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담긴 목소리에 괜찮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이 되어 나오는 것은 '죄송합니다,'라는 도움되지 않는 한마디 뿐. 다른 말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살짝 눈을 떠보니 아까 부딪힌 분의 신발이 여전히 앞에 서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고 이대로 돌아 도망가버린다면 상대방이 당황할 거라고 생각하니 도망갈 수도 없었다. 계속되는 고민이 손으로 표현되어 애꿎은 허벅지를 꾹 눌렀다. 아까 멍든 자리를 쥐었는지 일순 눈물이 비져나올 만큼 시큰한 고통이 일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눈물이 나고 나니 괜히 울음이 터질 것 같아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리에 서있으려니 땅이 푹 꺼져서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저기-,'라는 말이 들려와 뭔가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을 본다면 당황해 하실거라 생각해 그냥 고개만 숙인 체 얼른 지나가시기를 빌었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눈을 부릅뜨고 바지를 손으로 꼭 쥐어 구기며 기다렸다. 그렁그렁 고인 눈물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잠깐 실례할게요."
 "아…?"

 상대방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놀라 눈을 깜빡였더니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알아차리셨으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평소같으면 반사적으로 손을 뺐을테지만 이번에는 이끄는 힘에 그대로 끌려가고 말았다.

 "불편하면 말해주세요. 지금부터 어디 있는지 모르는 양호실에 갈 거 거든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대꾸 하는 것 같이 들릴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말끝을 흐렸다. 양호실? 양호실에는 왜? 그런 의문이 애러랫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얼떨떨하니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서 상황파악을 하려고 애를 썼지만 대체 뭘 보고 양호실에 가자고 하신 건지 알 수 없었다.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 올려다보니 생전 처음보는 분이라 입술이 말라왔다. 그토록 다짐하고 왔는데 여전히 첫대면의 사람앞에서 자동으로 몸이 얼어버리는 건 그대로였다.
 그런데-, 문득 그 사실이 떠올랐다. 그런데 위치를 모른다고 하지 않으셨나? 그럼 어디로 가고 있는거지? 건물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자 저도모르게 다급히 앞서 가시는 분의 옷자락을 잡았다. 돌아보시는 눈과 잠시 마주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심호흡을 했다. 후, 하, 후, 하. 어떻게 보고 계실지 불안해서 빠르게 심호흡을 하고 마찬가지로 빠르게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은빛 눈이 떠올랐다.

 '너, 긴장해서 말하면 너무 말이 빨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어.'

 그래도 알아듣던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지금 가고 있는 방향에 양호실이 있는 건가요? 어쩐지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저쪽은 교문 쪽이 아닌가요?"

 알아들으셨기를 바라고 슬쩍 올려보았지만, 아아, 표정이 복잡했다. 또 말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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