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른 이들에게 이상하게 생각된다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소년은 말가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높게 펼쳐진 푸른 하늘은 그에게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지 못했다. 하늘 아래 서있는 것만으로도 무서웠으니까. 이렇게 그늘에 숨어야지만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다. 비웃어도 괜찮았다. 하늘보다는 덜 무서웠으니까.
  연녹빛으로 물든 넓은 평야도 무서웠다. 숨을 곳 하나 없이 광활한 대지는 소년에게 사지가 얼어붙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가끔 어른들이 거래를 위해 산을 내려갈때면 방안에서 창문 밖으로 눈만 내놓고 같이 가게 해달라고 때쓰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런 곳이 무에 좋아서 저토록 가고 싶어하는 지 소년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땅의 낮음에 반항하듯 치솟은 산꼭대기도 무섭기만 했다. 70년을 산속에서 살았지만 소년은 사방 막힌 것 하나 없이 세상과 직접 닿을 수 있는 산의 정상에는 단 한번밖에 오르지 못했다. 오른다고 생각만 해도 숨이 가빠올 지경이었다.
  소년은 전방에 뭐가 펼쳐진지도 알 수 없을만큼 울창한 숲이 좋아했다. 그대로 녹아서 숲과 하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왕이라면 화인이 아니라 나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어두움이 안락함이었고 조용한 소란이 자장가가 되어 소년의 발목을 잡는 곳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숲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너무 좋아서 무서웠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만드는 쓴 것을 좋아했다. 가끔은 씁쓸함이 과해 기침이 났지만 그것도 좋았다. 간식으로 단 과자나 빵 같은 것이 나오면 소년은 근처 숲으로 나와 쓴 풀을 씹었다. 단 것은 냄새만 맡아도 질렸다.

  그래서였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소년을 타겟으로 한 것은. 그녀는 어쩌면 소년의 이런 본질을 한눈에  꿰뚫어 보았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어느 날 찾아온 것이었다. 낯선 이가 마을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이웃마을―산을 세개쯤 넘어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에서 가끔 찾아오는 다른 화인족이 아니었다. 여인과 아이,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은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본 적이 없는 확실한 외부인이었다. 시원하게 틀어올린 머리 탓에 여인의 뾰족하게 솟은 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이의 등에 달린 새하얀 날개. 걸음에 맞춰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두들 시선을 빼앗겼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는 못했다. 어른들은 지켜보고 아이들은 주위를 맴돌았다. 10년에 한번도 볼 수 없는 외부인, 그것도 다른 종족에게 면역이 없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았다. 그나마 이럴 때에는 아이들 쪽이 조금 더 대응이 빠른 법이었다.
  한 아이가 용감하게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아이들이 뒤를 졸졸 쫓아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부릅 뜬 눈과 마주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주먹을 불끈 쥔 아이의 모양새가 우스웠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이 마을엔 왜 왔지!"

  아이는 긴장한 듯 목소리는 떨렸지만 말은 분명하게 했다. 아이를 걱정해서였을까 조금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두 이방인 중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리기 전까지는. 발작적으로 웃기 시작한 그녀는 땅바닥을 구를 듯한 기세였다. 아직 조그마한 그녀의 딸이 말렸지만 전혀 그칠 기미가 없었다.

  "푸흐크하하하하하학, 쟤, 쟤, 얼굴, 으하하, 푸크크크크큿, 히히힉."
  "어머니. 그만 하세요. 어머니!"

  작게 한숨을 쉰 소녀는 미소를 띄고 사람들 앞에 허리를 숙였다. 못난 어머니 때문에 죄송합니다, 라고. 그것이 이 작은 산골 마을과 그들 모녀와의 첫만남이었다.

  어미의 이름은 에피, 딸의 이름은 라파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랜 여행에 지쳤을 사람들을 환영하지 못하고 경계한 것에 대한 사과로 할수 있는 한 두 사람을 후하게 대접했고 심지어 한동안 머물 수 있는 방까지 마련해주었다. 그들은 사양하지 않고 2-3일 머물다 가기로 했고 그 사이  두 사람은 마을의 인기인이 되었다. 에피의 세상 이야기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귀를 기울이는 여흥거리였고 라파엘은 눈에 띄는 흰 날개 덕에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해도 아이들이 모였다. 그 뿐 아니라 라파엘은 덜렁거리는 어머니를 챙기는 착실한 아이로 어른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았다. 어린 나이였지만 산골밖에 모르는 순박한 사람들에게는 사근사근 상냥한 말씨는 세련됨으로 단정한 몸가짐은 귀족적인 품위로 보이기에 무리가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 에피도 털털했지만 도시 사람의 분위기가 풍겼다. 라파엘은 마을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마음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떠나갔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으로 모녀가 일주일째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여들었다. 어른 없이 아이들만 잔뜩인 그 곳은 일명 '선생님'의 집이었다. 선생님은 마을에 정착한 외부인으로 밖에서는 무언가의 학자라고 했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약을 지어주는 의사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돌발 상황이 닥쳤을 때 조언을 구하러 가는 사람이기도 했다. 낮이면 일에 바쁜 어른들을 도울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그의 집에 모여 옛날 이야기를 듣고 주변 식물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는 했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워도 아이들은 그의 집 주변에 모여 놀았다. 그 날은 선생님이 산을 오르는 날이었다. 즉,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의 집을 한가득 메운 화분 중 서너개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라파엘이 쓰러져 있었다. 그 앞에는 아이들이 모이자 어쩔 줄 몰라 눈만 데록데록 굴리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애러랫. 그는 아무 생각없이 숨을 곳을 찾아 발을 떼었다가 화분의 파편을 밟고 주저앉았다.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 웅성거리기만 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선생님을 불러와. 개중에서 나이가 많은 아이였다. 그제야 주섬주섬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라파엘이 쓰러졌는 알 수 없었지만 화분을 깨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비를 들고와 바닥을 쓸어냈다. 몇몇 여자아이들이 라파엘을 일으켰다.

