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모른다. 모르기에 그토록 불안해하고 한심하게 떨고 있는 거겠지. 그런 너희들을 동정(同情)하고 갈망(渴望)하고 시기(猜忌)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들을.


 「7일이라는 시간」

 What did it happen to Homura-chan for a week?


 노을.

 노을 진 저녁이었다. 붉게 물든 다리는 언제나처럼 오가는 사람이 드물었다. 익숙한 풍경이 어딘가 낯설었다. 아케미 호무라는 우두커니 서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텅 빈 머릿속으로 기억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검은 하늘, 시큼하고 구릿한 악취, 둔한 고통이 스쳤다. 마수는 성가시고 끈질겼다. 마녀와는 다른 의미로 그들에게서는 악취가 났다. 끔찍한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무렵, 간신히 주변을 소탕했을 때는 완전히 지쳐버려 자신도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근래 소울젬을 제대로 정화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것 하나면, 이것만 참으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손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큐베는 물었다. 왜 자신을 버리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호무라는 대답했다.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결코 취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결심했었다.

 ‘마도카가 지키기로 한 이 세계를 지킨다.’

 고.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소울젬을 더럽혔다. 아주 작은 행동이었다. 단 한 번이었다. 단 한 번, 소울젬을 정화하지 않고 그리프 시드를 큐베에게 넘겼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상습적인 것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샌가 호무라는 두 번에 한 번은 무상으로 그리프 시드를 내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쉼 없이 뜀박질을 반복한 팔다리는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하염없이 멀어서 걸음걸음이 생명을 갉아먹듯 힘겨웠다.

 ‘만날 수 있을까?’

 심장이 물었다.

 ‘아니.’

 일각의 유예도 없이 머리가 대답했다. 너는 없었다. 설령 만날 수 있다고 해도 호무라가 기억하는 그 모습과는 다를 것이었다. 처음 시간을 되짚었을 때 만난 네가 호무라가 아는 ‘너’가 아니었듯이 지금도 이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너는 호무라가 기억하는 그 상냥한 친구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망가져버렸을지도 몰라.’

 호무라는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망가진 것처럼 너도 망가져버리면 그때는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모두 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했다.

 호무라는 한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전신을 짓누르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던 변신복은 사라지고 몇 년을 입었어도 낯선 교복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마지막 기억과 지금 서있는 자리 사이에 뚫린 공백을 더듬었다. 희끄무리하고 질척한 것이 걸린 것 같았다.

 사람 눈을 피해 건물을 뛰어넘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었다. 발밑이 꺼지며 갑작스레 찾아온 부유하는 감각과 중력을 거스르는 간지러움.

 호무라는 흠칫하며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 서있었다.

 시간을 되감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호무라가 아는 한 어떤 중간 과정도 거치지 않고 전혀 다른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시간 이동뿐이었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호무라가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는 더는 호무라가 후회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버클러를 빼앗아갔다. 어쩌면 호무라가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 세계를 넘고 또 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경계선에서 너를 찾지 않을까 망연자실 주저앉아 더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변신을 해도 허전한 왼쪽 팔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했다. 너는 이 손에 네 증표를 남기고 갔다.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며 남기고 갔다. 더는 찾지 말라고 그래봐야 이게 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을 남기고 가버렸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고 심장을 휘젓고선 날아갔다. 갑자기 아무래도 좋아졌다. 어느 곳에 있건 네가 남긴 일을 할뿐이었다.

 지친 눈을 들어 아득하게 이어진 길을 바라보았다.

 저벅.

 한 발을 내딛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면 일단 큐베를 만나야했다. 몽실한 꼬리를 살랑거리며 부지런히 새 먹잇감을 찾고 있을 녀석의 모습이 그리웠다. 알싸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저벅저벅저벅.

 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자신을 농락하고 너를 조롱한 범인을 찾아야했다. 활줄을 당기는 것보다 익숙한 손끝의 감각이 큐베가 있는 방향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호무라쨩.”

 상냥한 목소리가 손을 붙잡아 당겼다. 호무라는 잘 익은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듯이 돌아섰다.

 매순간 그리던 얼굴이 아침 햇살보다 찬란하게 웃었다. 하늘은 자꾸만 어두워지는데 네가 있는 자리만 빛났다. 눈을 깜빡이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지나갔다.

 호무라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호무라쨩은 정말 울보구나.”

