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리는 평생 자기 입으로 '그 말'을 하게 될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아카리는 말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입만 뻐끔거리다가 결국 딴소리를 내뱉었다.
"선배, 눈이 삐었지?"
노조무가 당장에 얼굴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눈이 삔 게 틀림 없어."
아카리는 노조무에게 다 들리도록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그런 소리를 듣고 얌전할 노조무도 아니었다.
"고 귀여운 주둥아리를 하늘같은 선배한테 놀리는 거냐, 아키사키."
"선배는 무슨 빌어먹을 선배. 후배가 남잔지 여잔지도 못 알아보는 선배 필요없습니다만?"
"이 자식 아주 막나가네. 운동장 가서 좀 뛰고 올테냐?"
아카리는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노조무를 쳐다보았다. 이 멍청한 인간이 제일 중요한, 아카리로써는 굉장히 힘겹게 내뱉은 요지를 쌈싸먹어 버렸다. 아카리는 진지하게 이 먹통같은 선배를 어떻게 응징해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노조무는 할말을 못 찾고 버벅이는 아카리를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카리는 순간 열이 확 뻗쳤다.
"눈이 삔 게 아니라 머리가 돈 거였수?"
아카리의 말을 듣고 노조무도 결국 책상에 엉덩이를 걸친 느슨한 자세를 집어던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자리에서 파직파직 스파크가 튀는 듯 했다. 기싸움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이번에도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한 판 뜰까?"
"..."
노조무는 잠시 아카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흥, 콧방귀를 끼곤 다시 책상에 기대섰다. 어쩐지 아카리를 상대론 경쟁심도 투지도 생기질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까운 녀석인데 그게 딱히 나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른 녀석은 절대 이렇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은 예뻐보이기까지 했다. 사내새끼가 귀엽게 느껴지다니. 노조무는 그 사실을 깨달은 중등부 시절부터 그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최근 우연히 그 사실을 여동생 센쥬와 친척인 미캉의 앞에서 언급하고 말았는데, 두 사람은 적극적인 태도로 그것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조무는 사랑하는 센쥬가 있으니 말도 안된다고 잊어버렸지만 방금 전에 바로 그 아카리에게서 두번째 고백을 듣고 난 시점에서는 전혀 달랐다. 약 일주일쯤 전에 있었던 첫번째 고백 이후 노조무는 아카리가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만 보아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히려 고백한 아카리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자타공인 여고생 애호가인 노조무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의심하게 될 줄이야.
한참 생각에 빠진 노조무를 아카리가 곁눈으로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역시 잘못 생각했나."
그것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아카리는 그 말을 노조무가 듣던 말던 개의치 않는 듯 했다. 평소와 같은 뚱한 표정이었지만 누가봐도 뚜렷할만큼 무언가를 꾹 참는 것이 보였다. 아카리의 눈시울이 붉었다. 노조무는 말은 잘했지만 위로는 잘 못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아카리도 말이 없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 학교에는 사람이 없었고 둘 뿐인 학생회실은 운동장에 몇 안남은 학생들의 외침까지 들릴만큼 조용했다.
초침의 똑딱이는 소리가 수없이 지났다. 비스듬하게 앉아 줄곧 창 밖만 보던 아카리는 흘끔 노조무가 선 쪽을 보았다. 위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눈물이 아직 고여있었다.
감정이 격해져 부끄럽게도 눈물이 난 것이 창피했다. 대답을 들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또 한 번 제 기세에 밀려 고백 아닌 고백을 한 것부터 그 뒤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럴 바엔 말을 꺼내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 때는 꼭 그래야할 것 같았지만 그 순간을 참았다면 이런 상황에는 처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노조무가 자신을 한치 의심도 없이 남자로 알고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진정이 되자 아리스가와 노조무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카리가 바라던 것이었다. 자신이 남자인 것.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빴다. 가장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걸 내던져야 하다니. 문득 센쥬 생각이 났다. '아키사키군,'하고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아카리는 시간을 몇 년쯤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노조무를 불렀다.
"선배."
노조무가 대꾸했다.
"응?"
아카리는 결국 말해야 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누군가 입 밖에 내면 온 힘을 다해 두들겨 주었던 '그 말'을.
심호흡부터 했다. 그냥 툭 말하기엔 너무 오래 금기시 해왔다. 그러고도 말이 나오지 않아 아카리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아카리에게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였지만 어쨌든 말은 할 수 있었다. 작은 소리로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또 길게 숨을 뱉었다. 아무래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쯤되니 아카리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결국 노조무가 짜증스레 말했다.
"불렀으면 말을 해."
"선배."
"어."
"……하아."
아카리는 또 한숨만 쉬었다. 노조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화를 냈다.
"자꾸 말하다 말래? 말하려면 하고 아님 말아."
"하아."
"야!"
"선배."
"왜."
아카리는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아카리를 보고 있던 노조무와 정확히 시선이 맞았다. 닦지도 흘려보내지도 못해 여전히 눈물 고인 강한 눈매로 노조무를 바라보았다. 아카리는 결국엔 말했다.
"나 여자야."
'그 말'을. 그리고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에 크게 상처 받았다.
"선배, 눈이 삐었지?"
