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kTokS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7.07 [미완성] 그 옛날 이야기
  2. 2015.07.05 모험의 시작

 5.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꽃으로 밝혀진 연회장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하늘을 그대로 베껴온 천장은 푸르렀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은 뺨을 붉게 물들였다. 두근거리는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눈동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단상에 놓인 낡은 마법사 모자에 모여 있었다.

 “이벳 타우어!”

 모자 곁에 선 깐깐해 보이는 교수가 큰 소리로 호명했다. 테이블 사이에 모여선 아이들 사이에서 물결이 일었다. 단상을 오른 것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곱슬머리를 늘어뜨린 소녀였다. 같이 모여선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고, 깨끗한 얼굴에 아기자기한 이목구비는 마치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소녀는 긴장하지도 흥분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모습으로 모자를 썼다. 불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 팔랑이며 바닥에 깔렸다.

 “오.”

 모자는 잔뜩 주름진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했다.

 “알고 있단다. 네가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하지만 다른 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네 재능을 살려줄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고민할 것도 없지.”

 모자는 연이어 외쳤다.

 “슬리데린!”

 오데트 또는 이벳이라고 불리는 소녀는 그렇게 호그와트의 일원이 되었다.


 4.

 오데트는 사람이 바글바글한 기차 승강장에 서 있었다. 호그와트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는 킹스크로스 역 승강장이었다. 오데트의 양부모인 타우어 부부가 함께였다. 마법사 정장을 차려입은 부부는 오데트의 곁에 서서 함께 열차를 기다렸다.

 “꼭 여기로 다녀야겠니?”

 타우어 부인이 물었다. 그녀는 짙은 갈색 머리를 틀어올리고 드레스 같은 공단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선하면서도 강인한 눈빛을 가진 미인이었다.

 “저는 괜찮아요. 두 분 돌아가 보세요.”

 오데트는 의젓하게 말했다. 커다란 트렁크에 무엇이 들었는지 다시 떠올려보느라 총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끊임없이 움직였다.

 “널 두고 가는 게 쉽지 않구나.”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타우어씨였다. 중절모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다정한 인상의 신사였다. 타우어씨는 걱정스럽게 오데트의 짐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 덤스트랭에 다니는 게 어떻겠니. 여긴 너무 멀구나.”

 오데트는 얌전하게 대답했다.

 “학교는 꼭 고향에서 다니고 싶어요. 약속하셨잖아요?”

 타우어 부부는 서로를 마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돌아보았다.

 “물론이지. 네가 바란다면 그렇게 하렴.”

 타우어 부인이 대표로 말했다. 오데트는 웃어 보였다. 인형처럼 예쁜 웃음이었다.


 3.

 여섯 살 생일이었다.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나타났다. 크림이 묻은 케이크 커터가 땅으로 굴러떨어지고 오데트의 작은 몸이 허공에 달랑 들렸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의 품이었다. 큰 소리가 났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루 이틀 있는 싸움도 아니었다. 대신 아빠 품에 답싹 매달렸다. 햇빛에서 말린 빨래처럼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딘지 모를 곳이었다. 주점 같았는데 오데트는 한 번도 이런 장소에 와본 적이 없었다. 순간이동의 여파로 속이 울렁거렸다. 아빠는 오데트를 소중하게 안고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

 아빠는 대답이 없었다. 슬픈 눈동자가 오데트를 훑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렸다. 재촉하듯 등을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결국, 아빠는 오데트를 매단 채 플루가루를 뿌렸다. 벽난로가 초록색으로 타올랐다.

 “린츠 거리로.”

 부녀는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오데트는 벽을 보고 있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낯선 주점이었고, 아까와는 공기가 달랐다. 이번에는 오데트도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아빠와 떨어지자 몸이 절로 떨렸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두꺼운 망토를 걸쳐주고 자기도 옷을 덧입었다. 오데트는 그제야 아빠가 작은 짐가방을 들고 있는 걸 눈치챘다.

