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다. 좀처럼 표정이 굳지 않는 지아의 얼굴이 심각했다. 눈앞에는 작게 미간을 찌푸린 모습으로 화아가 널부러져 있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붉은 머리칼은 아직 그 빛을 잃지 않았지만 결은 푸석했다. 안그래도 하얀 얼굴은 어느샌가 창백하게 색이 빠져 병색이 완연했다. 눈밑이 검게 물들고 입술은 마른데다 전과는 다르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만큼 말라버렸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화아가 원체 고민하는 일이 없어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 함정이었다. 세상에 무심해 어느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화아였기에 표현이 적다해서 세심하게 돌봐주지 않아도 되었었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지아는 자신을 탓해보았다. 이렇게 티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땀에 젖어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주고 싶었지만 그것마저도 힘겹게 든 수면에 방해가 될까 시도할 수 없었다. 지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입술을 깨물고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는 몰랐다. 평소와 똑같이 먹고 똑같이 나가서 똑같이 들어왔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화아가 먹은 것을 단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전부 토하고 있다던지,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던지. 그것도 아니면 평소 같았으면 쉬지않고 공을 튀기고 있을 시간에 태양 아래 죽은 듯이 늘어져있다는 것까지도. 심지어 부르러 가지 않아도 꼬박꼬박 제시간에 들어온다는 사실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연아마저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아끼는 한가족이라 여기는 친구들이었는데. 화아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른 칠인의 정령아들은 각자 충격에 빠져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창을 통해 드는 바람에 지아는 정신을 차렸다. 안그래도 약해진 몸이라 감기 들기 쉬울 터인데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다니. 지아는 작게 고개를 젓고 발소리를 죽여 창가에 섰다.
"……ㅡ노멘…?"
"미안. 깨웠네."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화아가 목소리를 냈다. 지아가 창문을 닫는 사이 화아는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지아는 위태로워보이는 화아를 붙들었다.
"좀 더 자둬."
"됐어."
지아는 자신을 밀어내고 창을 여는 화아를 보며 결국 들었던 손을 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 결코 따뜻한 날씨가 아닌데 화아는 절대 창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화아를 향해 화도 내보고 얼러도 보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든 정령아들의 한마디면 투덜거리긴 해도 어기지 않는 화아였지만 이번만은 고집을 피웠다. 곁에 누군가 붙어있는 것조차 거부했다. 창문을 열고는 지아를 방밖으로 끌어낸다. 단호한 손길을 지아는 떨쳐내지 못했다. 닫힌 문에 기대어 지아는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다 기운 빠지는 느낌이야……."
화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창 밖이지만 촛점이 맞지 않는 화아의 눈은 하늘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기다리면 올 것이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목을 매고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는 올 것인데.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안달하게 되었다. 어째서지, 어째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온몸에서 힘을 빼자 상체가 풀썩 침대 위로 쓰러졌다.
친구들은 이래저래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사실 화아는 어째서인지 먹은 것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끔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견딜만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때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때도 화아는 그냥 몸에 뭔가 문제가 있겠거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허공을 보고 있는 중에 일어나는 일이니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병원을 가보긴 해야겠지만 조금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길 병은 아니겠거니 생각했다.
카르노멘의 얼굴을 보면 반가웠다. 그저 무뚝뚝하게 맞을 뿐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언젠가부터 그 이후에는 허전함이 찾아왔지만 그런 것쯤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커다란 대가가 뒤따랐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주친 두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다른 곳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은빛 속눈썹에 그늘진 은보라빛 눈이 싱긋 미소짓고 있었다.
"카르노멘."
"안색이 많이 안좋아. 병원, 아니면 양호실에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니야?"
"조만간 갈거야."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카르노멘의 손에 살짝 머리를 부볐다가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입술을 부딪쳐 들어간다. 짧은 입맞춤으로 밀착된 몸을 더더욱 붙이며 속삭였다.
"하자."
"안 돼. 곧 가봐야해."
"잠깐만이라도."
