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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08 ㅁㄷㅇㅅ: 귀한 집 도련님을 채간 도둑 고양이라고요? 3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 공화국의 모든 쿠키가 저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도, 점잖기로 유명한 총독에게 뜨거운 커피를 맞은 것도 모두.

사건은 시작된 것은 그곳, 바로 신생 바닐라 왕국에서였다.
그들이 전설 속의 보물을 찾아 떠난 길에 만난 그곳은 과거 바닐라 왕국의 발자취를 뒤쫓는 이들이 세운 작은 나라였다. 목적지가 같아 잠시 협력을 구하려던 것이 꽤나 긴 시간을 체류하게 되는 바람에 그들은 그 새로운 왕국의 시작에 상당한 족적을 남기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나라의 핵심 인사들은 갓 오븐에서 탈출해 쿠키대륙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어리숙한 인사들로 구성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공화국 의회에서 활약하던 젊은 지식인 에스프레소맛 쿠키와 빛의 신을 따르는 공화국의 검 마들렌맛 쿠키의 재주는 지극히 귀한 것이었다.
떠돌이들이 모여 피운 작은 모닥불이 하나의 나라가 되기까지의 역사를 이곳에서 읊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인 행위이니 생략하도록 하자. 여기서 알아야할 것은 하나 뿐이다. 집정관을 몇 번이고 배출한 것은 물론 현재 총독 자리 마저 거머쥐고 있는 위대한 ____ 가문의 __대 독자 마들렌맛 쿠키가 뛰어난 마법사로 학계에서 인정받고는 있다고 하나 외지에서 들어와 아직도 의회에서 입지를 확보하지 못한 평민 출신 의원 에스프레소맛 쿠키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신생 바닐라 왕국이 땅을 다지고 건물을 세우며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동안, 에스프레소맛 쿠키와 마들렌맛 쿠키 사이에서도 역사가 흐르고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졌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끝내 자신이 마들렌맛 쿠키의 애정공세에 넘어가버리고 말았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가진 거라곤 실력과 자존심(그리고 외모)뿐인 서민 쿠키로서는 뼈아픈 패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도둑고양이 같으니. 외지인 주제에 어딜 순진한 마들렌맛 쿠키를 꼬여내느냐! 의회에서의 열정적인 활동을 보아 그래도 공화국에 해를 끼칠 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같은 소리를, 바로 그 공화국의 총독께서 부스러기를 튀겨가며 열렬하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말끝마다 외지인, 외지인. 우습지도 않다. 그가 시민 자격을 가지고 이 나라에 정착한 게 벌써 __ 년째인데 아직도 외지인 소리를 듣는 게 지겨웠다. 당신 자식을 해친다고 공화국에 해가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커피가 방울방울 맺혀 흘러내리는 코팅을 털어내었다. 동그란 손이 커피에 젖어 짙게 물들었다.
“진정하시지요.”
“진정하라고? 이 놈이 그래도!”
“소리만 지르지 말고 잠시 제 이야기를….”
“에스프레소맛 쿠키 괜찮나!”
하아아.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눈을 감고 긴 한숨을 토해내었다. 끝내 참지 못하고 쳐들어온 마들렌맛 쿠키가 그의 주위를 맴돌며 누군가 딸기를 훔쳐간 케이크 개처럼 안달을 했다.
“왜 평소보다 더 까맣지? 젖기라도 한 건가? 커피를 흘렸나? 하지만 한 모금도 안 마신 것 같은…, 아버지!”
이걸 수습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웃었다. 정말. 귀찮다.

정말로 케이크 들개라도 된 양 짖기를 멈추지 않는 마들렌맛 쿠키와 그의 아버지 ____맛 쿠키를 겨우 뜯어말린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조용히 선언했다.
“들어오는 길에 이미 혼인신고는 마쳤습니다. 허락을 받든 받지 않든 저와 마들렌맛 쿠키는 법적 부부란 의미지요.”
“뭐, 뭐라고?”
____맛 쿠키가 휘청거렸다. 평소라면 잽싸게 달려가 부축했을 마들렌맛 쿠키는 잔뜩 삐친 표정으로 외면할 뿐이었다. 다행히 마들렌맛 쿠키 못지 않게 강건한 면이 있는 ____맛 쿠키는 금세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도둑고양이…!”
“에스프레소맛 쿠키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이…, 이 천둥벌거숭이야!”