 네가 손수건으로 빨갛게 물든 코를 쥐더니 입으로 ‘킁,’ 하는 소리를 냈다. 호무라는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고민하다가 곧 킁, 코를 풀었다. 착하다며 웃는 소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이 꿈만 같아서, 꿈인 게 틀림없어서 좋았다. 당장 이순간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호무라쨩, 떽!”

 “마도카?”

 조그만 입술을 야무지게 다문 모습이 앙증맞다. 소녀는 어린 동생을 어를 때 사용하는 엄한 얼굴을 금세 거두었다.

 “또 나쁜 생각하고 있었지? 그러면 안 돼. 호무라쨩을 좋아하는 마음이 아파하잖아.”

 너는 배시시 웃었다. 호무라는 어물어물 고개를 숙였다. 순전하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건 그러지 않겠다 약속할 자신이 없는 탓이었다.

 너를 만나고 싶다고 어딘가 이상해질 때까지 생각했었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수없이 상상해보았다. 텅 빈 집에서 홀로 중얼거리고 있노라면 당장 병원에 가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정작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건 너무 많은 말을 상상했던 탓일까? 보고 싶었노라 마음을 다해 고백해야할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눠야할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뺨은 눈물로 엉망이었고 마도카는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웃고 있었다.

 호무라는 마도카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또 울어버렸다. 이번엔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해서였다.


 둘이서 손을 잡고 걸었다. 노을이 사그라지는 미타키하라시는 호무라가 아는 그 어떤 곳보다도 아름다웠다. 언제나처럼 인파로 붐비는 역 근처 광장도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에나 네가 있어서 오래 머물 수 없었던 거리, 거리를 함께 걸었다.

 호무라는 누구와도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아껴두었던 말들을 두서없이 꺼내놓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큐베나 다른 마법소녀들과 있었던 일, 전투 중에 있었던 해프닝까지 가리지 않고 조잘조잘 끝도 없이 떠들었다.

 마도카는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도카가 놀라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작은 반응에서 행복이라는 꽃이 피어났다. 미타키하라에 봄이 왔다. 사방에 꽃이 만발했다.

 몇 번이고 보고 싶었다고 칭얼거렸다. 마도카는 소리 없이 미소 지을 뿐이었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상냥한 미소였다.

 긴 산책 끝에 한적한 벤치를 찾았다. 어느 시간엔가 둘이서 종종 앉았던 벤치였다. 마도카는 기억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마도카는 노을이 지고 본격적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묘하게 개운해보였다. 그건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은 호무라도 마찬가지였다.

 “있잖아, 호무라쨩.”

 “응?”

 마도카는 망설였다.

 “왜 포기한 거야?”

 마도카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다정하기만 한데 야단이라도 맞은 것처럼 겁이 났다. 호무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선량하고 동정 어린 시선이 견딜 수 없이 상냥했다.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어서 그저 죄인이 되었다. 사과를 하는 것도 죄스러워 입을 다물었다.

 “호무라쨩.”

 마도카가 손을 내밀었다. 고사리처럼 작고 포실한 손이 부드럽게 호무라를 붙들었다. 기억과 한 치도 다름없이 따뜻한 손이었다.

 아득히 멀어져버린 어느 시간에서 너는 총구 앞에 서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해도 방아쇠를 멈춰주지 않는 너를 원망해본 적도 있었다. 그렇게 못된 자신인데 왜 너는 늘 따뜻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울어도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에 모든 걸 포기하고자 했었다. 마침표는 네가 찍어주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네가 떠나갔다. 너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남은 것은 나뿐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

 “탓하는 게 아니야.”

 마도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무라쨩은 최선을 다했어.”

 최선을 다한 건 너야. 호무라는 속으로 대답했다. 너는 왜 또 용서하려는 걸까. 호무라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너는 상냥했다. 울지언정 화내지 않았다.

 소녀답게 발끝을 모아 앉은 학생 구두와 무릎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색 니삭스. 마지막 순간 네가 두르고 있던 것도 같은 색이었다.

 “호무라쨩?”

 무심코 손을 대니 눈물 어린 눈으로 네가 쳐다보았다. 조금 험한 마음이 들어버린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 꿈임이 분명한 이 순간을 너와 함께 즐기고 싶었다. 울부짖는 네 가슴을 찢고 또 찢어 나와 다름없이 틀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너무해!’

 아련한 꿈처럼 네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야카쨩을, 사야카쨩을 돌려줘!’

 네가 울부짖었다.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기억 깊숙한 곳에서 네 절망에 찬 비명성이 이기적인 욕망을 찢어발겼다. 너는 결코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아리게 배웠다. 찢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찢겨나간 것은 호무라였다.

