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와, 소란스럽던 하천가 운동장이 조금씩 조용해졌다. 태양이 시들며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방과 후 연습에 열중하던 라이몬 중학교 축구부도 슬슬 해산할 시간이다.

 “다들 수고했어. 해산!”

 언제나처럼 기운찬 엔도의 선언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수고하셨습니다,’ ‘바이바이,’ 같은 작별인사가 쏟아졌다. 물론 해산 후에도 대부분 사이좋게 부실로 돌아갈 테지만 연습 후 서로에게 하는 인사는 오늘도 보람찬 하루였다는 기쁨을 느끼게 한다. 세명의 매니져가 제각각 선수들에게 수건을 건내고 물을 나누어 주었다. 한쪽에선 새로운 필살기를 맞추느라 의견이 분분하고 또 한쪽에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기도 하고 잘한 부분은 칭찬도 해주느라 조용조용 대화가 이어진다. 누가봐도 좋은 분위기의 운동부 풍경이다.
 고엔지도 목에는 수건을 걸고 한손에는 물통을 든 체 모두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저쪽에서 엔도가 1학년들과 웃는 것이 보였다. 어쩐지 이쪽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고엔지.”

 키도였다. 그는 고갯짓으로 따라오라는 표시를 하고 고엔지의 대답은 보지도 않은 체 돌아섰다. 고엔지는 잠시 키도의 등을 바라보다가 따라나섰다.
 키도는 멀리 가지 않았다. 운동장에서 조금 떨어진 길로 나서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리에 섰다. 부원들은 하나 둘 학교로 돌아가려는 듯 짐을 챙기고 있었다.

 “요 몇일 기운이 없어보이던데 왜 그러지?”
 “내가?”

 고엔지는 반문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묘하게 평소보다 가라 앉아 있다. 플레이에도 활기가 빠져있고. 미세한 차이라 캐치하기 쉽지 않았지만 분명히 뭔가 달라.”
 “…….”

 키도는 말없이 고엔지를 바라보았다. 고글에 가려 눈빛은 보이지 않았지만 견디기 힘든 시선이 느껴진다.

 “대답해라.”

 고엔지는 부원들이 거의 자리를 뜬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엔도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별일 아니다.”

 키도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걸린다. 고엔지는 움찔했다. 고글에 가린 눈 때문에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내 분석력을 우습게 보지 마라. 정말 별일 아니라면 네가 남의 눈에 뜨일 정도로 동요할 리 없어.”

 고엔지는 이를 악물었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 과연 천재 게임메이커 키도 유우토. 그가 머리가 좋다는 사실이 거북스럽다. 잠시 생각해본 고엔지는 이내 말로 키도를 이기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키도의 고개가 살짝 옆으로 꺾였다.

 “조만간 다시 대회가 이어진다. 그런데 그때까지 이런 상태를 이어갈 셈이냐?”
 “그때까지 이어질 일이 아니다.”
 “그건 두고봐야 알겠지.”

 키도의 분명한 비웃음에 고엔지도 표정이 변했다.

 “뭘 바라는 거냐.”
 “난 그저 네가 빨리 원상복귀 하길 바랄 뿐이다. 문제를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것도 성격에 안 맞고.”

 고엔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

 “별 것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 시합에 나서면 그런 작은 차이가 패배를 불러온다.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말해라. 아니면 해결해라.”
 “……약속해라.”
 “음?”

 시선을 피하는 고엔지의 양 뺨이 희미하게 붉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키도의 착각이었을까. 석양도 사그라드는데 남아있는 붉은 빛. 고엔지가 내뱉듯 말했다.

 “웃지 않겠다고 약속해라.”

 키도는 잠시 고민했다. 약속한다고 지킬 수 있을 문제인가. 그리고 결정했다. 일단 그렇게 해준다고 하면 되겠지.

 “그러도록 하지.”

 간단히 대답하는 키도를 잠시 바라본 고엔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게…….”

 고엔지는 또 키도를 보았다가 멀리 강가를 보았다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말해라.”

 고엔지는 끙, 하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유카가…….”
 “유카가?”
 “……연락이 없다.”
 “뭐?”

 키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럴만도 했다. 일전 유카가 인질로 잡혔던 것을 생각하면 위험하다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는 일이니까. 키도는 다급히 물었다.

 “부모님은?! 부모님과 함께 바캉스에 갔다고 하지 않았나?”
 “부모님은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데 유카가…, 지금까지 한번도 전화가 없어. 심지어 부모님의 통화를 바꿔받은 적도 없어.”
 “……하?”
 “여행이 즐거워서 이 오빠를 잊어버린 걸까.”
 “…….”

 할말을 잃어버린 키도였다. 그 뒤로도 고엔지는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키도에게는 이미 들리지 않았다. 남은 말은 한마디.

 “더러운 시스콤.”
 “뭐라고?”
 “…아니다.”

 차마 남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 소년의 마음. 키도는 허탈하게 웃고 그대로 학교로 향했다.

 “제 얼굴에 침뱉기라 함부로 욕도 못하겠군.”

 키도의 혼잣말은 다행히 고엔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 후 집에 돌아간 고엔지가 유카에게서 온 엽서를 발견하고 기쁜 나머지 다음날 내내 싱글벙글인 탓에 수상쩍게 여긴 부원들이 슬금슬금 피해다녔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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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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