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티넬버스 설정을 차용한 19금 요소와 BL 요소가 포함된 시리즈입니다. 19금 요소가 들어가면 비밀번호가 걸립니다.




 마차는 쉼 없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엘리자베스는 창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을 눈으로 좇았다. 어느샌가 익숙해진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긴 여정에 몸은 노곤하게 늘어지는데 마음만 둥실둥실 가볍다. 돌아갈 집이 있고 거기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무겁던 어깨가 한결 가뿐했다.

 페더와의 약혼이 정해졌을 때,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수많은 시선 한가운데에 섰다. 엘리자베스를 걱정하는 소서리스들의 울분 섞인 잔소리, 꼴좋다며 고소해 할 형제들의 비웃음, 아무것도 모르면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겪어온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상처받지 않았다.

 공주를 영원불멸한 보석의 이름으로 부르는 나라에서 홀로 꽃의 이름을 받은 열일곱 번째 공주는 언제부턴가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안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은사이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보아준 소서리스 라파에게 말했다.

 「두고 봐. 이번엔 저쪽이 실수한 거니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했다.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모두가 입을 모아 불씨에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라고 말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라파가 노심초사하는 것을 알면서도 흘려 넘겼다.

 “도착했나 봐요.”

 메리엔델이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상대가 메리엔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금발 아래 고요히 감긴 두 눈은 날 때부터 잠들어있었다. 보지 않고도 보이는 사람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이는 메리엔델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된 훈련을 거쳤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리 보여주기 위한 싸움이었다지만 대륙 최강의 기사 페더와 대등하게 싸운 활 솜씨는 사실은 보이는데 안 보이는 척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맞아요. 지금 성문을 지나가고 있어요. 언제 봐도 대단하네요, 메리엔델은.”

 마차는 덜그럭거리며 도개교를 건넜다. 푹신한 쿠션 덕분에 진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다른 감각이 예민하니까요.”

 메리엔델은 잔잔하게 웃었다. 담담한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있다.

 “그런 점이 대단한 거예요.”

 엘리자베스도 웃으며 대꾸했다.

 “뭐가 말인가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요. 메리엔델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물론 그래요. 하지만 그게 대단한가요?”

 엘리자베스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점에서는 메리엔델도 페더도 한결같았다. 놀랍도록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도 그것을 뽐내지 않는다. 자신들이 이룬 경지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소서리스로서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메리엔델이…….”

 똑똑.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가 멈췄다.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따 얘기해요.”

 쉿.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우고 엘리자베스와 메리엔델은 쿡쿡 웃었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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