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world/사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1.09 사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02.
  2. 2015.12.29 사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01.
  3. 2015.12.05 사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른다. 00.

※ 센티넬버스 설정을 차용한 19금 요소와 BL 요소가 포함된 시리즈입니다. 19금 요소가 들어가면 비밀번호가 걸립니다.




 마차에서 내리자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엘리자베스는 잠시 눈을 감고 온기를 즐기다가 양산을 펼쳐 들었다.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났다. 민가의 굴뚝에서 나던 연기가 성에서도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함빡 웃었다. 집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즐거운 여행 되셨습니까.”

 마차에서 내리는 걸 도우려 메리엔델에게 뻗은 손을 거절당한 집사 엘리엇이 인사했다. 훌쩍 뛰어내린 메리엔델 뒤로 흐트러지는 표정을 언뜻 목격한 엘리자베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요?”

 메리엔델이 물었다.

 “아뇨.”

 엘리자베스는 배를 움켜잡고 키득거렸다. 엘리엇은 엄격하게 훈련받은 집사답게 엄숙한 표정으로 등을 곧게 펴고 있었다. 메리엔델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한껏 행복한 기분에 젖어 홱 돌아섰다. 푸른 드레스 자락이 넓게 펼쳐진다. 경쾌하게 성을 향해 걸음을 내딛자 메리엔델이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 뒤로 따라붙었다.

 “점심이 준비되어있을 거예요. 이 냄새라면 틀림없이 우리 요리사가 자랑하는 렌틸콩 스튜곘죠. 메리엔델도 먹어본 적 있나요? 엘프들은 채식 요리를 좋아하죠?”

 “스튜가 푹 익혀서 물과 함께 졸인 요리였죠? 아뇨. 아누 아렌델 전통 요리에 채소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먹지는 않아요.”

 “잠시만요.”

 엘리자베스는 메리엔델의 말을 막고 엘리엇을 불렀다. 두 사람의 뒤를 따라오던 집사는 곧 엘리자베스 옆에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다.

 “페더는? 이 시간쯤에 도착할 거라고 미리 사람을 보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시씨라면 어젯밤에 도착해서 쉬고 있습니다.”

 “회의가 아직 안 끝났나?”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공주님!”

 집사 뒤에 서 있던 하녀 하나가 갑자기 머리를 조아렸다. 긴 치마자락을 정돈할 여유도 없이 흙바닥에 이마를 찧은 처녀는 가여울 정도로 떨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엘리엇이 꾸짖었다.

 “제발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쟈넷. 일어나거라.”

 “공주님께서 꼭 아셔야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들어가죠, 메리엔델.”

 “공주님!”

 쟈넷이 비명을 질렀다. 치켜든 이마에 누런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성을 향했다. 메리엔델이 한 박자 늦게 엘리자베스의 뒤를 따랐다.

 “따라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설마 내가 옷 갈아입는 것도 못 기다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네가 도와줬으면 싶은데.”

 돌아선 엘리자베스의 하얀 뺨은 한껏 광대가 솟았고 꽃잎처럼 싱그러운 분홍빛 입술은 좌우로 당겨져 근사한 곡선을 그렸다. 커다란 푸른 눈이 쟈넷을 향하더니 이내 웃어버린다.

 “그전에 네가 먼저 옷을 갈아입어야겠네. 내 몇 없는 드레스를 망칠 게 아니라면 말이야.”

 쟈넷이 황망하니 눈만 껌뻑이는 사이 엘리자베스는 메리엔델과 함께 빠르게 멀어져갔다. 조신한 공주님 답지 않은 거침없는 걸음이었다.

 "마차가 갑갑하진 않았어요? 이렇게 긴 시간 탄 건 처음이죠?"

 "아. 그러네요. 괜찮았어요.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왜 인간들이 애용하는지 알겠던걸요. 말을 탈 때보다 공기는 갑갑해도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쟈넷은 하얀 에이프런이 흙먼지에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엎드려 있었다. 엘리엇이 헛기침을 했다.

 “일어나라. 공주님께서 기다리신다.”

 “아, 네.”

 쟈넷은 허둥지둥 방으로 향했다.




* 시씨는 Sissie라는 이름입니다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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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티넬버스 설정을 차용한 19금 요소와 BL 요소가 포함된 시리즈입니다. 19금 요소가 들어가면 비밀번호가 걸립니다.