 문득 네가 정말 너인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마도카.”

 네 무릎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너는 만면에 겁먹은 표정을 하고 나를 보았다.

 “아직도 날 원망하니?”

 딱딱한 소리가 나와 버린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한층 당황한 듯 했다.

 “원망하지 않아. 호무라쨩을 원망할 리 없는걸.”

 너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그런 네가 한 치도 다름없는 너라서 더욱 의심스럽다. 꿈속의 네가 내가 생각하는 네가 아닐 리 없는데도 매섭게 캐물었다. 설령 네가 진짜 너라고 해도 절대 그렇게 답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캐물었다.

 “아니야. 마도카는 날 원망하고 있어. 모든 걸 보았으면 알고 있잖아. 정말로 원망하지 않았니? 벌써 잊어버린 거야?”

 “호무라쨩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모든 시간을 보았다고 했잖아. 다 알잖아. 일부러 모른 척 하는 거야? 그런다고 그 날이, 내가 미키 사야카를 마녀로 만들었던 날이 없던 게 되지는 않아!”

 비명을 지른 것은 호무라였다. 너는 말이 없었다. 먼 곳에서 조그만 소리로 풀벌레가 울었다.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너와 눈을 마주하고 속마음까지 바라보았다. 놀라고 당황스러운 기색은 사라지고 너는 슬퍼보였다. 네 동그란 눈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거절을 보았다. 손에서 힘이 빠졌다. 밀려서 비뚤어진 네 무릎이 다시 단정하게 모아졌다.

 “호무라쨩.”

 네 목소리는 슬프지만 침착했다.

 “호무라쨩이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몇 번이고 잘못된 행동을 했었던 것, 알아.”

 너는 안다고 말한다.

 “그때,”

 네 작은 입술이 다물렸다.

 “그때 말고도 호무라쨩이 몇 번이나 일부러 사야카쨩을 계약하게 하고 악의적인 상황에 밀어 넣은 것도 알아.”

 너는 슬프게 웃었다. 왜 웃지? 너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 텐데도 웃었다.

 그날, 아니 그날보다 더 오랜 과거가 떠올랐다. 너와 나, 단 둘만의 전투.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던 어리석은 자신과 많은 것을 잃고 휘청거리던 너. 마지막 순간 너와 함께 라는 것만으로 행복했었다.

 ‘이대로 같이 괴물이 되어서 이 세계를 전부 엉망으로 만들어버릴까. 싫은 일도 슬픈 일도 전부 없었던 것처럼 부수고 또 부숴서 말이야.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 같지 않아?’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것은 고백이었다.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다른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온 마음을 다한 고백이었다. 너와 함께 있어서 기쁘다는 행복한 함성이었다.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었다. 네가 곁에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무라쨩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그런 내게 너는 물었다. 너도 아는 대답이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이제는 흐려진 기억 속에서 나는 울며 고개를 젓는다. 정말로 젓고 싶었다.

 ‘나에게는 불가능하고 호무라쨩에게만 가능한 일을 부탁하고 싶어서. 호무라쨩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 이런 결말이 되지 않도록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했지? 큐베에게 속기 전의 바보 같은 나를 구해주지 않을래?’

 멍청한 내가 끄덕였다. 약속하고 긍정하고 들어주겠노라 말했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래서는 안 되었다. 너와 함께 타락하고 악몽보다 더한 악몽이 되어야 했다. 그랬으면 오늘 같은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을.

 ‘약속할게. 너를 구할게.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반드시 널 지킬게.’

 너는 웃었다. 겁먹은 눈에 나는 사랑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코 그냥 져주지는 않겠다는 강인한 눈동자가 주박처럼 나를 옭아맸다. 그때 한 맹세는 아직도 내 영혼을 쥐고 흔든다.

 ‘하나만 더 부탁해도 돼?’

 악몽이었다.

 ‘나 마녀가 되고 싶지 않아.’

 그것은 명령이었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 말에는 거역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실에 꿰인 인형이었다. 네가 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헝겊인형이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는 총구를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매순간 떨렸지만 그 순간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너는 왜 내게 그런 명령을 내렸을까. 그때의 너는 살인자였다. 마녀를 죽이고 얻은 열매로 나를 살렸고 피를 뒤집어쓰고 미친 친구를 직접 쏘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분명 변명이다. 알고 있었지만 주체할 수 없었다. 생각은 멈출 수 없이 달려간다.

 ‘싫은 일도 슬픈 일도 있었지만 지키고 싶은 것도 이 세계에는 많이 있었는걸.’

