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러랫은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나무 문에 조심스레 손을 올려보았다. 적당히 서늘한 나무 특유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 앞에서 서성인 것이 벌써 몇 시간째인줄 몰랐다. 사람이 지나가면 재빨리 딴짓하는 척 하긴 했지만 이제 안에 있는 사람들도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더더욱 문을 열기가 힘들었다.
"하우."
작은 한숨으로 새어나오려는 눈물을 눌렀다. 대체 뭘 했다고 눈물이 난단 말인가. 자신이 한심스러운 것은 하루이틀일이 아니었지만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더욱 서글퍼졌다. 애러랫은 어깨를 움츠렸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힘이 들어있지 않은 손이 그의 옷자락을 구기며 꼭 쥐어졌다. 침을 꿀꺽 삼키고, 소년은 속으로 숫자를 셌다.
'10, 9, 8, 7, ……으앗.'
지나가는 사람을 피해 얼른 복도 창가로 몸을 피했다. 다행히 문에 기대어 있던 것을 보인 것 같지는 않았다. 놀란 마음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히고 소년은 다시 문앞에 섰다. 살짝 열린 문 틈새로 의자에 기대어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잠깐 휴식 중인 듯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다시 침을 삼켰다. 유난히 침 삼키는 소리가 큰 것 같았다. 애러랫은 다시 숫자를 셌다.
'10, 9, 8, 7, 6, 5.'
혹시 누가 오지 않나 유심히 귀를 귀울였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4, 3, 2, 1, 에잇.'
두 눈을 꼭 감고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실례하겠습니다!!!"
방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다아―, 아―, 아.' 애러랫은 자기 목소리에 놀라 힉 하고 숨을 들이키며 몸을 움츠렸다. 조심조심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그다지 큰 영향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안에 있는 것은 한 사람 뿐이었으니까. 좁은 문틈으로는 거의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렇지 몇사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긴장했던 애러랫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발소리를 죽여 방안의 유일한 사람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 깨지 않은 건지 그냥 모른척 해주는 건지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저기―."
목소리가 다시 기어들어갔다. 애러랫은 고개를 휘휘 젓고 조금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번엔 손을 뻗어 어깨도 건드려보았다.
"저, 죄송합니다. ―으에?!"
"으음."
살짝 건드렸는데, 진짜로 손을 댄 것에 불과 했는데!!! 애러랫의 눈이 동그레졌다. 넘어가는 사람이 애러랫보다 덩치가 커서 잡기가 쉽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아프신가, 어, 저, 이럴 땐 어떻게 해야되지. 흐우."
상대방에게 한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정도였다. 마음이 급하니 평소 말하던 대로 혼잣말처럼 나와버린 것을 애러랫은 알지 못했다. 간신히 끙끙거리며 의자에 다시 앉혀놓고 난 후에야 애러랫의 눈에 상대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길게 기른 은발, 그 틈새로 삐져나온 긴 귀.
'엘프구나.'
그러고보니 해솔원에는 온갖 종족들이 다 있었다. 변두리 마을에서만 틀어박혀 살았던 애러랫은 같은 화인들 외에는 전부 처음 보는 이들이었으나 겁이나서 제대로 본적도 없었다. 어찌보면 이것이 처음인 셈이다. 뒤늦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있고 애러랫은 관찰에 빠졌다. 의식이 없는데도 살짝 웃는 듯한 표정을 보니 좋은 사람일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해솔원 교복, 느근히 안고 있는 책의 제목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까지 본 애러랫은 아무리 상대방이 인식하지 못한다 한들 이렇게 쳐다보는 것은 무례라 생각하고 관찰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것을 발견하기 전이었다면 그대로 깔끔하게 그만두었을 것이다. 새끼손가락 아래로 자란 작은 날개가 호흡에 맞추어 느릿하게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다. 애러랫은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호아, 하고 작게 감탄해버린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관찰하고 있던 사람이 눈을 떴다는 것도 몰랐다.
"아버지께서 천족이셔서요."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도 '그렇군요,'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들려올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건 손의 움직임에 맞춰 날개가 함께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였다.
"……에…?"
부드럽게 웃는 얼굴과 눈을 마주치고 애러랫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입을 벌렸지만 뻐끔 거릴 뿐이었다.
"왜 그러시죠?"
갸우뚱 기울어지는 고개와 그에 맞춰 작게 움직이는 귀를 올려다보았다. 애러랫은 이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자는 사람을 관찰하던 걸 본인에게 들켰다! 자그마한 그의 몸이 튕겨오르듯 섰다. 그 반동에 두어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애러랫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쳐다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저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당황하는 상대를 뒤로하고 애러랫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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