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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30 …후(After) 30제 ─ 12. 옷을 벗다

 하현은 옷을 벗었다. 목욕하러 들어가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한데 어딘가 불편했다.

 '대체 뭐지.'

 잠시 고민해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뭔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현보다 머리 하나는 큰 껑충한 키의 청년. 두 사람의 기장 차이 탓에 하늘하늘한 검은 머리가 덮고 있는 목덜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미미하게 웃어보였다. 굉장히 기분좋아보이는 표정에 하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런 변화를 알아차린 휘아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오히려 더 짙어졌다. 하현은 코를 통해 흥, 하고 숨을 내뱉고는 남은 하의를 벗기 시작했다. 곧 멈추고 말았지만.

 '옷 안벗어?'

 동작을 멈춘 하현이 휘아를 바라보았다. 말은 커녕 작은 제스쳐도 없었지만 하현 못지 않게 말이 없는 이 친구는 전혀 어색함 없이 그 뜻을 알아들었다. 눈을 한번 감아보이더니 손과 목을 휘감은 악세사리들을 먼저 풀어낸다.

 '하나도 안 벗고 있었잖아.'

 하현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휘아를 한번 노려보고는 수건만 한장 들고 온천으로 향했다. 휘아가 옷을 벗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하현도 휘아도 신경쓰지 않았다. 두사람은 25살이나 먹은 남자 대학생. 여고생이 아니니 말이다.

 '좋구나, 온천이란 건.'

 딱히 휴일도 아니고 이른시간인지라 아무도 없는 온천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현은 온천에 앉아 혼자라는 것의 여유로움을 마음껏 즐겼다. 온몸이 노골노골 풀어지는 느낌에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살짝 졸음에 취한 체 목만 내놓은 체 탕에 가라앉아 있는데 소리가 들렸다. 맨발이니 딱히 발소리랄 것은 아니었지만 이쪽으로 걸어오는 작은 기척. 탈의실에도 사람은 없었으므로 이것은 틀림없이 휘아의 것이었다. 소리는 문에서 출발해 하현의 바로 뒤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다.

 "왁."
 "……."

 전혀 발소리를 죽일 생각도 없이 다가와서는 하현의 귓가에 바짝 입을 대고 왁, 이라고 말했다. 놀랄리가 없었다. 하현의 뚱한 시선을 받은 휘아는 하현의 머리카락을 한번 헤집고는 탕 안으로 들어왔다. 수면이 출렁거렸다. 하현은 가만히 휘아가 자리를 잡고 앉아 수면이 잔잔해지길 기다렸다. 휘아는 그런 하현을 흘낏 보더니 물 속에서 손을 휘저었다. 물결이 잠잠해지려다 다시 술렁인다. 수면만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하현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한번 더 시도해보았다. 조용해지던 물결이 그 세기를 더하자 작게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통 사람은 잡아낼 수 없는 작은 변화지만 휘아와 하현은 자연스럽게 그런 것만으로도 의사소통을 해냈다. 그것이 가능한 사이였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장난이 계속 되자 전혀 휘아를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하현이 마침내 휘아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뚱한 표정이다. 휘아는 작게 소리내어 웃고는 손을 멈췄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한번 휘아를 바라본 하현은 다시 시선을 물로 돌렸다. 휘아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하현의 행동에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수면이 잠잠해졌다. 하현은 미리 물 밖으로 꺼내 두었던 손을 들었다. 내리치려는 생각이다. 고작 그거 하나를 위해 계속 기다렸다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하현의 손바닥이 수면에 닿으려는 찰나,

 "……?"

 하현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휘아의 감은 눈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제대로 초점을 맞추기 힘들 정도의 거리.

 '뭐지, 이거.'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갸웃, 옆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휘아의 손이 하현의 목 뒤로 넘어왔다. 하현의 머리를 받힌 손, 그리고 맞닿은 입술이 어쩐지 뜨겁다.

 '키스, 지?'

 하현은 고민했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나. 몇일 전, 이름이 기억 안나는 어떤 여학생이 단호하게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매일 붙어다니다니! 너희 둘은 커플이야! 틀림없이 사귀고 있는 거라고!'

 그 때 하현과 휘아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넘어갔다. 딱히 부정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냥 그렇게 보인다면 그런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걸로 두 사람의 관계가 뭔가 바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수업이 없는 휴일, 하현과 휘아는 온천에 왔다.

 '사귀는 사이에 키스 정도는 당연히 하는 건가.'

 하현은 눈을 감았다. 먼저 입을 열기를 청해본다. 아니, 청하려고 했다. 작게 입을 벌리자 바로 시작되는 것은 뜨거운 입맞춤. 조용하고도 격렬한 애정의 확인이 온천의 남탕이라는 공개된 장소에서 시행되었다. 다행히 두 사람이 떨어질 때까지 그 공간에 발을 들인 이는 아무도 없었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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