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밤이 벌써 몇일째일까. 눈이 시리고 뻑뻑했다. 소년은 꼿꼿한 자세지만 묘하게 불안정한 걸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달빛을 받은 바닥이 반짝반짝 빛났다. 소년의 눈동자가 초점없이 흐릿했다. 거의 흰자와 구분이 가지 않는 옅은 회색빛 홍채는 달빛이 꽤나 밝은데도 불구하고 풀어져 동공이 크게 확대돼 있었다. 아무 것도 신지 않은 하얀 발이 닿은 바닥에는 붉은 눈송이가 점점히 박혔다.
  비틀, 소년의 몸이 균형을 잃고 작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무의식 중에 바닥에 댄 손바닥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들려진 손에서 붉은 눈송이가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눈송이가 달빛에 반짝하고 빛났다. 몸을 일으킨 소년은 움직이지 않고 잠시 이마에 손을 짚은 체 그 자리를 지켰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소년은 느릿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닿은 소년의 새까만 머리카락이 하이얀 달빛과 반짝이는 바닥에 대비해 구멍이 뚫린 듯 보였다.

  '오늘은 달이 참 밝다, 그치?'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흐릿한 두 눈이 초점을 찾았다. 몽롱한 표정을 한 소년이 다시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겼다. 눈에 띌 정도로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점점이 이어지던 붉은 눈송이는 조금씩 커져서 마침내 붉은 발자욱이 되었다.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급하게 꺾이는 무릎이 위태로웠다. 비틀, 비틀. 흔들거리며 힘겹게 몸을 옮겼다. 은빛으로 빛나는 길지 않은 길이 끝나고도 몇걸음인가 더 나아간 소년은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소년의 발이 닿은 마지막 자리까지 붉디 붉은 발자욱이 이어졌다. 등은 하얗기만 한 발의 바닥은 온통 붉었다. 붉은 조각이 발바닥을 온통 메웠다. 드디어 감긴 두 눈과 창백한 얼굴은 전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진 작은 소년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응, 둔켈도 행복한 꿈 꾸길.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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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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