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타입 자캐 커미션입니다







 간절히 바라던 꿈이 정작 현실이 되면 뜻밖에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다. 현실이 버겁기 때문인가. 어쩌면 정말 바라는 꿈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의심은 변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점차 자라나고 있었다.

 요시노 렌게는 갓 데뷔한 아이돌이다. 아직 얼굴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자기 홍보를 위해 들어오는 일이라면 길거리 판촉이라도 마다할 수 없는 무명 아이돌. 렌게에겐 길게만 느껴지지만, 남들은 금세 데뷔했다고 부러워하는 연습생 기간을 거쳤다. 예쁜 아이들이 수도 없이 모여있는 아이돌 기획사에서도 눈에 띄는 미모 덕인지 먼저 오디션에 합격한 선배들을 제치고 데뷔가 결정됐다.

 오디션을 본 건 우연이었다.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렌게가 처음부터 아이돌을 꿈꿨던 게 아니었다. 길을 가다 스카우터에게 명함을 받았고, 그걸 누가 봤는지 학교에 온통 렌게가 아이돌 오디션을 본다는 소문이 퍼져서 차마 생각이 없다고 답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준비한 것도 없는데 붙어버릴 줄 알았다면 무슨 핑계를 써서라도 빠졌을 것이다.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다. 합격 통지와 함께 소집일을 통보받았지만, 렌게는 나가지 않았다. 오디션을 위해 무대에 섰을 때도 심장이 떨려 혼났는데 그런 일을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니 끔찍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기획사 관계자가 렌게네 집을 방문했다.

 렌게에게 명함을 건넸던 스카우트와 채용 담당자라는 사람, 그리고 렌게 또래 아이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 애는 자신을 기획사 사장이라고 소개했다. 렌게는 물론 부모님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찾아온 용건은 간단했다. 자기들이 렌게를 데뷔시키겠다는 거였다. 렌게의 부모님은 둘 다 학술계 종사자로 방송계를 곱게 바라본다고 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님 설득은 채용 담당자라고 밝힌 키쿠치가 도맡았다. 렌게의 마음을 돌린 건 사장, 미사키 야스하였다.

 거실에서 어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렌게와 야스하는 렌게의 방으로 이동했다. 딱 맞는 검은 수트를 갖춰 입은 야스하에게서는 당당함과 품위가 느껴졌다. 야스하와는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방이었음에도 특유의 아름다움은 빛을 잃지 않았다. 렌게로서는 마주하는 것만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

 “왜 나오지 않았죠?”

 야스하가 물었다. 오디션 본 기획사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하던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제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니까요.”

 렌게는 애써 눈을 피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자리도 권하지 않았는데 야스하는 렌게의 책상 의자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합니까.”

 책망조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야스하는 그저 궁금한 듯했다. 이유까진 생각해두지 않았던 렌게는 조금 당황했다.

 “무대에 서는 건 저한테 무리예요.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춤도 못 추고,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어요.”

 “오디션에 합격했잖아요?”

 “네?”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건 당신이 매력적이라는 의미죠. 우리는 스타를 키워내는 일을 합니다.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어요.”

 야스하는 온화하게 웃었다. 날카로운 인상이 미소에 살그머니 누그러졌다. 렌게는 왜 이 사람이 아이돌을 하지 않는 걸까 의문스러웠다.

 “아니면 전문가의 판단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에요.”

 렌게는 곤혹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뭔가 다른 이유라도?”

 “그게…….”

 렌게는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만한 좋은 대답을 고민했다. 건강이 안 좋아서? 학업에 전념하고 싶어서? 그도 아니면 아이돌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어느 쪽이라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뭐라고 대답하면 야스하가 화내지 않을까. 전부 그럴듯하지만 뭐라고 해도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걸 들킬 것만 같았다.

 “주목받는 게 무서운가요?”

 “……!”

 다른 모든 상황을 가정했지만, 이것만은 생각하지 못했다. 렌게는 호된 꾸중을 들은 어린애처럼 얼어붙었다. 야스하는 그런 렌게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물었다.

 “사람들이 당신을 쳐다보는 게 싫습니까? 지금도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그건…….”

 변명이라도 해볼 참으로 입을 열었지만, 그럼 그렇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렌게는 애꿎은 손끝만 쥐어뜯었다.

 “절 보세요.”

 야스하가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오해의 여지 없는 명령조였다. 렌게는 머뭇머뭇 야스하를 쳐다보았다. 야스하는 다 이해한다는 듯 따뜻한 시선으로 렌게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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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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