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슈아 폰 아르님은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생각되는 상황이었다.
“왜. 좋잖아. 여자애가 따라다니고. 아, 너한테는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던가?”
믿고 있지만 이런 일에 있어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친구는 도움을 청하는 조슈아에게 그렇게 비웃음을 던지고는–,
“대체 왜 그렇게 조슈아를 따라다니는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었다.
막시민과 눈을 마주친 여자아이는 안 그래도 커다란 금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불안정한 자세로 서 있었고, 그 결과 그녀의 놀라울 정도로 풍성한 금빛 곱슬머리가 두 소년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녀가 대답했다.
“에헷.”
“…….”
“…….”
잠시 후, 조슈아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마에 손을 짚고 자신의 앞으로 돌아온 막시민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항복. 쟤는 못 이기겠다.”
“…….”
“왜.”
“아니, 네가 말싸움에서 지다니 어쩐지 신기해서……."
“아예 아무 말도 안하는 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냐!”
막시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대로 이어 화풀이하듯 신경질적인 잔소리가 쏟아졌다. 덕분에 조슈아는 갑자기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온 막시민의 말을 받느라 한참 진땀을 빼야했다.
“사이좋네?”
막시민이 화가 잔뜩 섞인 발걸음으로 자리를 뜨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에 조슈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아까와 다를 것 없는 자세로 서서 뒷짐을 지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는 소녀는 조슈아가 대답을 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듯 인형 같은 눈으로 소년을 빤히 바라보았다. 조슈아는 결국 대답을 해야했다.
“그렇지.”
그리고 덧붙였다.
“그럴 거야.”
조슈아의 말을 들은 건지 만 건지 여자아이는 눈만 더 크게 뜨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잠시 그녀의 말을 기다리던 조슈아가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는 가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조슈아는 순간 움찔하고 물러섰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기억을 일으켰다. 잊을 수 없는 데모닉이 아니더라도 선명히 기억날 풍경. 천진난만한 웃음을 얼굴 가득 머금은 금발의 아가씨. 조슈아 폰 아르님의 누이, 이브노아 폰 아르님. 그녀는 누이와 닮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슈아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소녀는 제 좋을 때까지 숨이 넘어갈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고서는 숨도 고르지 않고 갑자기 제자리에서 빙글 돌더니 폴짝 뛰어 조슈아의 발끝에 자신의 발끝을 붙이고 섰다. 고개를 완전히 꺾은 체로 조슈아를 올려다보는 눈이 다시 동그랗게 뜨였다가 사르르 미소 지었다.
“내 이름은 오데트. 오데트 크리스토펠.”
의미를 알 수 없는 발언에 조슈아가 뭐라 대답하지 못하자 오데트는 다시 방긋 웃고는 뒤로 한 발짝 가볍게 뛰어 물러섰다. 뭔가 말할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오데트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어째선지 조슈아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발끝으로 땅을 콩콩 차고 있으니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조슈아는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라고, 또 오데트의 일련의 동작이 자신이 보기에 한 치의 흠도 없었다는 점에 또 놀라고 말았다.
“잘 부탁해요, 데모닉 조슈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
수수께끼를 내는 듯한 말투였다. 조슈아가 데모닉인 것을 알고 있다면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건–. 아, 하긴. 관계자 외에는 잘 모르는 사실이지. 조슈아는 의문을 띄웠다가 스스로 답했다. 이것은 거의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원래 생각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데모닉의 사고속도는 일반인의 그것에 비할 수 없는 것이다. 한데, 이 오데트라는 여자아이는 마치 ‘이제 알았지?’라고 말하는 듯 미소를 띠고 헤헷, 웃었다. 그리고 조슈아가 뭔가 말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안녕! 나중에 또 봐!”하고 등을 돌려 파닥파닥 뛰어가 버렸다. 그런 동작은 마치 아직도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마냥 불안정해서 조슈아는 아까 자신이 본 것이 눈의 착각이었던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결코 자신의 눈과 머리를 의심할 수 없는 조슈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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