  "라파엘, 어디 다쳤어?"
  "…응…, 여기…어디."
  "선생님 댁이야. 괜찮아?"
  "머리가 조금 아파. 그치만 아마 괜찮을거야."
  "다행이다, 어디 다친 줄 알았어."
  "화분에 머리를 얻어맞긴 했는데……."
  "히?!"

  아이들이 라파엘의 머리카락을 들춰보고 피가 난다며 야단이었다. 라파엘은 얌전히 앉아 곤란한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라파엘에게 쏠린 사이 애러랫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숨어 들었다. 낑낑거리며 발에 박힌 화분의 파편을 빼냈다. 흙먼지가 앉은 맨발에 빨간 피가 베어나왔다. 왈칵 눈물이 솟는 것을 소매로 문질렀다. 이정도 아픈 건 당연한 거야. 바보같이 화분이 깨진 곳을 맨발로 걸어다녔는걸.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애러랫은 그대로 웅크린 체 소란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고개를 내밀어 살피기도 무서워 구석에 틀어박힌 체 라파엘과 아이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저…, 아까 그 애는 어디로 간거야?"

  조용한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애러랫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왜? 왜 나를 찾지? 아이는 당황해서 더욱 어둠이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갔다.

  "누구?"
  "애러랫이라면 몰라. 어딘가 숨어있겠지. 맨날 구석에 틀어박혀 있어."
  "좀 이상한 애야, 신경쓰지마."
  "그치만……."

  구석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귀를 틀어막았다. 무슨 말이 이어질지 듣고 싶지 않았다. 라파엘이라는 여자아이는 분명히 마을 사람들 전부의 신뢰를 얻을 만큼 착하고 그냥 보더라도 믿음이 가도록 예뻤지만 어째선지 애러랫은 그녀가 무서웠다. 하늘을 닮은 푸른 두 눈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 탓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찌되었 건 애러랫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 앞에 서자 몸이 굳었다. 그리고 그런 애러랫을 보고 라파엘은 웃었다. 평소랑 다름없이, 그저 예쁘게. 다가오지도 않고 모른 척하지도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웃었다. 얼어붙은 애러랫을 앞에 두고 감상하기라도 하듯 상냥하게 웃고만 있었다. 누군가 그녀를 부르기까지 짧은 순간 동안 두 사람은 그렇게 서있었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몇일이나 지났다고 또 그녀와 단 둘이 있어야 했다. 애러랫은 그 사실이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눈물을 꾹 참았다. 어째서 그래서인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석양이 드리운 하늘이 보였다. 애러랫은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질,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선생님의 침실이었다. 몸이 약한 탓에, 그리고 애러랫이 그나마 친하게 지내는 유일한 사람이 선생님인 탓에 자주 누워있었던 곳이라 금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푸른 하늘을 닮은 눈을 가늘게 뜨며 라파엘이 웃었다.

  "안녕?"

  다정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평소였다면 은폐물을 찾아 숨을 준비부터 했을텐데 그녀 앞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 대신 와들와들 떨리기만 했다. 저것과 똑같은 얼굴로 자신의 손가락을 화분에서 떼어내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그 화분은 그대로 떨어져 라파엘의 머리에 맞았었다. 놀란 애러랫이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화분을 두개나 더 깼다.

  "왜 그렇게 떠니?"

  걱정스러운 표정에 마찬가지로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 선생님이 들어와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애러랫에게도 몇가지 물어왔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라파엘의 눈치를 보았지만, 그녀는 애러랫에 대해 미안한 감정만 비쳤다. 자신의 실수로 애러랫이 화분을 놓쳤노라고 말하고 있었다. 애러랫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이 눈에 띄게 떨고 있는 애러랫을 걱정했지만 그는 그저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라파엘은 애러랫에게 거듭 사과했다. 선생님은 양쪽 모두 실수일 뿐이니 서로 사과하고 넘어가라며 두사람 사이를 중재했다. 애러랫은 계속 고개만 끄덕였다.
  그 날 밤, 애러랫은 무서운 것 목록에 새로운 것을 추가했다. '상냥한 말씨, 친절한 미소.' 1순위에 올려놓은 그 것이 가까운 곳에 보인다면 바로 도망가자고 몇번씩 다짐했다. 하지만 애러랫은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번도 그것을 실천하지는 못했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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