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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12 Secret Boys Love :: [이 사야] 맞지 않는 사람.

 이 사야, 22세. SBL 방송국에 영상일로 지원했다. 가족사항은 쌍둥이 여동생 뿐. 방송국에 취직했는데 어째서인지 일거리가 없다는 것만 빼면 현 생활에 아무런 불만도 없는 소시민. 그래, 문제는 그 것이었다. 다행히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어쩜 이렇게 일이 없을까. 이래도 방송이 나간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 날도 결국 할 일 없이 휴게실 소파에 늘어붙어 지루함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였다. 재밌어보이는 것이 눈앞을 지나갔다. 닌자 차림을 하고 표창을 날리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만큼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사야가 보기엔 충분히 특이한 사람이 자판기 앞에 서있었다. 그는 자판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듯이 기기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씨발, 왜 안나와, 이거. 썅, 돈 먹었네."

 뭐라고 더 꽁알거리는 것 같기는 했지만 온통 욕투성이. 사야는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한 귀로 흘리며 그를 살폈다. 신기할 정도로 동그란 뒤통수. 옷에는 날개가 달렸다. 저거 저렇게 세워서 고정시키려면 옷에 공 좀 들였겠는데.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특했는데 거기에 더해 신경질적으로 휘두르는 손목에는 수갑으로 보이는 쇠뭉치가 대롱거렸다. 몇가지 독특한 차림만으로 충분히 흥미가 동해 사야는 그를 제대로 관찰하기로 했다. 상대방이 시선을 느끼는 지 따위는 사야가 알 바가 아니었다.
 여전히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절반이 욕이었다. 별 의미없이 습관적인 것인 듯 했지만 언어청정구역에서 살아온 사야로서는 귓가에 맴돌뿐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도 가끔은 재미있다. 자주 듣기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겠지만서도.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 몇번이나 자판기를 더 걷어차고서야 한쪽 눈썹을 잔뜩 찡그린 체 돌아선 그의 얼굴은 매끄러웠다. 하얀 안대가 한쪽 눈을 덮고 있어 제대로 살필 수는 없었지만 꽤나 귀여운 얼굴일 거라고 생각했다. 헤에―, 다시 시선이 갔다. 파랗고 노란 상의. 무려 보색의 조합. 거기에 얼굴을 감싼 바가지머리가 잘어울렸다. 이걸 그냥 독특하다고 해도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런 색다른 아이템들이 한 곳에 모여서 어색하지 않다면 그대로 패션이라고 이름 붙여도 되지 않을까.

 "뭘 봐."
 "……."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성큼 앞에 선 그가 사야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먼저 보인 것은 출입증.

 "김 재하."
 "뭐?!"

 협박이라도 하듯 찡그린 얼굴이 오히려 재미있기만 했다. 탁. 사야는 손을 뻗어 주름진 미간을 누르려 했지만 먼저 잡혀버렸다. 강한 악력에 의해 손이 꺾였다. 아프다. 작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이놈 새끼가 왜 꼬라보고 지랄이야. 눈 안 깔어?"
 "기왕이면 손은 놓고…."
 "새꺄, 어딜 주둥이를 나불대. 씨발. 눈 깔라고."
 "……."

 대체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조용히 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사야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가 그냥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그게 또 불만인 모양이었다.

 "썅, 너 나 놀리냐?"

 팽개치듯 손이 풀려났다. 다른 손으로 저린 손을 쥐어 주물렀다. 아, 피곤해. 어쩐지 머리가 아파왔다. 소란스러운 사람은 질색. 심심한 것보다는 나았지만 시비가 걸리는 것은 싫었다. 요즘 급 늘어버린 한숨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눌러 참았다. 그럼 또 무슨 소리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아이, 씹, 자판기는 돈을 먹고 옆에 있던 새끼는 꼬라보고 오늘 일진 죽여주는데."

 그 뒤로는 듣지 않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졌다. 사야가 아무 말이 없자 마치 패기라도 할 것같은 기세였던 그는 혼자서 욕을 씨부렁 거리다 물러났다. 그래도 반항기 청소년들이 모인 학교가 아니라 직장인 탓일까. 한 대도 얻어맞지는 않았다. 유난히 저런 타입의 사람들과 상성이 맞지 않는 사야는 툭하면 시비가 붙었었다.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걸리적거린다느니 핑계는 많았다. 대부분 얻어맞아야 끝이 나곤 했었는데.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었다. 희야에게 멍을 감추기 위해 애 쓰지 않아도 된다니 그것만도 감사했다. 사야는 그가 빠져나간 휴게실 문을 바라보았다. 다시 지루해졌다.

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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