말하는 중에도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카르노멘의 교복 상의 자켓은 이미 반쯤 벗겨져 있었다. 카르노멘의 손이 화아의 손목을 붙들었다. 화아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왜."
"안된다니까."
사탕뺏긴 꼬마처럼 꽁해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카르노멘이 웃었다. 어린아이를 어르는 투로 속삭이며 화아를 떼어놓는다.
"주무실 땐 창문을 닫아 둬. 감기들라."
"올거잖아."
"잠궈도 들어올 수 있어."
"그래도 싫어."
"어린애구나."
"그러니까 하자."
"안 돼."
"……."
더이상 말하진 않았지만 화아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카르노멘은 그의 어깨를 도닥도닥 두드려주곤 몸을 일으켰다.
"잠깐 짬이 생겨서 왔을 뿐이니까. 이제 가야해."
'가까이서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지. 병원에 가라고 한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고 따로 의사를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군.'
카르노멘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아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또 방에 혼자 남은 화아는 퀭한 눈으로 카르노멘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붉은 머리카락이 하얀 시트 위로 흐트러졌다.
처음 그와 '만난' 것은 봄날이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중에서 유난히 포근하고 따뜻하던 그 날, 화아는 봄의 한복판에서 '겨울'을 보았다. 한 겨울의 메마른 눈이 그곳에 흩날리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환상같은 풍경에 화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계속해서 쫓아다니던 시선도 신경쓰였지만 그 때의 행동은 단순히 본능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아름다워서 놓칠 수 없다는 본능적인 움직임. 엷게 깔린 가루눈, 별 없는 밤의 하현달.
온기어린 물방울이 뺨을 타고 떨어져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천장이 눈이 시려 옆으로 돌아 누웠다. 있지도 않은 손톱이 손바닥에 배길만큼 주먹을 꽉 쥐었지만 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흐릿해지는 시야가 분해서 화아는 눈을 있는대로 부릅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화아의 눈물을 닦아줄 하얀 손도 그의 곁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윽."
아무리 자존심을 세워봐도 흐르는 눈물은 멎지를 않아서 화아는 결국 웅크리고 말았다. 터질 듯한 마음에게서 등을 돌리고 숨죽인 울음을 삼키다가 체해 밭은 기침을 토하며 침묵 속에 침잠해간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인지는 몰랐다. 평소와 똑같이 먹고 똑같이 나가서 똑같이 들어왔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화아가 먹은 것을 단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전부 토하고 있다던지,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던지. 그것도 아니면 평소 같았으면 쉬지않고 공을 튀기고 있을 시간에 태양 아래 죽은 듯이 늘어져있다는 것까지도. 심지어 부르러 가지 않아도 꼬박꼬박 제시간에 들어온다는 사실까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연아마저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깨닫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아끼는 한가족이라 여기는 친구들이었는데. 화아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다른 칠인의 정령아들은 각자 충격에 빠져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창을 통해 드는 바람에 지아는 정신을 차렸다. 안그래도 약해진 몸이라 감기 들기 쉬울 터인데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다니. 지아는 작게 고개를 젓고 발소리를 죽여 창가에 섰다.
"……ㅡ노멘…?"
"미안. 깨웠네."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았는지 화아가 목소리를 냈다. 지아가 창문을 닫는 사이 화아는 부시시 몸을 일으켰다. 지아는 위태로워보이는 화아를 붙들었다.
"좀 더 자둬."
"됐어."
지아는 자신을 밀어내고 창을 여는 화아를 보며 결국 들었던 손을 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 결코 따뜻한 날씨가 아닌데 화아는 절대 창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다.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화아를 향해 화도 내보고 얼러도 보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이든 정령아들의 한마디면 투덜거리긴 해도 어기지 않는 화아였지만 이번만은 고집을 피웠다. 곁에 누군가 붙어있는 것조차 거부했다. 창문을 열고는 지아를 방밖으로 끌어낸다. 단호한 손길을 지아는 떨쳐내지 못했다. 닫힌 문에 기대어 지아는 참았던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다 기운 빠지는 느낌이야……."
