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타입 드림 커미션입니다





 미쿠니 히사오미와 아케미 마리는 소리 없는 술렁임 속에 서있었다. 학생들이 눈치껏 두 사람을 구경하느라 자리를 뜨지 않아 캠퍼스에 점점 사람이 몰리고 있었다. 시선에 익숙한 두 사람이 의식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이걸 당신이 주웠다고요?”

 히사오미가 물었다. 오늘도 그는 반듯하게 각이 잡힌 정장 바지와 셔츠에 계절에 어울리는 산뜻한 색으로 맞춰 입은 니트 조끼가 잘 어울리는 근사한 모습이었다. 입은 옷은 물론이고 차고 있는 시계와 구두까지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만한 고급 제품이었으니 그가 근사해 보이지 않는다면 장인들의 자존심이 울고 갈 판이었다.

 “네.”

 그에 반해 히사오미에게 응대하고 있는 마리 쪽은 별로 보기 좋은 차림은 아니었다. 때는 끼지 않았지만 다리기는 한 건지 구깃거리는 셔츠가 눈에 띄었다. 긴 머리카락은 겨우 빗기만 했는지 정전기에 중간중간 일어나 있다. 매고 있는 조그만 핸드백은 시장에서 파는 보세 상품이 분명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이렇게 다른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음에도 별로 격차가 나 보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마리의 미모 덕분이었다. 창백한 뺨에 까만 생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마리는 꾀죄죄한 차림에도 불구하고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을만한 미인이었다. 조그만 얼굴에 오밀조밀 자리 잡은 이목구비, 히사오미의 가슴께에나 오는 아담한 키, 가느다란 팔과 허리까지 마치 잘 만든 일본 인형 같다. 한 가지 흠이라면 여자다운 풍만함이 모자란다는 것인데, 마리 정도의 미모라면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남자들이 곳곳에 널렸으리라.

 히사오미는 마리로부터 지갑을 받아 품에 넣었다. 새빨갛게 물들었던 마리의 뺨이 거의 원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확인은 안하시나요?”

 마리가 물었다. 히사오미는 아차 하며 지갑을 도로 꺼냈다. 지폐와 동전, 신분증 따위를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아무 이상 없네요. 확인까지 시켜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마리는 히사오미가 지갑을 넣는 것까지 확인하고는 곧장 고개를 숙였다.

 “잠깐만요.”

 마리는 돌아서다 말고 히사오미를 보았다.

 “그렇게 가시면 곤란합니다. 사례는 하게 해주셔야죠. 지금 바쁘신가요?”

 마리는 잠시 고민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히사오미는 웃는 낯이었다.

 “아뇨. 바쁘지는 않습니다.”

 “그럼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데, 함께 가시겠어요?”

 히사오미가 상냥하게 말했다. 마리는 히사오미 뒤에 있는 친구들을 눈짓했다.

 “괜찮습니다. 일행도 계신데요.”

 “친구들과는 매일 함께 식사하는 사이입니다. 어차피 지갑을 찾아주시지 않았으면 식사도 못 할 뻔했는걸요.”

 “낯선 사람과 함께 식사하는 건 불편해서요.”

 마리는 곤란 해하며 눈썹을 찌푸렸다. 히사오미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럼 친구들을 무르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대접하는 거로 하지요. 그럼 괜찮으십니까?”

 “그것도 좀…….”

 그 순간 마리의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물들었다. 히사오미도 눈을 크게 떴다. 꼬르륵. 작은 소리가 마리의 배에서 울린 탓이다. 다행히 주변에는 들리지 않을만한 작은 소리였다. 마리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되면 뵙도록 하지요. 안녕히 가세요.”

 히사오미가 얼떨떨해 있는 사이 마리는 자리를 벗어났다. 시선이 마리를 따라왔지만, 사람들이 흩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마리는 제 이름을 크게 부르는 소리에 멈춰섰다. 히사오미였다.

 “아케미 씨!”

 “무슨 일이신가요.”

 히사오미는 부드럽게 웃었다. 타고난 얼굴은 아니지만, 제법 준수하다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제법 말이 많은 그 미소였다.

 “함께 식사하십시다. 배 많이 고프신 것 같은데 저 때문에 지체됐으니까요. 지갑도 찾아주셨는데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분들은요?”

 “먼저 보냈지요. 미인과 함께 식사한다고 아주 부러워하던데요.”

 히사오미가 하하 소리내 웃었다. 마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한 번만 신세 질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깍듯하게 안 하셔도 돼요. 이쪽으로 가시죠. 맛있는 집을 압니다.”

 히사오미가 마리를 이끌었다. 그 가벼운 만남이 두 번, 세 번 이어져 결국은 무언가를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두 사람 모두 상상하지 못한 늦은 여름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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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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