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급시 폭주하는 신기사를 감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회의실 지하 공간은 지독히 답답한 공간이었다. 공기는 텁텁하고, 실내에는 기분을 환기시킬만한 물건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지암은 솔직히 이런 곳에서 태연히 잠이나 자고 있는 미캉이 놀라웠다. 역시 가둬둔 거 아니야? 의심이 뇌리를 스친다.

그들, 그러니까 세츠와 지암이 이곳을 알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지암이 누르라는 어린 신기사가 툭하면 회의실로 향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것이 시작이었다. 누르는 제법 어린아이가 많은 중앙청에서도 눈에 띄는 신기사였다. 히로와 함께 중앙청 초창기 멤버라는 누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회의에 끼거나 중앙청 주요 인사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호기심이 많아서 위험한 곳에도 곧잘 자원했고 붙임성도 좋았다.

그런 누르가 특별히 사람이 없는 시간을 골라 회의실에 출입하는 모습은 눈길을 끌었다. 앙투아네트나 안화에게 물어도 수상하게 웃을 뿐이다. 결국 지암은 누르를 직접 붙들고 물어야했다.

「회의실 지하에는 최초의 지휘사가 있다.」

그게 누르에게서 얻은 정보였다. 최초의 지휘사.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세한 사정을 묻고 싶었지만, 누르는 히로의 부름을 듣곤 쪼르르 달려가버렸다.

지암은 고민 끝에 자신이 알아낸 것을 세츠에게 털어놓았다. 늘 그렇듯 세상에 심각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웃던 세츠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회의실 지하라고?”

“응. 무슨 문제라도 있어?”

“거긴 폭주하는 신기사나 지휘사를 억류하기 위한 장소야. 안화가 만약을 대비해 만들었어. 중앙청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장소지만 한 번도 사용된 적은 없을텐데.”

“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일어난 것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이 없을 정도로 동시였다.

 

 

그들이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그닥 재미도 없을 것이다. 세츠와 지암은 그저 남몰래 지하실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과 그곳에 앳된 얼굴의 여자아이가 잠들어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니까. 그 사이 중앙청 지키미들과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누가 그런 것을 궁금해하겠는가.

어쨌든 지암은 지금 회의실 지하에 있었고 최초의 지휘사라던 소녀는 그의 눈 앞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꿈나라로 떠나려는 듯했다. 잠깐, 꿈나라?

“이봐. 일어나요.”

지암은 미캉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적당히 성희롱이 되지 않을만한 부위를 콕콕 찔러보았지만 인상조차 찌푸리지 않는다.

“저기요.”

정말로 미동조차 없다. 지암은 고개를 푹 숙였다가 일어나 작은 침대에 엉덩이를 걸쳤다. 작고 답답한 방에는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물건 외에는 놓여있는 게 없었다. 한쪽 구석에는 어린아이라도 몸을 들이밀 수 없을듯한 작은 환풍구가 보였고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그게 다였다.

“자려고 나 부른 거예요?”

왜일까.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치겠네, 정말. 결국 지암은 소녀를 깨우기를 포기했다. 그대로 다시 지하실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가지 마.”

간신히 놓치지 않을, 작은 목소리가 발목을 잡아챘다. 지암이 돌아서자 미캉이 이불에 폭 파묻힌 채, 배게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저번에도 찾아왔었지. 왜?”

소녀가 속삭였다. 지암은 간신히 그 말을 알아들었다.

“당신이야말로 왜 이런 데 있는 거예요?”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은 많았다. 하지만 다른 질문은 아직 일렀다. 지암은 어렵싸리 말을 뱉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일련의 사건을 생각해보면 미캉이 이 장소에 갇혀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문은 열려있었고 그는 존중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이 방 안의 풍경이 클 것이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풍경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공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미캉은 언제나 졸려보였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랬기 때문에 세츠는 그토록 간절했던 것이다. 오랜 친구에게 불 같이 화를 내고, 소중한 지휘사를 데리고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지암은 세츠의 심정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상냥함과 자기파괴적인 배려는 지암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캉은 지암과 눈을 맞췄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양 생기가 없었다.

“너는 새 지휘사지?”

미캉이 말했다. 지암은 잠시 망설였다.

“맞아. 최근에 새로 들어왔어. 어쩌다 들어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름이 뭐야?”

“지암. 너는 미캉이지?”

“나는 이곳에 강제로 들어온 게 아니야.”

미캉은 지암의 말투가 바뀐 것도, 그의 질문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지암은 조금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뒤늦게라도 화를 냈을지 모르지만 지암은 아니었다.

“그럼 왜 이런 데서 사는 거야?”

지암은 눈동자를 굴렸다. 다시 봐도 삭막한 방안이 빠르게 스쳐갔다. 미캉은 대답이 없었다.

“졸려.”

돌아눕는 소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자지 말아줘….”

애원하듯 한탄하자 검은 눈동자가 지암을 똑바로 향했다. 표정없는 얼굴에 흐릿한 의문이 지나간다.

“너는 네 삶을 살면 돼.”

미캉은 그렇게 말했다. 제 일에 끼어드는 지암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커다란 눈동자 가득 의아함을 담은 채였다. 지암은 머리를 긁적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건 세츠가 전문인데 하필 자리에 없었다. 부탁 받았으니 대신 힘내봐야지. 에휴.

“널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어.”

“왜?”

“네가 행복해보이지 않으니까.”

“나는 행복해.”

“이런 방에서 홀로 잠만 자는 게 네 행복이야?”

“응.”

지암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막힘없이 대답이 돌아오니 할 말이 없었다. 고민 끝에 지암은 선택했다.

“?!”

“얌전히 좀 있어봐.”

튼튼한 두 팔로 작은 몸집의 소녀를 번쩍 안아들고 지암은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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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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