우어 부인이 물었다. 그녀는 짙은 갈색 머리를 틀어올리고 드레스 같은 공단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선하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가진 미인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두 분 돌아가 보세요.”

 오데트는 의젓하게 말했다. 커다란 트렁크에 무엇이 들었는지 다시 떠올려보느라 총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널 두고 가는 게 쉽지 않구나.”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타우어씨였다. 중절모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다정한 인상의 신사였다. 타우어씨는 걱정스럽게 오데트의 짐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 덤스트랭에 다니는 게 어떻겠니. 여긴 너무 멀구나.”

 오데트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학교는 꼭 고향에서 다니고 싶어요. 약속하셨잖아요?”

 타우어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보았다.

 “물론이지. 네가 바란다면 그렇게 하렴.”

 타우어 부인이 대표로 말했다. 오데트는 웃어 보였다. 인형처럼 예쁜 웃음이었다.


 3.

 여섯 살 생일이었다.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나타났다. 크림이 묻은 케이크 커터가 땅으로 굴러떨어지고 오데트의 작은 몸이 허공에 달랑 들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품이었다. 큰 소리가 났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있는 싸움도 아니었다. 대신 아빠 품에 답싹 매달렸다. 햇빛에서 말린 빨래처럼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딘지 모를 곳이었다. 주점 같았는데 오데트는 한 번도 이런 장소에 와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동의 여파로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오데트를 소중하게 안고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슬픈 눈동자가 오데트를 훑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재촉하듯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결국, 아빠는 오데트를 매단 채 플루가루를 뿌렸다. 벽난로가 초록색으로 타올랐다.

 “린츠 거리로.”

 부녀는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오데트는 벽을 보고 있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낯선 주점이었고, 아까와는 공기가 달랐다. 이번에는 오데트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아빠와 떨어지자 몸이 절로 떨렸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두꺼운 망토를 걸쳐주고 자기도 옷을 덧입었다. 오데트는 그제야 아빠가 작은 짐가방을 들고 있는 걸 눈치챘다.

 ‘어딜 가려는 걸까?’

 아빠와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일 년에 한 번쯤 찾아와서 엄마나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곤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오데트에게는 가끔 선물을 들고 왔지만,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싫지는 않았다.

 오데트는 아빠 손을 잡고 걸었다. 겨울이면 끼는 예쁜 귀마개도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장갑도 없었다. 귀가 시렸지만, 손은 따뜻했다. 아빠는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숲 속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그림책에 들어있을 것 같은 고즈넉한 저택. 정갈하고 호화로운 저택과 복도에 놓인 값비싼 장식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인형처럼 얄팍한 표정을 한 오데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안내를 따라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가벼운 실내복 차림에 보온용 겉옷을 걸친 부인이 나타났다.

 “어머, 홈즈씨. 오랜만이에요.”

 부인이 말했다. 아빠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했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그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데트는 귀 기울이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그이는 지금 자리에 없어요. 저 아이인가요?”

 “오데트라고 합니다. 오데트, 인사하자꾸나.”

 오데트는 못 들은 척 쪼르르 눈에 띄는 항아리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는 사과했고 부인은 웃었다.

 “그 항아리가 마음에 드니?”

 “응.”

 “잘 됐구나.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다니.”

 오데트는 부인을 돌아보았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아가야.”

 아빠는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코너 너머로 사라지는 아빠의 등을 보며 오데트는 생각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2.

 엄마는 항상 어딘가 아팠다. 그건 오데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엄마가 아픈 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오데트는 몸이 약했다. 갓난아이일 적에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지금도 오데트는 끊임없이 감기에 걸려있었고 시시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밤에도 낮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울며 지새운 적도 많았다. 조금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온종일 속이 뒤집혀 물만 먹고 하루를 버티는 날이 이주에 한 번은 있었다.

 탈이 많은 오데트를 돌보느라 엄마는 늘 바빴다.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서 환자가 둘이 있는 모양새가 되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엄마가 멈추게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오데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고,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다. 엄마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일했다.

 오데트네 세 식구가 사는 집은 작고 낡았다. 퀴퀴한 냄새도 났다. 거실 하나, 부엌 하나에 작은 방이 하나 딸려있었다. 놀랍게도 방은 오데트의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자고 엄마는 부엌에서 잤다. 오데트는 냄새가 싫어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 곳이었다. 엄마는 매일 기침을 했다. 오데트가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달려와 안아주는 할아버지는 엄마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했다.

 “너는 우리가 만든 보물이란다.”

 오데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유는 알았다.

 오데트는 강력한 마녀였다. 아직 조그만데도 어지간한 어른 마법사만큼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절제된 솜씨, 모자람 없는 파워, 신속한 속도.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밀리지 않고 어려운 마법도 몇 번 보면 금세 비슷하게 따라 했다. 할아버지는 오데트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쥐여주며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오데트가 마법을 쓰는 대가로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주었다. 가끔 할아버지와 엄마가 먹을 빵도 없을 때가 있었지만, 오데트의 간식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나도 오데트 방에는 달콤한 과자 향이 감돌았다.

 엄마는 마녀였지만 마법을 잘 쓰지 못했다. 어린 오데트보다도 미숙했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오데트는 엄마를 대신해 마법을 썼다. 엄마의 지팡이는 엄마가 들고 있을 때보다 오데트 손안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1.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방안은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서 나는지 모를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그녀의 곁에는 한 남자가 널브러진 모양새로 잠들었고 바닥에는 두 사람분의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남녀의 벌거벗은 나체는 어둠에 잠겨 형체조차 불분명했다.

 여인은 엉망이었다. 슬퍼 보인다며 그의 마음을 끌었던 처연한 눈매는 눈물에 불어터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고, 달빛과 잘 어울린다던 창백한 금발은 눈물과 오물로 엉켜 얼룩졌다.

 “미안해요.”

 그녀는 웅크리고 울었다. 땡기는 배의 통증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사랑이 담긴 눈빛이었다. 어깨를 감싸 안는 다정한 손은 따뜻했다. 처음으로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흐릿하게 모양을 잡아가던 꿈은 다시는 완성될 수 없겠지.

 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약에 취해 잠든 그를 두고 방을 빠져나오며 마지막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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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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