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스커트를 입어야할 때가 있다. 승부수라던지 그런 로맨틱한 의미가 아니다. 문장이 가리키는 그대로 여자에겐 때로 스커트를 걸치고 그것이 아니면 자신을 가꾸는 수단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할 때가 있다. 시이나 미스즈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아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 자라나는 성장기 청소년에게 강제로 활동을 제약하는 의상을 입히고 규격에 맞춰 방긋방긋 웃는 훈련을 시키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스커트도 교복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거부할 권리가 없었기에 십년이 넘는 세월을 하반신 노출로 인한 냉증에 시달려야했다.
그 흔적이 이것이다.
미스즈는 서랍 구석에 박혀있던 낡은 가터벨트를 꺼내 옆에 던져두었다. 사용한 지 오래되어 어디에 뒀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지만 없는 세간에서 물건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돈은 못해도 어지르지는 않는 습관 덕분이다. 미스즈에겐 더이상 스커트를 입으라고 강요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이 물건이 남아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었다.
고등학생 때였다.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까지 받으며 들어간 학교임에도 큰 기대는 없었다. 지금보다 더 세상을 미워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던 15살의 미스즈는 새 학교가 아무리 뛰어난 명문학교일지라도 어차피 자기 자리는 없으리라고 미리부터 단정하고 있었다. 설령 환영받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이 달라지지 않는 한 미스즈의 인생에는 변화가 없을 테니까 기대할 게 없었다. 그래서 미스즈는 예비소집일을 거치고 입학식을 마친 후에도 시큰둥한 상태였다.
고등학생 쯤 되면 대다수의 학생들은 입학과 졸업이라는 연속 행사에 큰 감동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르게는 유치원부터, 보통은 초등학교부터 수차례 겪어온 행사기 때문이다. 그나마 졸업식은 선후배와 이별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축제 분위기로 변하기도 하지만 입학식은 차라리 탐색전에 가까웠다. 앞으로 삼년을 부딪히게 될 면면을 확인하고 편안한 위치와 든든한 동료를 얻기 위한 눈치싸움.
미스즈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전교순위에 들어가는 명문진학고여서일까. 중학교 때와는 또 분위기가 달랐다. 구김 하나 없는 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크게 떠들지도 않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서로 아는 사이도 있었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안면이 없어보였다. 중학교 때에 비해 주변에 관심 없는 학생이 많았다. 미스즈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신입생 대표로 연설한 탓에 관심을 가지고 인사하러 오는 학생이 있었으나 미스즈는 냉랭하게 인사하고 관심을 끊어버렸다. 먼저 인사한 아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덕분에 더이상 말을 걸어오는 학생은 없었다.
근처에 앉은 아이들과 말을 섞으며 조금씩 교실이 소란스러워지는 중에 담임이 나타났다. 이렇다할 특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몸매, 선생님다운 차림을 한 여자. 그리 길지 않은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인사.”
특색이 없다는 말은 취소. 담임은 아주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학생들은 약 9년간 단련된 습관대로 입을 맞춰 인사했다.
나타나마자마 우렁우렁하게 출석을 부른 담임은 자신을 토야마 요시코라고 소개했다. 시원시원한 인상에 학생들 표정이 밝았다. 아침조회와 종례를 빠르게 끝내주는 담임만큼 좋은 담임도 별로 없다. 안내해야할 사항을 안내한 담임은 곧 교실을 빠져나갔다.
“시이나 따라오렴.”
미스즈도 데리고 갔다.
새 담임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미스즈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변화를 알지 못했지만, 그것만은 분명하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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