화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창 밖이지만 촛점이 맞지 않는 화아의 눈은 하늘을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기다리면 올 것이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목을 매고 기다리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는 올 것인데. 기다리지 않으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안달하게 되었다. 어째서지, 어째서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온몸에서 힘을 빼자 상체가 풀썩 침대 위로 쓰러졌다.
친구들은 이래저래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사실 화아는 어째서인지 먹은 것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가끔 견딜 수 없이 불안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은 그 나름대로 견딜만 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는 때도 헛구역질이 올라올 때도 화아는 그냥 몸에 뭔가 문제가 있겠거니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허공을 보고 있는 중에 일어나는 일이니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병원을 가보긴 해야겠지만 조금 미뤄도 큰 문제가 생길 병은 아니겠거니 생각했다.
카르노멘의 얼굴을 보면 반가웠다. 그저 무뚝뚝하게 맞을 뿐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언젠가부터 그 이후에는 허전함이 찾아왔지만 그런 것쯤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커다란 대가가 뒤따랐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마주친 두 눈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다른 곳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은빛 속눈썹에 그늘진 은보라빛 눈이 싱긋 미소짓고 있었다.
"카르노멘."
"안색이 많이 안좋아. 병원, 아니면 양호실에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니야?"
"조만간 갈거야."
웃으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카르노멘의 손에 살짝 머리를 부볐다가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입술을 부딪쳐 들어간다. 짧은 입맞춤으로 밀착된 몸을 더더욱 붙이며 속삭였다.
"하자."
"안 돼. 곧 가봐야해."
"잠깐만이라도."
말하는 중에도 손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카르노멘의 교복 상의 자켓은 이미 반쯤 벗겨져 있었다. 카르노멘의 손이 화아의 손목을 붙들었다. 화아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왜."
"안된다니까."
사탕뺏긴 꼬마처럼 꽁해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카르노멘이 웃었다. 어린아이를 어르는 투로 속삭이며 화아를 떼어놓는다.
"주무실 땐 창문을 닫아 둬. 감기들라."
"올거잖아."
"잠궈도 들어올 수 있어."
"그래도 싫어."
"어린애구나."
"그러니까 하자."
"안 돼."
"……."
더이상 말하진 않았지만 화아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카르노멘은 그의 어깨를 도닥도닥 두드려주곤 몸을 일으켰다.
"잠깐 짬이 생겨서 왔을 뿐이니까. 이제 가야해."
'가까이서 상태를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지. 병원에 가라고 한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고 따로 의사를 부르는 편이 나을 것 같군.'
카르노멘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아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또 방에 혼자 남은 화아는 퀭한 눈으로 카르노멘이 서있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붉은 머리카락이 하얀 시트 위로 흐트러졌다.
처음 그와 '만난' 것은 봄날이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중에서 유난히 포근하고 따뜻하던 그 날, 화아는 봄의 한복판에서 '겨울'을 보았다. 한 겨울의 메마른 눈이 그곳에 흩날리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환상같은 풍경에 화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계속해서 쫓아다니던 시선도 신경쓰였지만 그 때의 행동은 단순히 본능이었다. 있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아름다워서 놓칠 수 없다는 본능적인 움직임. 엷게 깔린 가루눈, 별 없는 밤의 하현달.
온기어린 물방울이 뺨을 타고 떨어져 머리카락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얀 천장이 눈이 시려 옆으로 돌아 누웠다. 있지도 않은 손톱이 손바닥에 배길만큼 주먹을 꽉 쥐었지만 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흐릿해지는 시야가 분해서 화아는 눈을 있는대로 부릅떴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화아의 눈물을 닦아줄 하얀 손도 그의 곁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윽."
아무리 자존심을 세워봐도 흐르는 눈물은 멎지를 않아서 화아는 결국 웅크리고 말았다. 터질 듯한 마음에게서 등을 돌리고 숨죽인 울음을 삼키다가 체해 밭은 기침을 토하며 침묵 속에 침잠해간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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