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린네

드랍 2019. 8. 6. 17:45

멜님 자캐로 쓰던 건데 쓰다보니 귀찮아서 드랍.

뭐든지 완성하려고 하는 쪽이 나한테 더 나쁜 거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쓰다가 지겨워지면 드랍하기로 했음. 그래서 카테고리도 만들었으니 이쪽이 자주 업로드 될 예정. 내가 쓰고 싶어지던지 누가 기다리면 더 쓸 수도 있겠지, 뭐.

 


뒤에서 보자니 무척 새까맣다. 반들반들한 것이 동그랗기까지 하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무심코 손이 올라가는 것을 꾹 참았다. 어쩌다 한 번 본 후로 친밀하게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지 않았는데 머리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시선이 강했던 것일까. 뒤통수 마냥 동그란 한 쌍의 눈이 마리아를 향했다.

"왜 그러세요?"

린네가 물었다. 빠르게 깜빡이는 눈꺼풀 사이로 푸른 눈동자가 싱그럽다.

"그냥. 귀여워서."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머리에 손을 올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손바닥이 닿았을 자리에 뭉툭한 것이 얹어졌다.

"마리아에게는 아직 그렇게 보이는군요."

린네는 불편한 기색도 없이 수줍게 뺨을 붉힌다. 마리아는 욕망을 담아 린네의 머리칼을 살짝 흩뜨렸다. 매끄러운 검은 머리가 마리아의 손길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그 모양을 흡족하게 바라보곤 팔을 내린다.

"아직이라니?"

"아, 그게."

린네는 어색하게 눈을 돌린다. 마리아는 그 순간 린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아차렸다. 먼 곳을 향하는 시선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실려있었다.

찰랑이는 단발머리를 한 이 어린 숙녀는 경건한 마음가짐을 위해 준비된 예복을 마구 더럽히며 뛰어다니던 철부지 시절부터 마리아를 알았다. 마리아도 아직 오동통한 뺨을 하고 있던 해맑은 여자아이를 기억했다. 몇 년 사이 세상 모든 일을 달콤한 사탕처럼 여기던 소녀는 교단의 핵심 인사로 떠올랐다.

그저 단 한 번의 여행이었다.

그 한 번의 여행이 모든 것을 바꿨다. 그저 조금 착하고 순진한 것 외에는 크게 눈에 뜨일 것 없던 여자아이는 귀한 능력자가 되어 돌아왔다. 희귀한 재능은 기회를 바라는 이들의 시각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자 소녀가 받는 대우도 달라졌다. 돈과 권력이 오가는 복잡한 흐름 속에 린네 그라임스라는 이름의 바람이 불었다. 그 변화의 흐름을 타고 무언가를 바꿔보고자 하는 자들이 생겼다. 어느새 교회에는 폭풍우가 불고 있었다. 그런 때였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를 타고 린네는 어느샌가 커다란 배의 선장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발랄하고 천진난만했으나 아무도 그런 모습을 좋게 보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에는 무거운 돌덩어리가 하나씩 얹어졌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린네의 얼굴에서는 차츰 웃음기가 사라졌다.

마리아가 안전한 곳에서 숨을 죽이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린네의 빛나는 눈동자는 침착하고 어질어졌다. 마리아가 제 몸을 보전하기 위해 비굴함을 무릅쓰는 동안 린네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있었다. 마리아가 살아간다는 기쁨을 되찾기를 포기하게 되는 동안 린네는 많은 이들의 삶을 구하고자 백방으로 뛰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마리아는 어째서 이 여자아이가 눈에 밟히는지 몰랐다. 친한 것도 아니고 이렇다할 연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제님."

린네가 마리아를 불렀다. 동그란 눈이 상냥하게 접혔다. 웃는 빈도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진심으로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진지한 눈빛이 마리아를 향했다.

"기억하세요? 여기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이에요."

수줍게 웃으며 예배당을 둘러보는 린네의 눈빛은 아련한 추억에 젖어있다.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기억할 이유도 없었다.

선명한 풍경은 아니지만 마리아는 분명 린네가 이 곳에서 개구쟁이처럼 웃던 순간을 기억했다. 어째선지 린네에게도 기억에 남아버린 모양이다. 교회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왜일까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린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리아를 향해 성표를 보였다. 마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받는다. 아무리 유명인사가 되었어도 린네는 아직 평사제였다. 교회의 직급은 능력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탓이다.

뺨을 붉히고 뛰듯이 달려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리아는 살며시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속으로 찬찬히 셋을 센다. 그리고 돌아서 숙소로 향했다. 뒤에서 린네의 목소리가 청명하게 들려왔다.

린네 그라임스는 기분이 좋았다. 남몰래 동경하던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즐거웠던 탓이다. 함박웃음이 걸린 소녀의 얼굴을 보곤 동료가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저 사제님이랑 친해?"

"그건 아니고."

조금 아는 사이야. 린네가 수줍게 대답했다. 소녀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린네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앉아 책을 펼쳤다. 친구들이 무어라 말을 하려다가 주변의 눈총을 받곤 입을 다문다. 그러거나 말거나 린네는 관심이 없었다.

눈은 책에 두고 린네는 방금 전의 만남을 되짚었다. 독서 시간이 되어 방을 나서는데 문 앞에 마리아가 있었다. 마치 린네를 기다린 듯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로 여기 계시냐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마리아는 스치듯 걸음을 옮겼다. 그게 마침 같은 방향이었다.

일정을 아무리 되짚어봐도 이쪽에 마리아가 올만한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고민하며 말 없이 걷는데 마리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딜 가느냐는 질문이었다. 린네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 뒤에 마리아가 린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곧 헤어졌다. 그게 다였다. 린네는 그게 너무 기뻤다.

어째서 마리아 루첼라이를 존경하느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주제 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린네는 진심으로 마리아를 존경했다.

장애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시선이 갔으니까. 손이라는 중요한 부위가 없는데도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고 있는 점이 멋있었다. 몇 가지 노동에서 제외되는 점이 멋있게 느껴진 시기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도 좋았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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