노조무가 당장에 얼굴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눈이 삔 게 틀림 없어."
아카리는 노조무에게 다 들리도록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그런 소리를 듣고 얌전할 노조무도 아니었다.
"고 귀여운 주둥아리를 하늘같은 선배한테 놀리는 거냐, 아키사키."
"선배는 무슨 빌어먹을 선배. 후배가 남잔지 여잔지도 못 알아보는 선배 필요없습니다만?"
"이 자식 아주 막나가네. 운동장 가서 좀 뛰고 올테냐?"
아카리는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노조무를 쳐다보았다. 이 멍청한 인간이 제일 중요한, 아카리로써는 굉장히 힘겹게 내뱉은 요지를 쌈싸먹어 버렸다. 아카리는 진지하게 이 먹통같은 선배를 어떻게 응징해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노조무는 할말을 못 찾고 버벅이는 아카리를 한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카리는 순간 열이 확 뻗쳤다.
"눈이 삔 게 아니라 머리가 돈 거였수?"
아카리의 말을 듣고 노조무도 결국 책상에 엉덩이를 걸친 느슨한 자세를 집어던졌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은 자리에서 파직파직 스파크가 튀는 듯 했다. 기싸움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이번에도 아카리가 먼저 말했다.
"한 판 뜰까?"
"..."
노조무는 잠시 아카리를 보았다. 그리고 이내 흥, 콧방귀를 끼곤 다시 책상에 기대섰다. 어쩐지 아카리를 상대론 경쟁심도 투지도 생기질 않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까운 녀석인데 그게 딱히 나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른 녀석은 절대 이렇지 않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은 예뻐보이기까지 했다. 사내새끼가 귀엽게 느껴지다니. 노조무는 그 사실을 깨달은 중등부 시절부터 그것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최근 우연히 그 사실을 여동생 센쥬와 친척인 미캉의 앞에서 언급하고 말았는데, 두 사람은 적극적인 태도로 그것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조무는 사랑하는 센쥬가 있으니 말도 안된다고 잊어버렸지만 방금 전에 바로 그 아카리에게서 두번째 고백을 듣고 난 시점에서는 전혀 달랐다. 약 일주일쯤 전에 있었던 첫번째 고백 이후 노조무는 아카리가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는 모습만 보아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히려 고백한 아카리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자타공인 여고생 애호가인 노조무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의심하게 될 줄이야.
한참 생각에 빠진 노조무를 아카리가 곁눈으로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역시 잘못 생각했나."
그것을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아카리는 그 말을 노조무가 듣던 말던 개의치 않는 듯 했다. 평소와 같은 뚱한 표정이었지만 누가봐도 뚜렷할만큼 무언가를 꾹 참는 것이 보였다. 아카리의 눈시울이 붉었다. 노조무는 말은 잘했지만 위로는 잘 못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아카리도 말이 없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 학교에는 사람이 없었고 둘 뿐인 학생회실은 운동장에 몇 안남은 학생들의 외침까지 들릴만큼 조용했다.
초침의 똑딱이는 소리가 수없이 지났다. 비스듬하게 앉아 줄곧 창 밖만 보던 아카리는 흘끔 노조무가 선 쪽을 보았다. 위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눈물이 아직 고여있었다.
감정이 격해져 부끄럽게도 눈물이 난 것이 창피했다. 대답을 들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또 한 번 제 기세에 밀려 고백 아닌 고백을 한 것부터 그 뒤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럴 바엔 말을 꺼내지 말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 때는 꼭 그래야할 것 같았지만 그 순간을 참았다면 이런 상황에는 처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노조무가 자신을 한치 의심도 없이 남자로 알고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진정이 되자 아리스가와 노조무는 원래 이런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아카리가 바라던 것이었다. 자신이 남자인 것. 그래서 더욱 기분이 나빴다. 가장 원하던 것을 얻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걸 내던져야 하다니. 문득 센쥬 생각이 났다. '아키사키군,'하고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도 떠올랐다. 아카리는 시간을 몇 년쯤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노조무를 불렀다.
"선배."
노조무가 대꾸했다.
"응?"
아카리는 결국 말해야 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누군가 입 밖에 내면 온 힘을 다해 두들겨 주었던 '그 말'을.
심호흡부터 했다. 그냥 툭 말하기엔 너무 오래 금기시 해왔다. 그러고도 말이 나오지 않아 아카리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아카리에게도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였지만 어쨌든 말은 할 수 있었다. 작은 소리로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또 길게 숨을 뱉었다. 아무래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쯤되니 아카리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결국 노조무가 짜증스레 말했다.
"불렀으면 말을 해."
"선배."
"어."
"……하아."
아카리는 또 한숨만 쉬었다. 노조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화를 냈다.
"자꾸 말하다 말래? 말하려면 하고 아님 말아."
"하아."
"야!"
"선배."
"왜."
아카리는 드디어 얼굴을 들었다. 아카리를 보고 있던 노조무와 정확히 시선이 맞았다. 닦지도 흘려보내지도 못해 여전히 눈물 고인 강한 눈매로 노조무를 바라보았다. 아카리는 결국엔 말했다.
"나 여자야."
'그 말'을. 그리고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말에 크게 상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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