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주택가,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가다보면 막다른 길. 좁지만 햇빛이 잘 드는 그 골목에는 카페가 하나 있다. 하얀 벽돌 건물에서 가게만이 오로지 갈빛 목재인지라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카페. 내부 구조상 문을 열지 않으면 덧문이 달린 그리 크지 않은 창으로만 빛이 들어온다. 180이 넘는 장신의 주인이 간신히 서있을 수 있는 외부도 내부도 아담한 카페. 오너, 시이첸 아라마스는 매일 아침 덧문이 반쯤 열린 창문가에 서서 실눈을 뜨고 옅은 아침 햇빛을 즐기는 걸 좋아했다. 덤으로 이렇게 덧문을 살짝만 열어두면 언제나 감추고 있는 날개도 한번쯤 펴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가개 내부가 너무 좁아서 엉거주춤 펴는 듯 마는 듯 할 수밖에 없지만.
"미─…."
"잇삐, 이제 들어왔나요?"
"냐~"
까만 민소매 원피스만 한장 걸친 작은 여자아이가 시이의 허리에 머리를 부비며 들어섰다. 샛노란 눈이 어두운 카페안에서 밝게 빛난다. 시이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 탓에 아이의 머리가 한 손에 잡혔다. 이대로 콱 움켜쥐면 바스러질텐데. 햇빛에 지는 시이 얼굴의 음영이 더욱 짙어졌다.
"배가 고픈가요?"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보이는 갸르릉 거리는 소리로 아이가 응답했다. 제 주인에게만 온갖 애교를 부리며 달라붙는 이 아기고양이가 시이의 유일한 동거인. 그나마 지금은 동거'인'이라 불릴만한 모습을 갖추었지만 본래는 그저 객식구일 뿐인 떠돌이 짐승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이 아이의 인생도 꽤나 많은 면이 뒤바뀌어버린 셈.
"이런, 이렇게 붙어있으면 움직일수가 없잖습니까. 조금만 떨어져 주시겠어요?"
그것은 갑자기 나타난 웬 아가씨의 한마디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천계와 마계는 태고적에는 하나였다고 한다. 그것이 어찌하여 하나가 되었는지는……, 별로 알 필요 없겠지. 그것에 관련해서는 온갖 전승이 있지만 시이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천계와 마계는 하나가 아니고 서로 적대하고 있으며 시이는 그 경계를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는 것 뿐. 어릴 적에 수도없이 들었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면 시이는 과거에 천계와 마계가 하나였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었다. 시이는 철저하게 자신이 바라보는 것, 자신이 해야하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딱히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해본 적도 없었고 별 것도 아닌 것에 열심히 의미를 갖다 붙이는 일에도 흥미가 없었다. 심지어 신에게조차, 관심따위는 없었다. 천사라지만 시이는 말단. 신을 만날 일따위는 평생을 기다려도 없을 것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마계를 지키는 악마들과 눈싸움을 한다거나 오늘 식사 메뉴라거나 그런 시덥잖은 것들이 시이의 관심사의 전부였다. 요즘은 꽤나 평화롭긴 하지만 가끔 벌어지는 싸움에서 자신과 비슷한 말단 악마들의 머리를 부수는 일은 조금 좋아했다.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그 감각이 좋았다. 조금 위험한 일이었지만 이래뵈도 시이의 전투력은 다른 말단 천사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므로 죽을 걱정따위는 하지 않았다. 물론 죽을지 모른다고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멈출 시이가 아니기도 했지만. 사는 것에도 별 아쉬움은 없는 시이였다. 그리고 약간의 위험은 작은 취미에 스릴을 더해주지 않는가.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무료했다. 평화로운 나날이 지겨워서 전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고 바랐다. 물론 전쟁이 일어나면 당장 군대에 동원되서 대기해야 하므로 귀찮으니 얼른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겠지만 상관 없었다. 그건 그때가서 귀찮을 일이고.
"냐아오─."
고양이가 자신의 발목에 머리를 부비다 못해 지쳐서 울음소리를 냈다. 임무를 설때면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거대한 낫에 기대어 서서 딴생각을 하고 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다. 평소라면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지루하다는 감각에 조금 깊게 빠져버린 모양이었다. 준비해둔 사료를 꺼내주자 늘 그렇듯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레 주변을 맴돌았다. 2~3일에 한번씩 찾아오면 밥을 주는 이런 일정이 계속 된지 벌써 반년이 다되어가는데 의심이 많은건지 고양이라는 녀석들이 다 그런건지 아니면 그저 이녀석의 습관인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한다. 시이는 그런 고양이의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았다. 경계 근무 중에 딴 곳을 봐도 되는 건가 싶지만 시이가 근무 중에 딴짓을 하는 건 늘 있는 일이고 그렇게 딴짓을 하면서도 결코 사소한 이상 하나 놓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책하지 않았다. 시이는 자신의 임무에 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실수 하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이 술렁거렸다. 시이는 고양이의 사소한 행동을 바라보는 일은 꽤나 즐거워서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지만 일단 보고는 해야하니 다시 경계임무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런 시이의 앞에 선 것은,
여자아이?
"안녕하세요."
상냥하게 웃는다. 시이의 가슴께에밖에 오지 않는 여자아이는 그렇게 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갑자기 천계와 마계의 경계에 나타난 소녀는 양 진영을 지키는 수많은 병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시이의 앞에 섰다. 전선 가까이에 있는 모든 생물체가 두 사람만을 주목하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마주선 두 사람은 키부터 시작해서 닮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둘을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두 사람이 어딘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전선의 싸이코, 시이첸 아라마스와 저 아름다운 소녀가 닮았다는 건 어쩐지 말이 맞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렇게 보였다. 소녀가 말했다.
"시이첸 아라마스씨, 맞으시죠?"
"예. 그렇습니다."
거의 한사람이 말한 듯이 즉각적으로 대답이 이어진다. 자신을 아리스가와 센쥬라고 소개한 소녀는 그의 대답을 듣고 작게 쿡, 하고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시이 역시 언제나 입가에 매달고 다니는 미소가 조금 짙어진다.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서야 간신히 이 사실을 상부에 전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부산해진 병사들의 심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센쥬는 다시한번 시이에게 말했다.
"저와 함께 가주시겠어요? 마법사님이 당신을 기다리고 계세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빛인 천사의 얼굴이 센쥬의 말에 부드럽게 풀렸다. 그 전에도 분명히 상냥한 표정으로 웃고는 있었지만 더 부드러워 졌다는 느낌. 가늘게 뜬 두 눈이 더 가늘어졌다. 사랑스럽다는 듯 낫을 끌어안은 손 중 하나가 풀어져 나와 그의 가슴 위에서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살짝, 그의 상체가 기울어진다.
"Yes, miss.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고개를 들어 센쥬와 시선을 맞춘 시이의 눈이 기분 좋게 미소짓고 있었다. 마주한 센쥬도 생긋 웃어보였다. 병사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는 모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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