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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8 Secret Boys Love :: [이 사야] 04. 악몽

 ―사야야, 일어나봐. 별일이네, 네가 늦잠을 다 자고. 역시 어제는 많이 피곤했어?

 훗,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꿈이 몸을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듯 온 몸이 나른하고 무거워서 그 눈부신 목소리의 주인공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힘들었다. 부탁대로 그녀가 깨워주었으니 얼른 일어나야 할텐데. 그래야 하는데. 벌어지지 않으려는 눈꺼풀을 어거지로 밀어올렸다. 커튼이 젖혀진 창해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눈이 시려왔다. 빛을 접하자 반사적으로 감기는 눈을 치켜 떴다. 유난히 밝은 듯한 아침이었다. 밝기에 적응하지 못한 탓에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가 서서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처럼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띈 그녀의 얼굴이…….




 "헉!!"

 하얀 커튼 너머로 엷은 햇빛이 어두운 방을 밝혔다. 창가 침대에 누워있던 청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헉, 헉,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대체 무슨 꿈을 꿨는지 못 볼 것을 본 듯 경악한 표정이었다. 한계까지 치뜬 눈 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호흡에 맞춰 양 어깨가 들썩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익숙한 방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청년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순 떠오른 것은 세상 끝을 본 듯한 절망. 그러나 이내 사라졌다. 그 다음 얼굴을 스치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곧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청년은 슬픈 듯 안타까운 듯 애절한 표정을 보였다가 고개를 떨궜다. 핏기가 가신 손가락은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는 듯 하더니 다시 구깃, 이불을 쥐었다. 그 손이 알콜 중독이라도 걸린 사람마냥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얀 이불 위로 툭, 눈물이 떨어졌다. 청년은 어깨를 움츠리고 몸을 숙였다. 소리없는 울음을 감추기 위해 자신을 숨겼다. 손에서 시작된 떨림은 팔로, 어깨로, 이어 온몸으로 번졌다. 그는 아무런 소리도 없이 그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보이지 않는 것일까.

 사야는 울컥 하고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억지로 억눌렀다.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누르는 데 성공한 대신 눈물이 그만큼 왈칵 쏟아졌다.

 자꾸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꿈을 꾸었다. 목소리는 일어나도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매번 다른 꿈을 꾸지만 목소리는 그녀의 것이었다.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녀가 웃는 것도 보였다. 발랄한 몸짓이 보였고 좋아하는 음식도 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알 수 없었다. 보기 전에 깨어나거나, 혹은 분명히 꿈 속에서는 보았는데도 깨어나는 순간 잊어버렸다. 마치 지우개로 그 부분만 깨끗이 지워낸 듯 그녀의 얼굴은 하얀 백지로만 남아있었다. 어째서인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꿈을 꾸고 있을 때는 행복했다.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사랑하는 여동생, 희야의 곁에 있는 것보다도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세상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뒤집혔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 가슴이 아팠다. 희야의 죽음을 목격한다 해도 이보다는 더 슬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옆에 없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희야보다도 더 보고 싶고, 그리웠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사야는 들리지 않는 비명을 계속해서 게워내고 있었다. 혹시나 이른 새벽에 피곤한 희야가 잠을 깰까 울음 소리도 죽였는데 비명을 지를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희야는 오늘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소리내어 울 수 조차 없는 자신을 위한 핑계였다. 구토감이 느껴졌다. 빈 속에 신물이 올라왔다. 격하게 몸을 숙이면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이미 무릎깨를 덮은 이불은 눈물로 축축했다.
 자신의 손으로도 감싸지 못한 청년의 어깨가 그저 안타깝고 애처로왔다. 어느 주말, 사야는 신음소리조차 없는 서러운 울음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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