버럭 소리를 지른 ____맛 쿠키가 어지러운 듯 이마를 짚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그런 ____맛 쿠키를 보고 빙긋 웃었다. 제가 수도 없이 느낀 답답함을 남이 겪는 걸 보고 있으니 그리 속시원할 수가 없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가 쿠키가 아닌 파이였다면, 진작에 속이 터져 파이의 몰골이 아니었으리라.
“진정하신 것 같으니 이야기를 해도 되겠군요.”
그러니까 그만 좀 싸우라는 말이야. 에스프레소는 메세지를 담아 보기 좋게 웃어보였다. 학회나 의회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제 말을 막아서는 쿠키를 향해 내보이곤 하는 미소였다.
“공화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마들렌맛 쿠키가 제게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한데 그 약조를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마들렌맛 쿠키가 아니라 총독님, 당신이더군요. 그래서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비록 커피를 맞기는 했지만요.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앙심 같은 건 없다는 듯 활짝 웃었다. 물론 진심으로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네 녀석 대체 무슨 약속을….”
“별 거 아닙니다. 들어보세요.”
잽싸게 끼어든 마들렌맛 쿠키가 에스프레소맛 쿠키의 말을 가로챘다. 또다, 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진절머리가 났지만 이 쿠키에게 품위를 언급하며 화내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은 바였다. 게다가 어쩌면,
‘저런 면이 사랑스러운지도 모르고.’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왠지 텁텁한 입을 커피로 씻었다. 내가 어쩌다 이러고 있는건지. 한숨이 절로 났다. 총독이 뒤집어씌운 커피가 제 커피잔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이미 커피가 몸속으로 꼼꼼하게 스며든 뒤의 일이었다.
“……니까 결국 에스프레소맛 쿠키에게 후원하면 마법사들을 공화국으로 더 끌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절대 손해가 아니에요.”
“마법 학회에는 충분히 투자하고 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커피 마법의 1인자입니다. 저는 커피 마법의 위력을 눈으로 확인했어요. 그에게 하는 투자는 곧 이 나라를 위한 투자가 될 겁니다.”
“마법사만으로 군대를 구성할 수는 없어.”
“커피 마법사를 군대에 투입할 수 있다면, 군부대의 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득을 보는 투자예요.”
“당장 예산을 어디서….”
“ー자, 자. 두 분이 의견을 충분히 나눈 것 같은데 이만 제 이야기도 들어보는 게 어떠신지요.”
동시에 그를 돌아보는 두 쌍의 푸른 눈동자가 꼭 닮아있었다. 가족이라고 해서 쿠키끼리 닮는 것은 아닌데도.
“우선.”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작게 헛기침했다.
“예산을 어디서 끌어올지는 제가 이미 생각해두었습니다.”
총독 ____맛 쿠키가 눈을 부라렸다. 어디 말해보라는 듯 팔짱을 낀다.
“마법학회에 배정된 예산 중에 놀고 있는 예산이 있습니다. 매년 남은 예산을 소비하기 위해 아카데미 정원을 갈아엎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학과에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고 있죠. 제가 원하는 건, 그 남아도는 예산입니다.”
그걸 위해서 아까운 연구 시간과 개인 수련을 포기해야했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높으신 분들에게 그걸 하소연해서 어디에 쓸까. 하물며 마들렌맛 쿠키는 그 긴 이야기를 듣고도 깔끔하게 잊어버린 얼굴인데 말이다.
“대학에 예산 분배를 새로 요청했지만 관습이라는 말로 얼버무리더군요. 그들에게 예산을 요청하는 입장인 제 말로는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총독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겸사겸사 마들렌맛 쿠키의 생활비에서도 연구비를 받아갈 거라는 이야기 역시 하지 않았다. 마들렌맛 쿠키의 개인 사정이니 굳이 그 아버지가 알아야할 필요는 없겠지.
총독은 예산을 추가로 분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의회에서 늙다리 의원들을 상대할 때 종종 그리했듯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비웃음을 부드러운 미소로 대체하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수도 안에 마들렌맛 쿠키와 에스프레소맛 쿠키의 혼인이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들의 신고를 받아준 구청 직원의 입에서 시작된 소문은 바로 다음날 지역 신문에 실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번져있었다. 두 쿠키의 유명세라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라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신문을 넘겼다.
“아무렇지 않은가보군.”
