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커미션에서 이어집니다






 “웃어봐요.”

 야스하가 명령했다. 렌게는 눈만 깜빡였다.

 “어서.”

 렌게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 사람 기분이 상했구나. 렌게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이렇게 근사한 슈트를 입은 사람이 렌게의 방에서 자신을 해칠 리 없다고 이성이 말하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잘했어요.”

 야스하는 살갑게 웃는 얼굴 그대로 렌게에게 다가와 상체를 기울여 얼굴을 가까이했다. 렌게는 핀에 꽂힌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미소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워 필사적이 되었다.

 “이렇게 예쁜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죠. 세상에는 예쁜 걸 보고 숭상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가 알아서 준비할 테니까. 요시노양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쉿.”

 렌게는 붉은 입술이 속삭이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꺼낼 수 있는 반론조차 없었지만, 할 말이 있었더라도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야스하는 아름답고 절대적이었다. 렌게는 야스하의 시선에 포박당한 채 방향키를 내어주고 말았다.

 “아침 아홉시에 기획사로 찾아오세요. 오디션 합격자라고 하면 안내해줄 겁니다.”

 “네.”

 야스하는 눈을 가늘게 뜨곤 귓속말이라도 하듯 렌게의 뺨 근처로 입술을 가져왔다. 뜨듯한 바람이 느껴져 렌게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코웃음 소리가 났다. 야스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쳐 갔다. 렌게는 돌아볼 수조차 없었다.

 “나올 거죠?”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렌게는 허공에서 흔들리는 시선을 붙들며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손끝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내일은 학교에 가야 하는데요.”

 희미하게 들린 건 분명 혀를 차는 소리였다. 렌게는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하면 결석으로 처리되지는 않겠죠. 렌게양은 모범생이니까요.”

 허락한 적도 없는데 이름을 부른다. 렌게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야스하와 등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담임 선생님께도 회사에서 연락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 하는 빈정거림이 들리는 것 같아 솜털이 쭈뼛 섰다.

 “아니에요. 그럼 내일, 내일 뵈어요.”

 “고작 연습생 수업에 사장이 일일이 참관할 필요는 없겠죠. 푹 주무세요. 내일은 고단한 하루가 될 테니.”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다정하지만 비참한 말을 남기고 야스하는 방을 나갔다. 부모님 쪽은 이야기가 쉽게 풀리지 않는지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렌게처럼 호락호락할 리 없는 부모님이었다.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부부는 대개의 고학력자가 그렇듯이 학구열이 높은 것은 물론 보수적이고 깐깐하기까지 한 사람들이었다.

 렌게는 최대한 바깥소리에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잠잠해지질 않았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혀보려는 렌게를 방해했다.

 “렌게양.”

 문이 열리더니 야스하가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웃어 보이는 눈매가 예뻤다. 렌게가 얼이 빠져 있으니 야스하가 손을 잡아끌었다.

 “해줘야 할 얘기가 있어요.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렌게는 부모님과 키쿠치 앞에 세워졌다. 겁먹은 렌게가 야스하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물어보세요. 렌게양이 제게 말했으니까요.”

 “저게 정말이니?”

 아버지가 역정을 냈다. 렌게는 당황했다.

 “뭘요?”

 “저 사람이 네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했다는구나.”

 어머니도 한마디 거들었다. 렌게는 놀라서 야스하를 쳐다봤다.

 “꼭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했잖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야스하는 여전히 친절하게 웃고 있었다.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항변할 뻔했다. 렌게는 부모님을 보았다가 엄한 눈초리에 기가 꺾였다.

 “정말이에요. 저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야스하가 부드럽게 어깨를 토닥였다. 어머니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학업이 중요하다는 두 분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젠 아시겠지요. 따님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언 지를요. 렌게양은 워낙 모범생이고, 두 분의 의견을 존중하니까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몰래 오디션을 본 거죠. 따님의 꿈을 기어이 막으셔야만 행복하시겠습니까. 렌게양에게도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주셔야지요.”

 아버지는 긴 침음성을 뱉었다. 끝내 이긴 것은 야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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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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