 너는 내게도 같은 죄를 얹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네가 웃고 있었다. 두려움 없이 하염없이 슬프게 웃고 있었다. 찬물을 끼얹은 듯 맹렬하게 달아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너는 내 생각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그토록 슬프게 웃는 걸까.

 “미안해.”

 흩어졌다. 긁어모았던 네가 파도를 만난 모래처럼 쓸려나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네가 나를 끌어당겼다. 네 품에 얼굴을 묻자 좁은 머릿속에 뒤엉켜있던 수많은 생각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너는 나를 안고 슬프게 힘겹게 도닥였다.

 “미안해, 호무라쨩. 그렇게 무리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나쁜 생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게 해서 미안해.”

 자장가처럼 끝도 없이 너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느 샌가 네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너는 나를 안고 울었다. 머리카락에 닿는 물기는 틀림없이 네 눈물이었다. 말을 잊었다. 생각과 말은 하나라서 어느 샌가 나는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호무라쨩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었어. 어려운 곳까지 따라와 주었으니까, 호무라쨩은 강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울먹이는 너와 같은 소리로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아우성쳤다.

 ‘사야카쨩이 네게 무슨 잘못을 했어? 사야카쨩은 그냥 열심히 한 것뿐인데, 왜 그런 거야?’

 “아주 잠시 동안의 이별이라고 생각했어. 호무라쨩은 계속해서 견뎌왔으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 귀여운 아이를 낳고 멋진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어.”

 ‘사야카쨩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뭐라도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네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거야? 날 지켜주겠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힘들고 고민스러웠지만 무리해서 마법소녀가 되고 열심히 싸웠어. 아직은 미숙하지만 좋은 마법소녀가 될 거라고 마미선배랑 큐베도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랬어?’

 “힘들어하는 호무라쨩을 모두 보았는데도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어. 이렇게 괴로워할 줄은 몰랐어. 삶을 포기할 정도로 괴로워할 거라고는 정말로 몰랐어. 점점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호무라쨩 나름대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안해. 나, 내 생각만 했나봐. 누구라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호무라쨩에게 짐만 떠맡겨버렸어.”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지만 호무라쨩, 일부러 그런 거야? 아까 큐베에게 들었어. 호무라쨩이 사야카쨩을 소개시켜줬다고. 마법소녀가 될 자질이 있는 아이라고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고 말이야. 호무라쨩은 알고 있었잖아. 마법소녀가 마녀가 되어버리는 거, 알고 있었잖아. 그런데도 사야카쨩을 마법소녀로 만들고, 무섭게 몰아붙였지? 호무라쨩을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보아도 호무라쨩이 일부러 그랬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어서, 호무라쨩이 미워지려고 해…!’

 “고마워. 바로 포기하지 않아주어서. 또다시 최선을 다해 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호무라쨩.”

 따뜻한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두피까지 눈물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세례였다. 네가 내 죄를 씻고 있었다. 그렇다면 마도카, 네 죄는 내가 갚을게.

 아침에 눈을 떠 아무도 없는 허공에 인사를 하고 학교에는 웃으며 대화를 나눌 친구조차 없지만 그것이 네 죄의 대가라면 그것으로 좋아. 집에는 인기척도 온기도 느껴지지 않지만 매일 먹을 밥과 잠잘 곳이 있고 매일이 마지막이 아닐까 두렵고 걷기조차 힘겨울 정도로 피로해지곤 하지만 동료가 있어. 어느 누구도 너를 믿어주지 않지만 큐베는 흥미로워하고 미키 사야카의 증발은 네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 같아. 놀이터에서 네 어린 동생이 마도카를 부르고 네 기척이라고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에서밖에 느낄 수 없지만 그걸로 충분해.

 마도카, 내 영혼을 훔쳐간 소중한 친구.

 “마도카.”

 너는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나를 놓아주었다.

 “미안, 호무라쨩. 놀랐지? 갑자기 끌어안고 울기나 하고. 에헤헤.”

 “고마워.”

 네 눈이 동그래졌다. 한층 커다래진 눈을 보자 웃음이 났다.

 “마도카 고마워. 내 친구가 되어주어서.”

 눈앞이 흐려졌다. 왈칵 눈물이 났다. 웃음이 나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호무라쨩!”

 네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도 마주 안았다. 그렇게 우리 둘은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겨우 눈물이 멈추었을 때는 어스레하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마도카는 퉁퉁 부운 눈으로 우는 것처럼 웃었다.

