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뛰어넘을거야.”

 단이 말했다. 길가메시는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그런 길가메시를 곁눈으로도 쳐다보지 않았다. 담담한 선언이었다. 길가메시는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하고 흘려넘겼다. 그러자 단은 길가메시를 쳐다보았다.

 “당신을 뛰어넘을 거야.”

 다시 한 번 내뱉은 말은 조용하지만 단호했다. 의지가 느껴지는 말에 길가메시는 찌푸린 체 소녀를 돌아본다. 현재 길가메시를 담당하고 있는 마스터, 단은 작은 몸집의 소녀였다.

 당돌하다 못해 건방지기까지 한 말에 길가메시는 그저 웃고 만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패기라곤 없어서 이딴 게 자길 소환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던 여자아이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이 자라있었다. 생기 넘치는 눈빛과 곧게 편 등,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는 곧은 시선까지. 마치 사람이 달라진 듯한 변화였다.

 “그렇다면 짐은 네놈을 죽여야겠군.”

 길가메시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하게 뱉어진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좀 더 고압적으로, 좀 더 분노를 담아 했어야 하는 말이었다. 연약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화가 났다.

 “그러지 않을 거잖아.”

 단은 웃었다. 으레 그러듯 연약하고 부서질 것 같은 미소였다. 어리석은 잡종 같으니. 저런 표정으로 누굴 뛰어넘겠다고?

 성장이야 하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만이라면 길가메시가 기나긴 세월을 겪으며 만나본 수많은 마술사 중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소녀는 처음 만났을 당시 평범한 수준의 마술 밖에 쓰지 못했다. 오죽하면 재능이 마력에만 미치고 그 외의 부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그러던 것이 눈빛이 살아나는 것에 더불어 마술이 발전하더니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이제는 어지간한 마술사에게선 손도 대지 않고 항복을 받아낼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고작해야 마술 능력이 조금 향상된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자 장군이고 무인이었던 길가메시와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길가메시가 아니라 단, 미천한 인간 본인이리라.

 단은 저가 길가메시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눈치를 보는 것은 몸에 벤 습관일지 몰라도 길가메시를 향한 선망의 눈빛은 감출 수 없었기에 길가메시는 언제나 이 작은 소녀의 꿈과 심경을 단번에 꿰뚫을 수 있었다. 단은 길가메시 앞에서 늘 말을 조심했고(비록 대화술은 엉망진창이었어도), 무엇이든 따라하며(어설픈 흉내일 뿐이었지만), 어떻게든 길가메시에게 어울리는 마스터가 되고자 했다. 그런 점이 귀여워 살려두지 않았던가.

 “왜 널 살려둬야하지?”

 “모르겠어. 하지만 당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단은 또 수줍게 길가메시의 눈치를 살폈다. 길가메시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치든 채 정수리가 제 코끝에 오는 여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평온한 말과는 다르게 불안한 듯 꼼지락거리는 손끝이 하찮기 짝이 없다.

길가메시는 갈색 머리칼 위에 손을 얹었다. 단이 흠칫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건방진 말을 하고 싶으면 적어도 떨지는 않게 연습해오도록.”

 조그만 머리통이 움직여 팔과 몸이 이루는 각도가 살짝 작아졌다. 노력할게. 단이 중얼거렸다. 길가메시는 콧방귀를 뀌곤 휙 돌아섰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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