 ‘어딜 가려는 걸까?’

 아빠와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일 년에 한 번쯤 찾아와서 엄마나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곤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오데트에게는 가끔 선물을 들고 왔지만,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다. 아빠는 오데트에게 아주 작은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싫지는 않았다.

 오데트는 아빠 손을 잡고 걸었다. 겨울이면 끼는 예쁜 귀마개도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장갑도 없었다. 귀가 시렸지만, 손은 따뜻했다. 아빠는 손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빠가 오데트를 데리고 찾아간 곳은 숲 속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그림책에 들어있을 것 같은 고즈넉한 저택. 정갈하고 호화로운 저택과 복도에 놓인 값비싼 장식품이 눈을 사로잡았다. 인형처럼 얄팍한 표정을 한 오데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안내를 따라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가벼운 실내복 차림에 보온용 겉옷을 걸친 부인이 나타났다.

 “어머, 홈즈씨. 오랜만이에요.”

 부인이 말했다. 아빠도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인사했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그간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데트는 귀 기울이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그이는 지금 자리에 없어요. 저 아이인가요?”

 “오데트라고 합니다. 오데트, 인사하자꾸나.”

 오데트는 못 들은 척 쪼르르 눈에 띄는 항아리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는 사과했고 부인은 웃었다.

 “그 항아리가 마음에 드니?”

 “응.”

 “잘 됐구나. 하나라도 마음에 드는 게 있다니.”

 오데트는 부인을 돌아보았다. 뭔가 느낌이 싸했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 아가야.”

 아빠는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코너 너머로 사라지는 아빠의 등을 보며 오데트는 생각했다.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을까?


 2.

 엄마는 항상 어딘가 아팠다. 그건 오데트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할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네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엄마가 아픈 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오데트는 몸이 약했다. 갓난아이일 적에는 생사의 갈림길을 넘긴 적도 많았다고 했다. 지금도 오데트는 끊임없이 감기에 걸려있었고 시시때때로 아무 이유 없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밤에도 낮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울며 지새운 적도 많았다. 조금만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온종일 속이 뒤집혀 물만 먹고 하루를 버티는 날이 이주에 한 번은 있었다.

 탈이 많은 오데트를 돌보느라 엄마는 늘 바빴다. 본인도 몸이 좋지 않아서 환자가 둘이 있는 모양새가 되곤 했지만, 할아버지는 엄마가 멈추게 두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오데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했고, 잠시도 혼자 두지 않았다. 엄마는 한 마디 불평도 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일했다.

 오데트네 세 식구가 사는 집은 작고 낡았다. 퀴퀴한 냄새도 났다. 거실 하나, 부엌 하나에 작은 방이 하나 딸려있었다. 놀랍게도 방은 오데트의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자고 엄마는 부엌에서 잤다. 오데트는 냄새가 싫어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 곳이었다. 엄마는 매일 기침을 했다. 오데트가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달려와 안아주는 할아버지는 엄마에겐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종종 말했다.

 “너는 우리가 만든 보물이란다.”

 오데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이유는 알았다.

 오데트는 강력한 마녀였다. 아직 조그만데도 어지간한 어른 마법사만큼 마법을 쓸 줄 알았다. 절제된 솜씨, 모자람 없는 파워, 신속한 속도. 어느 면으로 보아도 밀리지 않고 어려운 마법도 몇 번 보면 금세 비슷하게 따라 했다. 할아버지는 오데트에게 자신의 지팡이를 쥐여주며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오데트가 마법을 쓰는 대가로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주었다. 가끔 할아버지와 엄마가 먹을 빵도 없을 때가 있었지만, 오데트의 간식은 떨어진 적이 없었다. 집안에서는 하수구의 썩은 냄새가 나도 오데트 방에는 달콤한 과자 향이 감돌았다.

