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연필이 종이에 스치는 소리가 정겨웠다. 손을 멈추면 소리가 멎는 것이 아쉽지만 잠시 고개를 들었다. 방과 후에서 저녁식사 전까지 매일 시간을 보내는 하얀 양호실의 풍경이 노엘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눈부신 오후의 햇살이 창을 건너 흰 커튼에 드리우고 창 옆에 자리한 책상 앞에 앉은 역시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금발이 보였다. 간간히 밖에서 떠드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종이 넘기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는 양호실의 풍경은 그림 같았다. 소리를 내는 것이 죄스럽다고 느낀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남몰래 하고 있는 느낌이다.
 다시 손안의 책으로 신경을 돌리는 노엘의 눈에 시계가 들어왔다. 네 시 반. 슬슬 돌아가야 저녁시간에 늦지 않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만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일까. 노엘의 얼굴에 희미하게 아쉬운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책상에서 고개를 들지 않는 단아한 옆모습을 곁눈으로 훔쳐보고 멀리 둔 가방을 끌어당긴다. 꺼내놓은 책과 필기구를 정리하고 업무에 바쁜 선생님의 곁에 섰다. 

 “차 드실래요?”
 “아아, 고마워.”
 “…….”

 의료계에서는 인지도가 있는 의사인 엘리엇은 학교 양호교사 업무 외에도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강의며 헬프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탓에 노엘은 매일 양호실에서 방과 후를 보내지만 엘리엇이 없는 경우도 잦다. 무슨 일인지 바빠 보이는 엘리엇의 머그컵에는 다 식은 커피가 반쯤 남아있었다.

 ―솨아.

 세면대에서 컵을 씻는 건 몇 번을 해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학교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싱크대가 없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교무실에서 일을 돕는 때가 많았던 노엘에게는 가장 큰 불만사항 중 하나였다.

 “선생님―인가.”

 머그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노엘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 갑자기 튀어나온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문득 양호 선생님이 떠올랐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새하얀 백금 발에 흰 가운, 신경질적인 표정을 한 투명한 사람. 저도 모르게 손을 뻗게 되어서 자신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라 몸을 사리게 된다. 그저 그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해서―.

 “오늘은 레몬밤으로 할까.”

 저 상태면 일을 다 끝낼 때까지는 안 드시겠지, 라고 덧붙였다. 양호실로 돌아가는 발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조용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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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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