건너편에 앉아있던 마들렌맛 쿠키가 말했다. 그의 시선은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난 그들의 결혼 기사에 꽂혀있었다.
“예상한 일입니다. 호들갑 떠는 쪽이 이상하죠.”
“그렇긴 하지만….”
착잡한 표정으로 신문을 응시하던 마들렌맛 쿠키는 제 앞에 놓인 향기로운 꽃차를 한모금 들이켰다. 그리곤 답지 않게 긴 한숨을 내쉰다.
“결국 이렇게 되었어.”
“네. 계획대로군요.”
“식은 이번달 안에 올리도록 준비할거야.”
“그리하시죠.”
마들렌맛 쿠키는 착잡한, 정말이지 그 답지 않은 표정이었다!, 얼굴로 에스프레소맛 쿠키를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아무렇지 않은 건가?”
그제서야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신문에서 눈을 떼었다. 붉은 빛을 띈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마들렌맛 쿠키는 우물쭈물 눈을 돌렸다.
“뭐가 말입니까?”
“우리가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 말이야.”
“동요해야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어차피 계획대로인데 뭐가 그리 문제입니까? 에스프레소맛 쿠키가 눈으로 물었다. 아니…. 마들렌맛 쿠키는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우물거리다가 입을 다문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다시 신문을 치켜들었다.
“한가하게 그러고 앉아있을거면 나가서 훈련이라도 하시죠.”
그 말에 마들렌맛 쿠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신문 너머로 보이는 그의 납작한 얼굴이 묘하게 쓸쓸해보인다고 생각했다. 성가셔라.
“마들렌맛 쿠키.”
“응?”
“식은 아직이지만 우리는 부부입니다.”
“그렇지?”
“부부끼리 아침 식사 후 가볍게 산책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신성한 화덕에 반죽을 올리는 건 무리겠지만요.”
“……뭐?”
“아침 식사하고 함께 산책을 하도록 하죠. 저도 돌아오자마자 연구실에 틀어박힐 수는 없으니까요.”
할 일도 많고.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그렇게 말하곤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말을 많이 해서 입이 말랐다.
“다시 말해봐.”
마들렌맛 쿠키가 무서운 얼굴을 하곤 벌떡 일어났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지금, 반죽이라고—.”
아.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피식 웃었다. 비웃음인지 그냥 미소인지 애매한 웃음이 입술을 덮었다.
“지금은 부부라고 해도 다들 실감이 나지 않을 겁니다. 아직은 신성한 화덕에 반죽을 올리기 적절한 시기가 아니죠.”
“그 얘긴, 설마, …설마.”
“예, 말씀하시지요.”
“나와 반죽을 만들어주겠다는 건가?”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코웃음쳤다. 그 재수없는 표정에도 마들렌맛 쿠키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떨어진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금 하는 이야기가 그에게 워낙 중요한 것이어서 그랬다.
“예, 뭐. 당신 집안에 후계자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혼자 만드셔도 상관 없고요. 에스프레소맛 쿠키가 중얼거렸다. 마들렌맛 쿠키가 달려와 덥썩 에스프레소맛 쿠키를 끌어안았다. 악. 작게 비명이 울렸다.
“부스러집니다. 부스러기 떨어지는 거 안 보입니까!”
“미안하네. 미안해! 하하, 하하핫!”
“내려놓으십시오!”
결국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나마도 에스프레소맛 쿠키의 접근금지령으로 인해 나란히 걸을 수는 없었지만, 마들렌맛 쿠키는 기분이 좋아보였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소문을 한층 무성하게 만들었다.

식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차피 사용인들과 마들렌맛 쿠키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기에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마음껏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의회와 아카데미에 복귀 신고를 하고, 연구실을 청소했으며, 그 사이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마들렌맛 쿠키가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할 리는 없었으니 자신이라도 멀쩡한 보고서를 제출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작업했다.
식은 예상보다 빠르게 잡혔다. 이 주 뒤였다. 덕분에 이 주 안에 공화국 총독 자식의 결혼 연회를 준비해야하는 일꾼들만 바빠졌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예복을 맞출 때를 빼고는 식장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들렌맛 쿠키는 아주 신이 난 것 같았고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결혼식이 마들렌맛 쿠키의 기운을 빼놓는 것이 반가웠다. 결혼식 준비가 시작되면서 만날 때마다 귀찮게 들러붙는 일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총독과 직접 담판한 보람이 있는지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배정하는 예산이 제법 넉넉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세우며 희희낙낙했다. 총장은 넉넉해진 예산의 대가로 그에게 수업을 더 배치하려고 했으나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터무니없는 수업 계획서로 응대했다. 예산 나올 구석도 생겼는데 아카데미따위 확 그만둬버릴까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ー, 그의 의회에서의 입지가 아카데미와 학회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된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입을 삐죽였다.
