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트 홈즈는 어수선한 교실 안을 한번 휘둘러 보았다. 스쳐가는 시선 속으로 검은 두 눈동자가 보였다. 하지만 그대로 스쳐간다. 굳이 그의 의문에 대답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폰 아르님이라는 성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혈통은 물려받은 데모닉 오데트는 일련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다른 생각에 잠겼다.
안젤리크가 쓰러진 이유는 알고 있다. 그녀는 강한 사람이지만 신체의 연약함은 그 정신을 버텨내지 못했다. 오데트는 굳이 안젤리크를 깨울 시도는 하지 않았다. 잠시 잠들어 있어도 좋을 것이다. 본인이 거부한다 하더라도 데모닉의 정신은 방대하여 휴식을 취할 기회는 극히 드무니 이런 기회를 굳이 자신의 손으로 걷어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잠들어있는 중에도 절대 생각은 멈추지 않을 테지만.
"오데트, 오데트 크리스토펠!"
힐끔 올려다보자 단호한 표정의 루시안이 있었다. 허리에 양 손을 짚은 소년은 오데트의 반응이 평소같지 않아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좋단말이지, 천진난만하다는 건.
"언니가 쓰러졌잖아. 왜 꼼짝도 안하는 거야."
잔뜩 노려보는 시선에서 고개를 돌리고 의자에서 뛰듯이 일어섰다. 사뿐사뿐 구름 위를 걷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간다. 뒤에서 버럭거리는 루시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속으로 말하고 오데트는 언니가 실려나간 경로를 따라갔다. 보리스가 들처업고 나갔겠지. 보지 않아도 환하다. 언니한텐 좋은 일일거야. 안제는 유령을 보는 것을 싫어하니까.
「꼬마 공주님, 무슨 생각해?」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 불쑥 시야 안으로 들이밀어졌다. 오데트는 베, 하고 혀를 내밀곤 그를 제쳤다. 그닥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안젤리크처럼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오데트 역시 자신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했다. 한번에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오데트의 머릿속에는 그때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불타는 집. 처음만난 알폰스의 목소리. 그 때 있었던 일을 마법같이 그대로 그려낼 수 있었다. 왜 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가 아니라 집이 떠오르는 걸까.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그 집이 타버림으로 인해서 안제와 오데트에게 있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완전히 사라졌기에.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껴버렸기에. 아버지, 어머니, 큰언니의 얼굴도 한번씩 떠올려 보았다. 아무런 감흥이 없는 자신이 쓰러지는 안젤리크의 옆모습과 대조된다. 이렇게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면 좀 더 버텨보지 그랬어요. 데모닉이 세운 계획에 이길 수 있을리는 없었겠지만.
가족들이 참수되는 광경을 어른들은 보여주지 않으려 했지만 오데트는 보았다. 안젤리크는 오데트를 말렸지만 끝까지 붙들지는 않았다. 몰래 숨어들어간 처형대에서 공화정을 쓰러뜨린 주역이 아르님 가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걸 알자마자 곧장 떠올릴 수 있었다. 초상화조차 본 적 없는 데모닉 조슈아의 이름. 아르님 집안이 어린 후계자. 현 아르님의 공작의 이름은 지워버렸다. 그가 그런 책략가가 아니라는 것쯤은 어린 오데트가 배운 극소량의 지식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고작 12살이었지만 오데트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신이 데모닉이라고.
아르님 집안의 재앙이자 축복 데모닉에 대한 것을 소문으로 듣고 당장에 흥미가 생겼다. 아무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지 않았지만 오데트는 데모닉에 대해 조사했다. 모나 시드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현 데모닉 조슈아에 대한 정보를 주워듣기는 쉬웠다. 아직 안젤리크와 오데트를 어린 아이라고 귀엽게만 생각하는 선생님도 쌍둥이를 그저 총명한 딸들이라고 좋아할 뿐인 부모님이나 언니도 오데트가 궁금하다는 듯 물으면 뭐든지 알려주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다는 걸 오데트는 알고 있었다. 아르님 가문은 본래 공작가로 공화국의 적이다보니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오데트는 그 어렴풋한 정보만을 가지고 사실을 구성해 나갔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웬일이야, 에타스?"
「음? 뭐가?」
"걱정을 다해주고."
오데트의 표정이 '정말 궁금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에타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 아가씨를 한대 때려줘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오데트는 헤죽 웃을 뿐이었다.
「연기하지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데트가 대답했다.
"뭐가 연긴데?"
에타스는 짜증스레 흥,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오데트는 그 모습을 보고 성난 물소 같다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에타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데트를 째려보았지만 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멀쩡해.」
"그래?"
「그래. 그냥 정신적인 충격일 뿐이야.」
"그럼 됐어."
오데트는 에타스를 내버려두고 퐁퐁 뛰어갔다. 언니가 어디쯤 누워있을까, 라고 흥얼거리는 즐거운 목소리에 걱정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즐거운 아이. 그것이 오데트 크리스토펠, 아니, 오데트 홈즈. 데모닉 오데트. 그녀의 방대한 정신용량은 가벼운 감정의 동요를 모두 집어 삼켜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조금 이상한 여자아이로 보이게 했다. 스스로가 억누를 수 있는 감정의 잔량이 어느 정도일지는 본인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봐야 남의 일이지만. 에타스는 괜히 걱정하고 있는 자신이 짜증나 마음 속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은 후 오데트를 따라갔다. 그녀는 어느샌가 안젤리크가 있는 방을 찾아낸 모양이었다. 추리해서 찾아낸 건지 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굉장한 속도다. 에타스는 이런 인간말고는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자신이 처량해졌다.
하지만 그녀라도 있으니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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