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여름,
“거기 뭔가 있나요?”
“…아니.”
소이치로가 미스즈를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지만 아직 경칭은 떨어지지 않은(呼び捨て) 어느 날의 일이었다.
무심코 멈춰선 미스즈를 따라온 소이치로가 푸른 잎이 늘어진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를 기웃거렸다. 미스즈의 주의를 끈 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지만 그곳에는 이미 날벌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다.
미스즈는 저보다 스무해는 더 살아놓고 아직도 어린애 같은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깡마른 미스즈에 비하면 건장해보일 정도로 건강하고 적당히 군살(나잇살이라고도 한다)이 붙은 남자의 등은 무더위에 녹아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아, 덥다.
더운 날이었다. 헛것을 본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미스즈는 약한 어지러움을 미간 한 번 찌푸리는 것으로 흘려보내고 소이치로와 팔짱을 꼈다. 눅진거리는 피부 감촉이 불쾌했다.
*
밤이 되어 선선해진 탓일까. 미스즈는 서늘한 바람을 막아보려 팔을 감싸안았다. 시원한 소재로 만들어진 여름 유카타는 공기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얇았다. 소이치로가 겉옷을 벗어 미스즈를 감싸안는다.
“추워요?”
미스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바람을 막은 것만으로도 한결 따뜻했다. 소이치로의 손은 따스하고, 마른 팔을 완전히 감쌀만큼 크다. 미스즈는 소이치로를 올려다보고 추위를 느끼는 것은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디찬 자조가 입가를 맴돌았다.
소이치로와 함께 찾은 축제는 지면으로만 접한 여름이라는 계절의 풍취를 한껏 머금고 온 몸으로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좁은 거리에 몰려든 인파 탓에 사람들 사이에 끼어다니며 미스즈는 인파 따위 딱 질색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는 것은 달아난 청춘이 학창시절에도 즐겨보지 못한 축제를 이제야 찾아온 미스즈를 동정한탓일지도 몰랐다.
축제 음식을 사먹고, 사격, 고리던지기, 금붕어 건지기 따위 게임에 참가하고,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시덥잖은 일에 열중하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하늘이 새카맣게 물들어 소이치로는 집에 갈채비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어깨에 걸쳐진 그의 겉옷이 미스즈를 지켰다. 옷은 계속 미스즈가 걸치고 있었지만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돌았다.
축제의 여파는 길거리에도 넘쳐흘렀다. 사람들은 어두워진 거리에 아직도 남아 웅성웅성 떠들었다. 미스즈는 소이치로의 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플라타너스 아래 서있었다. 그 플라타너스였다. 낮에 보았던 커다랗고 우거진 나무. 미스즈는 무심코 아까 그 자리를 찾아보고 만다. 커다란 가지 두 개가 갈라진 곳으로부터 수직으로 이미터가량 위쪽에서 무언가 번뜩거리던 것을 분명 보았다.아무 것도 없어 곤충 날개가 강렬한 햇빛을 반사한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일렁이는 빛이 있었다.
미스즈는 그 자리에서 사로잡혔다. 흔들리는 빛무리가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고민도 없이 뒤를 따르고 만 것은 그 빛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아른거리는 빛. 그 기이한 장소에서 보았던 빛이다. 구석 자리에 덩그마니 앉아있던 조그만 소녀에게 내리쬐는 인공 햇살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의 금발머리. 병원에서도 보았다. 행복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병실은 빛이 잘 드는 커다란 창이 있었다. 미스즈는 혹시라도 빛을 잃어버릴까 길도 둘러보지 않았다. 어깨에 걸쳤던 겉옷은 한 손에 움켜쥔 채였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서, 가로등 불빛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으며 서있는 늘씬한 뒷태를 미스즈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이게 현실일 리 없다는 속삭임이 들렸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자신을 다독였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미스즈는 희망을 모르고 자랐고, 그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릴리.”
천천히 그가 돌아본다.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키차이가 난다. 그때도 충분히 크기는 했지만….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자 그리운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미스즈는 이것이 거짓이라고 확신하며 손을 뻗는다. 닿지 마라. 닿지 마라. 주문을 외웠다. 아, 릴리.
손가락이 닿자마자 흩어지는 자리에 하얀 실타래가 흐트러진다. 그렇구나. 어쩐지 납득해버린다.
세상에는 요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미스즈는그런 허무맹랑한 것은 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쯤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주한 아스라한 미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소쨩은 미스즈를 미아로 신고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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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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