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nGRnG) 낙서 1

the other world 2015. 12. 4. 13:23

1.

 "하여간 멍청한 꼬맹이 에인션트 같으니. 원래 이런 건 말이야. 분위기가 중요한 거야."

 홍염의 드래곤은 히죽히죽 웃었다. 매끈한 얼굴, 붉은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아찔해 눈을 감았다. 낯선 감촉과 함께 알싸한 황금주 향이 혀끝으로 전해졌다. 


 훗날 제레인트는 회상했다. 그 날 그 장소에 루비나트가 말했던 분위기따윈 없었다. 감시의 눈을 피해 숨어든 지저분한 은신처에는 안심하고 등을 기댈 장소조차 없었고 냄새가 지독했다. 먹을 거라고는 루비나트가 챙겨온 황금주뿐이었으며, 잔뜩 취한ー진짜 취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ー루비나트는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지금 돌이키면 최악이라고 평가해도 별다르지 않은 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하던 그 날의 제레인트는 그것이 그렇게 좋았더랬다. 

 아. 루비나트. 

 얕은 탄식이 혀밑으로 샌다.


2.

 "너 진짜 드래곤 맞아?" 

 제레인트는 루비나트를 노려보았다. 푸른 옷에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줄곧 생각했는데 책에서 본 홍사등롱(紅紗燈籠)과 똑같다. 괜히 웃음이 나려는 걸 억지로 입가를 굳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언제나처럼 시큰둥한 대답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제레인트는 도전적으로 뱉었다. 

 "사랑을 하는 드래곤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어. 너 진짜 드래곤 맞아?" 

 번쩍.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제레인트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바깥 날씨를 살피러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붉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루비나트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제레인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스트랜드로 넘어와서 루비나트가 제레인트와 눈을 맞춘 건 처음이었다. 

 "꼬맹이가 좋게좋게 넘어가니까 못하는 말이 없네." 

 기억났다. 제레인트는 등을 꼿꼿이 폈다. 그때도 이런 눈빛이었다. 알테이아에서 케이어스의 사념체가 정체 모를 술법으로 제레인트의 힘을 봉인했을 때도이랬다.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무릎을 굽혀 무게중심을 낮춘다.

 "…왜요." 

 제레인트가 듣기에도 제 목소리는 불퉁했다. 

 "한 번만 더 그딴 소릴 함부로 지껄이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루비나트는 어딘가 김이 샌 것 같았다.


3.

 취해서 쓰러진 꼴이 우습다. 루비나트는 피식 웃었다. 흙바닥에 널브러져 금발이 지저분해진 것도 모르고 제레인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개골 깊숙한 곳까지 찌르르 울리는 냄새는 얼큰하게 들이킨 황금주의 발자취였다. 약해진 자신보다도 제레인트가 먼저 취해버렸다. 믿기지 않을 만큼 인간 꼬맹이 같다. 루비나트는 빈 술병으로 제레인트의 뺨을 눌렀다. 

 "이봐, 꼬맹이." 

 미동도 없다. 루비나트는 습관적으로 술병을 기울였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한 방울도 고이지 않았다. 

 루비나트는 제레인트를 바라보며 좁은 공간에서 보다 편하게 자리 잡기 위해 다리를 뒤틀었다. 제레인트가 대자로 뻗어 있어서 어떻게도 되지 않는다. 루비나트는 발로 밀어 제레인트를 유선형으로 꺾어놓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녀석 드래곤이 맞긴 한가? 둘이서 지내면서 몇 번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알테이아에서도 미스트랜드에서도 한결같이 짜증스러운 꼬맹이기는 하지만, 뭔가 다르다. 아이오나도 울보에 꼬맹이에 겁쟁이였지만 제레인트와는 달랐다. 아이오나는 완성된 드래곤이었다. 케이어스의 기억을 가지고, 지켜야 할 사명을 가지고, 변치 않는 드래곤이었다. 

 "한 번 죽었던 녀석이랬지." 

 인간을 동경했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게 가능한가?" 

 루비나트는 빙빙 도는 머리를 잡고 생각을 정리해보려다가 이윽고 눈을 감았다. 모르겠다. 축축하고 차가운 벽에 직접 닿자 머리가 찌르르 울렸다. 아오! 신경질 내며 몸을 앞으로 당겼다. 또 제레인트와 부딪힌다. 루비나트는 낮게 신음했다. 진짜 모르겠다. 

 "네가 자초한 거다." 

 깨면 시끄럽겠군. 루비나트는 제레인트의 뺨을 쭉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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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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