 “벌써 아침이네.”

 호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도 엉망이었다. 겨우 찾아낸 손수건으로 물기는 닦았지만 눈코 할 것 없이 온통 붉었다.

 “그러네.”

 둘은 눈을 맞추고 웃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웃을 수 있겠냐는 듯이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또 울었다. 눈이 마주치면 웃음꽃이 피었고 손을 잡으면 눈물이 비처럼 내렸다. 지쳐서 서로 기대앉은 자세가 세월없이 다정했다.

 “있지, 호무라쨩.”

 “응, 마도카.”

 “아침에는 일어나야겠지?”

 “응. 보통은 그렇겠지.”

 “학교도 가야하고 어쨌든 아침이니까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겠지.”

 “응. 아마 그럴 거야.”

 마도카는 한 박자 쉬었다가 다시 불렀다.

 “호무라쨩.”

 “마도카.”

 날이 밝자 언덕 아래로 미타키하라시 전경이 보였다. 높은 곳에 있는데다 편의시설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사람이 드문 벤치였다. 대신 경치가 좋아서 운동하는 사람이 가끔 들르곤 했다. 슬슬 사람이 보이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호무라쨩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아.”

 “나도.”

 “호무라쨩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안 울어, 마도카.”

 “그치만 힘들잖아?”

 “조금. 아주 조금이야.”

 “응.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

 호무라는 건물들 사이로 얽히고설킨 도로를 눈으로 더듬었다. 저 거리를 몇 번이나 달렸을까. 마수 사냥은 마녀를 잡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온 도시를 누벼야 했다. 결계에 숨은 마녀를 찾는 작업은 끈기가 필요했다. 걷고 또 걸어야만 마녀를 찾을 수 있었다. 마수는 숨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움직였다. 마녀와의 싸움이 거미를 잡기 위해 거미집을 들쑤시는 것이라면 마수를 상대하는 일은 모기와의 전쟁이었다. 그들을 잡으려면 더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달려야했다. 새로운 적은 확실히 혼자 싸우는 것보다 여럿이 싸우는 게 편리했다. 적어도 몰이꾼과 그물 담당을 정할 수는 있었으니까.

 “괜찮아.”

 “…….”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

 “…….”

 “토모에 마미, 사쿠라 쿄코는 베테랑이라서 속도 썩히지 않아. 개인 활동도 만족할 만큼 확보할 수 있어.”

 “호무라쨩.”

 “난 괜찮아, 마도카.”

 마주친 눈빛 사이로 이야기가 오갔다. 무슨 말을 하는지 주변에서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확실히 서로의 말을 듣고 있었다. 떨리는 눈동자, 셀 수 없는 깜빡임이 지나고 마도카가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호무라쨩.”

 “응.”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응.”

 “다시는 이렇게 돌아오면 안 돼?”

 “응.”

 “반드시 행복해 져야해.”

 “응.”

 하얗게 빛이 부서졌다. 비산하는 것은 눈물이었다. 행복의 조각이었다. 그곳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말로 마도카였을까.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다.


 “아케미양!”

 “어이. 괜찮아?”

 눈을 뜨자마자 호무라를 반기는 것은 울먹이는 토모에 마미와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인 사쿠라 쿄코의 얼굴이었다. 머리 너머로 보이는 천장이 낯설었다. 호무라의 집은 아니고, 병원도 아니었다.

 “…….”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누워있는 장소는 침대였다. 소녀취향의 파스텔 톤 벽지와 평상복을 입은 두 사람을 보아하니 어딘지 짐작이 가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미끄러운 지붕을 잘못 딛고 떨어졌으니 길바닥일 줄 알았는데 언제 옮겼는지 몰랐다.

 “말을 안 하는데 괜찮은 거 맞아? 정신이 나가버린 거 아냐?”

 “사쿠라양!”

 사쿠라 쿄코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그걸 들은 토모에 마미가 또 야단스레 발을 구른다. 언제 만나도 소란스러운 사이라고 생각하며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비켜주겠어?”

 한마디 했을 뿐인데 토모에 마미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사쿠라 쿄코도 초조함을 내려놓고 작게 웃었다. 매번 느끼지만 사람이 너무 좋아서 피곤했다. 차라리 미키 사야카처럼 적대적이라면 편할 텐데 애매모호한 태도가 두통을 불러온다.

 “어디 아프지는 않니? 벌써 일주일째 누워있었어.”