그래도 마들렌맛 쿠키와 총독이라는 뒷배가 크기는 했다. 의회에서 그를 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게 느껴졌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쓸모없다고 마들렌맛 쿠키를 비난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쨌든 도움은 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결혼식이었다. 마들렌맛 쿠키가 화려하고 성대한 연회를 준비했으리라는 것은 예상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에게도 기꺼운 일이었기에 특별히 참견하지 않았다. 마들렌맛 쿠키는 천둥벌거숭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철없는 도련님이었지만, 그의 집안은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으니 체면을 구길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성가신 것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외부인 소리와 떨어질 수 있다면, 더는 학회에서 줄을 잘 타려고 억지 미소를 짓지 않아도 된다면 이까짓 것 못 참을까. 다만 진짜 문제는…,
“에스프레소맛 쿠키, 시간 괜찮은가? 내가 우리의 새 반죽을 구상해봤는데!”
그래. 이 녀석이었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쿠키다. 빛의 신이시여. 이 녀석 안 거둬가시고 무엇 하십니까. 아니, 거둬가면 곤란하긴 하지만서도.
“그런 건 식을 올린 이후에 의논하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런 것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 않나!”
“맞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정신없을 때가 아니라 둘 다 차분하게 머리를 맞댈 수 있을 때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래도는 뭐가 그래돕니까.”
부스러기가 튈 정도로 이를 갈자 그제서야 입을 다무는 마들렌맛 쿠키였다. 기가 죽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 돌아선다.
“그럼 결혼식을 올린 후에는 상의해주겠지?”
“물론입니다. 그때까진 참으십시오.”
그거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연회에는 수도의 유력인사가 대부분 참가했고, 거리에까지 음식을 돌렸다. 꽃과 음식을 든 작은 쿠키들이 그들에게 축하를 건냈다. 식을 올리고 춤을 추고 축사를 주고받다보니 하루가 훌쩍 갔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기진맥진해 침대에 늘어졌다. 마시멜로 매트리스가 허공에 던져진 몸을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지쳤습니다.”
“하하, 나도 그래.”
마들렌맛 쿠키가 말했다.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보였다. 지쳤다고 말하는 마들렌맛 쿠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기력도 좋다고 생각하며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저는 좀 자겠습니다. 나중에 뵙죠.”
“잠깐!”
“뭡니까.”
마들렌맛 쿠키의 하얀 손이 에스프레소맛 쿠키를 붙들었다. 인상을 찌푸린 에스프레소맛 쿠키에게 마들렌맛 쿠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자면 안 되네!”
“네, 네. 말씀하시지요.”
결국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다시 몸을 바로 눕혀 눈을 감았다. 적당히 대답해주다 자면 되겠지.
“우리 반죽 말일세!”
“네?”
“반죽에 대해 의논해야하네. 오늘 하자고 하지 않았나.”
“제가요? 언제요?”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소리람.
“결혼식 이후에 말하자고 했잖은가.”
그가 당당하게 웃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의 미간이 마구 구겨졌다.
“내일 하시죠.”
다시 돌아누웠다. 다시 막혔다.
“내가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 아나. 할 이야기가 잔뜩 있어.”
“전 없습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 너를 닮은 쿠키였으면 좋겠어. 커피를 꼭 넣어야한다고 생각해.”
“내일 합시다.”
“하지만 완전히 자네만 닮아서는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실 게 틀림없어. 그러니 어느정도는….”
“아, 내일 하자고요!”
“들어보게!”
“싫습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
“마들렌맛 쿠키!”
밤은 길었다. 결국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그날 한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연구를 위해 세워둔 수면계획은 완전히 엉망이 됐다.
“아아아악! 당장 떨어지란 말입니다!”
“하지만 들어봐. 이게 제일 중요하단 말이야!”
사용인들은 예감했다. 지금까지의 평화는 그저 폭풍 전의 고요였음을. 갓 탄생한 신혼부부는 정말이지, 사이가 심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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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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