 엄마는 마녀였지만 마법을 잘 쓰지 못했다. 어린 오데트보다도 미숙했고, 그런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오데트는 엄마를 대신해 마법을 썼다. 엄마의 지팡이는 엄마가 들고 있을 때보다 오데트 손안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1.

 한 여인이 울고 있었다.

 방안은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디서 나는지 모를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그녀의 곁에는 한 남자가 널브러진 모양새로 잠들었고 바닥에는 두 사람분의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다. 남녀의 벌거벗은 나체는 어둠에 잠겨 형체조차 불분명했다.

 여인은 엉망이었다. 슬퍼 보인다며 그의 마음을 끌었던 처연한 눈매는 눈물에 불어터져 알아볼 수조차 없었고, 달빛과 잘 어울린다던 창백한 금발은 눈물과 오물로 엉켜 얼룩졌다.

 “미안해요.”

 그녀는 웅크리고 울었다. 땡기는 배의 통증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본 사랑이 담긴 눈빛이었다. 어깨를 감싸 안는 다정한 손은 따뜻했다. 처음으로 꿈을 꿀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흐릿하게 모양을 잡아가던 꿈은 다시는 완성될 수 없겠지.

 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약에 취해 잠든 그를 두고 방을 빠져나오며 마지막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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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운 방 안을 비추는 것은 조그만 램프였다. 촛불은 규칙적으로 흔들리고 나직한 목소리가 음악처럼 흘렀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야기를 들었다. 먼 나라의 마녀 이야기, 용을 잡은 용감한 마법사의 이야기, 원탁의 기사와 멀린, 호그와트를 세운 네 명의 마법사들.

 산을 건너고 물을 건너 책을 덮으면 아이는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용감한 기사님이 될래요.”

 그날 읽은 책에 따라 장래희망은 용기사가 되기도 하고 마법사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 동화책을 덮은 아이의 할머니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기사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매일 묻는 말, 매일 하는 대답.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약한 사람을 지켜줘야 해요.”

 씩씩하게 말하면 할머니의 고운 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어느샌가 연극의 마지막 대사가 나올 차례.

 “누구보다도 여자와 아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단다. 절대 잘못된 행동에 타협해서는 안 되지만 누군가를 지킬 때는 그 사람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지. 영웅은 모두 그렇게 하니까.”

 “손가락 걸고,”

 “약속.”

 아이와 할머니는 서로의 손바닥에 사인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정해진 의식처럼 매일 밤 단둘이서 하는 약속이었다. 이 시간에는 아이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참견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서로 꼭 끌어안았다.

 “잘 자렴.”

 “안녕히 주무세요.”

 자리에 누운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램프를 끈 할머니는 방을 나선다. 아이는 목까지 이불을 덮고 완전히 빛이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캄캄한 방안에 혼자 남으면 그제야 느리게 잠이 찾아왔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생각하며 아이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기대하고 있던 입학식을 향해 가는 날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통지서가 날아온 날부터 제시간에 잠들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언제 학교에 가요?”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물었을 거라고 아이의 어머니는 진저리를 쳤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서 몇 번씩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빠, 학교에는 어떻게 가요?”

 “기차를 타고 간단다.”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도 지치지 않았다. 같은 대답을 또 들어도 좋았다. 지친 얼굴을 한 어머니도 아이만 보면 웃는 아버지도 언제나 상냥한 할머니도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같은 질문에 몇 번이고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다행히 입학식은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고 묻고 답하는 것에 아이의 어머니가 짜증을 내기 시작할 때쯤 찾아왔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버지는 꼬마 브라이언에게 말했다.

 “다이애건 앨리에 가는 거야.”

 그곳은 아이도 잘 아는 곳이었다. 몇 번이나 아버지를 따라 찾아왔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상점, 주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돌아다녔다. 대부분 아는 가게에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간다는 것에 들떠 좋아하는 다이애건 앨리에 간다는 말도 한 귀로 흘려넘겼다.

 “준비물 제가 사도 돼요?”