 “아플 리가 있나. 마력을 펑펑 부어서 전신을 다 치료했다고. 그동안 쌓아둔 그리프 시드가 모조리 동났는데 아프면 큰일이지.”

 “소울젬이 새카매서 아케미양도 사라져버리는 게 아닌가 하고, 너무 놀라서….”

 한없이 다정한 토모에 마미와 퉁명스러운 사쿠라 쿄코의 목소리가 번갈아 지나갔다. 토모에 마미는 또 눈물을 보였다. 정말 잘도 우는 사람이었다. 옛날의 호무라보다도 더 많이 울지도 모른다. 어떻게 혼자서 오랜 시간을 버텼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연약했다.

 “그만 좀 울어.”

 사쿠라 쿄코가 짜증스레 쏘아붙였다.

 “네가 쓰러진 일주일 동안 내내 울기만 하는데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소울젬 깨끗하고 몸도 말짱한데 영영 안 일어나는 게 아니냐며 어찌나 한탄을 하던지. 덕분에 내가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

 투덜거리면서도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 능숙해보였다. 길거리 고양이 같은 자세로 몸을 틀고 있는 사쿠라 쿄코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싫다, 싫다하면서도 한 번도 매정해지지 못한 사람. 그런 점이 종종 장애이기는 했지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마법소녀였다. 너무 다정해서 진저리를 내면서도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는 점이 그 애를 닮아 있어서 정이 갔었다.

 “일주일?”

 “그래, 일주일. 주머니에 그리프 시드를 쌓아서 뭘 하려고 했던 거야? 주변 마수를 싹 쓸어놓은 덕분에 내내 놀았어. 그만큼 모았으면 소울젬 정도는 제때 청소해둬.”

 흘깃, 사쿠라 쿄코가 호무라를 흘겨보았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죽고 싶었던 거지?’

 그렇게 묻고 있었다.

 “당장 사라지는 줄 알았다. 급하게 그리프 시드를 찾아서 정화는 했는데 손이 다 떨리더라. 옆에서 애는 울고 너는 일어날 생각을 않고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온갖 생각을 다했다니까. 오죽하면 내가 요리를 했다. 얘 밥 먹이느라!”

 토모에 마미가 볼멘소리로 ‘애가 아니야,’라고 중얼거렸다. 사쿠라 쿄코는 콧방귀를 뀌었다.

 “안심했어. 아케미양이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야.”

 토모에 마미가 코를 훌쩍였다. 사쿠라 쿄코가 으이구, 신음소리를 내며 휴지를 들어 토모에 마미의 코에 가져다 대었다. 부끄러워하면서도 킁, 하는 모습을 보니 네가 생각났다. 너도 내게 똑같이 해주었는데, 그건 꿈이었을까.

 호무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보듯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둘이 동시에 호무라를 돌아보았다.

 “아케미양?”

 “어이?”

 호무라의 눈가가 화끈 달아올랐다. 토모에 마미가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혹시 어디 아프면 꼭 말하렴. 치료가 덜 되었을 수도 있고 정신적인 문제일지도 몰라.”

 “적당히 좀 해라. 그럴 리 없다니까.”

 사쿠라 쿄코는 여전히 짜증스러운 투였다. ‘그치만,’으로 시작하는 두 사람의 다툼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호무라는 한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너는 없다.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건 호무라였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던 네가 호무라 자신의 꿈인지 진짜 너인지는 최후의 순간이 오기까지 알 수 없겠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말해준 것으로 족했다.

 “갈게.”

 “아케미양.”

 토모에 마미가 복잡한 얼굴로 호무라를 쳐다보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또 이런 일 만들지 마. 귀찮아진다고.”

 사쿠라 쿄코가 걱정했다.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호무라는 그대로 조용히 토모에 마미의 집을 빠져나왔다. 사쿠라 쿄코는 불평하면서도 토모에 마미를 챙겨주느라 더 머무르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것대로 좋겠지 싶었다. 둘이 어떻게 지내건 호무라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친하면 친한 대로, 소원하면 소원한대로 사람을 귀찮게 하는 둘이었으니 알아서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날은 기가 막히게도 아침이었다. 그러고 보니 토모에 마미가 교복 차림이었다. 아침인가. 교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호무라는 마법소녀였다. 서두른다면 충분히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는 어떻게 처리가 되어있을까. 병원에 가지 않았으니 병결은 아니고, 무단결석일까. 일주일이나 빠졌으면 출석 일수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다. 아무래도 유급은 반갑지 않았다. 지겨운 학교를 일 년을 더 다녀야하다니.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선가 마도카가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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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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