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잠이 들었을까. 눈을 뜨고 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방 잘 아는 장소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당장 유진에게 전화를 걸 참이었다. 요새 계속 컨디션이 안좋더라니 피로가 쌓이긴 했던 모양이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이 들다니. 어지러운 머리를 붙들고―핸드폰을 손에 꼭 쥔 체―시계를 찾는 노엘의 눈에 요 몇일 봐온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 눈에 띄었다.

 "선생님?"

 한숨처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매일 같은 유진의 양호실 출입에, 혹은 갑작스런 고열로 시작되는 자신의 감기 몸살 탓에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동안 봐온 것과는 확연이 다른 지친 듯한 모습으로. 저도 모르게 조심스레 다가가 바라보니 색이 옅은 금발이 곤히 잠든 얼굴 위로 흩어져 있었다. 답답해 보여 치워드릴까 하다가 다른 사람―그것도 자고 있는―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꺼려져 대신 시선을 돌렸다. 안보면 답답할 것도 없지. 시계는 벌써 다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의 빠름에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창틀에 가지런히 놓인 문제집을 돌아본다. 오늘은 거의 못풀었구나. 침대 위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집어돌아서는데 문득 방금까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아까까지 앉아있던 의자에 널브러진 자켓은 노엘의 것이 아니었다. 잠들기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것이었다. 앉자마자 곯아떨어져 평소와는 달리 가디건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추워보였던 걸까. 불편하게 잠든 양호 선생의 주변에서는 겉옷이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잠이 덜 깬 몸에는 쌀쌀한 날씨지만 추위를 잘 타는 노엘에게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폐를 끼쳤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나빠졌다. 자켓을 들어 다시 선생님의 등에 덮어드린다. 출장에서 돌아오셨구나. 양호실에서 공부하기는 무리겠네.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머리카락을 조심조심 치워드렸다. 이제 가야지. 가방에 문제집만 챙기면 더 망설일 것은 없었다.

 "…누구?"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천천히 돌아보자 선생님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런, 안경 쓰고 잠들었나."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몸짓의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없어 그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있었다.

 "미안한데 지금 몇시지?"
 "다섯시 오분…, 조금 넘었습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제야 목이 가라앉은 듯 한 선생님께 물이라도 한 잔 드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양호실에는 컵도 정수기도 모두 비치되어 있기에 급히 따뜻한 물을 건내자 놀란 듯 쳐다보다가 고맙다고 웃으며 받으신다. 웃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로 대면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양호 선생님은 굉장히 눈을 끄는 사람이었다. 날이 선 인상이 시원스럽기까지 했다.

 "왜?"

 너무 대놓고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깨닫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뇨, 아무 것도."

 어쩐지 이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유진이 아닌 누군가와 목적도 없이 한 장소에 있는 것은 불편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급히 가방을 챙겼다. 펜 뚜껑을 제대로 닫았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대충 밀어넣었다. 별 것도 아닌데 결국 손을 대고 만 자신의 인내심 부족이 원망스러웠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가던지, 아니면 깨우게 되었더라도 훨씬 침착했을텐데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전혀 자신답지 않다. 당황스러워서 빨리 이 자리에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문을 열려는 순간 붙잡듯 들려온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의 생각따위는 아랑곳없이 문을 닫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을텐데.

 "잠깐만."
 "…예?"

 스스로도 놀랄만큼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려나왔다. 혹시 이상한 눈으로 볼까, 달아나야겠다는 심정이었다는 걸 알았던 걸까. 여러가지 의문에 심장이 죄여왔다. 품에 안은 가방을 꼭 쥐었다.

 "늦었으니 태워줄게. 같이 가자."

 예상 외의 질문에 벙쪄 있다가 집 머니, 라고 물어오는 선생님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아뇨, 괜찮아요. 혼자갈게요. 쥐어짜듯이 말을 내뱉고 급히 돌아서는데 눈앞이 어질, 했다. 고개를 숙인 체 급히 몸을 회전시킨 탓일까, 아니면 너무 긴장해있었던 탓일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몸이 바짝 굳어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넘어지면 아픈데. 어쩐지 멍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확 옷이 잡아당겨졌다. 곧바로 붙들어온 팔 덕분에 몸이 고정되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다. 심장이 멎는 듯한 감각과 완전히 굳어버린 근육이 생소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거지.

 "몸이 안좋은데 혼자서 공부하고 있었던 거냐. 적당히 해."

 다정한 충고의 말과 함께 가자는 듯이 잡아당기는 몸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서 억지로 떠밀고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노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은 상대방이 작게 중얼거린 그 소리를 알아 들었는지도 모른 체 그 자리에서 달아나듯 양호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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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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