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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2 기묘한 손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 것은,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일종의 ‘폭탄투하’?

따뜻한 코코아를 받았다. 겨울, 이라서일까. 그냥 손님접대일까. 눈만 이리저리 굴려 분주하게 일하는 중인 엘리엇씨를 관찰했다. 코코아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김이 코끝을 데운다. 아, 슬슬 뜨거워, 손가락.
잠시 코코아를 따라 뜨겁게 달궈진 머그잔을 무릎에 내려놓고 손을 식혔다. 우유는 막이 생길 정도로 뜨거운 게 좋아. 하지만 뜨거워. 마시다가 혀를 데일 때도 많았다. 코코아도 뜨거운게 좋아. 평소 손이 차가워서 늘 옷 밖으로 손을 꺼내지 않는 나로서는 뜨거운 쪽이 들고 있기에도 좋다. 하지만 변온동물인걸까. 금방 뜨거워져서 이렇게 손가락을 호호 불게 된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는지, 손가락 끝이 조금 아프다…….

푸른빛 도는 은빛 머리카락이 의자등받이를 넘어 바닥에 닿는다. 코코아가 든 머그잔을 무릎에 내려놓은 소년은 손가락을 불기에만 바빠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조금 맹해보이는 눈빛의 소년은 손을 식힌다 코코아를 마신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도 눈만은 줄곧 한 곳에 못박고 있었다. 하얀 가운에 눈매가 날카로운 하얀 피부의 청년. 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바라보는지 신기할 정도로 소년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마치 그를 바라보는 것이 평생의 숙명인듯 집요하게. 계속해서 그만 바라보며 호르륵 코코아를 마시고는 뜨거운 듯 혀를 내밀어 헥헥 거린다. 그리곤 놀라서 맺힌 눈물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계속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루야야 여기있니?"

노크도 없이 덜컹 열린 문 너머로 한 여성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쏠린다. 청년과 소년, 그리고 청년의 손님. 그는 의사이므로 정확히는 환자라 해야 맞겠다. 청년은 숨을 훅 내쉬더니 대답했다.

"여기 있으니까 ‘제발’ 데려가."

잠시 셀린을 바라보더니 그새 다시 엘리에게 시선을 복귀시킨 루사나는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 그의 말을 듣기는 한 걸까. 소년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오로지 엘리,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셀린은 전혀 무반응인 루사나를 보며 고개를 휘휘 젓더니 성큼성큼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 루사나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코코아─……,’ 하고 중얼거리는 소년의 목소리는 들은 척 만척 흘려넘기며 그를 잡아 끌었다. 셀린의 손길에 의해 의도치 않게 걷게 된 루사나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 진료실 문이 닫히기까지 엘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소년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진료실 문이 닫히자 꼬리내린 강아지 같은 모습이 되어 시무룩하니 그녀를 뒤따르는 소년의 모습에 셀린은 조금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엘리가 그렇게 좋아?"

신기해서 물은 셀린의 질문에 소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무도 순진한 눈동자를 앞에 둔 탓에 뭔가 더 따져물을 기운도 나지 않았다. 그저 ‘엘리, 너 잘못걸렸구나,’ 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줄 뿐. 셀린이 그렇게 생각에 빠져있는데 무언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내려다보니 소년의 손이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어디 가는 거예요?"
"간식 먹으러."
"간식?"
"딱 시간이 간식 시간이잖아. 눈사람 모양 브리오슈, 먹어본 적 있어?"
"으응─."
"네가 있을 땐 만든 적이 없었던가. 달아, 맛있어. 단 거 좋아하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에 셀린은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애가 이리 솔직한지 한번씩 웃음이 터진다. 보통 단 걸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 이 또래 남자애들은 숨기지 않나? 어리둥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루사나의 머리를 쓱쓱 쓸어주고는 셀린은 앞서 식당으로 재게 걸었다. 코코아를 마시며 천천히 따라오던 루사나의 ‘같이 가요,’라는 소리는 한귀로 흘려넘겼다. 아직도 꽤 많이 남은 코코아를 엎을까봐 빨리 걷지 못하는 소년을 복도의 코너에서 기다리며 셀린은 피식 웃었다. 난로가 없는 복도의 공기는 꽤나 차갑기 때문에 벌써 거의 식었을 텐데 못 마시고 조심조심 들고오는 모습이 재밌다.
루사나의 걸음에 맞춰 느릿하게 도착한 식당에는 낯선 사람이 있었다. 화사한 금발에 여유로운 미소가 눈에 띄는 남자다. 가늘어보이는 손목에 걸린 얇은 팔찌가 찰랑하고, 소리를 내었다. 찻잔을 들어올려 입에 대고 내려놓기까지의 일체의 과정에는 몸에 벤 품위가 엿보인다. 쓸데없는 동작은 전혀 없었다. 걸치고 있는 옷의 재질은 꽤나 고급이다. 정장은 아니지만 격식에 어긋난 것도 아니었다. 괜찮군. 눈이 마주친 아주 잠깐동안 낯선 이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본 후 점수를 매겨본 셀린은 식당에 들어서며 눈빛으로 사랑하는 동생, 세실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야.’