 “그렇게 하려무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겠니?”

 “물론이죠!”

 꼬마 브라이언은 제일 먼저 양피지와 깃펜을 샀다. 짤랑거리는 금화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익숙한 거리와 상점의 위치를 적은 후에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렸다.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하는 거리를 손으로 그린다는 건 특별한 일이었다.

 돌아다니면서 준비물을 사고 친구들도 사귀었다. 또래 친구들이 잔뜩 있었다. 모두 호그와트에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이었다.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 보니 준비물을 사는 것도 잊어버렸다. 어느샌가 늘어버린 군것질거리와 장난감을 넣기 위해 가방도 샀다. 직접 그린 다이애건 앨리 지도와 몇 가지 모험 도구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친구들과 함께 보는 다이애건 앨리는 지금까지와 달랐다. 사람이 잘 들어가지 않는 뒷골목에도 들어가 보고 수상한 가게도 보았다. 완전히 색다른 경험에 꼬마 브라이언은 신이 났다. 와후!

 무엇보다 신이 나는 건 교수님을 만난 것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환영합니다. 호그와트의 예비 신입생 여러분.”

 북적이는 리키 콜드런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다리는데 누군가 인사했다. 반짝이는 금발에 초록 눈을 가진 남자 어른이었다.

 “저는 여러분을 내일 킹스크로스 역까지 인솔하게 될 세실 윈터벨 교수라고 합니다.”

 그 뒤로 들은 이야기는 환상적이었다. 포트키! 포트키를 탄다! 아이는 신이 나서 얌전히 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끼얏호!”

 포트키를 이용해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하는 시간은 아침 열 시 반. 아홉 시에 일어나는 것도 벅차하는 아이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엄마!”

 “브라이언, 지금 새벽이야.”

 “나 내일 기차 타요.”

 “알아.”

 “아빠, 지금 몇 시예요?”

 “…….”

 옆방 아저씨가 화를 냈다.


 꼬마 브라이언은 기차에서 잠이 들었다. 기차역에서의 기억은 흐릿하고 창밖을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짐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서 옆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도 몰랐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겨우 깨었을 때는 기차가 멈췄다가 다시 출발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검열이 있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랐지만, 누군가 뺨을 맞았다는 소릴 들었다. 아는 아이였다. 다이애건 앨리에서 인사했던 여자아이, 이솔렛. 머글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한 귀로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맞다니! 괜히 화가 났다.

 미처 놀라기도 전에 기차가 다시 멈췄다. 그게 또다시 모험의 시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도착했나 싶었다.

 내린 곳은 낯설고 쓸쓸한 기차역이었다. 아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학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고즈넉한 성이라고 들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배를 탈 호수도 없었다!

 아이가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사이 아이들이 기차에서 내렸다. 역 한쪽에 까맣게 탄 아저씨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했다.

 ‘이미 다 탔는데 모자는 왜 쓰지?’

 기차가 대충 빈 것 같자 아저씨가 말했다.

 “어서 오렴, 신입생 여러분?”

 학교에서 나온 교수님이었다!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뭔가 굉장한 과제를 내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여기서부터 직접 학교를 찾아가라던지 테스트 후 합격하는 아이만 학교에 데려간다든지.

 “학교가 아니라 여기서 먼저 보아 미안하구나. 나는 위팅턴 교수란다. 여기서부터 학교까지 너희를 인솔하는 역할을 맡았지. 리키 콜드런에서 윈터벨 교수는 보았겠지?”

 아저씨, 아니 교수님이 말했다. 아이는 귀를 쫑긋 기울였다. 이야기는 간단했지만 굉장한 이야기였다. 선로에 이상이 생겨서 이곳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야호, 텐트다! 친구들과 함께 야영한다는 생각에 아이는 들떴다.

