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66건

  1. 2009.06.13 Secret Boys Love :: [이 사야] 천사의 노래가 들려와.

 촬영 사이에 찾아온 점심시간이었다. 사야는 식사를 하러 옹기종기 모여 나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거슬러 사무실로 돌아왔다. 실내 촬영이어서 기뻤다. 조금이라도 익숙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누군가 먹자고 제안하지 않으면 식사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사야에게는 식사시간은 그저 휴식시간일 뿐. 자리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결국 엎드려 눈을 감았다. 잠은 잘 수 없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날카로워진 신경을 가라앉히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과 가끔 복도를 지나는 발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던 공간에 낯선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사야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지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그 흥얼거림을 뒤늦게서야 알아차렸다. 낮게 울리는 허밍이 기분 좋았다. 귓가를 간질이는 부드러운 소리가 자장가 같아서 어쩐지 진짜 잠이 들어버릴 것 같았다. 결국 사야는 어거지로 눈을 떴다. 점심 시간은 그다지 짧지 않지만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오히려 피로만 더해줄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눈을 뜨고도 여전히 잠자는 것 같은 상태로 사야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계속해서 노래가 들려왔다. 발소리와 무언가 쓸리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는 걸 깨달은 것은 잠시 후였다. 누구지. 그제야 궁금해졌다. 어차피 방송국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회사마냥 정규적인 스케쥴에 맞추어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일하느라 자리를 비운 복도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복도에서 할 게 뭐가 있다고? 사야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소란스러우면 그대로 가버릴 지 누가 알까.

 "음, 음, 음~."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아직 잠에 취한 체인 멍한 머리로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야는 그저 움직이는 그림같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뒤돌아 있던 그가 고개를 돌리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해왔다.

 "안녕하세요, 사야씨. 식사는 하셨나요?"

 반짝반짝―, 눈이 부셨다. 손을 들어 그에게 화답하다가 문득 그가 사야씨는 빛나시네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말도 안 돼. 당신이 훨씬 빛나고 있잖아. 사야는 생각했다. 활짝 웃는 것이 조금 어색한 듯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그가 보여주는 순수한 호의와 열심을 다한 성의는 어색한 표정을 흠으로 느껴지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 표현에 서투른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저렇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른 눈빛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었다. 사야는 고개를 끄덕이는 척 시선을 피했다. 다시 사람좋은 미소가 따라왔다.

 "다들 바쁘신 모양이네요. 스텝 사무실이 텅 비어있고."

 그는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잠깐 쓸어둘까 해서 올라왔어요."

 깨끗한 환경에서 쉬는 것이 효율이 더 좋겠죠, 라고 덧붙이며 웃는 눈을 마주볼 수 없어서 사야는 대신 그의 코를 바라보았다. 정말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고작 청소일 뿐인데. 남들은 천대하는 직업인데.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그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는 딱딱한 얼굴을 젊은 청소부라는 인상에 재미로 다가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피하는 듯 했지만 이제는 그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게다가 더 신기한 것은 그가 이렇게 많은 방송국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히 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평소 다들 출입증을 차고 다니기는 하지만 처음 대화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는 딱히 출입증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심심할 때 사람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 사야는 그가 청소를 하다가 인사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이내 인사하지 않는 사람의 수를 세는 것으로 바꾸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인사한 사람의 수든 인사하지 않은 사람의 수든 지금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그만큼 그가 아는 사람이 많다는 건 확실했다. 더구나 그는 인사할 때 꼭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아까처럼.
 잠시 그는 사야에게 요즘 복도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늘어서 치우는 데 힘이 든다던지 그래도 빛나는 분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자기는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그 외에도 희야의 안부라던가―어느샌가 그는 희야의 이름마저 기억하고 있었다―날씨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사야의 대답 탓인지 그는 금새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물러났다.

 "그럼 저는 이만 마저 쓸러 가볼게요. 빨리 하고 저도 밥먹어야 해서."

 그렇게 돌아서는 그의 등을 보고 있자니 미안한 일을 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친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사야는 그런 건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임을 잘 알았다. 사야에게 가능한 건 이정도 였다.

 "밥 맛있게 먹어."

 그가 돌아보았다. 웃고 있었다. 착각인지 모르지만 기뻐보이는 얼굴로 그가 손을 흔들었다.

 "네, 사야씨도 일 열심히 하세요!"

 그 말에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손만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즐거워보였다. 그는 빠르게 복도를 쓸며 멀어져갔다. 복도와 사무실에는 하나 둘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슬슬 점심시간도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Posted by fa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