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정해져있어. 그래서 그대와 나는 운명이지.』

 그 것이 '그'와의 첫만남. 내가 나의, 리히트라는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는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말했다. 몇번을 더 죽는다 한들 잊을 수 없을 그 말. 나는 감격스러운 첫 만남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한 그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려 버렸었더랬다.





 그것은 정말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태어난 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처음 보는 낯선 길을 걷다가 30년 전에 연락이 끊어진 친우를 만난다 해도 이토록 놀랍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둔켈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걷다가 그와 부딪칠뻔 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었다. 그와 만난 첫날의 기억은,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헤어지기까지의 시간의 앞뒤는 뿌옇게 흐려져 있다. 그의 말대로 그와 내가 운명이기 때문일까? 운명의 사람을 만났다는 진실에 내 기억회로가 충격을 받아 멀쩡하던 앞뒤의 기억을 뒤흔들어놓은 걸지도 모른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어맛,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제가 그만 딴데를 보다가……!!"
 "괜찮아?"
 "에, 아, 예. 저…는 괜찮아요…."

 그는 균형을 잃은 날 붙들고 친절하게 빙긋 웃었었다. 그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웃는 입매만큼은 지금도 그릴 듯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아름다웠다. 나도 모르게 말을 잇지 못할정도로 그렇게 아름다웠다. 나는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내 시간감각은 완전히 엉망이어서 그게 어느정도였는지는 알수가 없다. 그가 더 행복하게 웃는다고 생각했다. 뭔가 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멈춰버린 머리 속에서 꺼낸 문장은 어찌보면 흔하고 어찌보면 낯뜨거운 그런 말. 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내 귀로 들려온 단 두 문장은 내가 가질 이후의 길디긴 시간 속에 깊숙히 새겨져 영원히 빛이 바래지 않을 찬란한 보석이 되었다.

 "전에, 만난 적이 있나요, 우리?"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미래는 정해져있어. 그래서 그대와 나는 운명이지."
 "……에?"

 종이 울렸다.

 뎅, 뎅, 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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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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