 마차는 쉼 없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엘리자베스는 창 너머로 흘러가는 풍경을 눈으로 좇았다. 어느샌가 익숙해진 향기가 코끝을 맴돌았다. 긴 여정에 몸은 노곤하게 늘어지는데 마음만 둥실둥실 가볍다. 돌아갈 집이 있고 거기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무겁던 어깨가 한결 가뿐했다.

 페더와의 약혼이 정해졌을 때,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수많은 시선 한가운데에 섰다. 엘리자베스를 걱정하는 소서리스들의 울분 섞인 잔소리, 꼴좋다며 고소해 할 형제들의 비웃음, 아무것도 모르면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안줏거리 삼아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겪어온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상처받지 않았다.

 공주를 영원불멸한 보석의 이름으로 부르는 나라에서 홀로 꽃의 이름을 받은 열일곱 번째 공주는 언제부턴가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강인한 생명력을 안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은사이자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보아준 소서리스 라파에게 말했다.

 「두고 봐. 이번엔 저쪽이 실수한 거니까.

 그 말은 진심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했다.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모두가 입을 모아 불씨에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라고 말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라파가 노심초사하는 것을 알면서도 흘려 넘겼다.

 “도착했나 봐요.”

 메리엔델이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가 상대가 메리엔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금발 아래 고요히 감긴 두 눈은 날 때부터 잠들어있었다. 보지 않고도 보이는 사람보다 더 기민하게 움직이는 메리엔델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된 훈련을 거쳤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물며 아무리 보여주기 위한 싸움이었다지만 대륙 최강의 기사 페더와 대등하게 싸운 활 솜씨는 사실은 보이는데 안 보이는 척하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맞아요. 지금 성문을 지나가고 있어요. 언제 봐도 대단하네요, 메리엔델은.”

 마차는 덜그럭거리며 도개교를 건넜다. 푹신한 쿠션 덕분에 진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다른 감각이 예민하니까요.”

 메리엔델은 잔잔하게 웃었다. 담담한 목소리에는 뿌듯함이 묻어있다.

 “그런 점이 대단한 거예요.”

 엘리자베스도 웃으며 대꾸했다.

 “뭐가 말인가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거요. 메리엔델도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물론 그래요. 하지만 그게 대단한가요?”

 엘리자베스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점에서는 메리엔델도 페더도 한결같았다. 놀랍도록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이들이 죽도록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도 그것을 뽐내지 않는다. 자신들이 이룬 경지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소서리스로서 특출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메리엔델이…….”

 똑똑.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마차가 멈췄다.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따 얘기해요.”

 쉿. 입술 앞에 손가락을 세우고 엘리자베스와 메리엔델은 쿡쿡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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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도와주세요!’

 쟈넷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지르려고 했다. 있는 힘껏 내지른 목소리는 누군가의 손에 허무할 정도로 간단히 막혀버렸다. 붉게 물든 얼굴 위로 글썽글썽 눈물이 맺혔다. 어쩌지, 어쩌지.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이 일이 묻혀선 안 된다는 조바심이 쟈넷을 견딜 수 없게 했다.

 “쉿.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기묘할 정도로 익숙했다. 쟈넷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발버둥을 멈췄다. 붉게 달아올랐던 뺨이 서서히 식는다. 열기가 가라앉자 못 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노랑 색을 띈 넓은 소매. 전 대륙을 뒤져도 한 벌밖에 없을 독특한 의복이 눈에 띄었다.

 “진정됐어? 놓아줄 테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알았으면 끄덕여봐.”

 고개를 끄덕이자 단단히 턱을 붙들고 있던 손이 느슨해졌다. 쟈넷은 그에게서 도망치듯 떨어져 나왔다. 해도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회의실에서도 짙은 푸른색 옷과 타오르듯 빨간 머리카락은 한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도망치면 내가 범죄자 같잖아.”

 날렵한 턱이 씰룩거리며 난처한 미소를 띠웠다. 언제 봐도 근사한 얼굴이라며 동료들과 재잘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쟈넷의 주근깨 낀 얼굴이 다시 빨갛게 익었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진 탓이었다.

 “나도 지금까지 여기 있고 싶지 않았거든? 그러니까 우리 조용히 해결하자. 알았지?”

 쟈넷은 하얗게 비어버린 머릿속에 어서 주인, 엘리자베스에게 알려야한다는 생각만 가득 채운 채 얼떨떨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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