 인근에 있는 마을에는 자유롭게 놀러 가도 좋지만, 기차에는 가면 안 된다고 했다. 아즈카반의 문지기인 무시무시한 디멘터가 지키고 있다고 했다. 디멘터가 기차에 온다는 건 이상했지만, 아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모험이다!”

 아이는 신이 나서 외쳤다. 기쁘게도 기차가 멈추는 동시에 제일 먼저 걱정스럽던 입학식 일정은 차질이 없이 진행된다고 했다. 기대하던 보트를 탈 수 있다는 말에 아이는 다시 외쳤다.

 “끼얏호!”

 마을을 탐험하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텐트에서 떠드는 경험은 각별했다.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야영을 했지만 또래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캠프파이어도 함께였다!


 설레는 입학식은 예상대로였다. 아니, 기대보다 더 좋았다. 포트키를 타고 도착한 호그스미드는 어른들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았다. 배 타는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춘 것뿐인지라 마땅히 할 것은 없었지만 심심하기보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배를 나눠탔을 때는 최고라고 할만했다. 호수를 건너는 중에 호수에 빠진 것이다! 아이가 이 장면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는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도 몰랐다.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어른들의 우스갯소리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아이는 신이 났다!

 상상 속에서 보았던 커다란 오징어 다리가 아이들이 탄 보트를 뒤집었다. 아이는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너무 놀라고 행복해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 하고 바다에 빠져버렸다. 지팡이를 꽉 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신이 났다! 흥분한 브라이언이 뛰어다니는 바람에 젖지 않은 아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했다.

 마침내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이는 입술을 파랗게 물들이고서도 눈을 빛냈다. 육중한 문과 견고한 벽도 아이의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막지는 못했다. 연회장 문이 열리는 동안 아이는 처음으로 모든 것이 느려 보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기나긴 찰나가 지나고 연회장이 신입생들 앞에 펼쳐졌다. 하늘이 펼쳐진 천장, 길게 늘어진 기숙사 테이블, 옹기종기 모여앉은 선배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놓인 마법 모자와 교수님 테이블. 그 모든 것이 아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추위도 느끼지 못했다. 어서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바라며 친구들을 응원했다.

 마침내,

 “브라이언 홈즈!”

 아이는 성급하게 달려나갔다. 발이 꼬여 휘청거리는 바람에 어디선가 웃음이 터졌지만 창피하지도 않았다. 마법의 모자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뭐라 말이 많은 마법의 모자를 제대로 보고 싶어서 자꾸만 고개를 젖혔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을 때까지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고 들었다가 숙이기를 반복했다.

 ‘이것 참, 마당발 친구로구먼?’

 모자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난 어디야?”

 꼬마 브라이언이 물었다. 이미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

 ‘성급하게 굴지 마라. 어디 보자. 호오, 머릿속이 아주 명확하군. 행동도 머릿속과 아주 똑같은걸.’

 “그래서 어딘데?”

 ‘네가 갈 길은 하나뿐이구나. 아주 일직선이야. 널 위한 기숙사를 알고 있단다.’

 “그래서?”

 말이 한마디 끝날 때마다 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모자는 아이의 재촉에도 태연했다.

 ‘즐거운 학교생활 보내길 바란다. 바로…,’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와, 환호성이 터졌다. 아이는 만세를 불렀다!

 꼬마 브라이언은 교수님이 모자를 벗기건 말건 신이 나서 단상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핀도르다! 신이 나서 그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선배들은 겪어보지 못했을 모험 끝에 마침내 도착한 학교에는 또 얼마나 꿈같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거리는 시작이었다. 그곳이 바로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곳이었다. 꼬마 브라이언은 꼬마 타이틀을 던져버렸다. 이곳이 시작이었다. 매일 침대맡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진짜가 되어 브라이언의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만세!”

 브라이언은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는 눈총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더 좋아질 수 있을까? 브라이언은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당연하지!

 난동을 부리던 브라이언은 테이블 의자 위를 신발 신은 발로 섰다는 이유로 교수님께 꾸중을 듣고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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