"루사나군을 찾던데? 누님도 모르는 사람이야?"
"루야한테?"
"응. 루사나군은? 데리러 갔던 거 아니었어?"
"아까까지 잘 쫓아왔으니까 이제 들어올……, 루야?"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은 누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닥에 조심스레 머그컵을 내려두고 그대로 뒤로 한발짝 내딛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뭐지?"
"글쎄."
"아, 루오빠 갔어? 브리오슈 내가 구운건데……."

과자를 예쁘게 담은 접시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나오던 린이 울상을 지었다. 세실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 수 없지. 다음에 오면 또 굽자."
"응!"

부녀는 마주보며 생글거리고 셀린은 고개를 저었다. 둘 다 못말려,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린은 자기 머리보다 커다란 접시를 식탁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루오빠 그냥 가버렸지만, 같이 과자 먹고 가요."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으로 대응한 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아이의 앞에 내민 하얀 종이에는 그린 듯이 예쁜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감사합니다만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는 아쉬운 눈길로 쪽지를 받아들었다. 뭔가 싶어서 쪽지를 들여다본 셀린이 세실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질문 없이 바로 대답이 나온다. 아니, 정확히는 이번에도 쪽지. 셀린이 세실에게 전해받은 쪽지를 읽는 동안 세실은 손님을 붙잡았다.

"기왕 구운건데 같이 드시죠. 어차피 같이 먹으려고 했던 루사나군도 가버렸으니까요."
"응응, 같이 먹어요!"
"린이도 이렇게 바라고 있으니까요."

청년의 친절한 말에 손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앉았다. 세실은 차를 내오러 잠시 부엌으로 들어가고 셀린은 손님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셀린은 쪽지를 옆에 내려두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 쪽지대로라면 말을 하지 못하시는 거군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였다. 불편하군, 이거. 그나저나… 딱히 할말이 없네. 셀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쿠키를 하나 집었다. 일단 먹고보자.

"오빠는 루오빠의 친구─인거죠? 이름이 뭐예요?"

그러고보니 이름도 몰랐구나. 아이의 질문에 그제야 알아차렸다. 그는 미리 준비해서 늘 가지고 다니는 듯 품 속에서 꺼낸 종이 한장을 아이에게 건냈다.

「루아인Ruain」

"에…, 그럼 아인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

끄덕끄덕. 아아, 화기애애하군.

"뭐야, 그 녀석은 어디갔어?"
"엘리 삼촌!"

갑작스런 목소리에 돌아보니 그새 진료가 끝난 건지 식당 문 앞에 피곤한 얼굴의 엘리엇이 서있었다. 때마침 찻잔을 든 세실이 나오며 그를 반겼다.

"환자분은 돌아가신거야? 먼저 앉아있어. 한잔 더 따라올게."
"고마워."
"삼촌, 오늘 브리오슈 린이가 구웠어요!"
"어쩐지. 오늘따라 냄새가 더 좋더라. 잘했어."
"에헤헤."

쪼르르 달려나가 그의 옆에 매달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엘리가 식탁에 앉고 세실은 찻잔을 각자의 앞에 내려둔 후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따라들어가는 것을 잠시 바라보던 엘리가 식탁 위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뭐야, 왠 나뭇잎?"
"몰라. 당신한테 전해달라는군요."

그 것은 방금 가지에서 딴 듯 파릇한 나뭇잎 한 장. 엘리는 그것을 아인을 향해 내밀었다.

"어쩐지 전혀 안 놀라더라. 누가?"
"그것도 몰라. 이 쪽으로 오는데 누가 창문을 두드려서 봤더니 주던데. 린이보다 작은 남자애. 키만 봐서는 10살이 안됐으려나."
"헤에."

오늘은 묘한 손님이 많네, 셀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묘한 손님 중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니, 보려고 했다. 이미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남아있는 것은 이번에도 하얀 종이쪽지와 구슬을 꿰어 만든 어린아이 손목에나 들어갈 듯한 팔찌 하나.

"어라, 손님은 가신거야?"
"그런 모양인데."
"에?"
"또 가버렸다…."
"자, 린이 네 거. 맛있는 과자에 대한 보답이라는데?"
"왓, 예쁘다~!"
"근데 이거 루비 아냐? 이건 사파이어…, 전부 진짜 보석같은데?"
"에이, 설마."
"내가 이런 거 한두번 보겠어? 확실해. 일단 전문가한테 한번 보여야겠지만 이거 전부 진짜 보석이야. 대체 뭐지, 그 녀석?"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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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f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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