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nGRnG) 낙서 2

the other world 2015. 12. 8. 14:57
DN(nGRnG) 낙서 1에서 이어집니다.


4.

 "있잖아."

 벗은 상체가 빼빼 말라서 굽힌 등으로 갈비뼈가 보인다.

 "…루비나트."

 이 꼬맹이, 이름으로 불렀던가.


 호수는 수풀에 묻혀 있었다. 인가와는 한참 떨어져 그야말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무법지대다.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루비나트는 드래곤이고 제레인트 역시 미스트랜드의 독기에 얌전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괜찮겠지 생각하면서도 손에 힘이 풀리지 않았다. 제레인트는 안절부절 발을 굴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루비나트는 태평하기만 했다.

 며칠을 씻지 못하고 달렸는지 옷이고 몸이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호수를 발견하자마자 기뻐 뛰어든 것은 제레인트였다. 루비나트는 어슬렁어슬렁 뒤따라오더니 옷을 입은 채로 물에 잠겼다. 그 상태로 수면에 떠다닌 게 벌써 한 시간이다.

 "안 갈 거야?"

 대답이 없다.

 "야, 케이어스. 안 가냐니까…요!"

 삼십 분 전에는 이렇게 부르면 대답을 했고  십분 전까지만 해도 손을 휘저었는데 이제는 반응이 없다. 제레인트는 덜컥 겁이 났다. 물에 빠져 죽은 시체는 위로 뜬다던데.

 "자냐?"

 겁먹은 목소리가 된 것이 불만스럽지만, 지금은 그보다 루비나트가 걱정이었다. 물속에 드래곤에게 치명적인 독을 가진 물고기라도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제레인트는 나뭇가지에 널어놓은 옷을 만져보았다. 아직 축축하긴 하지만 제법 말랐다. 그러고 보니 빨래하는 걸 보던 루비나트가 말려준다고 했던 것 같다.

 "옷 말려준다며. 뭐하는 거야."

 말꼬리가 못내 흐려졌다. 루비나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제레인트는 손끝을 깨물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빨리 안 나오면 용서 안 할 거야?"

 어린애가 떼를 부리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그 녀석이라면, 알테이아에서 만난 바보같이 착한 모험가라면 이 말에 움직여주었을 것이다. 루비나트가 신경쓸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해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역시나 루비나트는 반응이 없다.

 이쯤 되니 정말로 심장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두 번, 세 번 서있는 자세를 바꿨다가 조그맣게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번엔 들리지도 않았을 테지만 대답이 없는 게 불길했다.

 "루비나트!"

 풍덩. 호숫물이 넘쳐 땅을 적셨다. 물결이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제레인트는 적을 향해 날아갈 때처럼 빠르게 헤엄쳤다. 수면 위에 동동 뜬 빨간 머리카락의 주인을 낚아챈다.

 "야, 루비나트!"

 마구 흔드니 물이 얼굴 위로 튀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눈꺼풀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

 "일어나. 바보야. 언제까지 잘 거야. 계속 여기 있으면 안 된다며!"

 마음이 급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였다. 주먹을 꽉 쥐고 휘두르려는 찰나,

 "그 손 치워라."

 루비나트가 눈을 떴다.

 "시체도 팰 놈이네! 알았으니까 놔. 그 주먹도 치우고."

 한숨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뭔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웅얼거려서 내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제레인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나가자, 꼬맹이… 울어?"

 훌쩍훌쩍. 눈물이 나는 게 바보 같고 서러웠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된댔는데. 아르젠타가 강해지라고 했는데. 타락한 케이어스 따위 죽어버려도 상관없는데.

 "안 울어. 누가 너 같은 거 때문에…."

 훌쩍. 눈가에서 떨어지는 건 호숫물이 틀림없었다.


DN(nGRnG) 낙서 3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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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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